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세도로프 감독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포기한 채 선수단에 휴식을 준 것은 1월부터 다시 시작될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 코파 델 레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레알 마드리드의 선택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팬만큼은 세도로프 감독과 클럽을 믿고 지지해주었다.
“자. 우리 상대가 누군지 다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떨어진 복수는 해야지 안 그래?”
조별리그 1위로 통과한 레알 마드리드는 12월 20일 취히리에서 열린 조추첨식에서 다른 조에서 2위로 올라온 파리 생제르맹과 작년에 이어 올해도 16강에서 만나게 됐다. 작년 레알 마드리드를 16강에 꺾은 파리 생제르맹은 결승까지 기세 좋게 올라갔지만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승 후보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습니다.”
“그 전에 다른 경기들도 많으니 우선 리그와 코파 델 레이에 집중하자.”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레알 마드리드는 1월 3일 리그 17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 원정을 시작으로 24라운드까지, 코파 델 레이 16강부터 4강 1차전까지 치러야 2월 20일 베르나베우에서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 16강 1차전 경기가 시작됐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리그 경기들과 코파 델 레이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바르셀로나와의 경기 4일 전에 소집된 선수들은 전술훈련을 한 뒤 곧장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다.
***
“이곳은 이번 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코파 델 레이에서 무패를 달리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드디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고 있는 바르셀로나와의 시즌 첫 맞대결이 펼쳐질 캄 노우입니다. 크리스마스 휴식기를 푹 쉬고 복귀한 첫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겠다고 한 양팀이죠.”
“과감하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포기하고 언론들로부터 난타를 당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이기 때문에 이번 경기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도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하며 자존심을 있는 대로 구겼거든요. 양 팀 모두 자존심을 걸고 펼치는 한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존심을 건 한판인데요. 레알 마드리드는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선수들이 이적했습니다. 선발과 교체출장을 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소메도가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튼으로 이적했고, 카스티야에서 1군으로 합류하며 오버래핑 능력을 뽐냈던 메리노가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죠. 그 외에도 카스티야와 대기 멤버였던 선수들이 5명이나 이적을 했는데 전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제 1월 3일인데 1월 2일에 발표된 이적들이죠. 적어도 크리스마스 휴식기부터 이적에 대한 논의가 와갔다고 봐야 하죠. 세도로프 감독이 경기 전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이적에 관한 내용을 물어봤을 때 떠나간 선수들이 그 팀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죠. 보드진과 세도로프 감독 모두 이번 시즌 전력외의 선수들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지난 UD멜리야전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가야를 비롯해 카스티야의 몇몇 선수가 1군 로스터에 정식으로 합류했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이 말한 레알 마드리드 유스 자원을 유용하게 시험할 토대를 만들겠다고 한 공약의 일환이라 봐야겠죠.”
“어디까지나 후베닐과 카스티야의 선수들은 긁지 않은 복권이란 느낌이 크지 않습니까? 그동안 긁지 않은 복권보다는 확인된 복권만 사왔던 레알 마드리드인데요.”
“그래서 좋은 선수들을 싼값에 많이 팔았다고 비난을 받은 감도 없지 않죠. 세도로프 감독은 이미 아약스 시절 경험을 해왔기에 성공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 같습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세도로프 감독의 도박이 성공할지는 두고봐야겠죠.”
“반대로 바르셀로나는 안수 파티 이적금으로 사 모은 젊은 선수들이 드디어 라리가에 적응을 한 모습이죠. 그와 동시에 약점으로 지적받던 세트피스 상황에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존을 영입했는데 다른 선수들과의 시너지가 배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무패의 레알 마드리드와는 승점차이가 13점에 나고 있지만 2위인 발렌시아와는 승점 2점 차이밖에 나지 않거든요. 특히 크리스마스 휴식기 전 발렌시아를 3:1로 잡아내며 차이를 확 좁혔습니다.”
“시즌 시작보다는 점점 좋은 호흡을 보이고 있는 바르셀로나거든요, 더구나 이곳은 바르셀로나의 홈 캄 노우입니다. 엘 클라시코에서 절대 지기 싫겠죠. 양 팀 모두 말이죠.”
“그렇습니다. 이번 주 세계 축구계에 가장 핫매치로 선정된 엘 클라시코 시즌 1차전. 그 전쟁을 시작할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
“오랜만이야. 스페인에 와서 전화만 하고 어떻게 한 번도 찾아올 생각을 안 했어?”
인수는 오랜만에 만나는 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는 넌? 쉬는 날도 많았던데 바르셀로나로 한 번 왔으면 얼마나 좋아. 넌 내가 보고 싶지도 않더냐.”
“내가 널 왜 보고 싶어 해. 우리 레이 볼 시간도 없는데.”
“와 약혼식에 초대도 안 해놓고. 결혼식까지 초대 안 하면 결혼식 날 레이 납치해 버릴 테다.”
“잘도 그러겠다. 레이한테 쪼인트 까이고 질질 짤 녀석이 말이야.”
오랜만에 얼굴을 맞댄 두 사람은 잡다한 이야기로 떠들다 슬슬 도발적인 언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생 나랑 적이 되기 싫다더니 이제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해버렸네. 이제 적이 되도 이길 자신이 생겼나 봐.”
“슬슬 너를 넘어서도 되지 않겠어? 여기 있는 애들도 너 못지않은 녀석들이 많더라고.”
안수 파티의 이적금으로 각 리그 유스 1티어를 모두 끌어모은 바르셀로나. 당시에는 즉시전력감을 영입하는 것이 낫지 않았냐고 하는 의견들도 많았지만, 바르셀로나 보드진은 꿋꿋하게 유스들을 끌어모았다. 그 중에게는 인수도 있었지만, 인수는 레알 마드리드에 뺏긴 상황. 바르셀로나는 유스들을 1군에서 경험을 쌓게 하고 포텐이 터지길을 기다렸다. 지난 시즌 가능성을 보았을 때 부족했던 스트라이커 자리에 존을 영입함으로써 스쿼드를 완성시켰다.
“저 녀석이 바르셀로나에서 영입했다는 네 친구지? 어떤 스타일이야?”
“소튼에 있을 때는 피지컬은 없었는데 피지컬까지 장착한 상태더라고요. 세리에 A에서 뛰던 영상들과 전반기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모습이 또 다르고요. 직접 부딪혀봐야 알걸요.”
“그래도 약점 같은 거 있겠지?”
“우선 발밑 기술은 괜찮은 편이에요. 유스 시절에 내가 엄청나게 굴려거든요. 머리에 맞추는 건 타고났고요. 자리 잡는 힘이 약하긴 했는데 그건 피지컬을 키우면서 고쳤고요. 다만 무릎 위 어깨 아래로 오는 공에 약한 모습은 여전하더라고요.”
“그건 키 큰 선수들이면 당연한 거잖아. 우선 피지컬로 한 번 싸워봐야겠네.”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중앙수비수답게 피지컬로는 떨어지지 않는 가르시아였다.
“영감님 그러다 뼈 부러지면 회복 기간이 길어요.”
“누가 영감님이야. 이제 겨우 29이구만.”
“그래요. 내 모레 30인 영감님.”
인수는 끝까지 가르시아를 놀리고서는 전방으로 이동했다.
***
AS로마에 막혔던 인수는 톨로니여서 막혔다는 듯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농락했다. 안수 파티가 떠난 후에도 수비진은 탄탄하다고 평했던 바르셀로나는 인수에게 영혼까지 털렸다.
“AS로마 자식은 어떻게 이 녀석을 막은 거지?”
“움직임을 봤다잖아. 그런데 이 스피드가 움직임을 보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이야?”
바르셀로나의 수비들은 더블팁을 하며 인수를 막아보려 했지만, 번번이 뚫리며 자존심이 구겨졌다. 그래도 최종수비수들이 몸을 날려 막아준 덕분에 골을 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앞으로 나가. 수비만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했잖아. 앞으로 나가.”
지난 2년 동안 인고의 시절을 보내고 드디어 팀을 정비한 힝키 감독은 자신의 마지막 계약 연도를 맞이했다. 안수 파티의 이적 후 바르셀로나에서 지명한 감독은 무명의 팀 힝키 감독이었다. 브라질계 스페인인 감독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 있던 사바델을 5년 만에 라리가2로 끌어올리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팀의 주전선수들을 모두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하여 성적을 냈다는 점을 높이 산 인사였다. 그런 힝키 감독은 바르셀로나와 3년 계약을 했고 이번 시즌 팀을 정비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특유의 언더독 감성으로 AT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바르셀로나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압박해. 전방으로 쉽게 공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란 말이야. 상대의 기를 완전히 죽여놔.”
그러나 상대는 노련한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힝키 감독이 리빌딩을 통해 언더독 감성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면 백전노장의 세도로프 감독은 이기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었다.
“어딜 파고들어.”
“내 공이야. 비켜요.”
바르셀로나 진영에서 인수가 휘젓고 다니고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 진영에서는 유리한 자리를 잡으려는 존과 가르시아의 몸싸움이 치열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는 스페인에서 보기 힘든 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선수. 이제 전반 25분이었지만 두 선수의 유니폼은 자신의 땀과 상대의 땀으로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말리지 마. 왜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려고 해.”
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발견한 산체스. 바로 가르시아에 지시하며 떨어지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영악한데.”
“누구한테 배웠거든요. 나이는 나보다 어리긴 하지만.”
29살의 전성기인 가르시아. 대표팀 경험도 많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일류선수들을 상대한 경험도 많았지만, 존은 영리하게 가르시아의 체력을 소진시키고 있었다. 노련한 가르시아를 상대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시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르시아를 자신에게서 떨어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앞으로 보내.”
존은 손을 높이 들며 후방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빠른 공격속도와 정확한 패스가 장점인 바르셀로나였지만 존이 영입된 후 롱패스를 통한 뻥축구에도 강점을 보였다. 후방에서 바로 넘어온 공을 정확한 헤더로 공격권을 살리는 전술도 병행했기에 상대하는 팀도 여러 가지 수비를 준비해야 했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 존은 자리를 먼저 잡았다.
“같이 놀자고.”
존과 어깨싸움을 피했던 가르시아가 바로 존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로 존의 어깨를 밀었다.
“자꾸 밀면 넘어져요. 여기서 반칙을 얻어볼까요?”
“주심들 성향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거든. 넘어져 보든지. 반칙을 부나 안 부나.”
가르시아는 처음 존의 도발에 말려들긴 했지만, 라리가의 경험은 자신이 훨씬 많다는 점을 활용했다. 존이 먼저 자리 잡은 자리를 뒤로 당겼다. 상대가 발밑 기술이 좋다고 하지만 큰 키를 활용한 헤더보다는 약하리라 생각하고 상대에게 발기술을 강요한 가르시아.
존 역시 가르시아의 의도를 알긴 했지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넘어온 공을 다이렉트로 사이드로 돌렸다.
“사이드 막아. 파고들잖아.”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전방압박을 위해 전진해있던 상황. 후베이루 뒤가 완전히 비어 었었다. 그곳을 파고든 선수는 바르셀로나가 유벤투스 유스에서 영입한 네드베드. 스피드와 크로스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네드베드였기에 마르체나가 빠르게 길목을 막아섰다. 네드베드는 마르체나가 다가오기 전에 반대쪽으로 길게 공을 넘겼다.
아랑게스가 비어있는 오른쪽으로 급히 다가왔지만 공은 이미 독일 유스 출신 프리츠가 선점했다. 프리츠의 크로스가 문전으로 올라왔고 존을 정확한 타이밍에 공중에 뜬 후 헤더로 찍었다.
산체스 앞에서 크게 바운드를 튄 공이 산체스의 손을 피했지만 골대를 맞고 골라인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