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AT마드리드의 홈인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우승을 한 레알 마드리드선수단은 바로 해산하지 않고 시우다드에 있는 레알 마드리드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준비하면서부터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합숙을 마다하지 않고 도와준 선수단을 위해 클럽에서 마련한 작은 파티가 열렸다. 다음날 회복훈련을 해야 했기에 만취할 정도의 술은 제공되지 않았다.
“자. 다들 2주 후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는 건 알지? 오늘부터 3일간 휴가니까 다들 3일 후에 보자고.”
“주장부터 잘해. 여자친구하고 놀다가 기어서 복귀하지 말고.”
“기긴 누가 기어. 나보다 내 여자친구 걱정해야지.”
“하여튼 다들 3일 후에 보자고.”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마지막 경기가 있는 19일. 1군 선수들은 자율적으로 그날부터 시우다드에서 합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트레블. 16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할 동안 언제나 리그나 코파 델 레이에서 무너지며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미 거두었고 남은 건 5월 30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뿐이었다. 그 결승전을 위해 선수단은 자발적으로 합숙을 건의했고 클럽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세도로프 감독 역시 사상 처음으로 트레블을 두 번 할 수 있는 감독이 될 기회였기에 찬성했다.
***
“와 이것들은 다 뭐야.”
인수가 집에 도착해 가장 처음 맞이한 것은 코카콜라에서 보내온 환타 박스였다. 1년 전 처음 코카콜라에서 제의한 광고모델은 1년짜리 광고였다. 그동안 인수가 기부활동도 많이 한데다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이 좋아 환타뿐만 아니라 스포츠음료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또 사람들을 불러야겠네. 이제 어디에 나눠주지.”
인수는 한숨을 쉬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아들 왔어?”
“아들 왔네.”
“언제 오셨어요?”
아무도 없어야 하는 집에서 부모님이 계시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수가 물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좋다며 한동안 유럽으로 돌아올 예정이 없었던 부모님이었다. 엊그제 통화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 계셨는데 마드리드의 저택에 계신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제 왔었지. 랭커리지씨가 코파 델 레이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을 보내주셨더라고. 그래서 어제 새벽에 와서 결승전을 보고 여기서 잤지.”
“어제 오셨으면 현관 앞에 있는 거 좀 옮겨주시지 그러셨어요.”
“우리가 왜? 너한테 온 거잖아.”
“그럼요. 저한테 온 거죠. 짐 풀고 올게요.”
인수가 터벅터벅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가자 인사만 하고 주방에 들어갔던 재니퍼가 앞치마를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바로 내려와. 저녁 준비 다 됐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를 위해서 죽순이랑 이것저것 챙겨주셨으니까.”
“죽순요? 알았어요. 빨리 내려올게요.”
서울에 살고 계시긴 하지만 담양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죽순을 좋아하셨다. 봄에 채취가 가능한 죽순을 담양에서 직접 채취해 손질할 정도였다. 그걸 얼려놓고 1년 내내 드셨기에 인수도 먹을 기회가 많았고 좋아하는 식자재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같이하는 저녁 식탁. 지난여름 약혼식에서 먹었던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직접 마주 보며 먹는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레이는 잘 지내지? 가끔 안부 전화는 오는데.”
“잘 지낸다는데요. 시즌도 끝났으니 마드리드로 넘어오라고 해도 할 일이 있다고 소튼에 있어요.”
“레이도 죽순 잘 먹던데. 챔피언스리그 시작되기 전까지 영국에 있으면서 챙겨줘야겠네.”
“그러세요. 어차피 3일 후에 다시 시우다드에 들어가야 해서 심심하실 거예요.”
“그래. 우리도 3일 후에 영국으로 가지 뭐. 어차피 집에 있을 시간도 없으니 밑반찬은 에디와 레이한테 나눠줘야겠네. 수아도 이제 배 많이 불렀지? 수아도 봐야겠네.”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온 밑반찬만 캐리어로 2개였다. 다행히 인수의 집 냉장고가 커서 다 들어갔지 그러지 않았으면 냉동할 장소도 부족했을 터였다.
“그러세요. 다들 좋아할 거예요. 가는 김에 웨인도 챙겨봐 줘요. 저번에 영국에 갔을 때도 보긴 했는데 또 동굴 판 거 같던데요.”
어릴 적부터 인수와 에디, 레이를 봐주었던 웨인 브리지. 소튼 1군에 데뷔한 후 브리지는 다시 집밖에 잘 나서지 않았다. 가끔 인수와 에디가 찾아가긴 했지만 그때만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코치 자격증이라도 따라고 하지 않았어?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잖아.”
“잠시 나오더니 다시 들어간 거 같아요. 시즌 끝나고 에디가 찾아갔는데 수염도 안 깎고 지낸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한번 찾아가 볼게. 너도 유로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찾아가 봐.”
“알았어요.”
재일과 제니퍼는 인수와 같이 3일을 보낸 후 영국으로 이동했다. 빠르게 은퇴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좋아 보이긴 했지만 자신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생활이긴 했다. 지금도 유럽과 아시아를 가면 어딜 가나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생활이었다. 은퇴한 선수들을 봐도 편안하게 생활하기는 힘들 듯했다.
***
“와 다들 늦지 않게 왔네.”
인수는 집합하기로 한 11시에 맞추어 시우다드에 도착했는데 모든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역시 슈퍼스타인가.”
“슈퍼스타는 제일 마지막에 입장하는 법이지.”
“그럼. 그럼. 우리 팀 슈퍼스타는 누가 뭐래도 하인스잖아.”
“다들 왜 이래. 나도 시간 딱 맞춰서 온 건데.”
“와. 저번까지만 해도 훈련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와서 혼자 훈련하고 그러더니 이제 슈퍼스타 됐다고 시간에 맞춰 오는 거 봐.”
“그러게. 나도 1시간 전에 왔는데 마린 혼자 몸 풀고 있더라고. 하인스가 없는 것을 보고 놀랐다니까.”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인수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나오자 그제야 선수들은 놀리던 것을 멈추고 인수를 숙소로 들여보내 줬다.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선수들과 몸을 풀고 있자 뒤늦게 로카가 혼자 훈련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감독님과 다른 코치진은 오늘 테네리페와의 홈 경기 때문에 내일 합류하실 겁니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시티의 경기를 보면서 분석할 테니까 점심 이후에 영상관에 모여주세요.”
“예스. 코치.”
로카가 아직 어린 나이의 코치이긴 했지만 세도로프 감독이 정식으로 임명한 코치였다. 더욱이 로카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훈련한 선수들도 많았기에 로카를 믿고 있는 선수들도 많았다.
“그제 있었던 마지막 경기에서 시티가 지면서 최종적으로 리그 2위에 머물렀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지금부터 시티의 리그 최종전을 보면서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분석팀에서 자료를 만들었으니 자료와 함께 봐주시죠.”
라리가보다 일정이 빨리 끝난 프리미어리그.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우승팀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프리미어리그였기에 주목도가 높은 경기였다. 맨체스터 시티는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막판 역전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리버풀이 노리치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긴다면 결국 2위에 머물겠지만 지거나 비긴다면 1위를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런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45개의 슛을 쏘고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크리스탈 팰리스에 2:0으로 지고 말았다. 리버풀은 노리치와의 최종전에서 5:1로 승리했다. 지난 시즌 시티에게 내준 우승컵을 1년 만에 되찾아오며 챔피언스리그 탈락의 아픔을 우승으로 달랬다.
“맨체스터 시티는 5월 30일에 있을 결승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려고 할 겁니다. 상대가 거칠게 나올 것을 예상하고 영상을 보시죠. 우선 전반 10분 상황입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공격을 끊어낸 맨체스터 시티는 바로 역습으로 이어갔다. 오른쪽 윙포워드인 제이비까지 잘 연결된 공. 제이비가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며 한 명을 제치고 바로 슛으로 이어갔지만, 공이 골대를 스치듯 지나쳤다.
“벌써 제이비가 3번째 유효슈팅을 기록하지 못했잖아. 여기서는 중앙에 침투해 있던 브라프에게 주는 것이 낫지 않았어?”
“완전히 골각이 열렸잖아요. 브라프 앞에는 수비가 있었고요.”
“브라프에게 연결해서 좌측의 라리오사에게 넘겼어도 됐고요. 그것보다 슛 찬스가 맞긴 했어요. 모라타도 여기서는 슈팅하지 않았을까요?”
“당연히 슛 찬스지. 그냥 제이비가 못 넣은 거야.”
맨체스터 시티의 오른쪽 윙포워드 제이비. 이번 시즌 미친 활약을 보여준 에디에게 밀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맨체스터 시티에서 특급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대표팀으로 활약하고 있어 대표팀에서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은 선수임은 틀림없었다.
“분석팀에서는 이번 시즌 초반 제이비의 디딤발 위치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프로그래밍으로 돌려 본 결과 체력이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보입니다. 2주 동안 체력을 보충하겠지만 말이죠. 그 후 16분 여기서 더 큰 실수가 나옵니다. 어차피 분석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플레이를 직접 보시는 게 낫겠죠?”
로카는 선수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다 끊기자 다음 장면을 재생했다.
전반 16분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 시작되자 오른쪽 윙백이 오버래핑을 했다. 오른쪽 윙과 2:1 패스를 통해 크리스탈 팰리스의 왼쪽 진영을 무너뜨린 순간 이어진 크로스가 골키퍼에게 바로 잡혔다. 골키퍼가 바로 킥으로 연결했고 맨체스터 시티의 오른쪽 진영이 텅 비었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판사스가 재빨리 커버를 갔지만, 그 덕에 중앙이 비었고 중거리슛에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 후 뒤가 없는 맨체스터 시티는 골을 노리기 위해 전원 공격에 나섰지만, 후반 20분 펠릭스의 역습으로 2:0이 되었습니다. 종료 전까지 총 45개의 슈팅을 쏘았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최종전에서 지고 말았죠.”
“분석팀이나 코치님의 생각은 맨체스터 시티의 체력고갈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2주 동안의 휴식기가 주어지긴 하지만 시즌 초반 같은 모습은 보이기 힘들다고 판단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때?”
“너무 좋지. 4주 동안 3경기밖에 안 뛰었잖아. 물론 여기 있는 누구는 4주 동안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지만 말이야.”
“10일 후에 경기인데 그때까지는 100퍼센트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지.”
“당연하지.”
클럽과 코치진 선수들 모두 트레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패우승을 포기한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트레블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
“그런 만큼 코치진들이 짜놓은 훈련 일정과 영양사분들이 짜놓은 식단대로 생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수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누구 하나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합류한 세도로프 감독. 5월 30일 밀라노에 위치한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열리는 결승전까지 함께 달렸다.
5월 29일 마드리드의 공항. 밀라노까지 함께 가지 못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공항에 걸개를 걸고 레알 마드리드의 첫 트레블을 응원했다. 그런 응원 속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전용기가 마드리드 공항을 떠나 밀라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