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오늘도 무난하게 이기는 게임인가.”
세도로프 감독은 후반 40분을 넘어가는 시점에 5:0의 스코어를 보고 벤치를 보았다. 오늘도 자기 몫을 다하고 휴식을 준 인수와 모라타, 소아레스가 휴식을 취하며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발렌시아 전에서 후반 수비집중력이 떨어지며 동점골을 내줬지만 이어진 코파 델 레이 8강전 1, 2차전과 리그 21라운드 소시에다드전 그리고 지금 펼쳐지는 22라운드 베티스전까지 상대를 완벽히 제압하며 레알 마드리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베티스전이 끝나면 다시 바르셀로나로 이동해야 하는 만큼 선수들의 휴식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이 끝나면 2차전은 2월 말까지 3주의 여유가 있긴 했다. 그러나 중간에 리그 경기를 3게임이나 더 치러야 했고 파리까지 이동해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까지 치러야 하는 만큼 선수들의 체력관리도 신경을 써야 했다.
“감독님, 오늘 승리로 이제 2위인 발렌시아와 승점 14점 차까지 벌어졌습니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은데요. 오늘 경기 소감을 좀 말씀해주십시오.”
“2위와 승점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인 일이네요. 아직도 많은 경기가 남은 만큼 시즌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죠.”
“코파 델 레이 4강에서 만나는 바르셀로나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만난 17라운드 이후 어제까지 무패를 달리고 있는데요. 그것도 지난 발렌시아전을 제외하면 모두 승리를 하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와 코파 델 레이 4강 어떻게 맞설 생각이십니까?”
“지난 17라운드에서도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는 바르셀로나였죠.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어떤 팀인지 보여줄 생각입니다.”
“엊그제 마감된 겨울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않았습니다. 1군과 2군에서 모두 5명의 선수가 이적했는데 그 공백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세도로프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앞에 놓인 물을 마시며 숨을 골랐다. 겨울 이적시장 레알 마드리드는 처음 계획했던 선수들을 모두 이적시키는 데 성공했다. 각자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들이었고 이적시장 전에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뽐냈기에 레알 마드리드에 들어온 이적금도 상당했다. 그 선수들의 이적 후 새로이 후베닐과 카스티야에서 올라온 자원들도 서서히 적응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물컵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입 가까이 가져왔다.
“물론 공백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훌륭한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에 자부심을 가지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 능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간 선수들도 개개인이 훌륭한 선수이긴 합니다. 그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세도로프 감독은 거기까지 말한 이후 인터뷰장에서 일어섰다. 당장 3일 후에 있을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을 준비해야 했다. 전력이 약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바르셀로나. 엘 클라시코였다. 더비전의 특성상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상하지 않았다.
***
“오늘도 잘 부탁해. 친구.”
“부탁하긴 뭘 부탁해. 오늘은 이길 거야.”
“그러니까 네가 이기려면 나랑 같은 편이어야 한다니까. 그동안 수없이 겪어봤잖아.”
“됐어. 오늘은 반드시 이길 테니까 각오해.”
다음 주 소집될 잉글랜드대표팀에 나란히 선발된 인수와 존이 캄 노우의 중앙에서 서서 유치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로 2040을 6개월 앞에 두고 이제 확실한 주전을 뽑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삼사자 유니폼을 입고 유로에 출전할 수 있었다.
“자. 이제 경기 시작해야지. 다들 준비해.”
엘 클라시코의 주심을 맡은 페르난도는 두 명의 선수를 떼어놓고 공을 놓았다. 16년 차 베테랑 주심이었지만 엘 클라시코는 페르난도도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긴장된 마음을 달래주는 두 선수의 장난에 페르난도의 긴장이 풀렸다.
바르셀로나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반.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간결하지만 빠르게 진행됐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의 허점을 노리려는 생각이었는지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오다 아랑게스의 태클에 터치아웃이 되어 공격권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넘어왔다.
“천천히 해. 급하게 하지 마.”
오늘도 코치석에 선 세도로프 감독은 양손까지 동원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경기 전 미팅을 가졌을 때 바르셀로나의 호흡에 말려 들어가지 말라고는 했지만 짧은 패스를 통한 빠른 공격 속도는 놀라웠다. 아랑게스가 잘 끊어주었기에 망정이지 하루가 다르게 안정되어가는 바르셀로나였다.
“지난 발렌시아 전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딱히 영입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실력이 늘 수 있군요.”
“아무래도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잖아. 어린 만큼 성장이 빠른 거지. 상대 감독이 잘하는 것도 있고. 바르셀로나가 괜찮은 감독을 골랐어.”
“올해까지가 계약인데 재계약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흠. 아무래도 젊은 감독을 믿지 못하는가 보네. 이렇게까지 리빌딩을 했음에도 재계약 이야기가 나오지 않다니.”
“바르셀로나에서 프칭키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경기장을 보며 대화를 나눴던 세도로프 감독은 프칭키 감독이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아약스감독시절 에레디비시를 양분하던 아이트호번의 감독이 프칭키였다. 나이도 비슷했고 팀도 라이벌인 팀이었기에 비교가 많이 됐던 감독이었다. 자신이 아약스 감독직에서 내려오고 프칭키도 에레디비시를 떠나 분데스리가의 도르트문트로 떠났다. 도르트문트에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하고 3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는 등 세계적인 명장 중의 하나였다.
“그 친구를 라리가에서 또 만날 수 있겠군.”
평소 빅클럽 감독을 맡아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프칭키 감독이었다. 오래 감독을 맡았던 아이트호번이나 도르트문트도 좋은 팀인 것은 맞지만 빅클럽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프칭키 감독에게 바르셀로나가 오퍼를 넣는다면 거의 수락할 것이라 생각하는 세도로프였다.
“그럼 저 친구는 어떻게 되려나.”
구단의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칭박스에서 열정적으로 지휘하던 힝키 감독을 보았다.
세도로프 감독이 수석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도 필드의 선수들은 땀이 나게 뛰었다.
“하인스.”
중앙에서 공을 받은 니실랴는 발바닥으로 공을 긁어 태클을 피한 후 인수에게 공을 밀었다.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제집 드나들듯 휘젓는 인수의 플레이에 힝키 감독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중원을 어떻게든 틀어막아야 하는데.”
“다른 선수들은 다 틀어막는데 이상하게 하인스에게만은 계속 뚫리네요.”
“하인스에게 뚫리는 게 우리 팀만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아. 위험해. 파고드는 선수를 막아.”
힝키는 중앙으로 파고는 마린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인수가 중앙을 휘젓는 바람에 포백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그 전까지 잘 막아주던 포백라인에 균열이 가자 틈이 생겼고 그 틈을 마린이 파고들었다. 그 순간 인수의 발에서 떠난 공이 둥실 떴고 마린이 미끄러지며 발에 공을 맞혔다.
마린이 파고드는 것을 본 골키퍼 같이 나오며 마린의 발을 맞은 공을 튕겨내는 데 성공했고 그 공이 높이 떴다.
“내 거야.”
“나와.”
“같이 떠줘.”
골키퍼가 넘어진 상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높이 뜬 공을 향해 점프했다.
삐익.
주심은 오늘 처음으로 휘슬을 불었다. 전반 30분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몸싸움은 인정하며 최대한 흐름을 이어나가는 중이었지만 이번 몸싸움은 코프가 상대의 어깨를 누른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재빨리 볼보이에게 공을 받은 골키퍼는 바로 찍고 공을 전방으로 보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전방에 집중되어 있을 때 빈틈을 노린 패스. 중앙에서 공을 받은 주안 로베르토가 재빨리 왼쪽으로 공을 밀었다. 아랑게스가 오버래핑을 했기에 왼쪽 사이드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네드베드의 전력질주. 로베르토가 찔러준 공을 잡은 네드베드는 자세를 가다듬고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어느샌가 중앙에 침투해 있던 존이 네드베드의 크로스를 정확히 이마로 찍어 눌렀다. 산체스 앞에서 크게 튄 공은 자세를 낮췄던 산체스 키를 넘어 골대로 사라졌다.
존의 선취점에 바르셀로나 팬들의 목소리가 캄 노우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엘 클라시코의 연패. 팀이 리빙딩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엘 클라시코에서의 연패는 팬들을 힘들게 만들었지만 지금 선취점을 뽑아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자자. 앞으로 나가. 물러서지 마.”
“너희도 나가. 뭐해. 싸워. 달라붙어. 숨도 못 쉬게 만들란 말이야.”
경기가 치열해질수록 양 팀의 벤치의 목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벤치의 분위기만큼 불타오르는 필드였지만 더 이상의 골이 터지지 않은 채 전반이 끝났다.
***
“앞으로 나가. 앞에서 빈 공간을 찾아.”
인수는 발바닥으로 공을 컨트롤하며 좌우를 살폈다. 하프타임 동안 잘 쉬다 왔는지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움직임이 가벼워 보였다. 그래도 빈틈은 있었다. 공 하단을 살짝 찍어 코프에게 공을 보낸 인수는 바로 전방으로 달려들었다. 코프 역시 인수가 보낸 공을 잡지 않고 바로 리턴해 인수에게 되돌려 보내고 180도를 돌아 페널티 지역 빈 곳을 찾았다.
코프가 리턴한 공을 받은 인수는 코프가 파고드는 틈을 노려 가볍게 공을 밀었다. 코프의 발밑으로 정확히 떨어진 공. 코프가 힘차게 발을 휘둘렀고 공은 그대로 바르셀로나 골망을 갈랐다.
“나이스.”
삐익.
코프가 손으로 힘차게 하늘을 찌를 때 부심의 기가 올라가 있었다.
“왜. 왜 오프사이드예요. 분명히 내가 한발 늦게 들어갔는데.”
코프는 바로 주심에게 뛰어가 항의했다. 코프의 항의에 두 손을 들어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표시를 한 페르난도는 바로 리시버에 집중하며 감독관들에게 VAR 체크를 부탁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감독관들의 결론을 들었는지 주심은 바로 오프사이드를 선언하고 바르셀로나의 공격권을 명했다.
“다들 뭐해. 아직 시간 많잖아.”
“다들 정신 안 차려? 또 넣으면 되잖아.”
동점이 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오프사이드로 노골이 선언되자 허탈해진 마음을 잡아주려는 인수의 외침과 마침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라타도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서로 마주 보며 빙긋 웃어 보인 두 선수는 다시 골을 노리기 위해 뛰었다.
후반 45분까지 최선을 다해 뛴 레알 마드리드. 후반 30분이 넘어가자 텐백으로 전환한 바르셀로나의 수비를 뚫으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뚫는 것에 실패했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당한 패배이자. 1:0으로 한 골도 득점하지 못한 패배. 그리고 엘 클라시코의 패배까지 세 가지 패배의 아픔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