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SAS훈련소를 나온 잉글랜드 대표팀은 레쉬포드 감독의 전술훈련을 소화했다. 대부분의 선수가 한 시즌을 풀로 소화한 상태였다. 조별리그와 8강부터 시작되는 토너먼트까지 24일간 열리는 유로 2040이었다. 대표팀이 꾸려질 때부터 레쉬포드 감독은 유로에서 우승을 부르짖었기에 결승까지 진출한다면 6경기를 뛰어야 했다. 그 경기를 소화할 선수들의 체력관리도 중요했다. 그런 잉글랜드 대표팀이 대회 시작 3일을 남기고 첫 번째 조별예선이 펼쳐질 덴마크 헤닝의 MCN아레나로 이동했다.
“코펜하겐이 아닌 헤닝이란 곳은 처음인데 완전 시골이네요.”
“덴마크하면 낙농업이잖아요. 그래도 국제공항이 근처에 있어서 편하게 오긴 했지만요.”
“하긴 나도 덴마크에 간다니 레코를 사달라는 부탁을 들었으니까요.”
“덴마크하면 레고니까요. 저한테도 부탁하더라고요.”
비슷한 나이대에 감독과 수석코치가 된 레쉬포드와 드리드핏이었기에 상대를 존대하며 존중했다. 포괄적인 선수단의 운영과 전략을 레쉬포드가 짜면 그걸 바탕으로 코치들과 세부적인 전술을 드리드핏이 결정했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이번 유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니즈가 충족된 결과였다.
“그런데 경기장들이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덴마크란 나라 자체가 작으니 어쩔 수 없지. 인구도 육백만 명이 안되니까 말이야.”
“이런 곳에서 유로를 개최하다니.”
“북유럽 국가들이 개최한 적도 없으니 이해관계에 따른 선정이라고 봐야지.”
유로대회 개최지 선정 때마다 은연중에 배제됐던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유로존의 화합과 단결을 목적으로 유로대회 개최지를 북유럽으로 결정하자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가 각자 신청했다. 치열한 눈치싸움의 결과 덴마크로 결정되었고 덴마크는 남은 기간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한계가 분명히 나타났다.
총 6개의 구장. 가장 큰 파르켄도 5만 명밖에 수용하지 못했고 나머지 5개 구장도 평균 2만석 내외의 작은 구장들이었다. 다행히 선수들의 숙박을 책임질 호텔과 주변 시설이 구축되었기 망정이지 제대로 대회를 치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대회를 치를 수 있게 만들겠다는 덴마크 국왕의 장담대로 모든 시설이 완공되고 안전 점검까지 끝난 상태였다.
“우리가 경기할 구장의 상태는 전부 체크하고 있지?”
“네. 감독님. 코치들이 모두 흩어져서 덴마크 축구협회의 도움을 받아 꼼꼼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이틀 후에는 모두 돌아올 예정입니다.”
“피로를 풀기 전에 일을 시켜서 미안하긴 하지만 최대한 꼼꼼하게 체크하라고 해. 변수는 최대한 줄어야 하지 않겠어?”
“코치들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선수들에게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적응훈련을 시작한다고 알려주도록. 기후는 영국하고 비슷하니 최대한 경지장 컨디션을 체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자고.”
“알겠습니다.”
레쉬포드 감독은 드리드핏과 남은 코치들과 간단한 회의를 한 후 휴식을 취했다.
***
“잔디가 정말 뻣뻣한데. 슬라이딩 잘못하면 피부가 까질 거 같은데.”
“최대한 익숙해지려고 노력해. 6개 구장이 모두 이 잔디로 깔려있다고 하니까.”
“유스 때도 이런 잔디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북유럽 잔디들이 모두 이런가?”
“아무래도 추위에 강한 품종을 심어야 하니까 그러겠지. 북유럽 출전 국가들한테는 너무 유리하겠는데.”
“언제나 홈 어드밴티지는 존재하는 거 아니겠어? 잡담할 시간이 빨리 잔디에 적응하자고.”
“예스. 캡틴.”
“장난하지 말고.”
인수를 비롯한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23명은 최대한 잔디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진행했다. 북유럽 특유의 날씨 때문인지 잉글랜드와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뛰던 잔디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코펜하겐에 있는 파르켄에서 경기를 뛰어본 케이힐이 잔디에 대한 경고를 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던 선수들이었다.
“볼, 괜찮아?”
“아직까지는. 그런데 바운드 튀는 것이 이상하긴 해. 꼭 인조 잔디처럼 바운드되면 빨라.”
“슛도 깔아 차는 공이 더 나으려나?”
“공이 캐칭이 쉽긴 해. 대신 알다시피 탄력이 좋아. 그동안 훈련해왔듯이 깔아 차기보다는 중거리슛과 프리킥을 더 조심해야 할 거야.”
잔디 적응훈련을 하며 가장 고통받는 포지션이 골키퍼였다. 그중에도 잉글랜드 새로운 수문장이 된 볼. 뻣뻣한 잔디에 공이 구르면서 스피드가 붙는 탓에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번 대회의 공인구가 다른 공에 비해 탄력이 더 좋았다. 트래핑과 드리블이 힘든 대신 중거리슛과 프리킥의 위력이 올라갔다. 이미 출전국가에 공인구가 제공되었기에 공인구에 대한 적응은 충분했다.
“하여튼 다른 구장들도 마찬가지라니까 잘해보자고. 난 너를 믿어.”
“또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고 도망갈 거면서.”
볼이 소튼에 영입되고 나서 인수는 항상 믿는다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시즌이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기에 인수를 만나기만 하면 툴툴거렸던 볼이었다.
“너도 요즘 영입 제안이 많이 온다며.”
“그래봐야 너만 하겠어.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팀으로는 안 가.”
런던 빈민가 출신인 볼. 소튼에 영입 시즌 놀라운 활약을 하자 소튼은 바로 재계약을 진행했다. 당연히 바이아웃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만큼 주급도 올라갔다. 런던에 계시는 부모님과 동생을 소튼으로 데려온 볼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자신을 알아봐 준 소튼의 보드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재계약을 하며 책정된 바이아웃이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볼이 잉글랜드의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되자 빅클럽에서 영입 제안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너 믿는 만큼만 활약해줘. 툴툴대지 말고.”
“알았어. 다른 애들한테도 가 봐. 너의 말을 기다리는 많은 어린 새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볼의 말처럼 인수를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잉글랜드 대표팀은 평균연령이 24세 불과할 정도로 젊은 팀이었다. 불과 2년 전 아르헨티나 월드컵 때에 28살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4살이나 어려진 나이. 월드컵에서 같이 뛰던 선수들도 새롭게 대표팀에 승선한 선수들도 모두 주장인 인수를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4년 전 올림픽과 2년 전 월드컵에서 인수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있었다. 혼자 다른 선수들의 멱살을 잡고 금메달과 준우승을 일궈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이나 똑바로 해. 이번 대회에서 실수하는 사람 알아서 저녁 사기로 한 거 잊지 말라고.”
“주급도 제일 많이 받는 녀석이 그런 내기를 제안하다니.”
“그게 아까우면 실수 안 하면 되잖아. 스크루지야.”
“내가 왜 스크루지야. 너 이리 와.”
인수의 말 한 마디에 서로 농담을 하며 좋은 분위기의 잉글랜드 대표팀. SAS훈련을 거치며 더욱 좋아진 팀워크였다.
***
“유로 2040의 개막전이 끝나고 이제 A조 두 번째 경기가 열리겠습니다. 개막전은 개최국인 덴마크와 우크라이나가 붙었죠?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미 대회 개최 전에 예상됐듯 공인구의 탄력계수가 0.02 정도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위력이 담긴 슛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죠. 반면 트래핑과 패스가 힘들어서 아기자기한 플레이가 적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통적인 예상은 골이 많이 나는 대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첫 경기는 골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첫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기에 적어도 1라운드가 끝난 다음에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개막전이 0:0으로 끝나며 다음 경기인 이 경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죠. 바로 잉글랜드와 체코와의 경기입니다. 지난 유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며 충격을 준 잉글랜드였죠. 반면 체코는 지난 유로에서 8강에 오르며 다시 동유럽 축구 명가 재건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한때 동유럽 국가들이 강세를 보일 때가 있었죠. 그 후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몇 년 사이 동유럽의 축구가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가장 선두에 있는 나라가 바로 체코와 헝가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체코를 맞이하는 잉글랜드. 하인스를 중심으로 젊어진 대표팀으로 이번 유로에 나섰습니다. 지역 예선과 비교해도 많은 선수가 바뀌었죠. 이번 대회를 통해 왜 바뀌었는지를 보여줄 과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잉글랜드의 에이스 하인스와 체코의 에이스 죄메르트의 대결이 있습니다. 하인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죄메르트는 발렌시아에서 뛰며 상대로 뛰어본 경험이 있죠.”
“그렇습니다. 죄메르트의 이적이 공식적으로 발표됐죠.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로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나왔죠. 이번 대회가 끝나고 메디컬 검사를 통과하면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는 죄메르트입니다.”
“하인스의 재계약 소식도 들리던데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레알 마드리드 보드진과 하인스의 에이전트인 랭커리지가 계속 만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죠. 레알 마드리드 핵심 코어로 자리 잡은 하인스를 잡고 싶어 하기에 추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이외에도 잉글랜드와 체코. 역사가 깊은 두 국가의 대결이기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을 것 같습니다. 양 팀 국기를 앞세우고 선수들이 입장했습니다. 잉글랜드와 체코의 국가가 끝나고 사전행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양 팀의 주장인 하인스와 죄메르트가 코인토스를 하여 체코의 선공이 결정되었습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 시작합니다.”
***
체코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 양 팀의 선수들 모두 잔디와 공인구에 대해 적응훈련을 했다고 하지만 실전에서 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전반 초반 탐색전이 아닌 적응전이 펼쳐졌다. 그 와중에 날아다니는 한 선수가 있었으니 잉글랜드 레프트 윙으로 출전한 에디였다. 전반 시작부터 체코의 오른쪽 라인을 스피드로 뚫고 있는 에디. 에디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한쪽 라인을 틀어막는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인수와 에디의 연계플레이는 체코의 수비라인을 제대로 흔들었다. 오랜만에 호흡을 맞추는 거지만 매일같이 호흡을 맞춘 듯한 움직임. 더욱이 최전방에 우뚝 서 있는 존을 향해 올라가는 크로스까지 더해지니 체코의 수비라인이 흔들렸다.
다행인 점은 아직 잉글랜드 선수들이 체코의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잔디와 공에 버벅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수를 비롯한 선수들이 트래핑에 실수하며 몸 밖으로 튕겨 나간 공을 뺏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전반 25분. 공과 잔디에 적응이 끝난 인수는 빠르게 드리블을 하며 체코의 진영으로 파고들었다. 체코의 오프사이드트랩을 돌파한 에디가 인수의 패스를 잡았다. 체코의 수비가 붙기 전에 바로 올려준 크로스. 존의 헤더를 편칭했지만 멀리 가지 못했고 최종수비수가 급하게 처리한 공이 빗맞으며 페널티지역 밖에 있던 인수에게 패스가 됐다. 튕겨져 나온 공을 다이렉트 슛으로 이어간 인수. 빨랫줄처럼 쏘아진 공은 체코 골키퍼의 손을 튕겨내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전반 27분 대회 첫 골이 인수의 발에서 터진 5분 후 하인스가 중앙을 뚫고 스루패스한 공을 다시 에디가 잡아 그대로 슛으로 가져갔다. 잔디에 바운드되며 빨라진 공이 체코 골망을 흔들었다.
전반 종료 전 죄메르트가 잉글랜드 우측 윙백인 잉스의 실수를 틈타 만회점을 터트리며 전반이 2:1로 마무리됐다.
잉글랜드의 킥오프로 진행된 후반. 잉글랜드는 인수가 다시 한번 수비형 미드필드와 최종수비수를 제치며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인수의 멀티골로 다시 한 점 앞서나간 잉글랜드는 후반 25분 인수와 에디를 모두 교체시켰다. 인수와 에디가 없어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후반 40분 존이 헤더를 골로 성공시키며 동유럽의 강자 체코를 4:1로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