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를 4:1로 제압하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발렌시아가 결승전 상대로 정해져 있었고 5월 15일 AT마드리드의 홈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비야레알 원정을 떠났다. 지난 바르셀로나전에서 전후반을 모두 뛰었던 인수가 출전하지 않았지만, 비야레알을 4:1로 이기며 7위로 밀어냈다. 지난 경기에서 난조를 보였던 아랑게스가 시즌 2호 골을 터트리며 원래의 모습을 보인 것도 큰 소득이었다.
일주일 후 드디어 깁스를 풀고 붕대만 감고 출전한 인수가 라스팔마스와의 27라운드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터트렸다. 코프도 오랜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마린도 골을 기록하는 등 8골을 몰아넣으며 라스팔마스를 강등권으로 밀어냈다.
라스팔마스 팬들과 라리가 2팀을 제외한 라리가의 모든 팬이 좋아할 만한 소식.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가 나란히 강등권에 있었다. 아직 11경기나 남았기에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도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라리가가 바쁘게 흘러가고 있을 때 레알 마드리드는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준비해야 했다.
“어제 나온 기사 봤어? 영국 도박사이트에서 우리 8강 진출에 걸린 배당이 1.02던데.”
“16강 대진 짜졌을 때 배당이 1.25 아니었어? 파리 생제르맹이 1.31이었고?”
“1차전이 끝나고 배당이 엄청나게 낮아졌더라고. 반대로 파리는 지금 2.6까지 올라갔던데.”
“16강 경기중에 가장 낮은 배당률 아닌가. 그럼 그렇지. 파리가 어디서 우리 레알 마드리드에게 덤비려고.”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하루 앞둔 마드리드 시내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모여 8강 진출을 미리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1차전에서 크게 진 후 2차전에 뒤집은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레알 마드리드가 보이는 모습은 팬들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파리원정에서 3:1로 승리했기에 원정에서 3골 이상만 주지 않는다면 8강 진출은 무난해 보였다.
“그런데 내일 선발은 누가 나올까? 1차전에는 웨아랑 가야가 나왔잖아. 거기에 누네스가 나와서 쓰리백으로 나왔고.”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가야와 웨아가 나오니까 모라타와 소아레스가 윙포워드처럼 전방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좋던데.”
“그래도 3점을 주지 않으면 이기는 경기인데 좀 더 수비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인스가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올라가면 마린이 중간에 니실랴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설 수 있잖아. 더욱이 모라타와 소아레스의 수비가 약한 것도 아니니 윙어로서 수비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에이 설마 세도로프 감독이 수비적으로 나오겠어? 아약스에서도 공격을 중시하는 감독이었잖아.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할 때도 4:3으로 이기지 않았어?”
“그건 준결승 2차전이었잖아. 1차전에 2:3으로 홈에서 지고 원정에서 4:3으로 역전했지. 그때 바이에른 뮌헨을 잡고 결승에 올라갔잖아. 결승에서는 유벤투스를 5:3으로 잡았고.”
“아 맞다. 그랬지. 하여튼 절대 수비적인 성향의 감독은 아니니까 공격적으로 나올 거 같아.”
“어차피 세도로프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 이번 시즌에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잖아.”
“그렇지. 우리는 세도로프 감독만 믿고 술이나 마시자고.”
마드리드 시내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모이는 펍에는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
“레알 마드리드와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 벌어질 베르나베우입니다. 1차전 레알 마드리드가 파리에서 3:1로 승리를 거두었죠. 파리 생제르맹이 8강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골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파리 생제르맹으로서는 다득점을 노리는 포메이션을 들고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1시간 전 발표된 라인업에서도 그런 감독의 의도가 보이죠. 그런데도 레알 마드리드는 정말 공격적인 선수들로 라인업을 들고 나왔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라인업을 보면 오늘 경기도 지지 않겠다는 라인업이죠.”
“그럼 라인업을 먼저 살펴보시죠. 홈팀인 레알 마드리드의 라인업입니다. 우선 골키퍼에 산체스, 센터백에 마르체나와 가르시아. 양쪽 윙백은 가야와 웨아. 수비형 미드필드에는 니실랴. 중앙미드필드에는 마린, 좌우 윙에는 모라타와 소아레스, 투톱으로 코프와 하인스가 선발 출전하겠습니다.”
“우리는 하인스의 위치를 섀도 스트라이커로 두었지만 프리롤로 뛸 수도 있죠. 그리고 지난 1차전과 다른 점이라면 누네스 대신 니실랴가 선발로 출장합니다. 1차전 실점의 빌미가 됐던 누네스였지만 교체타이밍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죠. 이건 줄 점수는 주고 더 많은 득점을 하겠다는 의도라고 봐야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레알 마드리드를 맞서는 파리 생제르맹의 라인업입니다. 골키퍼에는 다쿠르. 센터백에 코앵과 루브, 하바스. 수비형 미드필드에 토트, 푸레, 콜. 중앙미드필드에 안수 파티와 두베르네. 양쪽 윙 포워드에 니콜라, 졸라가 출전합니다.”
“언뜻 보면 수비적이지만 정말 공격적인 포지션입니다. 쓰리백을 두고 그 앞쪽으로 푸레와 콜을 윙어로 쓰겠다는 생각이죠. 그 후방을 방비하기 위해 토트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제로톱을 쓰는 파리 생제르맹답게 사이드를 뚫어 줄 선수가 필요한데 니콜라와 졸라가 그 역할을 하겠습니다.”
“지난 경기 지역 수비를 펼친 레알 마드리드를 뚫지 못해 진 파리 생제르맹이거든요.”
“그렇기에 양쪽 사이드에서 돌파가 중요합니다. 수비를 끌어줘야 빈 공간이 생기거든요. 빈 공간을 이용해야 하는 파리 생제르맹이죠.”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을 가리는 최종전이니만큼 양 팀에게 정말 중요한 경기입니다. 특히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맞붙었던 두 팀이니만큼 지난 시즌의 복수를 하느냐? 아니면 지난해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무릎을 꿇을 것인지를 가리겠습니다. 그 중요한 경기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
“손은 괜찮고?”
“문제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을 다 걸어주시고.”
인수가 축구를 알아갈 때 최고의 선수가 바로 바르셀로나의 안수 파티였다. 잉글랜드 선수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 최고 주급을 받던 안수 파티에 대한 동경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안수 파티가 말을 걸자 인수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아직 손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실밥도 뽑았다고 들었는데.”
안수 파티도 올해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뽑힌 인수가 자신이 뛰는 게임에서 다치자 신경이 쓰였다. 자신도 부상 때문에 시즌을 통째로 날린 적도 있었던 만큼 부상에 민감했다.
“아. 스터드에 긁힌 상처라 흉터가 크게 남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흉터를 남지 않게 하려면 한동안은 붕대를 감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시즌이 끝난 후 다시 시술해야 한다고.”
“아 그렇군. 하여튼 오늘 우리가 올라갈 테지만 너도 좋은 경기를 해.”
“지난 시즌 2차전에 당해봤잖아요. 이번 시즌 1차전도요. 지난해에는 1차전에 내가 없어서 졌구요.”
“하하. 서로 다치지 않게 좋은 게임하자고.”
파리 생제르맹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 먼저 찬스를 잡은 것은 파리 생제르맹이었다. 두베르네가 오른쪽 사이드를 치고 들어가면서 페널티 지역 오른쪽이 비었다. 그 공간을 침투한 졸라가 중앙으로 공을 밀었다. 안수 파티가 빠르게 슛으로 가져가 봤지만 몸을 날린 가르시아에게 막혔다. 전반 5분 만에 나온 안수 파티의 슈팅 이후 전반 초반 기세는 파리 생제르맹의 것이었다.
“다들 침착해. 사람만 봐. 왜 자꾸 공간을 내주는 거야.”
“다들 자리 자리를 지켜.”
파리 생제르맹의 일방적 공격이 이어지는 동안 인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숨을 골랐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두 눈을 부라렸다.
“니콜라. 파고들어.”
안수 파티는 자신에게 넘어온 공을 잡고 니콜라가 왼쪽 사이드를 파고들자 공을 찔러주었다. 니콜라가 코너 깃대까지 공을 끄는 순간 가야가 몸을 날려 공만 정확히 쳐 냈다. 가야가 끊어낸 공이 바로 니실랴에게 흘렀고 니실랴는 멈추지 않고 바로 전방으로 길게 걷어냈다.
“내 거야.”
“걷어내.”
니실랴가 걷어낸 공을 향한 선수들은 서로의 공을 주장하며 달려들었고 그중에는 숨을 죽이고 있던 인수도 있었다. 숨이 턱 끝에 찰 정도로 뛴 인수는 루브와 거칠게 몸을 부딪치며 공을 따냈다. 인수에게 부딪힌 루브가 넘어졌지만, 심판은 정당한 어깨싸움으로 보고 플레이를 진행시켰다.
“다들 뒤로 물러서.”
다쿠르가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이미 인수가 파리 생제르맹의 진영 중앙까지 치고 들어왔다. 최종 수비에 코앵이 남아 있었지만 양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모라타와 소아레스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인스만 봐. 좌우는 다른 애들한테 맡겨.”
“들어와.”
다쿠르의 외침에 인수의 슛코스만 막는 코앵. 인수는 코앵의 눈동자를 보며 공을 뒤로 돌렸다. 좌우에 오는 모라타와 소아레스에게는 수비가 붙었지만, 인수의 뒤에도 마린이 파고들고 있던 상황. 마린은 인수의 패스를 받자마자 바로 슛으로 이어갔다.
다쿠르의 신경이 모두 인수와 모라타 소아레스에게 쏠려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마린의 슛에 반응이 느렸다.
텅.
마린이 마음먹고 노마크 찬스에서 찬 공. 기세 좋게 날아간 공은 골포스트 상단을 맞고 그대로 관중석으로 넘어갔다.
“괜찮아. 다음에 또 넣으면 되지.”
회심의 기회를 놓친 마린이 머리를 움켜주며 무릎을 꿇자 인수가 어깨를 두드렸다. 아직 전반 1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양 팀 모두 완벽한 찬스를 한 번씩 주고받았다. 서로의 허점을 찔렸지만, 골이 급한 파리 생제르맹은 공을 돌리며 쉬어갈 틈이 없었다.
“밀어붙여. 다들 나가.”
파리 생제르맹을 이끌면 지난 시즌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했던 파울레타 감독은 코치석까지 나와 선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은퇴구단으로 파리 생제르맹을 선택했던 파울레타 감독은 조국인 포르투갈에서 감독을 하다 지난해부터 파리 생제르맹을 이끌고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안수 파티를 영입하는데 직접 바르셀로나까지 가서 안수 파티를 설득해 이적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압박해. 상대가 쉽게 패스를 못 하게 만들어.”
제로톱을 쓰는 파리 생제르맹인 만큼 패스와 드리블돌파가 능한 선수들이 많았다. 공을 뺏기 위해 달려든다면 돌파를 당할 위험성이 높았기에 패스의 각만 열어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들 달라붙어.”
“패스할 길만 내주지 마.”
공격적인 스쿼드로 나왔지만 수비할 때도 치열하게 맞붙은 양 팀. 전후반 90분 내내 상대의 골문을 노렸지만 양 팀 모두 열지 못하고 0:0으로 끝났다.
승부를 내지 못한 2차전이었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1차전에 3:1로 승리했기에 8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지난해 파리 생제르맹에 막혀 8강 진출에 실패했던 것을 되돌려주는 것에 성공한 레알 마드리드. 이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에겐 리그 경기와 A매치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