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이제 곧 후반을 위해 선수들이 입장하겠죠?”
“전반 추가시간에 골을 허용한 발렌시아가 얼마나 멘탈을 정비하고 나왔느냐가 중요하겠죠. 레알 마드리드는 추가골을 넣은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려고 하겠죠. 중요한 건 후반 초반의 기세를 어느 팀이 가져가느냐입니다. 전반에는 양 팀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거든요. 후반 초반도 그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어느 순간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승자가 이번 경기의 승자가 되겠죠.”
“이제 주심이 입장을 하고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발렌시아 선수들의 표정도 밝은데요.”
“발렌시아의 코치진이 하프타임에 선수들의 동요를 잡아주었겠죠. 아직 후반 45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아직 1점 차이이기에 후반 어떤 전술을 펼치느냐. 선수교체를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후반은 발렌시아의 선공으로 시작되죠. 주심이 헤드셋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주심과 부심, 대기심, VAR실까지 모두 연결되는 헤드셋이죠?”
“그렇습니다. 쌍방향 헤드셋을 통해 주심과 부심이 소통을 하게 되죠. 주심이 보지 못한 곳에서의 파울을 부심이 바로바로 지적하며 오심도 줄어들었습니다. 선수들도 주심의 눈을 피하여 반칙을 하던 것도 줄어들었죠. 상대의 멘탈을 공격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행하던 반칙들이 줄어들며 경기의 질까지 올라가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심의 체크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됩니다. 죄메르트가 체리세프에게 가볍게 밀어준 공. 체리세프 무리할 생각이 없는지 후방에 있는 안드레에게 연결합니다.”
후반 시작 발렌시아는 경기를 천천히 풀어나가기로 한 듯 가볍게 가까이 있는 선수들에게 공을 밀어주며 천천히 전진했다. 레알 마드리드도 상대를 압박하지 않고 코프만 중앙선을 넘어 전방으로 공이 오면 달려드는 모션만 취한 채 적극적이지 않았다.
“양 팀이 약속이나 한 듯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양 벤치를 봤거든요. 언제나 코치박스에서 지휘하는 세도로프 감독이 양손으로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모션을 취했거든요. 발렌시아의 코치진들도 선수들이 공을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편안한 표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하프타임 때 선수들에게 지시한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죄메르트와 체리세프가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전진합니다. 코스타, 도르, 코인레디가 죄메르트와 체리세프를 넘어 레알 마드리드 진영 깊숙이 파고듭니다. 순간 패스 속도를 올리던 죄메르트와 체리세프 공간이 빈 오른쪽 도르에게 바로 찔러줍니다.”
“후베이루의 반응이 늦었어요. 모라타가 앞쪽 죄메르트와 체리세프에게 신경을 쓰는 동안 공간이 나지 않게 막아줬어야 하는데 후베이루가 방심했습니다. 후베이루를 뚫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도르. 도르의 주특기인 크로스가 올라올 타이밍이죠. 이미 죄메르트와 체리세프, 코인레디까지 페널티지역으로 파고들었고 코스타가 뒤에서 대기합니다.”
도르는 두세 걸음 뒤에서 달려오는 후베이루를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생각보다 강하게 맞은 공이 빠르게 흘러나가 뒤에서 대기하는 코스타의 발에 떨어졌다. 코스타가 바로 페널티지역으로 찔러준 공을 슛으로 가져간 죄메르트였지만 공중에 뜨고 말았다.
“미안해.”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후베이루가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괜찮아. 정신 못 차리면 가야로 교체당하면 되잖아.”
“미안해. 똑바로 할게. 그나저나 갑자기 치고 나오는 공격이 상당히 매섭네.”
“원래 그런 팀이잖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당하고 나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니. 그냥 미안하다는 거지. 하여튼 내가 만회할게. 됐지?”
가르시아와 마르체나에게 협공을 당한 후베이루는 손을 들어 산체스에게 공을 받았다. 발렌시아가 공격이 끝난 후 중앙선 부근까지 물러섰기에 천천히 전진한 후베이루는 누네스에게 공을 넘겼다.
***
후반 초반 날카로운 공격을 보여준 발렌시아와는 달리 레알 마드리드는 천천히 공을 돌리며 최대한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후반 20분 가까이 지났을 때 발렌시아에게 7번의 슈팅 기회를 주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발렌시아는 공격이 번번이 빗나가며 조급해졌다.
“감독님, 상대가 슬슬 조급해집니다.”
벤치에 앉아 한참 자신의 노트북을 만지던 로카가 조용히 일어나 세도로프 감독에게 말을 전했다.
“어디?”
세도로프 감독은 로카의 말에 벤치로 이동했다. 피파 규정이 점점 강화되면서 코치박스에는 한 명 이상의 코치가 들어설 수 없었다. 간단한 대화 정도는 괜찮았지만, 자료를 봐야 하는 일은 벤치로 이동해야 했다. 그동안은 세도로프 감독 대신 수석코치가 코치박스를 지켰다.
“여기 보시면 윙백들이 약간씩 전진하더니 이제는 거의 1미터에 가까이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패스가 점점 빨라지면서 트래핑이 불안정해지고 있고요.”
“1미터라. 애매하긴 하네.”
“저쪽 벤치도 그걸 아는지 교체선수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 윙백과 수비형 미드필드고요. 오버래핑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크로스 정확도가 떨어지니 교체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은 로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데이터 축구라는 말에 코치를 제안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를 보는 눈도 좋아지고 상대 감독의 수읽기도 좋아지는 로카였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들이 보였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면 분명히 좋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나 비선수 출신 감독들이 많아졌고 그 감독들의 성적도 좋았기에 로카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니실랴를 준비시켜놨습니다.”
세도로프 감독과 로카의 대화를 듣던 코치 중 하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볼란치 역할로서 누네스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아직 공격을 이어주는 고리역할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더구나 전반 내내 코스타를 마크했기에 체력소모가 심했다.
“좋아. 바로 교체하기로 하지. 이런 상황에서 교체타이밍은 상대보다 빨라야 해.”
세도로프 감독은 니실랴를 지목하며 코치와 함께 대기심에게 보냈다. 상대가 체력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를 교체하려고 한다. 그럼 그 전에 교체하여 상대의 교체타이밍을 흔들 수도 있었다. 물론 발렌시아의 감독도 경험이 많았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발렌시아의 윙백인 실레선의 오버래핑. 코스타의 패스가 정확히 실레선에게 향했고 아랑게스와의 경합에 이겨냈다. 바로 따라붙은 아랑게스의 견제에 크로스를 정확히 올리지 못하고 골라인 아웃이 되었다.
공이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주심은 대기심을 보며 교체를 허용했다. 누네스가 관중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 밖으로 나왔고 니실랴가 그 자리에 투입됐다.
“감독님.”
“나도 봤어. 우리 애들은?”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시키고 바로 교체해. 이제 상대가 밀고 올라올 거야. 실레선, 도미닉. 상대 모라타와 소아레스 철저하게 막아.”
상대의 교체 타이밍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었다. 좀 더 빨랐다면 상대의 타이밍을 뺏고 좀 더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카드를 내밀어야 했다. 그전까지는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이 한 발 더 뛰어주길 바라야 했다.
교체되어 들어가자마자 산체스의 패스를 받은 니실랴는 가볍게 공을 차며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이미 오늘 경기에는 누네스가 출전하기로 했고 자신도 세도로프 감독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해했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전반 내내 벤치에서 지켜보며 간절히 뛰고 싶었다. 중간에서 인수나 마린에게 찔러주는 패스가 더 정확했더라면 더 쉽게 골이 날 수도 있었다. 물론 자신이라도 그렇게 정확하게 패스를 찔러준다는 자신은 못 했지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아름다웠다.
“니실랴.”
처음부터 교체되어 온 니실랴를 노렸는지 후방에서는 체리세프가 전방에서는 코스타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니실랴가 후방으로 패스한 공이 어설프게 흘렀고 그 공을 향해 죄메르트와 마르체나가 경쟁했다.
“걷어내.”
마르체나가 가르시아의 목소리를 듣고 급하게 전방으로 걷어낸 공이 마린에게 향했다. 바로 발 앞으로 떨어지는 공. 마린은 뒤에 안드레가 있는 것을 알았기에 트래핑 대신 바운드를 시키고 안드레를 돌아 전방에 뛰는 인수에게 찔렀다. 낮게 깔리며 인수에게 넘어오는 공. 인수는 발끝으로 공의 진행 방향을 바꾸어 코프에게 넘겼다. 미치치가 슛 방향을 막기 전에 슛을 때렸지만 미치치의 허벅지를 맞고 반대편 페널티지역으로 떨어졌다. 인수에게 패스한 후 침투해 있던 마린이 논스톱슛으로 이어갔지만 곤살레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워낙 급작스러운 상황이었던지라 밖으로 튕겨내지 못하고 다시 페널티지역으로 떨어진 공. 리바운드를 기다리고 있던 인수가 침착하게 골키퍼가 넘어진 반대 방향으로 밀어 넣으며 추가골을 기록했다.
삐익.
***
“레알 마드리드. 후반 28분 추가골을 기록합니다. 이번에는 발렌시아의 실책성 플레이가 연달아 나오면서 실점을 기록했죠?”
“그렇습니다. 교체되어 들어온 니실랴를 노리는 플레이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공을 뺏기도 전에 양쪽 윙백이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그 윙백을 막기 위해 모라타와 소아레스가 움직이지 못했지만, 중앙에는 하인스와 마린, 코프가 있었거든요. 레알 마드리드 최종수비수인 마르체나가 걷어낸 공이 마린에게 연결되면서 플레이가 꼬였습니다. 안드레가 마린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마린이 트래핑 대신 공을 바운드시키는 판단이 너무 좋았습니다. 안드레를 벗겨내고 바운드 된 공을 바로 하인스에게 스루패스를 연결했습니다. 하인스 역시 방향만 바꾸어 코프에게 연결했죠. 이때 이미 미치치가 코프를 마크하고 있어야 했지만, 순간적으로 미치치와 파울리스의 동선이 겹쳐버렸습니다. 미치치가 코프의 슛을 막긴 했지만 밖으로 걷어내지 못했고 그 공을 마린이 바로 슛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곤살레스 골키퍼가 몸을 날려 막아내긴 했죠. 여기서도 뒤늦게 돌아온 도미닉이 마린을 견제해줬어야죠. 하인스가 침착하게 마무리를 했지만 파울리스의 위치선정 문제가 아쉬움에 남습니다.”
“어찌 됐든 레알 마드리드의 추가점으로 3:1로 앞서나갑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거든요.”
“그렇습니다. 발렌시아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시간이 남았으니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야겠죠. 지금이라도 준비한 교체카드를 사용해 경기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미 2점 차이까지 벌어졌기에 발렌시아의 감독은 준비했던 수비수들 대신 급하게 안드레와 공격형 미드필드를 교체했다. 그리고 5분 후 실레선을 스트라이커로 교체하며 마지막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열려고 몰아붙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삐익.
전광판의 시계가 멈추고 발렌시아의 공격을 마르체가나가 끊어내자 길었던 추가시간 5분도 다 지나가며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이 확정됐다.
전반 48분, 후반 50분 총 98분을 뛰어다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었지만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사방을 돌며 인사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 더블을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 아직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남았다.
그 모습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던 발렌시아의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고 라커룸으로 돌아가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시상식을 위해 라커룸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