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세도로프 감독은 코파 델 레이 16강 1차전 바르셀로나에게 1:0으로 지고 마드리드로 돌아왔지만,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이어진 리그 23라운드 알라베스전에서 6골을 몰아넣으며 바르셀로나전에서의 패배를 씻어버렸다.
“휴. 드디어 평일에 경기가 없는 날이 왔네. 수요일까지 휴식을 줄 생각인데 휴식 때 뭐할 거야?”
“가볍게 운동하고 브링이 마드리드로 오기로 해서 체력측정을 해볼 생각입니다.”
알바베스전이 끝나고 회복훈련을 마친 인수는 감독실에서 세도로프 감독과 만났다. 훈련 후 세도로프 감독의 부름에 선수들의 면담은 이제 레알 마드리드에서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세도로프 감독이 준 스포츠음료를 마셨다.
“브링이?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체력측정을 어디서 할 생각이야?”
“앵커리지가 장소를 구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앵커리지가? 네 에이전트가 앵커리지였지. 나도 브링을 좀 만나고 싶은데 시우다드에서 하는 건 어때?”
“시우다드요? 레알 훈련장을 개인적으로 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에요?”
“네가 쓴다는데 보드진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보드진 설득은 내가 할 테니 앵커리지한테 이야기해봐.”
세계 최고급의 훈련시설을 갖춘 훈련장중 하나가 시우다드에 있는 레알 마드리드훈련장이었다. 최신시설은 물론이고 정확한 측정과 자료를 뽑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시우다드에 있는 시설을 빌려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세도로프 감독이 구단에 요청한다면 그리고 그 대상이 인수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감사하죠.”
“측정은 언제야?”
“브링이 화요일에 도착하거든요. 수요일까지 휴가라 수요일에 측정하자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휴식기 훈련을 진행하는 브링이었다. 하와이에서 메이저리거를 훈련시키다 스프링캠프 소집 전 기술훈련을 들어갔기에 시간이 났다. 앵커리지의 요청에 일주일 시간을 낸 브링팀이 스페인과 영국으로 이동하며 인수와 에디를 봐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 수요일에 측정하고 시간이 나는 건가?”
세도로프 감독도 브링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모든 스포츠 선수 중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만 상대하던 브링이었기에 1년 계획이 빽빽이 차 있었다. 그런 브링을 코치로 섭외하기 위해 많은 팀과 감독이 나섰지만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브링이었다.
“수요일에 측정하고 바로 영국으로 넘어갈 거에요. 앵커리지가 전용기까지 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수요일에 측정하면서 잠시 이야기 나눠도 될까?”
“감독님이 참관하셔도 되는지 물어볼게요.”
인수는 세도로프 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10여 분 후에 감독실을 빠져나왔다.
***
“자자. 스피드 더 올려봐.”
인수가 상체에 전극을 부착하고 트레드밀을 달렸다. 처음 천천히 걷다 속도를 높여가며 브링팀이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들과 함께 인수의 체력을 측정했다. 원래 이틀간에 걸쳐 피검사와 의료적 검사를 하는 것이 입단 전 메디컬 검사였지만 인수의 경우는 체력만 측정하기로 했기에 몇 시간 만에 끝날 예정이었다.
“자네가 하인스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며.”
“아 네. 감독님. 잉글랜드대표팀에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며 앵커리지가 직접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이전에 앵커리지의 선수들을 맡은 적도 있어서.”
“그런데 1년 내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생활이 힘들지 않아?”
“뭐 이제는 돌아다니지 않으면 더 힘들더라고요. 팀원들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니 더 좋아하고요.”
종목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디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모든 영입을 거절해오고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다음은 영국으로 간다고? 브라운을 봐주러 가는 건가?”
“네. 앵커리지가 특별히 부탁하더라고요. 3월부터는 대표팀경기까지 뛰어야 하는데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을지 확인해달라고요.”
“여기서 측정한 자료가 처음 이야기한 대로 우리와 앵커리지, 잉글랜드대표팀 이외에는 흘러가지 않는 거지?”
“물론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인수가 재계약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해했다. 1억 2천만 유로.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 인수의 활약을 보면 그 금액을 내고도 인수를 데려가겠다는 팀이 적어도 열 팀은 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인수가 외부에서 체력테스트를 진행할 경우 다른 팀에게 그 자료가 넘어갈 확률이 있었다. 테스트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면 모를까 시즌 중반이 넘어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영입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수가 직접 트레블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면 이적할 수 있다는 루머도 있었기에 더욱 세심하게 관리하고 싶어 했다.
“앵커리지가 직접 래쉬포드 감독에게만 보여준다고 했으니 그건 믿으셔도 될겁니다.”
브링은 세도로프 감독을 비롯한 레알 마드리드의 보드진을 직접 안심시켰다. 레알 마드리드의 생각을 알았기에 외부에서 진행하고 싶었지만, 세계 최고의 시설을 내준다는 것을 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네가 볼 때 하인스의 컨디션이 어때 보여?”
“시즌이 시작할 때와 비교해서요? 아니면 지금 몸 상태만 말씀드리면 될까요?”
“둘 다 말해주면 좋지. 시즌 전 자료는 자네와 앵커리지만 갖고 있을 테니까.”
인수와 에디가 체력측정을 하기 전 로카가 스페인으로 먼저 넘어왔기에 로카에게도 측정한 자료가 없었다. 마린도 참여했지만, 자신의 기록만 가지고 있을 뿐 인수에 대한 자료는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자체적으로 실시하긴 했지만 마린의 결과를 보면 브링이 측정한 자료는 레알 마드리드가 측정한 자료와는 또 달랐다.
“시즌 전 측정한 자료와 오늘 측정한 자료를 모두 넘겨드리죠. 그 자료를 다른 곳에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요.”
“당연하지.”
“물론입니다. 브링씨. 저희가 이 자료는 특별히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인수의 체력측정이 끝나자 브링팀과 인수가 한곳에 모였다.
“내가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먹으라고 했지. 특별 야채주스 다시 메뉴에 넣어줘? 응?”
“아니. 그거 어떻게 주스예요. 독이지. 야채 먹을게요.”
“그 말은 내가 수십 번을 들었어. 모든 선수한테 말해도 다 먹겠다고만 하지 실제로는 안 먹더라고. 내가 특별히 비율까지 맞춰서 메뉴 넘겨줄 테니 시즌 끝날 때까지 매일 한 잔씩 마셔. 내가 매주 전화해서 확인할 테니까.”
제일 먼저 인수에게 포문을 연 것은 영양사인 케이트였다. 체지방률은 10퍼센트로 이상적이었지만 문제는 비타민과 섬유질 부족으로 신체균형이 무너질 조짐을 보였다. 비시즌 훈련 중에도 그렇게 채소의 중요성을 말했는데도 시즌 중에 고기 위주의 단백질 식단을 유지했던 탓이었다.
“이제 잘 챙겨 먹을게요. 그 주스만은 제발. 제발. 케이트 내가 진짜 잘 챙겨 먹는다니까요.”
인수는 냉기가 풀풀 풍기는 케이트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한두 번 정도는, 아니 좀 더 생각해서 휴식기 훈련 동안 하루에 한 잔은 꾹 참고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매일 먹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내가 준 주스 마시면 시즌 끝날 때까지 고기만 먹어도 된다니까. 좋잖아. 넌 빵하고 고기만 먹어. 그리고 내가 준 주스만 아침훈련 끝나고 마시면 되는 거야. 좋지?”
“아 그게 싫다고요.”
인수가 아무리 애원했지만 케이트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주스 제조법을 인수에게 보냈다.
“그래도 시즌 중에 체력관리 잘했던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번 시즌 뛴 시간을 받았는데 확실히 성장기는 멈췄어. 이제 경기 후 회복훈련에 신경 쓰면 될 것 같아.”
시즌 전 브링이 인수에게 모든 경기에 출장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것도 성장기가 끝나고 완성되었기에 한 말이었다. 오늘 측정한 결과를 보면 브링과 코치들이 시합 후 반드시 하라고 한 회복훈련을 모두 다 했기에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소?”
인수와 브링팀만 모여있던 회의실에 세도로프 감독과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진이 들어왔다. 체력측정 중에 말했던 시즌 전 결과와 오늘의 검사 결과를 물었다.
“비시즌 몸상태의 89%까지 나오더군요. 보통 80%만 되어도 좋은 편이라고 하는데 90% 가까이 나온 결과는 처음 보네요.”
프리시즌부터 생각한다면 7월 말부터 다음 해 5월 초까지 이어지는 긴 일정이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경기가 아닌 두 경기씩 뛰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속적으로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비시즌 몸상태에서 89%라고? 회복훈련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기에.”
“회복훈련이야 거의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인수의 체력회복이 좋은 거죠. 그리고 중간중간 감독님께서 적절하게 교체를 해준 덕분이기도 하겠고. 그리고 아직 장거리 비행하는 일이 없었죠. 이제 챔피언스리그와 대표팀을 병행하다 보면 급작스럽게 체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자신이 어떻게 준비하냐에 달렸죠.”
브링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지난 시즌 성장기가 멈추지 않았을 때도 대표팀 때문에 장거리 비행이 많았던 인수였다. 그렇기에 걱정이 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좋군요. 그럼 저희도 이번 결과를 가지고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브링은 인수의 검사를 마치고 바로 앵커리지의 전용기를 타고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에서 진행된 에디의 체력측정. 인수와 같은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83%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를 참여하지 않는 소튼이기에 경기 수는 적었지만 크리스마스 휴식도 없이 박싱데이까지 치러야 하는 프리미어리그라 생각하면 에디의 결과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인수와 에디의 결과를 받아든 래쉬포드 감독을 빙긋 웃게 만든 결과였다.
***
“다들 수고했어. 이제 파리로 가야 해. 작년의 복수는 해줘야지.”
24라운드 레반테전을 가볍게 승리로 장식한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위해 파리로 떠나야 했다.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16강에서 떨어뜨린 상대 파리 생제르맹과의 리벤지였다.
“당연하지. 다시는 우리에게 이길 수 없도록 콧대를 부숴놔야지.”
“늙은이들 집합소에 우리가 질 수는 없잖아.”
선수들의 사기는 높았지만 파리 생제르맹이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리그1에서 단 2패만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질주 중이었고 조별예선에서 2위로 통과하긴 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낀 결과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가 시작됐다고 하지만 겨울 이적시장에서 거금을 풀어 스쿼드를 늘렸다. 특히 마르세유의 샛별이라 불리던 두베르네를 영입하며 공격진을 보강한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안수 파티와 파트너를 이루며 이적 후 두 경기에서 4골이나 뽑아냈다. 안수 파티 역시 두베르네 덕에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며 2경기에서 3골과 3개의 어시시트까지 기록하며 그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결심한 안수 파티였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고 있었다. 특히 파리 생제르맹이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빅 이어를 가져오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터뷰를 기회가 날 때마다 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