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리버풀과의 경기를 1:1 동점으로 끝내고 마드리드로 돌아온 세도로프 감독은 바로 감독실로 코치들을 불렀다. 최근 레알 마드리드 코치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선수들의 체력문제 때문이었다.
“그럼 트레블과 무패우승을 바꾸시겠습니까?”
“말이 심하잖아. 트레블과 바꾸다니. 감독님께 사과드려.”
“아니 의견도 말 못 합니까? 말 그대로 피아노 줄처럼 가느다란 실 위에서 놀고 있는 꼴이지 않습니까?”
시즌 전 세도로프 감독의 목표는 리그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나 코파 델 레이 둘 중 하나를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잘 뛰어줬기에 리그 우승은 이미 결정되었고 챔피언스리그도 4강, 코파 델 레이도 결승전에 진출해 있는 상태였다.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과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 다음 주와 다다음 주에 예정되어있었는데 그사이에 있는 리그 경기들이 문제였다. 아직까지 무패인데다 리그 경기도 3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코치들도 무패우승을 노려야 한다와 무패우승을 포기하더라도 선수들의 체력을 아껴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그래도 라리가에서 두 번밖에 없는 무패우승이야. 그것도 거의 100년 전에 나온 기록들이고 라리가 20개 팀으로 완성된 후에는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야.”
“그렇다고 선수들을 갈아 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누가 선수들을 갈아 넣는다고 그래. 로테이션을 할 수 있는 거잖아.”
“로테이션을 하더라도 앞으로의 일정은 전부 3, 4일 간격입니다. 시즌 후반에 회복할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에요.”
“선수들은 모두 할 수 있다고 하잖아.”
“선수들은 지금 모든 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죠. 계속 무패 중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아드레날린에 취한 것을 막아줘야 하는 역할을 코치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거야? 무패우승을?”
“그만. 목소리 높이지 말고. 감정싸움으로 가지 말고 기다려.”
세도로프 감독은 코치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회의 탁자를 치며 코치들을 조용히 시켰다. 코치들의 의견은 이미 한 달 전 우승이 결정됐을 때부터 시작한 일이었다. 당시 체력측정에서는 아직 선수들의 상태가 좋았기에 지금까지 끌고 왔던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그러나 이번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있음을 확실히 느꼈다. 패스의 질이나 선수들의 호흡에서 느껴질 정도였으니 체력을 염려하는 코치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세비야가 지금 5위인가?”
“네. AT마드리드와 승점 2점 차이 5위입니다. 3경기가 남은 상황인지라 AT마드리드와 세비야 모두 사력을 다하고 있긴 합니다.”
39-40시즌 라리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조기 우승이 확정된 상태에서 상위권이 일찌감치 정해졌다. 발렌시아가 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진출하며 선수들의 체력을 위해 리그에 소홀했고, 그사이 바르셀로나가 2위를 확정 지었다. 그 뒤를 이은 AT마드리드가 2연패를 당하며 세비야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레알 마드리드의 무패우승과 4위 싸움, 그리고 강등이 확정되지 않은 두 팀에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이번 주 가장 관심을 받는 매치가 무패우승과 4강 싸움이 걸린 레알 마드리드와 세비야 간의 경기였다. 리버풀과의 1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둔 레알 마드리드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세비야. 더욱이 세비야전이 끝나고 3일 후 다시 홈에서 리버풀과 2차전을 치러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가 어떤 라인업을 들고 나올지 귀추가 주목됐다.
코치들은 주전선수들을 제외하고 출전시킬 경우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리와 언론의 질타를 받는다 하더라도 주전 선수들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이었다.
“욕심이겠지?”
“그렇습니다. 욕심을 부리다 다른 토끼들까지 놓치는 경우가 많았지 않습니까?”
세도로프 감독의 입에서 욕심이란 단어가 나오자 휴식을 주장했던 코치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다고 질 스쿼드를 내보내는 것도 말 안 되잖아. 최선의 조합을 짜봐야지.”
코치들은 세도로프 감독의 결정이 내려지자 가용할 수 있는 자원들 중 최상의 조합을 짜기 시작했다.
***
“어제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 세비야 간의 리그 36라운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들 보셨습니까?”
주말과 주일 사이에 있었던 리그 36라운드가 끝나자 스페인 언론들은 36라운드의 분석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급력이 큰 방송이 생방송으로 시작됐다.
“36라운드에 10경기가 펼쳐졌죠. 그중에서 가장 관심이 큰 경기가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세비야 간의 경기였습니다. 시즌 무패를 달리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와 4위 싸움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세비야의 경기였죠. 당초 예상대로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는 주전들을 출전시키지 못했고 세비야는 주전들을 모두 출전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비등비등한 싸움을 이어간 두 팀이었죠?”
“전반을 0:0으로 마무리한 두 팀은 후반 서로 한 골씩 주고받으며 후반 35분까지 1:1로 팽팽한 경기를 이어갔습니다. 세비야의 4-3-3 전술에 맞서 레알 마드리드는 3-5-2로 맞섰죠. 중앙 미드필드 지역을 확실하게 장악하고자 하는 세도로프 감독의 전술이었는데 후반 35분까지는 선수들이 확실하게 수행해냈어요.”
“결국 마지막 10분에서 승부의 추가 기울었죠?”
“그렇습니다. 확실히 양 측면을 활용하며 넓게 경기장을 쓰는 세비야가 후반 36분 헤더골을 넣으며 경기가 세비야 쪽으로 급격히 넘어갔습니다. 4분 후 다시 한번 측면이 뚫리며 추가골을. 종료 직전에 쐐기골까지 4:1로 세비야가 승리했죠?”
“후반 35분까지 잘 버텨준 레알 마드리드였는데요.”
“리버풀전을 뛰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간간이 교체로 출전했던 선수들까지 세비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시우다드의 훈련장에서 휴식을 취하게 했습니다. 결국 카스티야와 후베닐의 선수들로 구성해서 세비야전에 출전했는데 ‘1군의 벽은 높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죠.”
“결국 승리를 거둔 세비야는 지난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AT마드리드와 승점에서는 동률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리그 1차전에서 AT마드리드가 4:2로 이겼기에 승자승 원칙에 의해 AT마드리드가 4위 세비야가 5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두 팀의 리그 2차전이 38라운드에 예정된 만큼 끝까지 누가 4위 안에 들어 챔피언스리그에 합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에 반면 약간 소외되어 있는 감이 없지는 않은데, 강등되는 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죠?”
“20위에 처져 있는 사라고사가 강등이 확정되었고 테네리페, 카디스, 알레베스, 라스팔마스 4팀이 2자리를 가지 않기 위해 경쟁 중이죠. 승점 2점 차이의 초박빙 상황에서 지난 경기에서 라스팔마스가 승리를 거두며 한발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라스팔마스가 남은 두 경기에서 지고 나머지 팀들이 모두 이긴다면 라스팔마스가 강등을 당하는 확률도 남아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무패우승은 36라운드에서 끝났지만 끝까지 볼거리가 많이 남아있는 라리가입니다. 37라운드와 38라운드. 단 두 라운드만을 남긴 라리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챔피언스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분리되어야 할 두 이야기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한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가 챔피언스리그 4강 경기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챔피언스리그 1차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우선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은 1:1 동점으로 끝났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원정에서 골을 넣었기에 그리고 리버풀은 지지 않고 2차전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합니다. 발렌시아와 맨체스터시티의 1차전은 맨체스터시티의 1:0의 승리로 끝났죠. 발렌시아 입장에서는 리그까지 포기하고 챔피언스리그에 전념하는 중인데 아쉬운 결과일 것입니다. 반면 맨체스터시티는 원정에서 1골을 넣고 이겼으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죠.”
“그런 두 팀이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이 끝나고 일주일 후에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맞붙게 됩니다.”
“이미 리그 35라운드에서 전초전을 치른 두 팀입니다. 결국 5:5 동점으로 끝난 두 팀이기에 결승전의 향방은 예측하기 힘들긴 합니다. 그러나 결승전이 챔피언스리그 2차전이 끝나고 열리기에 그 결과에 따라 분위기가 변할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물론 가장 최선은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가 결승에 올라가는 것일 텐데요.”
“레알 마드리드도 무패우승을 포기하면서까지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었습니다. 발렌시아도 리그 경기에서는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고 있죠. 리버풀과 맨체스터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다투고 있기에 주전들의 피로를 다 풀어주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의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양 팀의 선전을 기대하며 저희는 다음 37라운드가 끝난 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중요한 경기가 많은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사회자의 인사와 함께 방송이 꺼지자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던 인수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일어섰다.
“와 모레 지면 진짜 안 되겠는데.”
“그러게요. 밖에서는 우리가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를 텐데."
"그렇다고 뭐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코프는 합숙 시설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신문들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 리버풀에서 시우다드로 복귀한 선수들은 그날부터 훈련장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계속 얼굴을 부딪치며 숙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세도로프 감독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코치들도 모두 시우다드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다. 구단의 협조를 얻어 다음 주까지 기자들도 출입을 금지했기에 내부의 상황이 외부에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와.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좋은데. 휴식도 마음대로고.”
“그렇게 집에 가기 싫으며 구단에 방 하나 달라고 해. 여기서 다른 클럽으로 떠날 때까지 있으면 되잖아.”
“그래도 애들 얼굴은 봐야지. 날마다 사진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시즌이 끝나가자 경험이 많은 선수들도 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특히 경기가 끝난 후 다음날 마무리 훈련까지 완벽하게 했어도 집에 가면 널브러질 때가 있었다. 물론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기쁨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세도로프 감독의 훈련소 숙식에 반색한 유부남 선수들이 많았다.
“이번 리버풀과의 2차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자고. 이기면 구단에서 보너스까지 준다고 했으니까.”
세도로프 감독이 훈련소에서의 합숙을 제안하자 구단에서도 합숙하는 선수들을 배려하며 리버풀전에 특별 상여금을 준비했다. 리버풀전의 특별 상여금 소식까지 전해지자 선수들의 사기는 더욱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