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82화 (182/200)

182화

“하인스 이 녀석 뭐 하는데 아직도 0:0이야. 일부러 살살 하고 있는 거 아냐?”

코프는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라커룸으로 달려와 파르켄에서 열리고 있는 잉글랜드 대 덴마크의 경기를 확인했다. 0:0의 스코어.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다면 자신의 경기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8강 진출은 힘들었다.

“골을 넣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못 넣었네. 그것보다 우리 경기부터 이기고 봐야 하는 거 아냐?”

우크라이나와 체코의 3차전. 우크라이나는 8강 진출을 위해, 체코는 전패를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맞붙은 경기였다. 2:1로 우크라이나가 앞선 채로 전반전이 끝났지만, 경기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잘했다고 볼 수 없었다. 슈팅 숫자도 19대 17로 거의 대등했고 유효슈팅 숫자도 10대 10으로 같았다. 코프가 전반전이 끝나고 짜증을 낸 이유도 압도하고 싶었던 경기가 대등하게 흘러가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하긴 하인스 그 녀석이 봐주고 할 애가 아니긴 하지.”

시즌 내내 인수와 호흡을 맞췄던 코프였다. 강팀하고 경기할 때도 믿음직한 인수였지만 약팀하고 경기할 때는 무서웠던 인수였다. 한 선수가 어떻게 하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었다. 그런 인수가 살살 경기를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그쪽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부터 이기고 봐야지. 다들 모여봐.”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경기를 확인하고 뒤늦게 라커룸으로 돌아온 우크라이나의 감독은 선수들을 모았다. 2차전 우크라이나는 잉글랜드에게 3:1로 패했고 덴마크는 체코를 3:0으로 잡아냈다. 최대한 큰 점수 차로 체코를 잡아야 했다. 우크라이나 감독은 득점을 위해 선수들의 위치를 공격적으로 조정해나갔다.

***

“경기 초반에는 상대의 패스 워크에 놀라서 주춤할 수 있다고 쳐. 후반까지 그런 스탠스를 보이는 건 아니지 않아?”

레쉬포드 감독은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다그쳤다. 경기 초반 상대의 기습적인 터닝슛을 허용한 이후 수비들이 적극적으로 전방으로 나서지 못했다. 공격진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어떻게든 공격을 이어갔지만, 뒤를 받쳐주는 선수가 없으니 역습에 신경 쓰느라 제 플레이를 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너희들이 생각해도 할 말이 없지? 상대가 아무리 홈팀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경기만 하면 돼. 왜 잘하던 플레이가 안 돼. 다들 자기 자리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봐.”

레쉬포드 감독은 딱 1분 자기 할 말을 마치고 라커룸을 나섰다. 자신이 감독으로 있긴 하지만 국가대표팀 개개인이 능력을 인정받고 그만큼의 주급을 받는 선수들이었다. 일일이 지적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고쳐나갈 선수들이었다.

“다들 감독님이 하신 말씀의 뜻 이해했지? 우리 플레이만 하면 돼. 질질 끌려다닐 필요 없다는 말이야.”

“자자. 우리가 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후반전에 우리 경기를 보여주면 되잖아.”

레쉬포드 감독과 코치진이 모두 나가자 인수가 먼저 일어났다. 인수의 말이 끝나자 부주장인 바질이 말을 이었다. 케이힐과 메슈에게 밀려 주전으로 뛰고 있지는 못하지만, 에버튼의 주장인 바질이었다. 그런 바질이 인수의 말에 힘을 실어주자 선수들도 자신들의 플레이를 돌아보며 파트너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들 이야기 다 했지? 우리가 전반전에 감독님이 지시한 플레이를 못 했잖아.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감독님이 지시하신 대로 플레이하자.”

“당연하지.”

“우린 삼사자 군단이라고.”

“삼사자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 다이너마이트 심지 뽑힌 지 오래됐잖아.”

다이너마이트 덴마크는 수비축구가 유행하던 시절, 4경기 9골을 몰아넣으며 다이너마이트 같은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후에도 뛰어난 스트라이커들과 공격형 미드필더들을 배출하며 다이너마이트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 축구의 분위기가 공격적으로 변하며 다이너마이트란 별명이 무색해지고 있었다.

“좋아. 나가보자고.”

15분가량의 하프타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는 시간. 잉글랜드 대표팀은 다시 전의를 다지고 필드로 향했다. 전반 경기 중 당황한 눈빛과는 다른 경기 시작 전의 눈빛으로 돌아온 선수들. 그건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덴마크도 마찬가지였다.

***

덴마크의 킥오프로 시작된 후반. 잉글랜드대표팀은 덴마크가 후방으로 공을 돌리자 일제히 전방으로 압박해나갔다. 최후방의 수비진까지 일제히 끌어올려진 라인. 뒷공간이 완전히 비었지만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눈빛이었다.

“앞으로 달려. 한 번에 라인을 무너뜨려.”

잉글랜드의 최후방 수비라인인 잉스와 콜, 핸더슨, 케일이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이 아니었다. 반면 덴마크의 양쪽 윙어는 에디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비진을 한 번에 무너뜨릴 만한 스피드가 있는 선수들이었다. 경합만 된다고 하면 충분히 수비를 떨구고 찬스를 만들 수 있었다. 덴마크의 감독이 코칭박스까지 나와 외쳤을 때 이미 수비형 미드필드진에서 전방으로 길게 공을 차려 했다.

“어딜.”

전방으로 길게 차려는 모습을 본 인수가 뒤돌아 높이 뛰었다. 덴마크 진영 중앙에서 찬 공이 인수의 등을 맞고 멀리 튀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다.

“나이스. 하인스.”

“이런 투지를 보이란 말이야. 다들 몸을 날려.”

“더 압박해.”

팀의 주장이자 팀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많은 주급을 받는 인수가 몸을 날려 수비를 하니 선수들의 사기가 더욱 올랐다.

“침착하게 해.”

“홈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잖아. 상대도 얼마 가지 못해서 압박을 풀 거야.”

덴마크 선수들이 홈의 이점을 노려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했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순수 힘 싸움으로 경기를 몰고 갔다.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압박해오자 기회를 만들기 전 실수가 나왔다.

중앙수비수가 사이드로 벌려준 공을 받은 왼쪽 윙백. 패스가 길었기에 제대로 트래핑하지 못하고 몸 밖으로 공이 떨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는 크레토. 크레토를 피해 공을 잡았지만 등을 돌린 탓에 패스할 길목이 보이지 않았다. 점점 압박하는 크레토에 밀려 골라인까지 몰리는 덴마크의 윙백. 급하게 패스할 곳을 찾았지만 크레토가 구석으로 잘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밖으로 걷어내.”

덴마크의 골키퍼가 급하게 소리쳤다. 뒤에서 도와주려고 수비수들이 이동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인수가 크레토 뒤를 받쳤다. 패스하려다 끊기게 되면 잉글랜드에게 찬스를 내줄 수도 있는 상황. 차라리 공을 밖으로 내보내고 수비를 점검하는 것이 나았다.

“어딜.”

윙백이 걷어내려 한 공이 크레토의 발 안쪽으로 맞고 경기장 안으로 꺾였다. 멀리 가지 못한 공을 잡은 건 크레토의 뒤를 바치고 있던 인수였다.

“돌파 조심해.”

덴마크의 골키퍼가 소리쳤을 땐 이미 인수가 중앙수비수를 제치고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까지 침투해있었다. 골대까지 바로 보이는 위치. 인수의 슈팅을 막기 위해 다른 수비수가 태클로 슈팅을 막으려 했지만 침착하게 중앙으로 공을 한 번 더 차고 들어갔다.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골포스트 왼쪽으로 보고 강하게 찬 공. 골키퍼가 방향을 읽고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공은 왼쪽 골포스트를 맞고 오른쪽 골망을 출렁였다.

삐익.

후반 9분에 나온 첫 골. 세 게임 연속 골이자 이번 대회 5호골이었다. 파르켄에 모인 거의 모든 관중이 덴마크 팬들임에도 불구하고 인수는 관중석으로 다가가 손을 하늘 높이 들며 세리머니를 했다.

1:0으로 앞서나가는 잉글랜드. 덴마크의 킥오프로 다시 시작된 경기. 홈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시작했기에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압박하는 잉글랜드를 거칠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

“감독님. 경기가 거칠어집니다. 물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러서면 상대가 더 거칠게 나올 거야. 국제경기 한두 번 해본 거 아니잖아.”

제일 뒤쪽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피지컬 코치가 앞으로 나와 레쉬포드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인수가 골을 넣은 후 이제 겨우 20분이 지났는데 주심이 반칙을 선언한 것만 양 팀 합쳐 15번이 넘었다. 거의 1분에 한 번꼴로 끊기는 경기. 터치라인 밖으로 나간 공과 골라인을 벗어난 공까지 친다면 1분도 지나지 않아 계속해서 반칙이 나오고 있었다.

“선수들도 그렇지만 주심도 점점 흥분하고 있습니다. 휘슬을 부는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카드가 나온다면 앞으로 경기를 이끌어가는 데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레쉬포드 감독은 코치의 말에 주심을 살폈다. 지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맞붙은 경기에서 주심을 맡았었다. 양 팀 합쳐 옐로카드가 3장이나 나왔을 만큼 거친 파울은 무조건 카드를 빼든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카드를 좋아하는 주심이었다. 아직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긴 했다. 레쉬포드 감독은 주심에게 주었던 눈길을 돌려 상대편 덴마크의 벤치를 바라봤다. 상대도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코치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선수 교체 준비는 다 된 거지?”

“아까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케이힐과 메슈를 빼고 샤네와 힐을 투입하자고.”

전반전부터 상대의 공격을 계속 받아냈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전방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많이 뛰었지만 2경기 연속으로 풀타임 출전한 데다 이번 경기에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휴식이 필요했다.

“그럼 대기심에게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레쉬포드 감독이 코치를 대기심에게 보내자 동시에 덴마크도 코치를 대기심에게 보냈다. 우크라이나와 체코의 경기가 후반 30분까지 3:3의 스코어로 팽팽하게 진행됐다. 덴마크가 1:0으로 지고 있긴 했지만 골득실에서 유리한 것은 분명했기에 불필요한 카드를 적립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교체를 지시하고 난 이후 체코가 한 골을 더 집어넣으며 3:4가 되면서 덴마크 감독이 직접 코칭박스까지 나와 선수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덴마크의 패스가 케일의 발을 맞고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자 잉글랜드와 덴마크 모두 두 명씩의 선수가 교체됐다.

“흥분하지 말고 체력을 아끼라는 지시야.”

“알았어요.”

“어차피 저쪽도 이대로 경기를 끝내고 싶어서 공격진보다는 수비진을 교체했으니 천천히 하자고.”

“어차피 거칠게 부딪히기만 했지 많이 뛰지는 않았어요. 힘이 남아 있을 테니까 수비 쪽에서 더 활발히 움직여줘야 해요.”

리버풀의 샤네가 케이힐과 교체되어 들어오며 인수에게 레쉬포드 감독의 말을 전했다. 인수 역시 샤네와 힐이 투입되기 전부터 덴마크의 압박이 느슨해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현 상황을 샤네에게 전했다.

덴마크의 스로인으로 재개됐지만 후반전에 보여준 치열한 몸싸움은 없었다. 서로 빈틈이 보이면 날카로운 패스가 나오긴 했지만, 수비진들이 모두 라인을 내렸기에 골이 나오지는 않았다. 후반 전광판의 시계가 멈추고 대기심이 5분의 추가시간을 표시했다. 추가시간 5분이 되자마자 주심은 길게 휘슬을 불며 경기를 끝냈다.

같은 시간 다른 경기장에서 우크라이나가 추가시간 만회골을 터트리긴 했지만 4:4 동점으로 마무리됐고 A조에서는 잉글랜드가 1위, 덴마크가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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