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2040년 5월 30일.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즌을 마무리하는 대회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각 대륙간컵과 월드컵이 국가의 명예와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대회였다면 챔피언스리그는 클럽팀과 선수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리였다. 물론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의 위상과 1년마다 열리는 챔피언스리그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팀은 단 두 팀. 필드에 설 수 있는 선수는 단 22명뿐이었다. 물론 교체선수까지 한다면 더 늘어나겠지만.
그런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하는 두 팀이 밀라노에 도착하여 현지 적응훈련을 마쳤다. 그런 두 팀이 AC밀란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또는 인테르, 인터 밀란의 홈구장인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 모였다. AC밀란의 팬들은 원래 이름이었던 산시로 스타디움이라 부르는 이곳은 총 관중 9만 명을 자랑하는 명문클럽의 홈구장이었다.
“뭘 그리 두리번거려?”
“그냥 경기장이 고풍스럽다고 느껴져서.”
“아무래도 좀 그렇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경기장이잖아. 거의 뭐 유적지 수준이지. 계속 개축하고 증축하고 있다고 하지만. 뭐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오래된 경기장이 많은 편이지.”
세리에 A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파라데스가 이탈리아의 경기장들을 평가했다.
“그래도 내부는 전부 인테리어 새로 해서 깨끗하던데요.”
“그렇지 않으면 선수들 사기가 뚝 떨어지니까. 세리에A가 그동안 쌓은 명성이 있잖아. 그만큼 투자를 했지.”
“혹시 다음 리그로 세리에A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인수와 파라데스가 몸을 풀며 나누던 이야기를 들은 모라타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어요. 계약기간까지는 라리가에서 우승컵을 쌓으려고요.”
“오. 계약기간을 더 늘릴 생각은 없고?”
“그건 랭커리지하고 클럽하고 이야기해야죠. 우선은 우승컵 쌓는 일만 생각할 거예요.”
“그래. 라리가는 우리 레알에서만 우승컵을 쌓자고.”
“하인스가 옮기면 나도 옮겨야 하나?”
“하인스, 이적할 팀 미리 알려줘. 나도 그쪽으로 이적하게.”
인수와 모라타, 파라데스가 이야기하고 있자 몸을 풀던 선수들도 하나둘 모여 진담 같은 농담을 던졌다. 아직 20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선수였지만 1년 좀 넘는 시간 만에 선수들에게도 의지가 됐다. 같이 경기를 뛰면 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선수였다.
“다들 어딜 도망가려고 그래. 너희들 실력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레알 마드리드에 뼈를 묻어야지. 내가 계약기간 늘려달라고 게시판에 남겨줘야겠어.”
“사라비아 네가 그런 이야기 하면 무섭잖아. 죽어서도 베르나베우에 뼈 묻을 놈이라서.”
“베르나베우에 뼈 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긴 하네. 그런데 안 해줄 거 같아서.”
“농담을 진담처럼 받지 말라고.”
경기 시작 2시간 전 몸을 풀던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가자 산시로 스타디움에 관중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의 2039-40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입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산시로 스타디움이라 부르고 있으니 산시로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팀이 만나면서 어느 팀이 이겨도 또 다른 역사가 새겨지게 되죠?”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가 19번째 우승컵과 클럽 사상 첫 트레블을 노리고 있습니다. 반면 맨체스터 시티는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관중석에서 서로의 응원가가 마이크를 뚫고 시청자에게까지 전달됐다. 전 세계에 팬들이 있는 두 팀이니만큼 경기장에 모인 관중뿐만 아니라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까지 중계진보다는 경기를 더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양 팀의 엔트리가 나왔죠? 우선 엔트리부터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골키퍼 세르히오 산체스, 중앙 수비수에 페페 가르시아와 샤비 마르체나, 왼쪽 윙백에 호베르트 후베이루, 오른쪽 윙백에 마르셀리노 아랑게스, 수비형 미드필드에 파울루스 니실랴, 중앙 미드필드에 하인스, 토토 마린, 왼쪽 윙어에 알프레도 모라타, 오른쪽 윙어에 루카스 소아레스, 최전방 공격수에 라이안 코프가 나서게 됩니다. 교체명단에 알리송 주니오르, 코이타, 토마스 브왕가, 토마스 넬손, 가야, 제아르드 사라비아, 훌리안 파라데스, 무사 마르시알, 다니엘 보일, 안토니 소메도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안정적인 엔트리를 들고 나왔죠. 양쪽 윙백에 가야와 웨아를 기용하며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후베이루와 아랑게스를 기용하며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엔트리입니다. 대신 수비형 미드필드 자리에 니실랴를 기용하며 후방과 전방의 고리 역할을 맡겼죠. 골을 넣기 위해서는 전방의 하인스와 마린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키맨의 역할은 니실랴라 생각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골문은 프리언 스테포드가 맡고 중앙 수비수에 사뮈엘 에투, 아포 델론, 오른쪽 윙백에 크리스티안 샤가스, 왼쪽 윙백에 투리안 포소, 수비형 미드필드에 판사스, 중앙 미드필드에 크리스 브라프, 왼쪽 윙어로 토마스 제이비, 왼쪽 윙어에 트레비 라바, 최전방 투톱에 리리오프 라리오스, 제임스 브랜드가 출전합니다. 교체 맴버로…….”
“맨체스터 시티도 언제나 그렇듯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습니다. 라리오스와 브랜드가 최전방 투톱이라고 하지만 두 명 모두 섀도 스트라이커 느낌의 플레이를 하죠. 그렇다고 주득점원인 라바와 제이비를 마크하다가는 라리오스와 브랜드가 골문을 위협합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까다로운 완성된 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 두 팀의 승부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아무래도 이번 시즌 보여준 모습으로만 보면 레알 마드리드에게 약간 더 기운 느낌이 들긴 하죠. 그러나 단판이라는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입니다. 단판 승부에서 누가 더 컨디션이 좋은지 달리 말하면 집중력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는지 봐야 할 듯싶습니다.”
“주심의 뒤로 선발로 나오는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주장인 모라타를 선두로 맨체스터 시티도 주장인 스테포드를 선두로 해서 입장하고 있습니다. 기념 촬영이 모두 끝나고 코인 토스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공이 결정됩니다.”
***
“시즌 마지막 경기야. 다들 집중하자고.”
주심이 대기심과 시계를 맞추고 있을 때 인수가 소리를 질렀다.
“가자고.”
“가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도 목소리를 높이며 독려했다.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라리오스가 브랜드에게 공을 밀어주며 시작한 경기. 레알 마드리드는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겠다는 듯 중앙선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진영에서 대기했다. 브랜드가 판사스에게 넘겼던 공은 레알 마드리드가 올라오지 않자 브라프에게 바로 넘기며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들어섰다.
“다들 붙어.”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공이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들어오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에게 달라붙었다. 코프가 달려들기 전 안전하게 뒤로 돌린 브라프는 다시 멈춘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보며 신중하게 공을 돌려받았다.
“신중하게 선수들 위치 보면서 패스해.”
레알 마드리드 진영에서 공을 받자 다시 달려드는 코프를 드리블로 제치며 제이비에게 패스한 브라프가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상대가 적극적으로 달려들면 상대적으로 빈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 모두 최정상급 선수들이었기에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라인 맞춰.”
1.5선에서 1선으로 뛰어들 수 있는 선수가 4명이나 존재하는 맨체스터 시티. 제이비가 아랑게스를 뚫지 못하고 공을 브라프에게 돌리자 가르시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선수들의 라인을 관리했다. 후베이루가 왼쪽으로 파고드는 라바를 막기 위해 간격을 벌린 순간 브라프가 가르시아와 후베이루 사이로 스루패스를 찔렀다.
“뒤에 라리오스.”
가르시아와 후베이루 사이로 라리오스가 침투했고 브라프의 패스를 잡아 페널티지역 안으로 드리블해 들어왔다. 라리오스를 막기 위해 산체스가 골각을 좁히며 앞으로 나오자 바로 슈팅을 가져간 라리오스. 정확히 발등에 맞긴 했지만, 공은 골포스트를 살짝 넘어 골라인 아웃이 되고 말았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전반 초반부터 아찔했던 장면이 나왔다. 2주 동안 경기를 준비하며 수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브라프의 스루패스였다. 수비에서 브라프를 막는 역할을 니실랴와 마린에게 주어졌지만 마린의 판단이 늦었기에 스루패스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
“미안해요.”
“정신 차리고 하자고. 결승전이야.”
지난 시즌부터 1군 무대에서 뛰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19살의 어린 마린이었다. 코파 델 레이 결승을 두 번이나 뛰었다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또 다른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하인스는 긴장 안 돼요?”
“안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멍 때릴 정도는 아닌데.”
“멍 때리지는 않았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 안 들으려면 똑바로 하라고. 전반 초반에 교체당하고 싶지 않으면.”
“무섭게 왜 그래요.”
“그냥 경기야. 경기에 붙는 의미는 나중에 생각해 돼. 언제나 그렇듯 이기면 되잖아.”
“알았어요. 고마워요.”
인수의 조언이 도움이 됐는지 마린의 움직임이 가벼워졌다. 산체스로부터 시작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아랑게스와 가르시아, 마르체나, 후베이루까지 모두 공을 받고 나서 니실랴에게 넘어갔다. 자신의 진영에서 나서지 않았던 레알 마드리드와는 달리 맨체스터 시티는 전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천천히 정확하게 돌려.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마.”
세도로프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도 코치석에 서서 선수들과 함께하며 소리를 높였다. 이미 아약스 시절 트레블을 경험해보기도 했고 선수 시절에도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AC밀란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해봤다. 더욱이 AC밀란의 레전드 선수로 명예의 전당까지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렇기에 베르나베우뿐만 아니라 이곳 산시로 스타디움도 자신의 안방처럼 느껴지는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니실랴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브라프를 보며 전방으로 공을 넘겨주었다. 긴장하며 보였던 실수는 이미 잊은 듯 빈 공간을 가장 먼저 찾아 들어간 선수는 마린이었다. 뒤늦게 마린에게 붙은 판사스. 마린은 공을 굴리며 경기전 인수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판사스가 좋은 수비수이긴 하지만 세컨드 플레이가 좋은 선수는 아니거든. 아니 세컨드 플레이를 제외하면 수비수로서 능력은 최상급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냥 드리블할 때 공이 몸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태클이 들어올 테니까 그것을 노려.’
인수의 말을 기억한 마린은 공을 슬쩍 내밀었다. 마린이 공을 내밂과 동시에 들어온 판사스의 태클. 마린의 생각보다 빠른 태클이었기에 공은 판사스의 발을 맞고 뒤로 흘렀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마린의 뒤를 받치고 있던 인수가 공을 키핑하고 바로 오른쪽에서 따라오는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겼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소아레스 역시 사이드를 뚫는 것을 포기하고 인수에게 공을 넘겼다. 소아레스가 넘긴 패스를 받은 인수는 자신에게 중앙수비수인 델론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에투와 포소 뒤쪽으로 로빙 스루패스를 찼다.
짧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공. 에투와 포소가 뒤를 돌아봤을 때 이미 그 자리에는 모라타가 들어왔고 그 공을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했다. 모라타의 발등에 정확히 맞은 공. 빨랫줄처럼 날아간 공은 스테포드의 우측으로 날아가 골망을 흔들었다.
삑.
골이 들어가자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던 모라타는 부심의 깃발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모라타가 침투했을 때 상대 수비수들보다 앞서 있었고 정확히 본 부심의 깃발. 당연히 골은 취소됐고 맨체스터 시티의 간접프리킥이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