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로마에 도착하자 친AS로마 언론들이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밀착마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 이긴다면 16강 진출이 밝은 만큼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멘탈을 흔들만한 기삿거리를 파고 또 파고 있었다.
“뭐 나온 거 없어? 레알 마드리드에는 모두 성자들만 모여있냐고. 분명 사고 치는 애가 있을 거야. 뒤지란 말이야.”
“뭐 없어? 만들어서라도 내. 어차피 뒷수습이야 지들이 어쩔 거야. 만들어내.”
편집장들은 데스크에 앉아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있었지만, 기자들도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에이전트들을 생각한다면 쉽게 기사를 쓰기 힘들었다. 인수의 에이전트인 랭커리지도 그렇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전트들은 모두 적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욱 레알 마드리드의 법무팀을 생각할 때 일개 기자가 허위기사를 맘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왜 다들 꿀 먹은 벙어리야. 당장 찾아내라고. 안 되면 만들어서라도 내.”
지난 시즌 성적이 반등한 AS로마였지만 이번 시즌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었다. 존이 이적하면서 급하게 스트라이커를 영입하긴 했지만, 존의 빈자리가 너무 아쉬웠다. AS로마의 팬들이 더욱 응원을 보내주고 있긴 했지만, 준전문가인 자신들이 보기에는 위태위태했다. 적어도 16강을 가서 겨울 이적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16강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리그 성적도 떨어진다면 반등하려고 하는 AS로마의 성적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다들 명심해. 어떻게든 찾아내. 그리고 무조건 나한테 넘겨. 바로 지면에 실을 거니까.”
친 AS로마 기자들이 레이더를 돌리고 있을 때 선수들은 호텔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다들 에이전트에게 들었지. 괜히 호텔 밖으로 나가서 꼬투리 잡히지 말고 내일 경기 때까지 답답하더라도 호텔에 있어.”
“아까 호텔 들어올 때 봤어? 기자들인지 스토커인지 모르겠던데.”
“눈빛들 무섭더라. 그만큼 내일 AS로마 놈들한테 보여주면 되는 거지.”
하루 전 연습 훈련을 위해 이동할 때도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급하게 수배한 승용차 여러 대로 이동할 만큼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선수들의 언론 노출을 막았다. 그런 만큼 훈련도 비공개로 진행됐고 경기 당일 연습 훈련까지 비공개로 진행했다.
***
“오늘 레알 마드리드의 라인업이 정말 화려합니다. 요 몇 주 사이 계속 로테이션을 돌리던 레알 마드리드입니다만 이번 AS로마전에서는 주전들을 모두 기용하였습니다.”
“저번 아약스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AS로마의 기세가 약간 떨어지긴 했죠.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아약스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전이 더욱 중요해졌으니까요.”
“이미 승점 12점으로 조 1위를 확보한 레알 마드리드가 힘을 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최전방의 코프, 미드필더 라인에 하인스, 마린, 모라타, 소아레즈, 니실랴를 기용하고 수비라인에 가르시아와 마르체나,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확실히 레알 마드리드가 엄청나게 힘을 준 모습입니다. 지난 세비야전 이후 한 달 만에 주전으로 출전한 라인업인데요. 정말 면면들만 봐도 오금이 저려오네요.”
“반면 AS로마는 수비형 미드필드가 바뀌었죠. 19살의 신예 루카 톨로니가 선발로 나왔는데요. 1군 경기 데뷔전을 레알 마드리드와 치르게 됩니다.”
“AS로마 유스 출신으로 끝없는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선수를 물고 늘어지는데 특화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사실 AS로마의 유스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아닙니다만 독기 가득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AS로마의 감독은 롤로니로 하여금 하인스를 경기에서 삭제시켜버리겠다고 장담했죠. 이 선수가 1군 첫 데뷔 무대에서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와 하인스를 상대하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톨로니의 경기력을 믿고 있다는 것이겠죠.”
“오늘 레알 마드리드의 라인업을 보면 하인스가 섀도 스트라이커와 중앙 미드필드를 마린과 체인징하며 경기를 풀어나 갈 것으로 생각하는데 콜로니가 하인스의 존재를 지운다면 마린만 막으면 되거든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의 시작점을 끊어놓겠다는 AS로마의 전술이 얼마나 통할지 이번 경기를 지켜보겠습니다.”
“AS로마와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대 AS로마의 조별예선 5차전 이제 시작합니다.”
***
“저 녀석이지?”
모라타는 주심의 휘슬을 기다리며 여드름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톨로니를 보았다.
“그런 거 같은데요. 분석팀에서 보내준 자료에 따르면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고 하는데 붙어봐야죠.”
한 시간 전 AS로마의 라인업을 받아 든 레알 마드리드 코치진은 루카 톨로니의 이름을 보고 우왕좌왕했다. 어지간한 유스들은 모두 클럽의 레어더에 잡혀있었지만 루카 톨로니라는 이름은 처음이었다. 급하게 클럽에 연락해 받은 프로필도 달랑 한 장에 불과했다.
“그래 봐야 이제 막 1군에 올라온 풋내기야. 완벽하게 압살해 버리라고.”
모라타의 말처럼 인수와 동갑이긴 했지만 이제 처음으로 1군에 올라온 선수였다. 인수가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선발로 투입될 때도 이슈를 만들기 위해 보드진에서 전략적으로 투입했었다. 말 그대로 그 경기에서 져도 상관없다는 기용이었지만 그날 주심의 휘슬을 기다리며 관중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었다. 그런데 상대는 절대 지면 안 되는 경기에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발로 나오는 것이기에 긴장감이 엄청날 것이었다.
“자. 가자.”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코프는 인수에게 공을 밀어주었다. 코프의 패스를 받은 인수는 슛모션을 한 번 취해주고 빠르게 치고 달렸다.
“막아. 뭐해.”
인수가 슛모션을 취하자 움찔했던 수비들이 인수가 달리기 시작하자 뒤늦게 반응했다.
“어딜 가려고.”
AS로마 선수들이 움찔했을 때 단 한 선수, 톨로니가 인수의 앞을 막아섰다.
“와 생각보다 재빠르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던지.”
인수는 톨로니 앞에서 발바닥으로 공을 긁으며 양쪽으로 몸을 흔들었다. 가벼운 페인팅이긴 했지만 요동도 없이 인수의 눈빛만 바라보고 있는 톨로니. 인수가 톨로니와 대치하는 동안 AS로마의 선수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수비를 시작했다. 인수가 톨로니를 뚫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인수의 눈앞에서 톨로니가 사라졌다.
“조심해.”
인수가 공을 치고 달리는 순간 톨로니는 낮게 슬리이딩을 하며 정확히 공을 걷어내고 인수의 다리를 걸었다. 톨로니의 다리를 맞고 튄 공은 마린이 낚아챘다. 마린 역시 자신을 막아서는 선수를 피해 모라타에게 공을 돌렸지만 AS로마의 선수가 먼저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밀어냈다.
“발이 걸린 느낌이 났는데.”
넘어져 있던 인수는 자신을 부축하려고 다가온 마린에게 속삭였다.
“정확히 공을 먼저 쳐내더라고요. 그 뒤에 발이 걸렸는지 주심도 반칙을 선언하지 않았어요.”
마린은 인수가 뚫는 상황부터 지켜보고 있었기에 톨로니가 슬라이딩 태클을 거는 모습을 똑똑히 바라봤다. 인수가 빠져나가는 순간에 자세를 낮추더니 정확히 공에 발을 맞추었다.
“다음에도 한 번 더 해봐야겠어. 분명히 타이밍을 뺏었거든.”
인수는 니실랴가 한 스로인을 받아 발밑으로 공을 떨궜다. 바로 자신에게 붙는 톨로니를 바라보며 중앙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다. AS로마에서는 톨로니에게 인수를 모두 맡겼는지 중앙에서 다시 대치가 시작됐다.
“다시 해보자고.”
인수의 빠른 움직임에도 미동이 없는 톨로니. 인수는 톨로니의 무릎과 팔 사이로 공을 띄웠다. 톨로니는 공이 자신을 빠져나갔음에도 공을 따라가는 선택하지 않고 등을 돌리며 인수의 길목을 막아섰다. 톨로니가 자신의 길목을 막아서자 주춤하는 사이 인수가 드리블을 위해 보낸 공은 AS로마의 소유로 돌아갔다.
“막아. 역습 대비해.”
인수가 상대를 뚫을 것이라 예상했던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를 제외하고는 센터라인을 넘어선 상태였다. 인수가 공을 뺏긴 상황에서 모두 뒤돌아 수비 위치로 돌아오느라 늦긴 했지만, AS로마도 역습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AS로마가 정신을 차리고 치고 나왔을 땐 이미 늦어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똑바로 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주위를 이용하란 말이야.”
레알 마드리드 코치석에 서 있던 세도로프는 경기 중 처음으로 인수의 플레이에 참견했다. 세도로프가 부임한 이후 자신의 예상보다 더 큰 활약을 보여줬던 인수였기에 딱히 큰 소리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플레이는 무리한 감이 있었다.
전반 내내 인수가 톨로니에게 묶여있자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공격이 무뎠다. 뒤늦게 마린이 중앙에서 경기를 풀어나가 보려고 했지만, 인수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마린 혼자 경기를 풀어나갈 힘이 부족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풀려나가지 못했고 AS로마도 수비들에게 막히면서 답답한 가운데 0:0으로 전반이 종료됐다.
***
“너희들 왜 정신을 못 차려? 하인스가 막혀도 너희들이 움직이면서 수비를 흔들어줘야 할거 아냐. 전방에 가만히 전봇대처럼 못 박고 있으면 공이 와? 정신 못 차려?”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돌아오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입이 달렸으면 이야기를 해봐. 전반에 왜 그런 식으로 경기가 막혀있었던 것 같아.”
“제가 단독으로 뚫어보려다가 계속 막히면서…….”
세도로프 감독은 인수가 입을 떼자 손을 들어 말렸다.
“하인스 너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해. 그리고 중앙에서 막히면 사이드에서 풀어나갈 수 있잖아. 모라타, 소아레스. 너희는 골 넣을 생각밖에 없는 거야? 중앙에서 막혀있으면 사이드에서 풀어줘야지. 뭐 하고 있어.”
세도로프 감독은 바로 시선을 돌려 윙백들이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앞에서 공격이 막히더라도 너희가 뒤에서 오버래핑을 자주 해줘야지. 그래야 공을 뒤로 돌릴 수라도 있잖아. 상대 공격에 너희가 뒤에 처박혀있으면 우리의 공격이 이어지지 않잖아. 그래. 전반전에 무실점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가 너희가 수비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희가 맡은 역할은 공격수들을 받쳐주는 것에도 있어. 알았어?”
“알겠습니다.”
선수들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세도로프 감독은 인수 앞으로 다가갔다.
“하인스. 전반처럼 묶여있는 경험이 처음이지? 분명 네가 최상급 선수인 것이 맞긴 하지만 상대편에도 너를 막아서는 선수가 나올 수 있어. 이번 기회에 그런 선수들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플레이해봐. 생각하란 말이야. 너 똑똑하잖아.”
“네.”
“기죽지 말고. 네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기죽은 모습 절대 보이지 말아. 어차피 이번 경기 지더라도 우리가 조 1위로 진출하는 것은 바뀌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이 생각할 수 있게 코치들과 함께 라커룸을 벗어났다.
하프타임이 끝난 이후 다시 필드로 나선 양 팀은 AS로마의 공격으로 시작됐다. 전반이 끝나고 한 소리를 들었는지 날카로운 눈빛을 장착하고 돌아온 AS로마의 선수들은 빠른 속도로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침투했다. 빠른 속도로 치고 나오긴 했지만 아쉬운 마무리 덕에 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산체스가 손쉽게 잡았다.
“앞으로 나가.”
산체스가 앞으로 공을 던지자 인수도 그에 맞추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에디보다는 느리지만 스피드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인수의 뒤를 쫓는 톨로니. 스피드에서는 자신 있다는 듯 인수의 뒤를 바짝 쫓았다.
니실랴가 공을 잡았지만 인수의 뒤를 쫓는 톨로니 때문에 인수에게 공을 넘기지 못하고 마린에게 넘겼다.
“나한테 넘겨.”
인수가 달리면서 만들어 준 공간에 침투한 모라타는 바로 손을 들었다. 마린이 정확히 모라타의 발에 공을 보내자 모라타도 수비를 뚫고 전진하는 마린에게 리턴했다. 마린이 공을 잡자 AS로마의 수비도 더욱 범위를 좁히며 마린을 압박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자세를 낮추고 수비를 뚫는 모습을 보이자 AS로마의 수비들도 자세를 낮추었고 마린은 발뒤꿈치로 공을 띄워 수비의 키를 넘겼다.
“나이스.”
마린에게 공을 리턴하고 중앙을 가로지른 모라타는 공을 잡고 바로 슈팅까지 이어갔다. 비록 AS로마의 골대를 빗겨나가긴 했지만 마린과 모라타의 호흡으로 언제든지 상대의 골문을 위협할 수 있다는 플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