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챔피언스리그 8강을 통과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은 쉴 틈이 없었다. 4일 후 바로 아틀랜틱 클루브와의 리그 33라운드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3일 후 에스파뇰과의 34라운드, 그리고 다시 4일 후 발렌시아와의 35라운드가 열렸다. 문제는 다시 3일 후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리버풀 원정을 반환점으로 5월 19일까지 세비야, 리버풀, 카디스, 발렌시아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 그리고 리그 최종전인 테네리페와의 홈경기까지 쉬어가는 일정 없이 3, 4일 간격으로 경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린은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즌 마지막까지 체력이 안 됩니다.”
“산체스도 병원 결과를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다음 경기는 휴식을 줘야 할 듯합니다.”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즌 동안 휴식 없이 달려온 레알 마드리드. 시즌 종료가 한 달여 남자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은 알아서 관리를 해오고 있었지만, 마린은 이번 시즌 첫 풀 출전 시즌이었기에 코치들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점점 활동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상처를 입은 산체스와 중앙 수비수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코치들의 의견이 많았다.
“좋아. 그런데 다음 경기가 어떤 경기인지는 알고 있지?”
“그야 알고는 있지만, 상대도 많은 경기를 치러왔습니다.”
“아틀랜틱 클루브의 분위기가 좋은 상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시죠.”
전통적으로 마드리드에 불만을 가진 지역인 카탈루냐와 바스크. 그 두 지역을 대표하는 팀인 FC바르셀로나와 아틀랜틱 클루브는 성적과 관계없이 혈투가 벌어지는 더비경기였다. 마드리드의 패자자리를 놓고 다투는 AT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3대 더비라고 불리는 경기들이었다.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리그 33라운드는 바로 아틀랜틱 클루브와의 경기였다. 비록 아틀랜틱 클루브가 리그 9위에 있고, 주전선수들의 부상으로 선수단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았지만 더비 경기는 그 의미가 달랐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도 한 시즌을 달려오며 크게 다친 선수도 없었기에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체력들이 문제였다.
“좋아. 그럼 아틀랜틱 클루브전 라인업을 우선 짜보자고.”
세도로프 감독이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전술판에 붙여 나가자 코치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경기에서 쉬었던 소아레스를 원톱으로 내세우면 어떻겠습니까?”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이제 29살이 된 라이안 코프를 놔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 대체를 생각하며 신입 코치인 로카가 내놓은 대안이 바로 소라레스의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원래 오른쪽 풀백출신인 소아레스. 풀백일 때에도 좋은 모습이긴 했지만, 정확도 낮은 패스 능력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바꾸게 된 윙포워드. 그 자리에서 득점력을 뽐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눈에 띄어 영입된 케이스였다. 물론 세도로프 감독이 취임한 이후에도 줄곧 윙어로 선발 출장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었다. 그런 소아레스를 원톱 스트라이커에 기용하자며 내놓은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 패스 능력에 의문이 있긴 하지만 브라질 출신 선수답게 트래핑 능력이 탁월하고 슛 감각이 뛰어나다.
‧ 수비수 출신답게 체격이 좋고 몸싸움에 능하고 자리 잡는 방법을 안다.
‧ 키가 크지 않지만 점프력이 좋아 공중볼 다툼에 유리하다.
‧ 어떤 수비수와의 기 싸움에 쉽게 밀릴 성격이 아니다.
등등 로카가 내놓은 이유는 세도로프 감독이 봤을 때도 타당성이 있었다. 더욱이 이제 에이징 커브에 다가서는 코프 대신 한 시즌은 정도는 충분히 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소아레스가 스트라이커로 출전하면 오른쪽 윙은 파라데스가 당연히 서야겠죠. 왼쪽은 사라비아고. 하인스가 출전하지 않으면 득점력에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모라타와 소아레스의 호흡이 좀 잘 맞으면 문제가 없을 거 같은데. 점차 좋아지고는 있긴 한데 더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이니까.”
세도로프 감독은 소아레스를 스트라이커로 기용하며 몇 번의 자체 연습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꾸 소아레스와 모라타가 자꾸 겹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충돌까지 이어졌지만 시간을 두고 훈련한 결과 점점 호흡이 맞아갔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럼 하인스가 중앙에 필요하다고 하면 후방에는 니실랴와 누네스가 모두 가용되어야 맞겠지?”
“후방에도 코이타와 쿠만. 브왕가, 아랑게스가 서면 될듯합니다.”
세도로프 감독은 코치들의 의견을 들으며 선수들의 카드를 전술판에 붙여 나가기 시작했다. 세도로프 감독 취임 이후 처음으로 나오는 4-2-3-1 전술. 연습 때에 써보긴 했지만 공격력을 중시하는 세도로프 감독이 좋아하는 전술은 아니었다.
“좋아. 다음 경기는 이렇게 가자고.”
***
“다들 밀고 올라가. 포기하지 마”
전광판이 가리키는 시간은 85분. 스코어는 4:5.
세도로프 감독은 경기장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챔피언스리그 8강이 끝나고 난 뒤 아틀랜틱 클루브와의 경기는 소아레스를 스트라이커로 내세워 2:0으로 승리했다. 로카의 말처럼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한 골을 성공시킨 소아레스였다. 인수의 추가골로 2:0으로 승리하며 기존 선수들에게는 휴식을 주며 승리까지 가져오는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어진 에스파뇰과의 34라운드는 인수까지 제외한 엔트리로 3: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35라운드 그동안 휴식을 취했던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우며 발렌시아 원정을 떠났다.
전반 초반 인수의 돌파에 이은 스루패스로 코프가 득점을 터트리며 헤트트릭을 했을 때만 해도 쉽게 경기를 풀어갈 것으로 생각했었다. 전반 종료 전 페널티지역에서 가야가 반칙하며 퇴장을 당했을 때부터 경기가 이상하게 풀려갔다. 가야의 반칙으로 내준 페널티킥이 골로 이어지며 3:1로 맞이한 하프타임. 세도로프 감독은 수비를 단단하게 하려고 마린을 아랑게스와 교체했다.
후반 초반 숫자로 열세가 되긴 했지만 인수가 단독드리블로 3명의 선수를 제치고 골을 터트려 4:1을 만들었다. 인수의 골이 터지자 발렌시아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선수 숫자의 우위에 점차 밀리던 레알 마드리드는 순식간에 4골을 뺏기며 후반 5분도 남지 않은 시간 4:5로 역전을 당했다.
시즌 무패를 달리던 레알 마드리드가 처음으로 패배를 당할 위기에 놓여있었지만, 선수들의 눈빛은 아직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었다.
“하인스 앞으로 찔러 줘.”
세도로프 감독이 역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사용한 교체카드. 니실랴를 빼고 소메도를 투입했다. 이번 시즌 스포르팅에서 영입되긴 했지만 코프에게 밀려 후반 교체로 투입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 선발로 나섰을 뿐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소아레스에게도 밀리는 3옵션이 되어 버렸다. 다음 시즌 코프의 이적이 확실시되고 있을 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공격적으로 나오니 발렌시아도 한점을 지키기 위해 텐백으로 돌아섰다. 숫자상으로 우위에 있긴 했지만,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 전패를 기록 중인 발렌시아였다. 이번 리그 경기가 끝난 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또 만나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였기에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뒤로 돌려.”
인수가 찔러준 공을 제대로 트래핑하지 못한 소메도가 슛 찬스를 놓치자 인수는 바로 공을 돌려받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추가시간을 고려해도 6분이 채 남지 않았다. 분명 골을 기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공을 뺏기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우승은 우리 거야.”
인수가 혼자 외롭게 고립되어 있자 모라타가 다가와 공을 받아주며 말을 걸었다. 모라타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에 무패우승을 한 번 더 추가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보다 레알 마드리드 최초 트레블에 대한 욕심이 더 컸다.
주장 완장은 자신이 차고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에이스는 인수였다. 인수가 흔들리면 트레블은커녕 5월 15일로 확정된 코파 델 레이 결승전과 당장 3일 후에 있을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이 문제였다. 경기가 끝난 후 세도로프 감독과 코치진이 챙겨주겠지만 경기 중에는 주장인 자신이 챙겨야 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모라타가 말하기 전에는 눈앞의 골만 생각하며 골대만 바라보니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좌우에 모라타와 소아레스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음을 느끼고 모라타에게 다시 공을 받았다.
모라타의 도움 이후에 양쪽 사이드로 공을 돌리기 시작하니 인수만을 노리고 수비범위를 좁히던 발렌시아도 다시 좌우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코프.”
모라타와 소아레스의 도움으로 수비가 좌우로 벌어지자 중앙에 공간이 생겼고 인수는 코프에게 패스를 하고 앞으로 달렸다. 인수가 패스한 공을 다시 인수에게 돌려준 코프도 수비들과 몸싸움을 하며 한 발 한 발 골대 쪽으로 다가섰다.
“선수를 봐. 하인스는 지금 맡고 있던 애들이 맡아야지. 중앙이 비잖아.”
인수와 코프가 양쪽으로 달려 들어오고 소메도가 중앙에 자리 잡고 있자 발렌시아도 급해졌다. 인수를 막았던 선수들이 뚫리자 자연스럽게 중앙에 있던 수비가 인수에게 달려들었고 소메도가 프리가 되었다. 소메도를 막았던 수비가 자신에게 달려오자마자 인수는 소메도에게 공을 찔렀다.
완벽한 찬스에서 인수의 패스를 받은 소메도. 공을 발 안에 가두고 바로 슛을 때렸다.
“막아줘.”
소메도의 발을 보고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골키퍼. 수비들은 소메도의 슛을 보고 골키퍼가 막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골키퍼가 펀칭으로 공을 쳐냈다.
“아.”
골키퍼의 선방에 공이 코너킥이 되어 버리자 소메도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스포르팅에서 최다득점을 올리며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됐을 때만 해도 코프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선발라인업에 포함될 자신이 있었다. 벤치멤버로 이번 시즌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올 때마다 자신의 골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번과 같이 중요한 경기, 중요할 때 골을 놓치자 있던 자신감마저 떨어져 버렸다.
“아직 코너킥이 남아 있잖아. 헤더 능력을 보여주면 되지.”
“일어나. 아직 코너킥 남았어. 주심 휘슬이 불릴 때까지 끝난 게 아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소메도의 곁으로 와 위로할 때 인수는 천천히 걸어 코너로 향했다. 전광판의 시계는 소메도의 슛과 동시에 멈췄고 대기심은 남은 시간을 2분으로 표시했다.
“지기 싫어.”
인수가 볼보이에게 공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시즌에도 위기는 있었지만 잘 헤쳐나오고 있었다. 더욱이 상대는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맞붙어야 할 발렌시아였다. 여기서 지면 결승전 전에 상대의 사기를 올려줄 수도 있었기에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돌았다.
“하인스. 집중해.”
하인스의 눈동자가 복잡한 것을 본 세도로프 감독이 소리를 질렀다.
“넵.”
세도로프 감독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 인수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내고 코너포인트에 공을 놓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골대까지 비우고 나온 산체스까지 20명의 선수가 발렌시아의 골문 앞에 모였다.
다섯 걸음까지 뒤로 물러선 인수가 힘차게 뛰어 공을 걷어찼다.
“밖으로 걷어내. 다들 위험한 행동 하지 마.”
인수가 찬 공이 골라인을 따라 곧게 뻗어오자 발렌시아의 골키퍼가 골문 앞에서 걷어내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골키퍼가 앞으로 나오자 골대 쪽으로 휜 공.
발렌시아의 수비들이 골대 안에 서서 공이 휘는 방향을 보고 점프를 뛰어봤지만 공은 그대로 골문을 통과했다. 인수의 생애 두 번째 코너킥 골. 패배의 벼랑에 몰려있던 레알 마드리드를 구한 골이자 자신이 에이스임을 증명하는 골이었다.
“아직 안 끝났어. 다들 물러서.”
인수는 골이 됐지만 세리머니 없이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달렸다. 골을 넣은 인수에게 달려들던 선수들도 인수가 자신들의 진영으로 물러서자 다들 수비를 위해 내려섰고 이어진 발렌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며 경기가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