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야 너희들 정신 안 차려? 똑바로 안 해? 엘 클라시코가 장난이야?”
평소 레알 마드리드의 가장 충성적인 선수는 사라비아라고 말하긴 했지만, 마드리드 출신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에서 커왔고 레알 마드리드에 진심인 모라타가 버럭 했다. 레알 마드리드에 몇 개의 더비가 있었지만 엘 클라시코는 그 의미가 달랐다.
“이대로만 밀어. 지난 시즌 복수는 해줘야지.”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모라타가 소리를 지르자 바르셀로나의 정신적 지주 주안 로베르토가 맞받아쳤다.
“천천히 하나 만들게. 나한테 줘.”
점점 경기장의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인수는 손을 들어 공을 받았다. 조금 길게 온 공을 발등으로 띄워 키핑한 인수는 자신을 막아서는 두 명의 선수를 피해 아웃사이드로 공을 밀었다. 전방에 침투해있던 마린이 언제 뒤로 돌았는지 빈공간에서 공을 받았다. 바로 두 명의 선수 사이를 뚫고 전방으로 파고들었다. 인수가 전방으로 파고들자 바르셀로나 수비들이 인수를 막기 위해 간격을 좁혔다.
“모라타.”
마린은 인수가 수비들을 끌어주는 틈을 타 왼쪽 사이드를 뚫었다. 머리를 휘날리며 코너까지 공을 몰고 간 모라타는 수비가 붙기 전에 바로 중앙으로 공을 띄웠다.
빠르게 중앙으로 뜬 공을 향해 먼저 뛴 것은 바르셀로나의 수비였지만 모두의 키를 넘어 반대쪽으로 넘어갔고 그 공은 소아레스의 발에 닿았다. 타이밍을 놓친 소아레스는 바로 슛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공을 뒤로 돌렸다. 어느새 바르셀로나 전방까지 오버래핑한 아랑게스가 공을 바로 잡아 마린에게 연결했고 마린이 바로 슛으로 이어갔다.
“막아.”
마린의 강력한 슛을 몸으로 막아선 수비의 등을 맞고 공중에 떴다.
“잡아. 처리해.”
공중에 뜬 공을 처리하기 위해 선수들이 모인 사이로 발하나가 쑥 올라왔다. 그 발의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폭격기 코프였다. 어떤 자세였던지 어떤 상황에서도 골대 안으로 공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코프의 발을 떠난 공은 바르셀로나 골키퍼의 손을 피해 골망을 흔들었다.
“좋아.”
“역시. 코프. 믿고 있었어.”
코프의 골로 1:0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나가자 캄 노우의 팬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캄 노우든 베르나베우든 홈 팀이 지고 있을 때 상대팀에 야유를 보내는 것은 당연했기에 선수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 골 앞서고 있다고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몰아붙여.”
세도로프 감독도 코프의 골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펴며 선수들이 진영으로 넘어오자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크게 소리쳤다.
“감독님 말씀 들었지. 다들 정신 차리고 자기가 맡은 선수들 끝까지 봐.”
존의 터치로 다시 시작된 경기. 바르셀로나는 짧은 패스를 연속해서 주고받으며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티키타카. 티키타카의 중심이었던 안수 파티가 이적하긴 했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다시 그 전술을 선보였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티키타카에 대응해 맨투맨으로 바르셀로나 선수를 압박했다.
“뚫어버려. 아니면 길게 넘기든지.”
존이 전방에서 손을 들어봤지만, 존에게도 가르시아가 붙어 있었다. 힝키 감독이 2년 간의 리빌딩을 거쳐 선수들을 조련해왔지만 아직 완벽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했다.
공을 줄 곳을 찾지 못하고 전방으로 길게 보낸 공을 존이 머리에 맞추지 못하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권으로 넘어갔다.
“다시 하나 만들자. 천천히 밀고 올라가.”
산체스의 스로잉으로 던진 공을 잡은 아랑게스가 니실랴에게 패스를 하자 니실랴가 공을 발밑에 두고 양손으로 휘저으며 앞으로 올라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바르셀로나가 리빌딩을 통해 전체적으로 정비가 됐다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이미 몇 년씩 라리가에서 증명을 해낸 선수들이었다.
니실랴는 바로 중앙에 있는 마린에게 공을 넘겨주고 전방으로 뛰었다. 바르셀로나가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것에 강점이 있다면 레알 마드리드에는 마린과 인수라는 두 명의 특급 드리블러가 존재했다. 두 명의 드리블러가 드리플 돌파를 실패했을 때 리바운드된 공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선수가 니실랴였다.
“하인스.”
마린은 몇 번의 드리블돌파를 시도하다 인수가 빈자리를 찾아 뛰어가자 바로 인수에게 공을 넘겼다. 마린에게 공을 넘겨받은 인수도 몇 번의 드리블을 시도하다 빈틈을 발견하지 못하고 공을 뒤로 돌려 니실랴와 가르시아까지 넘어간 공은 다시 산체스까지 돌아갔다.
“천천히 해. 어차피 이기고 있는 건 우리야.”
산체스가 발로 공을 밟고 있다 존이 다가오자 후베이루에게 공을 넘기며 소리쳤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끌어들인 후베이루는 바로 전방에 있는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겼다. 라인을 따라 공과 함께 뛰어 들어가는 소아레스. 수비가 앞을 가로막자 옆에서 대기하던 마린과 2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계속해 터치라인을 따라 돌진했다.
“끊어. 끊어 내라고.”
코치라인까지 뛰어나와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힝키 감독.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는 힝키 감독은 중앙의 수비가 빈 것이 보였기에 위험한 곳에서 반칙을 주는 것보다는 지금 프리킥을 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힝키 감독보다 소아레스의 크로스가 빨랐다.
“그냥 둬.”
바르셀로나 골키퍼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펀칭으로 걷어내려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인수가 몸을 날렸다. 골키퍼 바로 앞에서 공을 끊은 인수의 헤더는 빈 골대로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전반이 끝날 시간에 터진 인수의 추가골. 레알 마드리드는 2:0으로 앞선 채 하프타임을 맞이했다.
***
“확실하게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레알 마드리드의 전반전이었습니다. 전반전 어떻게 보셨습니까?”
“존을 활용한 롱패스에서 몇 번 재미를 봤을 뿐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티키타카를 완벽하게 제압해 버린 레알 마드리드였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정비를 마치고 지금 3위에 올라있긴 하지만 정상급 상대로는 아직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바르셀로나였습니다.”
해설자는 바르셀로나에 대한 전반전 평가를 마치고 레알 마드리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 정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페르코파에서 진 것을 제외하면 단 한 경기도 패배하지 않고 있죠. 세도로프 감독의 지도도 있지만 지난 시즌 중반부터 합류한 하인스가 이제 팀의 중심이 되어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경기를 처음부터 보자면 하인스가 바르셀로나의 수비를 흔드는 모습이 자주 나왔죠. 바르셀로나가 하인스를 막지 못하니 하인스에게 수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양쪽 사이드가 비어버렸습니다. 양쪽에서 줄기차게 크로스가 올라오니 다시 수비가 사이드로 집중되는 순간 마린의 중거리슛이 나왔죠. 수비의 등을 맞고 높이 뜬 공을 코프가 멋진 오버헤드킥으로 성공시키는 첫 골이었죠. 코프의 첫 골 이후 바르셀로나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전반 종료직전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하인스의 헤더로 도망가는 점수를 만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반이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완성된 팀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 전반이었다고 봅니다.”
“후반전의 양팀의 플레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 것이라 보십니까?”
“많은 공방전이 오갔지만 양팀 선수 모두 크리스마스 휴식을 알차게 보내고 왔거든요. 체력은 충분할 것이라 보이고 특별히 부상이 생기지 않는 한 교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바르셀로나는 존을 활용한 플레이가 주를 이룰 것이라 보입니다. 전반 공격의 방향을 보면 존을 활용한 플레이가 성공 가능성이 컸죠. 레알 마드리드는 중앙과 양 사이드를 모두 활용하며 공세를 펼칠 것이라 예상됩니다. 바르셀로나가 필드를 넓게 쓰는 레알 마드리드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저희는 잠시 쉬었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
후반이 시작되자 바르셀로나는 홈에서 득점하지 못하고 패배하기는 싫었는지 공격적으로 나섰다. 그 중심에는 역시나 존을 활용한 높이의 축구가 있었다. 존의 머리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배급해주자 경험이 많은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들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뭐해. 수비만 하지 말란 말이야. 앞으로 나가.”
세도로프 감독은 수비라인과 니실랴가 서있는 간격이 점점 벌어지자 후베이루와 아랑게스에게 손짓을 하며 지시했다.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수비라인을 올리자 존을 막는 것은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밖에 없었다. 대신 니실랴와 후베이루 아랑게스가 동시에 후방에서 리바운드 공을 받아주니 공격도 더욱 과감해졌다.
후반 20분 바르셀로나의 롱패스가 존의 머리로 향했고 존은 왼쪽 사이드로 공을 돌렸다. 아랑게스 후방이 완전히 뚫리자 네드베드가 존의 패스를 받아 중앙으로 치고 들어왔다.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가 존의 득점으로 3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도 있지만 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전반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7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네드베드. 가르시아는 존을 마르체나에게 밭기고 네드베드를 향해 뛰었다. 가르시아의 몸이 산체스의 시야를 가린 순간 네드베드는 인사이드로 가볍게 공을 밀었다.
순간 가려진 시야탓에 공을 놓친 산체스는 네드베드의 슛을 막지 못했고 이번 경기 바르셀로나의 첫 득점이 터졌다. 주심이 골을 선언하자마자 존은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에 있는 공을 들고 빠르게 센터서클로 뛰었다.
“야야. 너 세리머니는 지켜봐 줘야 할 거 아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빨리 공격이나 시작해.”
중간에서 마주친 인수가 존에게 말을 걸었지만 빠르게 대답한 존은 센터서클 중앙에 공을 놓은 채 주심을 바라봤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으로 다시 시작된 경기. 양팀은 추가 점수를 위해 끝까지 뛰었지만 더 이상의 점수가 나지 않은 채 2:1로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했다. 17라운드까지 무패를 기록한 레알 마드리드. 18라운드의 베티스 전까지 승리로 장식한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기를 무패로 끝마쳤다.
***
“다들 전반기에 수고했다. 그래도 이제 시작인 걸 다들 알고 있겠지?”
다음주 19라운드가 열리기 전 레알 마드리드는 중간에 코파 델 레이 16강 1차전을 치러야 했다. 16강의 상대는 전반기 레알 마드리드에게 유일한 무승부를 안겨주었던 사라고사. 주전들이 모두 빠져있었고 상대를 무시했던 탓에 3:1로 끌려가다 인수와 코프가 들어가고 나서야 3:3으로 마칠 수 있었기에 선수단의 마음가짐도 달랐다.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겠지? 이번 16강 1차전은 새로 올라온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볼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니 다들 철저히 준비하도록.”
이제 거의 매주 중간에는 리그 경기와는 별개로 코파 델 레이와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 무패로 달려오고 있긴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선수들이 빠져나갔기에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중요했다. 지난 10월부터 1군에 올려 호흡을 맞추고는 있지만, 정식 경기에서 호흡을 더 맞춰볼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