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왔어?”
“소집일 전에는 도착해야지. 잘 지냈지? 수아는 좀 어때? 애는 잘 크고 있데?”
“하나씩 물어라. 어제도 전화로 물어놓고 하루 사이에 얼마나 바뀐다고. 난 잘 지내고 있고, 수아도 잘 있고, 애도 문제없데.”
“다행이네.”
“하루에 한 번씩 물으면서 그렇게 궁금해? 너도 빨리 애기 가지면 되잖아.”
“나도 소튼에 있었으면 만들었지 않을까? 그나저나 집이랑 다 구했다며. 어디로 얻은 거야?”
집을 구했다는 소리를 했지만 어디에 구했다는 말은 끝끝내 하지 않은 에디였다. 직접 와서 확인하라는 소리에 귀찮다고 전화를 끊은 적이 있었다.
“지금 가고 있으니까 가서 봐. 레이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거야 나도 통화했으니까 알지.”
인수를 마중 나온 에디의 차에 편하게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우스햄튼에 거의 도착해있었다.
“여기 우리 동네 가는 길이잖아. 설마 동네에 집 산 거야?”
인수는 에디가 소튼에 들어서도 익숙한 길로 운전을 하자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무런 대답 없이 빙긋 웃은 에디는 인수와 에디가 살던 동네로 접어들자 인수와 에디의 집 옆에 차를 댔다.
“여긴 제임스 아저씨 집이잖아. 여기서 노후까지 보내신다고 그러지 않았어?”
인수와 에디의 옆집은 아이가 없이 두 부부만 살던 집이었다. 40대에 은퇴를 하고 동네에 들어온 이후 인수와 에디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쿠키와 주스를 챙겨주던 이웃이었다. 고향인 소튼에 정착했기에 인수와 에디의 부모와도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었다.
“내가 소튼에서 10년 더 뛰어준다면 파신다고 해서 바로 계약했지.”
“10년이나? 너 다른 팀 안 갈 거야? 우승하고 싶다며.”
“소튼에서도 우승할 수 있지. 이번에 FA컵에 4강 진출했잖아. 상대가 리버풀이긴 하지만 충분히 할 만해. 이번 리버풀이 챔프 8강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해야 하잖아. 도르트문트를 이기고 나서도 바로 너희를 상대해야 하는데 FA컵에 최상의 전력을 내보내지는 못하겠지.”
일정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보통 FA컵 4강은 4월에 열렸다. 그 4월 일정은 리그 경기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8강 두 경기와 4강 한 경기까지 치러졌다. 소튼은 바로 리버풀의 힘든 일정을 노리고 있었다.
“이번에 우승까지 노리는 거야? 랄라나 감독님이 이번에 독을 단단히 품으셨네. 리그 순위도 유로파 진출권이잖아.”
“나도 유럽대항전은 나가봐야지. 너희는 이번에 벤피카던데. 가깝기도 하고 좀 여유 좀 가지겠네.”
챔피언스리그 16강 경기가 모두 끝나고 이어진 8강 조추첨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벤피카와 한 조를 이루었다. 포르투갈의 명문구단이긴 하지만 다른 8강팀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한 수 아래의 클럽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빅클럽이 아닌 클럽들이 빅이어를 4번이나 들어 올린 만큼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리버풀을 4강에서 만나면 도발 좀 해줘. 챔피언스리그 8강과 4강 사이에 FA컵 4강을 할 테니까.”
다른 리그의 컵대회와는 다르게 잉글랜드의 컵대회는 홈 앤 어웨이 방식이 아닌 단판전이었다. 특히 4강부터는 영국축구의 성지라 불리는 웸블리에서 중립 경기가 펼쳐지는 만큼 홈의 이점도 없었다.
“알았어. 들어가기나 하자. 차가 들어오는 거 봤을 텐데.”
“아 맞다. 빨리 들어가. 그리고 환타 챙겨왔지. 그거부터 꺼내놔.”
에디는 차에서 인수의 짐들을 내리며 제일 먼저 환타를 찾았다. 가끔 인수가 택배로 보내주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벌써 지난주에 수아와 레이가 함께 마시니 거덜 나버렸다. 인수가 영국으로 오는 길에 가져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알았어. 우선 들어가기나 하자고.”
인수의 부모님은 한국에 간 후 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6개월 넘게 머물고 있었기에 소튼의 집은 레이가 가끔 잘 뿐 빈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짐도 에디의 집에 풀기로 했기에 모든 짐을 내렸다.
“잘 지냈지? 몸은 좀 어때?”
집에 들어선 인수는 제일 먼저 레이와 키스를 나누고 수아를 보았다. 아직 3개월밖에 되지 않았기에 임신한 티가 나지 않아 탄탄한 선수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괜찮아. 곧 있으면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아저씨, 아주머니도 돌아오신다고 했고?”
“아빠, 엄마가 귀국한다고? 한국에서 좀 더 계신다고 했는데.”
“결혼식에 참석하신다고 우리 부모님 모시고 온대. 그리고 다시 나가신다던데.”
“그래? 결혼식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정말 축하해.”
인수는 리그 일정상 다음 달 초에 치러질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에디가 새로 산 집에 가전제품들을 사주는 것으로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하인스, 우리도 옆집에 집을 사면 어때?”
변호사인 레이의 어머니는 직장과 가까운 소튼 시내 오피스텔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를 자주 드나들던 레이는 시내의 복잡한 곳보다 전원마을처럼 꾸며진 이곳을 더 좋아했기에 인수도 긍정의 답변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2층 게스트룸으로 올라간 인수와 레이는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보낸 후 세인트조지파크로 입소했다.
***
“잘 지냈어?”
“당연하지. 요즘 네 폼이 미쳤다며. 맨시티와 경기에서 8연속 선방은 하이라이트로 다시 봤는데 정말 미쳤던데.”
“뭐 그 정도야. 당연한 거 아냐. 너도 연속게임 골을 터트리고 있잖아. 오 키다리. 너도 요즘 골 무지 넣고 있던데.”
“우리한테는 안 되니까 양학한 거지. 안 그래?”
“야 리그에서는 적이어도 여기서는 동료니까 그만 놀려. 울겠다.”
오랜만에 모인 잉글랜드대표팀. 같은 클럽에서 뛰는 선수도 있었고 다른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레쉬포드 감독이 세대교체를 선언한 이후 거의 모든 선수가 20대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잉글랜드대표팀의 주장인 인수가 21살에 불과했고 주전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구성되어 빠르게 친해지며 원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평균연령 23.6세. 다른 나라 올림픽 대표팀과 비슷한 평균연령을 가지고 있어 경험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언론도 있었지만 레쉬포드 감독은 결과로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그 중심에는 21살의 나이로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한 인수가 있었다.
“드디어 완전체인가.”
유로 2040의 잉글랜드 대표팀 26명이 모두 모인 A매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별다른 부상이 없다면 오늘 모인 26명이 유로와 2042월드컵까지 모두 활약해야 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SAS캠프에 넣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군.”
“그랬다가는 각 선수들 에이전트는 물론이고 클럽들까지 적이 될걸요.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SAS캠프는 유로 전에 가야죠.”
“나도 모두를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어. 그냥 하루라도 빨리 더 친해지고 호흡이 맞춰졌으면 하는 생각에 말한 거지.”
대표팀과 클럽.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팀과 사업적 이익집단인 클럽의 관계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선수들이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어느 정도는 서로 양보할 줄 알아야 했다.
“자 다들 기초훈련부터 하고 평가전 준비를 하자고.”
지난해 12월에 열린 조추첨식에서 포트 2에 배정된 잉글랜드는 포트 1에 배정된 개최국 덴마크와 포트 3에 배정된 우크라이나, 포트 4에 배정된 체코와 함께 A조에 추첨됐다. 잉글랜드의 첫 상대가 체코인만큼 체코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와의 평가전이 예정되어있었다. 동유럽의 축구 스타일처럼 체코 역시 피지컬을 바탕으로 강한 축구가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네덜란드 토털축구가 강세일 때 체코는 유로에서 준우승과 4강을 하며 토털축구의 킬러로 불려왔다. 지금도 피파 랭킹 18위로 잉글랜드와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의 팀이었다.
***
“드디어 잉글랜드대표팀이 완전체가 되었죠.”
“그렇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주장 하인스를 비롯하여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존 에딩, 피오렌티나에서 최고의 라인트윙으로 각광받고 있는 크레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인 에드워드 브라운, 수비형 미드필드로 뛰는 케이힐과 메슈, 수비라인에 잉스와 콜, 핸더슨, 케일. 그리고 이제 잉글랜드의 수문장을 말하면 누구다 인정하는 프레스턴 볼까지 완벽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지금 말씀해주신 선발진뿐만 아니라 교체라인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1위인 맨시티의 켄, 리버풀의 중앙을 버티고 있는 샤네, 토트넘의 바디와 아스널의 레비, 울버햄튼의 힐 개개인 모두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언론에서도 이들의 평균나이와 경험을 지적했지 실력을 지적하지 못했죠. 그만큼 각 팀의 주전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수들이 선발됐습니다. 물론 맨유의 로버트나 첼시의 우드, 밍스와 같이 30대 이상의 선수들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있지만 레쉬포드 감독은 ‘현재 라인업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답변을 했죠. 그만큼 레쉬포드 감독이 신경을 써서 짠 대표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표팀의 첫 평가전 상대가 바로 폴란드인데요. 폴란드 대표팀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요.”
잠시 자료를 뒤적거린 해설자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동부 유럽의 강자인 폴란드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화려한 골잡이 라인을 자랑하는 국가이기도 하죠. 빌리모프스키, 루반스키, 라토, 보니에크, 올리사데베, 레반도프스키 그리고 지금의 다비도프스키까지 엄청난 골잡이들이 활동했던 팀입니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라이벌을 형성하고 있지만 한때 세계대회에서 번번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 동유럽의 최강자 자리를 두고 체코와 싸우고 있는 팀입니다.”
“그런 체코를 상대하기 위해 스파링 상대로 폴란드를 골랐는데요. 오늘 경기가 재미있는 점은 세계축구 리그 중 가장 유명한 4대리그 중 3개 리그의 득점왕이 모두 이 웸블리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그렇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인 에드워드 브라운, 스페인 라리가의 득점왕이 하인스. 독일의 분데스리가의 득점왕인 다비도프스키가 모두 출전합니다. 지난주 바이에른 뮌헨과 쾰른의 경기 도중 절뚝거리며 중간에 교체됐던 다비도프스키였거든요. 큰 부상이 아니었는지 오늘 경기에는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바이에른 뮌헨도 폴란드 대표팀도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을 겁니다. 바이에른 뮌헨은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 맨체스터 시티를 만나게 되거든요. 맨시티를 상대로 주전 공격수를 잃는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었거든요. 폴란드도 유로를 앞두고 마지막 A매치 기간이죠. 마지막 전력점검을 해야 하는데 주전 공격수가 없다면 그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죠.”
“오늘 잉글랜드와 폴란드의 평가전. 어떤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할지요.”
“아무래도 잉글랜드는 각 선수들이 얼마나 호흡을 잘 맞추었는지가 중요하죠. 각 클럽팀은 물론이고 라리가와 세리에까지 진출해있는 선수들을 모두 불러모았죠. 하인스 선수를 중심으로 얼마만큼의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폴란드는 피지컬과 높이를 가진 잉글랜드 수비진을 어떻게 뚫어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네. 그럼 잉글랜드와 폴란드의 평가전을 함께 지켜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