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81화 (181/200)

181화

분명 6월이었지만 북해에 접하고 있는 코펜하겐의 황혼은 쌀쌀할 정도였다. 다행히 경기가 낮에 잡혀 있기에 망정이지 저녁 경기였다면 날씨와도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코펜하겐의 산책로에 마스크와 비니모자로 꽁꽁 감싼 건장한 청년 두 명이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인어공주상 앞에 섰다.

“이 시간에 여기서 이걸 찍어야 해? 이미지 찾아보면 진짜 많을 텐데.”

“직접 가서 보고 찍어오라고 하잖아. 비행기 타고 직접 못 오니까 우리가 대신 가서 보고 찍어오라고.”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어. 얼마 전에는 감독님이 산 레고를 뺏어서 부쳐줬다니까. 덴마크를 갔으면 당연히 레고를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평소에는 레고 같은 장난감이나 동화책에 관심도 없었으면서. 나도 수석코치님 거 뺏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욕먹을 뻔.”

“조용해. 노을 생기기 시작한다. 동영상 촬영 잘하고 있지?”

“당연하지.”

어느새 어린 이에서 자신의 2세를 기다리는 유부남이 된 인수와 에디는 레이와 수아의 명령 같은 부탁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경기 일정이 꽉 차 있을 때는 이런 부탁을 하지 않지만 잠깐 시간을 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명령 아닌 부탁을 해왔다. 차라리 명령을 내렸으면 반항이라도 해보겠지만 부탁이라고 거듭 말하니 들어주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저기 하인스와 브라운 아니야? 체격이 그런 거 같은데.”

“인수하고 에디 같은데.”

“선글라스하고 마스크를 벗겨보면 알 거 같기도 하고.”

“내일 3차전이 있잖아. 내일 경기인데 이 시간에 여기 있다고?”

“둘 다 와이프가 임신 중이라잖아. 덴마크에 왔으면 애들을 위해 인어공주상을 찍어갈 수 있지.”

랑겔리리의 황혼의 인어공주상을 보던 관광객들은 노을이 완전히 어둠으로 바뀌자 주변을 둘러보다 이질적인 두 사람을 보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야. 정리해. 가자.”

인수는 에디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하며 설치했던 카메라를 정리했다.

“뛰어.”

인수가 카메라를 정리해 어깨에 걸치자 에디가 속삭였다. 현 축구계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두 사람. 인수와 에디가 뛰자 일반 관광객이 따라올 수 없었다. 코너를 몇 바퀴나 돌고 멀리 잉글랜드대표팀 숙소가 보이자 뛰던 것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위험했어.”

“그러게. 거기서 들켰어 봐. 누가 찍은 사람은 없었겠지?”

“다들 노을을 찍고 있었으니 우리를 찍은 사람은 없겠지. 아마 그럴 거야.”

두 사람은 레쉬포드 감독에게 복귀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레이와 수아에게 찍은 영상을 보냈다. 당장 내일의 경기 때문에 오래 통화는 못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워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잠이 들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유로 2040이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파르켄입니다. 오늘은 조별리그 2차전까지 마치고 최종적으로 순위를 가리게 되는 A조의 3차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파르켄에서 열리는 경기는 주최국인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경기입니다. 2승으로 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잉글랜드와 1승 1무로 조 2위를 달리고 있는 덴마크의 경기.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이긴다면 덴마크와 우크라이나가 골득실로 2위 자리를 다퉈야 합니다. 두 팀이 비길 경우 잉글랜드가 조 1위, 덴마크가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고, 덴마크가 이기면 덴마크가 조 1위, 잉글랜드가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되죠?”

“그래서 같은 시간 브뢴뷔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와 체코의 3차전도 주목을 받고 있죠. 동유럽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받은 체코가 2패를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매치에서 이겨야 체면치레가 가능할 겁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체코와의 3차전을 이겨놓고 잉글랜드와 덴마크 경기의 결과를 봐야 하죠. 두 팀 다 이겨야 할 목적성이 있는 경기입니다.”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경기에 집중해보죠. 잉글랜드가 포트2에 배치되며 말이 많았는데 결국 조 1위를 하고 있죠?”

“유로 2036 지역 예선에 떨어지고 피파 랭킹이 17까지 떨어진 잉글랜드였죠.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하며 피파 랭킹 8위까지 올라갔었는데 그 후 A매치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결국 12위까지 떨어졌죠. 유럽국가로만 보면 8위인데 주최국인 덴마크가 1포트로 가며 결국 2포트로 떨어진 잉글랜드였습니다. 처음 A조가 편성됐을 때만 해도 누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하인스가 합류하니 결국 잉글랜드 최강이 되어 버렸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하인스에 대한 배려가 많지 않았습니까? 처음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을 때도 적응 잘하라며 소집하지 않았죠. 그 후에도 빡빡한 경기 일정 때문에 유로 조별 예선에서만 소집했죠. 하인스는 조별 예선에서 그 보답을 톡톡히 했고요.”

“그런 잉글랜드와 주최국인 덴마크의 조별리그 3차전이 펼쳐지게 됩니다. 코인 토스로 잉글랜드의 선공이 결정됩니다.”

***

“반드시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해야 해. 2위를 한다면 일정에 여유가 생기는 건 맞지만 8강에서 독일을 상대하는 불상사는 없게 하자고.”

레쉬포드 감독은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을 독려하며 말했다. A조 1위는 B조 2위와 2위는 1위와 맞붙게 되어있었다. 1위로 통과하면 4일의 휴식이 2위로 통과하면 5일의 휴식이 주어졌지만 하루의 휴식보다는 그래도 상대하기 수월한 팀이 나았다. 현재까지 B조에서 2승을 거두며 선두를 달리는 독일이 있었고 2위 자리를 놓고 포르투갈과 그리스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대표팀감독으로 비교적 수월한 팀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독일이라면 이번 대회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우승을 다툴 것이라 예상되는 국가였다.

“알겠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고 나온 인수는 덴마크 선수들을 노려봤다.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시작된 경기였지만 케이힐이 전방으로 찔러준 패스가 길어서 바로 공격권이 덴마크로 넘어가고 말았다. 덴마크 국가대표팀의 주경기장인 파르켄답게 잔디 틈에 있는 작은 홈까지도 알고 있다는 듯 흔하게 나오는 패스미스도 나오지 않고 공을 돌렸다.

“쉽지 않겠네.”

인수의 혼잣말처럼 덴마크 선수들은 여유롭게 플레이를 했다. 자신들의 주경기장인 파르켄이었고 이번 대회 개막전을 이곳 파르켄에서 뛰었다. 상대가 아무리 잉글랜드라고 하지만 홈팀의 이점을 가지고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으로 3차전에 임했다. 주최국인 덴마크도 우승 후보 중 하나인 독일을 8강에서 만나기는 싫었다.

이제 슬슬 잔디에 적응된 잉글랜드 선수들이었지만 상대는 이 잔디에 통달한 홈팀이었다. 수비에서 적극적으로 압박하며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고 있긴 했다. 그것만이 전부여서는 이기기 힘들었다.

“하인스.”

경기 초반부터 왼쪽 사이드를 넓게 쓰고 있는 에디가 이번에도 잉글랜드 진영 깊숙이에서 공을 끊어냈다. 인수가 전방에 있었기에 쉽지 않은 패스였지만 에디가 찬 공은 달리고 있는 인수의 발밑에 떨어졌다. 에디를 믿고 달렸기에 가속도가 붙은 상황. 인수는 덴마크 수비를 달고 왼쪽 사이드를 열었다. 인수가 왼쪽 사이드로 향하자 크로스하여 중앙을 달리는 에디. 잉글랜드 진영에서 언제 달렸는지 중앙 빈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에디.”

인수는 에디에게 패스를 하고 중앙으로 돌아 들어갔다. 에디 역시 인수에게 패스를 돌려주며 왼쪽으로 수비를 끌었다. 다시 크로스를 하며 수비가 얽힌 찰나의 순간 인수가 수비수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존에게 크로스를 올릴 타이밍이 나왔다. 존이 뛰어오르는 타이밍과 위치에 올려준 크로스. 덴마크 수비수의 마크를 겨우 뚫어내고 헤더를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공이 떠 크로스바를 넘어갔다.

“미안해.”

“괜찮아. 그런데 수비가 꽤 탄탄하지?”

“응. 아까 뛸 때 거칠게 방해하더라고. 아까 잉스가 반칙을 범했을 때 생각하면 상당히 깐깐한 주심인데 홈 어드벤티지도 있는 거 같고.”

“응. 수비한테도 조심하라고 말하긴 했어.”

헤더가 벗어나는 것을 본 존이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그러면서 인수와 조용히 속삭였다. 아직 경기 초반인데다 페널티지역에서의 몸싸움이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래도 휘슬을 자주 부는 주심의 성향이었기에 수비할 때 반칙은 조심해야 했다.

덴마크 골킥으로 다시 시작된 경기. 잉글랜드의 압박수비에 적응이 되었는지 후방에서도 침착하게 공을 돌렸다. 이곳이 홈인 덴마크 선수들도 잔디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땅으로 굴려서 주는 패스보다 노바운드로 패스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자연스럽게 패스 타이밍도 빠르고 그만큼 공도 빨랐다.

“더 붙어. 돌아설 틈을 주지 마.”

잉글랜드의 수문장 볼은 수비들에게 손을 모아 크게 소리쳤다. 공인구의 반발계수 때문에 슛타이밍이 아닌데도 자주 슈팅이 나왔다. 그만큼 골대를 맡고 있는 골키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밀어내. 중앙에 틈을 주지 말라고.”

덴마크의 공격수들도 모두 빅클럽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특히 호시탐탐 볼을 노려보며 이죽거리는 공격수는 이번 시즌 소튼과 끝까지 유로파 진출을 겨루었던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였다. 볼의 슈퍼세이브를 바탕으로 에디의 골로 리그에서 두 번 다 이겼기에 소튼은 유로파에 진출할 수 있었고 토트넘은 8위로 챔스는 물론이고 유로파 진출도 이루지 못했다. 2040-41시즌은 빅7이라 불리는 토트넘이 오랜만에 유럽 무대를 밟지 못한 시즌이 될 터였다.

볼이 그렇게 소리쳤지만 덴마크 공격수가 터닝슛을 때렸고 볼은 공이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 볼이 빠르기에 손가락으로 튕겨내기는 불가능했기에 주먹을 뻗었다. 틱 하는 소리가 볼의 귀에 들렸고 볼의 주먹에 맞은 공은 다행히 크로스바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졌다.

“돌아설 틈 주지 말라니까.”

“아니 그렇게 터닝슛을 날리는데 어떻게 막아. 더 잘 막아볼게.”

핸더슨은 찡그리는 표정으로 손을 털고 있는 볼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황급히 사과했다. 공이 빨라진 만큼 제일 고충이 큰 포지션이 바로 골키퍼였다. 아직 볼은 부상이 없었지만 크로아티아의 골키퍼의 경우 손가락 부상으로 대회 아웃이 될 정도였다.

“알았으면 저 녀석 좀 잘 막아줘. 키는 작은 주제에 헤더의 각은 기가 막히게 잘 보잖아.”

모두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공격수였다. 키가 크지 않았기에 경계하지 않다가는 일격을 얻어맞을 경우가 많았다. 덴마크의 코너킥. 골라인에 붙어 휘어지는 킥을 찬 공을 볼이 타이밍을 맞춰 나가며 펀칭으로 걷어냈다. 크게 튀어 나간 공을 에디와 덴마크의 미드필더가 경합했다. 공을 먼저 잡은 에디는 주변을 둘러봐도 공을 받아줄 선수가 없자 덴마크 진영으로 길게 차냈다. 덴마크 진영에서 바운드되며 터치라인을 넘어간 공. 덴마크 선수들이 잉글랜드 진영으로 거의 다 넘어와 있었기에 다시 정리한 이후 스로인으로 공격을 이어갔다.

서로 몇 번의 찬스를 더 맞이했지만 결국 골을 넣는 것에는 실패한 양 팀. 전반 45분이 0:0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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