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감독님 이거 걸치시죠.”
수석코치는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가벼운 패딩을 들고 세도로프 감독에게 다가왔다. 해가 진 후 시작된 경기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까지 쌀쌀함을 느낄 정도로 온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고마워. 생각보다 더 쌀쌀하네. 비만 안 왔으면 좋겠는데.”
일기예보로는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해가 지면서 하늘에 구름이 많아지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비 때문에 체력이 더 소진될 위험이 있었고 당장 3일 후에 있을 세비야와의 리그 36라운드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로카가 기상청에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비가 온다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온도가 1, 2도 더 떨어진다고 합니다.”
“라커룸에 연락해서 핫팩 좀 준비해달라고 해. 라커룸 온도도 올려놓고.”
“안 그래도 그렇게 지시해두었습니다.”
“그래. 더 빨리 뛰어. 앞에 비었잖아. 바로 찔러줘야지.”
세도로프 감독은 경기장을 보며 다시 소리를 높였다.
리버풀의 윙어인 빌리가 공을 잡았을 때 가야의 압박으로 공이 중간으로 흘렀다. 중앙에 있던 토레가 커버를 해주어야 했지만 니실랴의 방해로 가르시아가 먼저 공을 차지했다. 리버풀의 양쪽 윙백이 모두 코너까지 진출해있었기에 리버풀 진영 후방이 텅 비었다.
“한 번에 넘겨.”
인수는 소리를 높이고 중앙으로 뛰자 마린과 소아레스가 양쪽으로 벌어졌다. 가르시아가 찬 공이 리버풀 진영 깊숙이 떨어졌고 그 공을 소아레스가 잡아냈다.
“디아즈, 하인스 맡아. 베릿, 우측으로. 게르 왼쪽에 파고드는 애 막아.”
케인은 공을 가진 소아레스를 보며 수비들에게 소리를 높여 맡을 선수를 지정했다. 전반에만 벌써 똑같은 상황이 4번이나 나왔지만, 케인과 수비수들을 호흡으로 잘 막아냈다. 마찬가지로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 때 수비진이 끊어내며 리버풀이 역습으로 나섰을 때도 상대편이 잘 막아내며 0:0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뿐 언제 점수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였다.
“하인스.”
소아레스는 베릿에게 전진이 막히자 중앙에 있는 인수에게 공을 패스했다. 가야가 뒤에 따라오고 있었지만, 가야를 막고 있는 빌리가 있었다. 중앙으로 넘어온 공을 좌측에 있는 모라타에게 연결한 후 인수가 중앙으로 파고들자 인수가 있던 자리에 마린이 채웠다. 모라타가 다시 마린에게 패스한 공이 논스톱 패스로 인수에게 넘어갔고 인수도 바로 우측에 있는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겼다.
우측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다시 좌측으로 경기장을 넓게 쓰는 레알 마드리드. 중앙 빈 곳을 막던 디아즈는 인수와 마린이 나란히 서자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베릿, 19번 마크해줘. 난 하인스 맡을 테니까.”
디아즈가 급하게 말했지만 이미 그 전에 인수는 마린에게 짧은 패스를 했다. 그리고 디아즈를 지나치며 공을 돌려받으며 바로 슈팅으로 이어갔다. 아크 정면에서 골포스트를 노리고 찬 슛. 총알 같이 날아간 골은 케인의 손가락을 스치고 골망을 갈랐다.
삐익.
인수는 골을 확인하자마자 코너 깃발 쪽으로 뛰며 그대로 하늘을 보며 슬라이딩했다. 2년 만에 기록한 안필드에서의 골. 2년 전 이곳에서 리버풀에 패배하며 상대방이 리그 우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인수였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좋은 선수들과 함께 리버풀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짜식. 진작 넣을 것이지.”
“패스 좀 해. 너만 넣을 거야?”
“아아. 나 죽어. 내려와.”
하늘을 보고 있는 인수를 겹겹이 올라타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 인수가 고통스럽게 외쳤지만, 선수들은 웃으며 한참은 있다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돌아갔다.
***
“어떻게든 데려왔어야 했는데.”
“자신이 프리미어 리그팀으로는 이적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데려와요.”
“랄라나한테 그렇게 술을 사 먹였는데도 설득을 못 시키다니.”
리버풀 선수 시절 랄라나와 친하게 지냈던 제라드였다. 은퇴 이후에도 여러 가지 광고로 엮인 적도 있었고 리버풀 감독을 맡기 전에도 자주 만나며 친분을 다져왔었다.
“공 뒤로 돌리지 마. 앞으로 나가 뭐 해.”
제라드는 레알 마드리드 코치박스에 서서 소리를 지르는 세도로프 감독을 바라봤다. 자신이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세도로프 감독은 아약스에서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몇 번 부딪히기도 했기에 세도로프 감독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제라드였다. 그러나 아약스를 지휘하던 세도로프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며 자신도 더욱 공격적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만 놀고 너희도 몰아붙여.”
제라드 감독도 세도로프 감독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코치박스로 나서 리버풀 선수들을 지휘했다. 제라드 감독이 코치박스에 서자 리버풀 선수들의 패스 스피드가 더욱 빨라졌다. 레알 마드리드와 복사하고 붙인 듯 운동장을 넓게 쓰며 레알 마드리드를 압박해나갔다.
“빌리. 안으로.”
빌리는 샬리에게 보내는 패스가 계속 막히자 이번에는 토레에게 패스를 보내고 뒤로 돌았다. 가야가 막은 길목을 뚫은 빌리는 토레가 다시 넘겨준 공을 끌고 골라인까지 파고들었다.
“패스 길목을 막아. 파고들잖아.”
다급하게 수비라인을 조율하는 산체스. 페널티지역에 샬리를 비롯해 토레, 스위터, 토마스까지 모두 파고들었다. 그에 맞추어 빌리가 페널티지역으로 컷백을 시도했다.
“막아.”
“걷어내.”
골라인에서 빠르게 페널티지역으로 굴러간 공을 막거나 골을 넣기 위해 발을 뻗어봤지만 모두 지나치고 최종적으로 샬리에게 향했다. 자신에게 온 공을 놓치지 않고 바로 슛으로 가져간 샬리. 산체스가 발을 뻗어봤지만 다리 사이를 뚫고 골문 안으로 사라졌다.
***
“전반을 1:1로 끝낸 양 팀입니다.”
“양 팀 모두 무실점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겠죠. 전반 45분 동안 많은 골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정말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양 팀 모두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죠. 하이라이트로 보시면서 이야기하시죠.”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이 전환되면 전반 주요 장면들이 나왔다.
“처음 기회를 잡은 것은 레알 마드리드였죠. 빌리의 패스가 끊기며 역습의 기회가 왔죠. 하인스가 공을 잡았지만 바로 디아스에게 막히며 코프에게 패스했습니다. 코프의 장기인 논스톱이 나왔지만, 리버풀의 수호신 케인이 캐치해냈습니다.”
“바로 리버풀에게도 기회가 왔죠?”
“중앙에서 샬리가 2명의 선수를 뚫으며 토레의 패스를 받았습니다. 샬리가 수비를 뚫고 리턴한 패스를 토레가 슛했지만 골대를 맞고 골라인아웃이 되고 말았죠. 바로 마린이 오른쪽으로 파고들며 수비를 자신에게 집중시켰을 때 코프의 패스를 받은 하인스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감아 찬 공이 살짝 벗어났죠.”
레알 마드리드와 리버풀의 활약상이 짧게 편집되어 보여졌다.
“결국 양 팀의 해결사는 하인스와 샬리였습니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53경기에 출전해 69골을 넣은 하인스죠.”
“정말 많은 골을 넣고 있는 하인스인데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골을 넣은 위치였죠,”
“그렇습니다. 프리킥, 중거리슛, 페널티지역에서의 슛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골대에 때려 넣었습니다. 그것도 오른발 42골, 왼발로 27골을 성공시켰죠. 이제까지 양발잡이 골게터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큰 임팩트를 보여주는 선수는 처음입니다.”
“샬리도 이번 시즌 큰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시즌 리버풀이 9천만 유로를 주고 유벤투스로부터 영입한 샬리였죠. 샬리를 영입했을 때 제라드 감독이 아주 싸게 잘 영입했다는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기대를 받았고 그 기대에 부합하는 활약을 해준 샬리입니다.”
“이번 시즌 리버풀에서 51경기에 나와 37골을 터트린 샬리였죠.”
“모하메드 살라가 리버풀 데뷔 시즌 44골을 터트리며 최다 득점을 터트렸는데 같은 이집트 출신인 모스타파 샬라가 그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고 있죠.”
“39-40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1:1로 전반이 끝나고 저희는 후반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주심의 휘슬과 함께 시작된 후반. 레알 마드리드는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까지 중앙선을 넘어서며 적극적으로 리버풀을 압박했다.
“다들 자리 잡아. 어차피 공은 하나야. 공간을 만들어주지 마. 패스를 쉽게 받지 못하게 만들어.”
리버풀 수비의 핵 디아스는 주변의 선수들 자리를 지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선 부근에서는 쉽게 공을 돌렸지만, 전진하며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수비에 쉽게 앞으로 패스하지 못하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확실하게 패스해. 그리고 끝까지 마무리 지어.”
리버풀의 적극적인 수비에 패스를 정확히 받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변 선수가 달려와 커버를 해주며 공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최전방까지 공을 넘어오면 골대를 넘기는 슛을 하더라도 마무리 지으며 한 번 잡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네 감독님.”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는 세도로프 감독의 손짓에 바로 코치박스로 달려왔다.
“몸은 다 풀었겠지?”
마드리드와는 다른 추운 날씨. 전반부터 공격과 수비에서 전방위로 뛰어다니며 활약을 해준 선수들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중에서도 경기 경험이 많지 가야의 체력은 위험할 정도였다.
“네. 하프타임 때부터 준비해서 완벽합니다.”
리버풀로 출발하기 전부터 후반에 교체하기로 했던 후베이루가 하프타임 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로 코치들과 실내에서 풀고 있었기에 세도로프 감독은 교체타이밍에 수석코치를 불렀었다.
“누네스는?”
“누네스도 준비됐습니다.”
“좋아. 공이 아웃되면 바로 교체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후반 15분이 지나가자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을 뒤로 물렸다. 15분 내에 한 골을 더 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이제는 주도권이 리버풀로 넘어갈 시점. 세도로프 감독은 리버풀로 넘어가기 전에 니실랴와 가야를 빼고 누네스와 후베이루를 투입했다.
“페트리.”
제라드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가 먼저 선수교체를 단행하는 것을 보고 수석코치를 불렀다. 이제 50을 훌쩍 넘긴 나이. 아직 은퇴를 이야기하기에는 빨랐지만 그렇다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면서 자신의 부재 시 가장 믿을 만한 패트리를 불렀다.
“네. 감독님.”
“어떻게 해야 할까?”
“트릭과 베인을 준비할까요?”
공격적으로 선수교체를 단행할지, 수비적으로 선수교체를 단행할지 물어보는 물음이었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수를 제시했다. 전반 인수를 막으면서 체력소모가 컸던 디아스를 교체하면서 라인을 더욱 올릴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좋아. 준비시켜.”
후반 25분 리버풀도 디아스와 스위터를 빼고 트릭과 베인을 투입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물러서면 잡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후방에서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의 교체였다.
“마지막까지 집중해.”
안필드 상단의 시계가 멈추고 추가시간 3분까지 지났지만 양 팀은 득점하지 못하고 4강 1차전은 1:1로 끝났다.
“후반 많은 기회를 잡은 양 팀이지만 득점하지 못하고 1:1로 경기가 끝났습니다.”
“세도로프 감독과 제라드 감독은 아쉬운 한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장 3일 후 레알 마드리드는 세비야를 리버풀은 소튼을 상대해야 하는 리그 일정이 있거든요. 선수들의 체력을 소모시키며 승기를 잡고 싶은 운영이었는데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군요. 양 팀의 승부는 일주일 후 베르나베우에서 결정이 나겠습니다. 저희는 그 경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