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첫 골이 터진 후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전반 17분에 인수의 추가골이 터졌다. 2:0으로 앞서가는 레알 마드리드. 세도로프 감독은 골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맨체스터 시티의 벤치를 보았다.
“감독님.”
“어? 무슨 일이야?”
세도로프 감독은 상대편 벤치를 보다 수석코치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놀라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내가 딴생각을 하던 중이라서 사과는 무슨. 그런데 무슨 일이야?”
“그냥 감독님 생각이 궁금해서요. 벤치에서 다른 코치들하고 이야기하는데 다들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세도로프 감독은 수석코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도로프 감독은 후배 코치들에게 경기를 지켜보며 5분 마다의 상황을 상대편 감독 입장에서 정리하라는 과제를 자주 내줬다. 코치 경험 없이 감독을 맡았기에 수없이 실패하며 성장해온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후배들은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덜 하길 바라는 마음에 아약스 감독 때부터 해오던 노하우였다. 세도로프 감독의 뒤를 이어 아약스 감독을 맡은 감독도 그렇게 성장해 온 케이스였다.
“답답하겠지. 답답한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벤치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습니다. 선수를 믿고 그대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수비를 안정시키고 역습을 노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더욱 공격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그래도 코치들 중 가장 선임이잖아.”
“평소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말하기에는 주도권이 이미 우리에게 넘어와 있는 상태지 않습니까. 이미 주도권을 뺏긴 상태에서 무리해서 공격하다가는 역습을 당할 수도 있으니 수비를 안정적으로 가져간 다음 주도권을 가져올 타이밍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은 수석코치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적인 자신과는 달린 수비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수석코치였다. 수비적인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수비전술을 전담시켰다.
“어차피 결과론이긴 하지. 과정보다는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 스포츠니까. 더욱이 그것이 오늘과 같은 결승전이라면 더욱 그렇지. 단판 승부일 때는 빠르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해. 잘 새겨두도록 해.”
“알겠습니다.”
세도로프 감독과 수석코치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맨체스터 시티의 벤치도 감독과 코치들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직 전반 17분. 분위기를 전환해야 하는데 3장밖에 없는 교체카드를 꺼내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맡기기에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카리스마 있는 선수나 팀에 오래도록 충성한 선수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런 선수가 없다는 점이 시티의 단점이었다.
“내려가. 우선은 버티자.”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은 킥오프 전 선수들에게 외쳤다. 당장 넘어간 주도권을 가져오기보다 버티는 걸 선택했다. 최전방에 라리오스와 브랜드를 제외한 선수들이 중앙선 아래에서 자리하며 뒤에서 공을 돌렸다.
“계속 밀어붙여.”
세도로프 감독은 상대가 내려서자 바로 외쳤다. 상대가 꼬리를 내렸으니 더 두들겨 패줘야 했다.
***
주도권을 잡은 레알 마드리드는 상대를 밀어붙이면서도 급하지 않게 천천히 상대를 압박해나갔다. 인수가 중앙선 부근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상대가 느슨하게 대응할 때마다 날카로운 패스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의 기를 죽였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온 선수들답게 기회가 날 때마다 역습을 노렸다. 그러나 전방위로 압박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기세에 번번이 끊기며 수세에 몰렸다.
15분 넘게 주도권을 가지며 일방적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몰아붙인 레알 마드리드였다. 시간이 지나자 레알 마드리드의 흐름을 읽은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이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끊어냈다. 그런 상황이 3번 연속 성공하자 라리오스가 브라프에게 다가갔다.
“너무 물러서는 것 같은데. 앞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
“우리가 흐름을 잘 끊어내고 있잖아. 우리에게 넘어오는 흐름이야. 한두 번은 더 끊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번에 공을 끊으면 올라가 보자고. 레알 애들 긴장이 풀려있잖아.”
“아무리 상황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를 상대로 긴장을 풀다니 혼내줘야지.”
후베이루의 스로인으로 시작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브라프에게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받은 라바가 소아레스와의 몸싸움으로 다시 한번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끊어냈다. 다시 볼보이에게 공을 넘겨받은 후베이루. 가까이 있는 선수들에게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집중 견제를 하고 있었기에 후방에 있는 가르시아에게 길게 공을 던졌다.
“달려.”
후베이루의 손에서 공이 떠나자마자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달리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가르시아가 공을 받기도 전에 달린 브랜드와 경합했다.
“어딜.”
“내 거야.”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공이 튀고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두 사람. 그 뒤를 브라프와 라바, 후베이루와 니실랴가 뒤쫓았다. 서로의 발에 튕긴 공은 코너 깃발까지 굴렀고 그 공을 차지한 사람은 브랜드였다.
“이쪽으로.”
가르시아가 코너 깃대까지 몰린 브랜드를 마크하고 있었지만 터치라인 밖에서 손을 든 브라프. 터치아웃이 될 위험성이 있었지만 이미 가르시아에게 막힌 브랜드는 다른 방법이 없이 터치라인 안쪽으로 공을 찼다. 급하게 가르시아가 공의 진행 방향으로 발을 뻗어봤지만, 공은 가르시아의 다리 아래를 지나 브라프에게 넘어갔다. 터치라인부터 시작된 브라프의 돌파. 니실랴와 후베이루가 브라프의 앞을 막았다.
“그만 가지.”
“싫은데.”
브라프는 니실랴에게 막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브랜드가 공을 끊을 때부터 골키퍼인 스테포드를 제외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달렸다. 브라프가 니실랴와 대치하고 있을 때는 이미 전원이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넘어와 있었다. 니실랴와 후베이루의 수비가 탄탄했기에 브라프는 뒤에서 커버를 들어온 라바에게 넘겼다. 후베이루가 라바에게 붙는 순간 라비는 다시 공을 브라프에게 넘겼고 브라프는 다이랙트로 크로스를 올렸다.
“중앙. 들어오는 선수를 봐.”
“뒤. 뒤를 봐.”
브라프가 크로스를 하자 바로 뒤를 돈 니실랴. 중앙을 넘어 뒤쪽으로 떨어지는 곳을 막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없었기에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그 공간은 뒤에서 뛰어 들어온 제이비가 몸을 날렸다.
‘오른쪽? 왼쪽? 어디지?’
제이비의 헤더하는 순간까지 지켜보던 산체스는 공의 방향을 읽고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뒤에서부터 뛰어 들어와 정확히 이마에 맞춘 헤더였기에 빠르게 쏘아진 공은 산체스의 겨드랑이 사이를 뚫고 레알 마드리드의 골망을 흔들었다.
“잘했어. 나이스.”
“역시 네 머리는 돌대가리야.”
“거기서부터 날아오르다니. 스파이크에 로켓 달린 거 아니야?”
2:0으로 끌려가던 맨체스터 시티의 만회골. 순식간에 분위기는 맨체스터 시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붙어. 겁먹지 말고 붙어. 어차피 공을 가졌다고 해서 다 넣을 수 있는 건 아냐.”
“주도권이 넘어왔을 때 몰아붙여야 해. 더 밀어붙이란 말이야.”
전반 35분 맨체스터 시티의 만회골이 터지자 양측의 벤치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2:0으로 앞서며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던 레알 마드리드지만 맨체스터 시티가 만회골을 터트리자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었다. 이번에 주도권을 잡은 팀이 전반 남은 10분 주도권을 가져갈 확률이 높았기에 밀리지 말아야 했다.
“붙어.”
“지지 말라고.”
“뺏기면 바로 달라붙으란 말이야.”
레알 마드리드의 킥오프로 다시 시작된 경기. 전반 남은 시간이 10분이나 됐기에 서로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양 팀이었다. 드리블하다 공을 뺏겨도, 패스를 하다 공을 뺏겨도 바로 달라붙으며 상대가 편하게 패스하는 것을 방해했기에 어느 한 팀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
“전반 17분경 하인스가 두 번째 골을 넣을 때만 하더라도 레알 마드리드의 일방적인 경기가 되지 않나 싶었는데요.”
“그렇게는 흘러가지 않으리라 예상됐죠. 오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팀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챔피언스리그의 우승 경험은 없지만 프리미어리그의 강팀 중 하나죠. 레알 마드리드가 추가골을 더 터트린다면 모를까. 분명 맨체스터 시티에도 기회가 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그런 예상대로 후반 34분 제이비의 헤더로 만회골이 터진 맨체스터 시티였습니다. 그림 같은 헤더였는데요.”
“페널티 지역 외곽에서부터 날아 정확히 이마에 맞춘 헤더였죠. 거의 4미터 넘게 나는 모습이었는데요. 브라프의 크로스가 자신에게 분명히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슛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답게 제가 이번 시즌을 진행하면서 가장 멋진 골들을 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 경기의 의미를 제외하고도 정말 멋진 슛들이 나오고 있죠. 특히 하인스의 두 번째 골.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튄 공을 오버해드 킥으로 꽃아넣은 골도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푸스카스상에 이름을 올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제이비의 헤더도 푸스카스상 후보에 충분한 헤더였죠.”
“다시 코프의 킥오프로 시작된 공격. 하인스가 마린에게 밀어주고 전방을 향해 달립니다. 마린 공을 잡고 라바와 대치. 몸의 중심을 흔들며 라바를 통과하는 순간 발을 뻗은 라바가 정확히 공만 빼냅니다. 마린 다시 라바에게 달려들어 스탠딩 태클. 마린의 발을 맞은 공이 브라프에게 흘러갑니다. 브라브가 발끝으로 컨트롤 하기 전 니실랴가 태클을 해 다시 공을 쳐 냅니다. 이번에는 판사스와 코프의 대치. 판사스가 코프를 제치고 제이비에게 패스를 합니다. 공을 몰고 달려가는 제이비에게 바로 아랑게스가 달려듭니다. 아랑게스를 쳐지지 못하고 터치라인을 벗어나는 공. 부심이 레알 마드리드의 공을 선언합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양 팀 모두 알고 있는 거겠죠. 항상 코칭박스에 나와 있는 세도로프 감독은 물론이고 거의 움직임이 없는 맨체스터의 감독까지 코칭박스에 나와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죠. 전반 마지막까지 주도권을 가려가려는 양 팀의 간절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랑게스의 스로인으로 시작된 공격.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공을 받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마크하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만회골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만큼 아랑게스의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작은 플레이, 플레이 하나가 큰 스노우볼로 굴러갈 수 있기에 섬세한 플레이가 강조됩니다.”
“아랑게스 결국 중앙의 하인스를 선택합니다. 하인스에게 바로 달라붙는 브라프와 브랜드. 하인스 두 사람 사이에서 공을 끌며 잘 버티고 있습니다.”
“하인스 이제 선택해야죠. 어찌 됐든 공을 잡은 위치가 레알 마드리드 진영의 중앙입니다. 여기서 만약 공을 뺏긴다면 바로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수는 발바닥으로 공을 굴리며 브라프가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뒤에 브랜드가 틈틈이 공을 노리고 있었기에 인수는 공을 최대한 몸 가까이 붙이고 언제든지 드리블로 이어갈 수 있게 몸의 중심을 앞으로 두었다.
“이대로 전반을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별로 맘에 안 드는데.”
인수가 뒤에 있는 브랜드를 신경 쓰고 있을 때 갑자기 달려든 브라프가 인수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로 밀며 태클을 시도했다. 브라프의 발을 자신의 발로 막으며 공을 지킨 인수는 브라프의 트래쉬 토크를 받아쳤다. 치열하게 어깨를 부딪치며 공을 다투는 두 사람. 양 팀의 에이스가 다투는 상황에 어느 누구도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