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코파 델 레이 16강 1차전은 하루 2팀씩 총 4일에 걸쳐 펼쳐진다. 그중 레알 마드리드는 1월 9일 두 번째 날에 사라고사와 베르나베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지난 4라운드에서 사라고사와 무승부를 거둔 곳도 홈인 베르나베우였기에 코파 델 레이를 맞이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랐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많은 전문가가 예상한 강등 순위에 사라고사가 거의 포함될 정도로 약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도 1, 2, 3라운드에서 모두 패하며 모두의 예상이 맞는 듯했다. 그러나 4라운드 레알 마드리드전을 무승부로 끝내며 선수들의 자신감이 올라온 듯 경기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5라운드부터 연승을 기록하더니 바르셀로나 전까지 5연승을 달리며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에게 연패를 당하며 주춤하는 듯싶더니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며 지금은 10위까지 치고 올라온 상태였다.
“다들 사라고사의 경기력 올라온 것을 봤지. 그렇다고 우리가 질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힘든 일정 속에서 부상들 조심하고.”
1월 3일 바르셀로나전을 시작으로 1월 6일 베티스전, 1월 9일 코파 델 레이 16강 1차전 사라고사전, 1월 13일 에스파뇰 등 3월 두 번째 주까지 매주 2경기씩 치러야 하는 일정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였다. 특히 2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챔피언스리그는 조별리그에서 제출한 스쿼드에서 3명의 스쿼드밖에 교체하지 못했으니 이적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보충해야 하는 복잡함도 있었다. 그런 힘든 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감독이 할 일이었다.
“특히. 카드 조심해. 카드 누적돼서 강제로 휴가 가지 말고.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의 가볍게 농담을 하긴 했지만, 카드 누적이나 레드카드로 퇴장을 당하는 선수가 나타나면 선수단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1월에서 3월 사이, 4월에는 부상선수나 카드 관리를 더욱 신경 써야 했다. 지난 시즌 모라타의 부상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 우승이 힘들 뻔했던 상황이 왔던 것도 이 시기였다.
“자. 오늘도 제대로 날뛰어봐.”
“가자.”
세도로프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필드에 올라섰다.
***
“요즘 잘나가더라. 우리한테 비기고 나더니 기가 좀 살았나 봐.”
“그럼 당연하지. 이제 코파 델 레이 8강에 올라가면 팀 최고 성적을 거두는데.”
“8강 가려면 우릴 이겨야 하는데?”
“당연히 이길 건데.”
모라타는 주심이 시간을 채크하며 감독관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사라고사의 에이스 프리츠와 대화를 나누었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 시절 같은 동료였지만 자신은 1군으로 올라섰고 프리츠는 카스티야에서 활약하다 사라고사로 이적하며 에이스로 거듭났다. 지금은 서로 다른 팀에 있긴 했지만 유스 시절의 친분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두 명이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어떻게 하면 잘 질 건지 고민이나 해.”
“너. 너.”
모라타는 주심이 감독관과 대화를 끝내고 센터서클로 다가서자 프리츠에게 빠르게 말하고 멀어졌다.
사라고사의 공격으로 시작된 전반전. 지난 4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후반까지 3:1로 몰아붙였던 것이 우연이 아닌 듯 몰아붙였다.
“니실랴. 뒤로 물러서지 마. 왜 계속 물러나.”
사라고사의 초반 공세가 무섭자 니실랴의 위치가 점점 후방으로 밀려났다. 그러면서 생긴 공간을 사라고사의 미드필더진이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중앙과 좌우를 가리지 않고 찔러대는 사라고사의 공세에 산체스의 입과 손이 바빠졌다.
“준비를 많이 해왔나 보네요. 가야와 체르니의 경험 부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데요.”
“그래도 이런 경기에서 경험을 해봐야지. 그래야 2월에도 내보낼 수 있지. 시간이 지나면 침착해질 거야. 코치들도 다그치지 말라고 해.”
“알겠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이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떼고 벤치에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던 코치들은 수석코치의 손짓에 자리에 앉았다.
“좀 지켜보지. 가르시아에게 수비라인 조율을 맡겨봐야겠네. 산체스의 말이 저기까지 들리긴 힘들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니실랴가 너무 우왕좌왕하는데요.”
사라고사가 계속해서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휘저으니 니실랴가 사람과 공을 동시에 보느라 고생했다. 더욱이 사라고사의 선수들이 번갈아 가며 니실랴의 신경을 건드리는 플레이를 했다.
“차라리 반칙으로 끊어 버리는 방법이 나은데.”
세도로프 감독이 중얼거릴 때 사라고사가 중앙으로 공을 찔렀다. 페널티 지역 바로 외각에서 공을 받은 선수가 앞에 가르시아를 제치기 위해 공을 접었을 때 니실랴의 태클이 들어왔다.
“안돼.”
니실랴의 태클을 본 가르시아가 비명을 질렀지만 니실랴의 몸이 뜬 상태였다. 니실랴가 미끄러지며 들어온 태클은 사라고사의 선수를 붕 띄웠고 재빨리 주심이 다가오며 휘슬을 불었다.
상황을 본 주심은 바로 의료진을 부르고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있던 니실랴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니실랴가 일어서는 것을 본 주심은 뒷주머니에 손이 가고 바로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피에르. 레드카드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완전히 뒤에서 들어왔어. 백태클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도.”
“모라타. 그만해. 더 하면 너한테도 카드 줄 수도 있어.”
라리가에서 오랜 경험을 했던 피에르였기에 모라타와도 친분이 있었다. 물론 선수와 심판의 관계였기에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지만, 경기장에서 나눈 인사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사라고사의 선수가 니실랴의 태클이 높지는 않았기에 의료진의 처치만 받고 일어서자 주심은 페널티 포인트를 찍었다.
“아니 페널티 지역 밖이었지 않습니까?”
“분명히 안이었어. VAR 판독까지 마친 결과니까 더 이상 항의는 받지 않는다.”
이번 시즌 시작 전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스페인왕립협회는 코파 델 레이에서 주심이 비디오판독을 하지 않고 감독관이 판단하여 바로 주심에게 전달하도록 규정을 고쳤다. 대신 감독관은 세 명으로 두어 두 명 이상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였다.
삑.
주심의 휘슬로 사라고사의 페널티킥. 프리츠가 침착하게 코너를 노려 찼다. 산체스가 방향을 읽고 몸을 날렸지만 공이 더 빨라 그대로 골대 안으로 사라졌다.
***
“감독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비코치에게 라커룸으로 보내 니실랴의 멘탈을 잡아달라 지시하고 온 수석코치는 세레도프 감독을 찾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과 수비진을 이어주는 고리이자 수비의 최전방에서 1차로 끊는 역할을 하던 니실랴였다. 그런 니실랴가 퇴장으로 빠졌으니 교체를 통해 누네스라도 투입해야 했다.
“마린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하고 그냥 밀어붙여. 이대로 간다.”
“네?”
“마린이 수비를 못 하는 것은 아니잖아. 수비라인을 끌어올려서 마린을 도와주게 하고 그냥 공격에 더 치중하게 해.”
“수비에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가야와 체르니가 경험이 부족한데요. 가르시아와 코이타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번 경기를 진다고 해도 다음 경기가 있잖아. 오늘 경기에서 경험을 쌓게 해 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
세도로프 감독은 아직까지 무패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론에서 주는 부담감도 부담감이었지만 선수단도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차라리 부담이 덜한 경기에서 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경기나 보자고.”
벤치에서 아무 움직임이 없이 마린과 인수의 위치만 바꿔주자 인수는 바로 세도로프 감독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계속 밀어붙이길 원하나 봐요. 최대한 흔들어 보죠. 수비가 강한 팀은 아니니까요.”
사라고사가 공격이 강한 팀은 맞지만 그만큼 실점도 많은 팀이었다. 지난 4라운드에서도 인수와 코프가 15분 만에 2골을 뽑아냈을 정도로 수준급 드리블러에게 많은 약점을 보이는 수비였다.
“알았어. 마린은?”
“뒤에서 받칠게요. 뚫다 힘들면 뒤로 돌려요.”
“그럼 우리는 무조건 빈공간만 찾는다. 하인스 네가 알아서 만들어줘.”
인수에게 갖는 믿음이 있기에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은 재빨리 자신의 자리로 흩어졌다. 터치라인 아웃이 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스로잉으로 시작된 공격은 마린에게 공이 넘어가며 속도가 붙었다. 공을 잡자마자 인수에게 공을 넘긴 마린은 바로 빈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인수는 마린에게 받은 공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사라고사의 진영을 뚫기 시작했다. 빠른 스피드로 뛰어 들어온 인수는 자신을 막아서는 선수를 상체 움직임만으로 뚫어낸 후 바로 우측으로 길게 공을 넘겼다. 인수가 좌측 페널티 지역으로 뚫고 있었기에 수비들이 좌측으로 쏠린 틈을 놓치지 않고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나이스.”
인수가 넘겨준 공을 멈추지 않고 바로 중앙으로 치고 달리는 것을 선택한 소아레스는 수비가 붙기 직전 바로 코프에게 공을 넘겼다. 슛찬스가 있었음에도 더 확실한 선수에게 넘겨주는 공.
코프 역시 소아레스가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바로 공을 발을 맞췄고 그 공은 사라고사의 골망을 갈랐다.
“내준 만큼 되찾아오면 돼. 다 들어와.”
골대에 공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코프는 소아레스를 껴안으며 크게 소리쳤다.
“혼자 골 넣으시게요?”
“아니 네가 도와줄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도와준다고 했어요?”
자신만만한 코프의 외침을 들은 인수가 살짝 놀리자 코프가 화들짝 놀라는 척을 하며 인수의 목을 졸랐다.
“아. 아 아파요.”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아프다고요.”
인수는 코프가 말하는 틈을 노려 재빨리 빠져나왔다.
“빨리 돌아가. 세리머니가 너무 길어.”
니실랴의 퇴장으로 한 명 부족한 상황.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던 선수들은 주심의 재촉에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동점이 된 후에도 양팀은 서로의 골문을 노리고 계속해서 노렸다. 서로의 골문을 노리고 난타전을 펼친 두 팀은 4:4로 경기를 끝마쳤고 사라고사는 레알 마드리드를 처음으로 이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
- 11:10의 유리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다 비긴 사라고사.
- 코프 2골, 하인스 1골, 마린 1골. 니실랴의 퇴장에도 사라고사와 비긴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
- 니실랴 사라고사와의 16강 2차전에 출장금지. 협회의 결과는 아직.
- 세도로프 감독. 이번 경기에서 졌어도 할 말이 없었다. 다음 경기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사라고사 리그 4라운드에 이어 16강 1차전에서도 비겨.
언론들은 사라고사의 무승부를 탑으로 보도했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이벤트전인 수페르코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팀이 사라고사였다. 그런 사라고사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두 번째 무승부를 거두자 사라고사의 팀 이미지가 높아졌다. 그런 이미지를 통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저평가된 수비 선수들을 수집하며 수비력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