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세도로프 감독이 시험한 마요르카전이 끝나고 다시 챔피언스리그 일정이 시작됐다.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4차전은 클럽 브뤼허가 마드리드로 왔다. 1, 2, 3차전에서 모두 패한 클럽 브뤼허의 프르머허 감독은 남은 3개의 경기에서 최대한 고춧가루를 뿌리겠다고 인터뷰를 한 바 있었다. 이에 맞선 레알 마드리드와 아약스, AS로마의 감독들은 서로를 저격하며 저쪽을 쳐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만큼 브뤼허의 태도가 제일 관심사였다.
“선발 라인업 이대로 제출합니까?”
수석코치는 세도르프 감독이 건넨 명단을 보고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응. 기회는 줘야지. 기회를 줘야 다른 팀에 이적도 잘할 거고. 보드진에서도 부탁하기도 했고.”
세도르프 감독은 지난 마요르카전이 끝나고 보드진과 이야기하며 방출선수 명단과 승격시킬 선수들의 명단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보드진이 요구한 것은 방출선수들에게 기회를 좀 더 달라는 것이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가치가 높은 선수들인 것은 맞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좀 더 기회를 주면서 가치를 높여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세도로프 감독도 1월 이적시장 전에 선수들의 가치를 올릴 수 있게 협락한다는 대답을 했고 라인업의 변화를 가져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소아레즈와 파라데스가 모두 대기명단에 오르는 겁니까?”
“마린이 윙으로 뛰면서 괜찮더라고. 여러 방면으로 활용을 해보자고.”
처음 인수를 전방에 섀도 스트라이커로 활용하고 마린을 중앙에서의 역할을 맡기려고 생각했던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난 마요르카전에서 마린이 오른쪽 윙과 왼쪽 윙을 번갈아 가며 제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마린이 좌우 윙으로 뛴다면 인수와 크로스를 하며 상대를 흔들어 줄 수 있는 카드로 활용이 가능할 거 같았다.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려놓도록 하겠습니다.”
라인업에 대한 지시가 없었기에 선수들이 알아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그래. 오늘 자신이 뛰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주지시켜. 계속해서 라인업에 변화를 줄 거라는 말도 하고.”
세도로프 감독은 분위가 좋은 상태에서 선수들을 다양하게 시험해보고자 했다. 카스티야와 후베닐에서 계속해서 선수들을 콜업시키는 이유도 최대한 1군 분위기에 익숙하게 만들어 바로바로 빈 자리를 메꿀 수 있는 선수로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알겠습니다.”
***
“오늘 레알 마드리드의 라입업이 나왔는데 세도로프 감독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A매치를 치르고 돌아온 선수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음에도 익숙지 않은 선수들의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지난 마요르카전에 뛰었던 선수들이 많이 보이죠. 코프와 최전방에서 호흡을 맞출 선수로 소메도가 선발되었죠. 지난 마요르카전에서 한 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던 소메도입니다. 그렇지만 소메도도 그 재능을 인정받아 레알 마드리드로 영입된 만큼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미드필드진에서도 마린이 우측 윙으로 출전했고 중앙에는 하인스가 선발로 출전하게 됩니다. 대표팀에 복귀한 모라타가 레이프 윙으로 뛰게 되는군요.”
“아무래도 모라타, 하인스, 마린으로 이어지는 공격형 미드필더 라인은 손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소아레스, 파라데스를 밀어내고 선발로 출전한 만큼 오늘 경기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마린이죠.”
“수비형 미드필드에는 누네스가 선발로 출전합니다. 수비진에는 지난 마르요카전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메리노와 가르시아와 마르체나, 넬손이 선발출전합니다.”
“지난 마요르카전에서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보여준 메리노였죠. 공을 달고 뛰는데도 스피드가 전혀 죽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유지했던 점이 인상적이었죠. 반면 넬손은 덴마크 대표팀에 뽑혔으면서도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며 벤치만 달구었는데요.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겁니다.”
“클럽 브뤼허도 뫼니에를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상당히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경기에 너무 수비적으로 나오면서 5:0으로 패배한 브뤼허였거든요. 감독이 생각한 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으며 대량실점을 했죠. 이번에는 반대로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으니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를 어떻게 공략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브뤼허가 라인업을 발표하자마자 언론들은 프르머허 감독의 전술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수비적으로 나와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브뤼허였는데 공격적인 라인업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가장 많았다.
***
클럽 브뤼허의 선공으로 시작한 경기. 브뤼허는 주심이 휘슬을 붐과 동시에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가 모두 레알 마드리드 진영으로 넘어갔다. 전반 초반부터 전격적으로 치고 나오는 브뤼허의 공세.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면 우왕좌왕할 법도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는 모라타가 있었다.
“다들 자리 잡아. 우선 공격을 끊어.”
모라타가 먼저 나서 몸으로 브뤼허 선수들을 막아섰다. 모라타의 외침을 들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몸을 날려 브뤼허의 공세를 막아섰다.
삐익.
누네스가 중앙에서 몸을 날려 공을 끊어냈지만 깊은 태클에 주심이 반칙을 선언했다. 브뤼허의 선수들이 바로 공을 잡고 패스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주심이 막아서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정비를 시작했다.
“다들 자신이 맡은 선수 놓치지 마. 왜 당황하고 있어. 우리가 누구야?”
“레알 마드리드지.”
“레알 마드리드면 레알 마드리드답게 행동하자고. 가자.”
모라타의 외침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강한 눈빛으로 브뤼허 선수들을 노려보았다.
브뤼허의 선수들은 변한 레알 마드리드의 모습에 기가 눌렸다. 그렇지 않아도 베르나베우 특유의 기운이 원정팀을 압박하는데 선수들까지 압박하니 스스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첫 기회를 살렸어야 했는데.”
프리머허 감독은 벤치에 앉아 반전되어버린 경기장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초반 밀어붙여 한 골이라도 뽑아낸 다음 영봉패는 면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짠 라인업이었다. 초반의 기세가 눌려버렸으니 반전할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최대한 버터야 했다.
“앞으로 나가. 절대 물러서지 마.”
흐름을 다시 되돌리는 데 성공한 레알 마드리드는 반대로 골키퍼를 제외한 인원이 모두 브뤼허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촘촘한 수비보다 더욱 촘촘하게 박힌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 그 사이를 뚫고 패스를 연결하는 인수. 10초 사이에 4번의 터치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받았다.
“하인스.”
전방에 있던 코프가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를 벗겨내고 손을 들었다. 순식간에 벗어났기에 완전 프리한 상황으로 놓인 코프. 인수는 바로 전방으로 깊숙이 찔렀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코프는 슛찬스를 보았지만 바로 자신을 막아서는 수비를 보고 공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코프의 반대쪽에서 소메도가 손을 들었지만 소메도는 자신을 마크하는 선수를 떼어내지도 못한 상태였다. 코프는 소메도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태클을 뒤늦게 피하고는 공을 뒤로 돌렸다.
순식간에 나온 찬스를 살리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공이 다시 인수에게 넘어가며 흐름이 끊기지는 않았다. 인수가 마린에게 패스를 돌리며 브뤼허 진영을 뚫고 나갔다.
“야. 하인스 막아. 절대 페널티 지역 근처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란 말이야.”
프리머허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전을 준비하며 가장 강조했던 말이 인수의 돌파를 막으라는 것이었다. 지난 경기에서도 인수의 돌파를 막지 못해 인수가 마린에게 넘겨준 공을 중거리슛으로 연결해 골을 먹였었다. 두 번째 골 역시 인수가 단독드리블로 페널티 라인까지 돌파하면서 만들어진 골이었다.
“야. 자리 잡아. 뚫리지만 마.”
마린이 공을 잡고 있을 때 인수가 돌파를 시도하자 브뤼허 선수들의 시선이 인수 쪽에 쏠렸다.
“코프.”
인수에게 시선이 쏠린 틈을 타 코프가 공간을 만들어 내자 마린은 코프에게 바로 연결을 시도했다. 코프의 오른발에 정확히 떨어지는 공. 코프는 바로 공을 잡고 슛으로 이어갔다.
쾅.
골포스트를 강하게 맞고 튕겨진 공은 그대로 골라인을 넘어가며 브뤼허의 소유가 됐다.
“좋아. 잘했어.”
인수가 마린과 코프를 번갈아 보며 박수를 치자 주변의 선수들도 박수를 치며 라인을 다시 잡아나갔다.
***
브뤼허가 공격권을 잡았지만 브뤼허의 진영을 넘어가기도 전에 다시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에 막히고 다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권으로 변했다.
“천천히 해. 천천히 만들어.”
누네스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인수는 공을 발바닥으로 밟고 서서 주변에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미 위축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봐야 크게 반발을 당할 위험성이 있었다. 천천히 더욱더 구석으로 몰아가며 더는 싸울 의지가 생기지 않도록 잠식시키며 경기를 지배했다.
“잔인하게 게임하는군.”
A매치가 끝나고 선수들 점검을 위해 출장을 신청한 레쉬포드는 제일 먼저 마드리드로 넘어왔다. 평가전이 끝나고 나서 일 처리를 해야 했기에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예매했었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에 협조를 구했으면 좀 더 쉽게 표를 구했겠지만 레쉬포드는 조용히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베르나베우 구석에 서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네요. 정말 잔인하게 상대를 제압해버리네요.”
상대의 목덜미만 물면 숨이 끊어지는 상태까지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하는 인수였다. 그런 인수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레쉬포드였다. 자신이 전성기 시절 가장 즐겼던 플레이가 인수가 하는 플레이였다. 소튼 시절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며 전수해 준 플레이였지만 저렇게 쓸 줄은 몰랐다.
“여기서 골이 나온다면 이번에도 브뤼허는 그대로 무너지겠지.”
레쉬포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인수가 저돌적으로 드리블을 시작했다.
“여기서 패스를 막아야 하는데. 저건 돌파가 아니야.”
인수의 움직임을 보고 바로 알아차린 사람은 레쉬포드 하나였다. 레쉬포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수의 발을 떠난 공이 모라타의 왼발에 떨어졌다.
“여기서 하인스를 막아야 해. 다시 하인스에게 공이 넘어간다면 위험해.”
레쉬포드는 공을 가진 모라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찾아 자리 잡는 인수의 움직임을 보았다. 공이 자신의 발을 떠난 것과 동시에 빈자리를 찾아 자리 잡는 인수. 모라타는 바로 인수에게 공을 리턴했다.
이미 마크를 떼어낸 인수였기에 모라타에게 패스를 받자 바로 공을 오른발로 옮겼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수비수가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게 만드는 움직임. 그 후 바로 오른발 슛이 터졌다.
날카롭게 왼쪽 골포스트를 향하는 공. 골키퍼는 몸을 날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공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만 봤다.
삐익.
전반 21분 주심이 휘슬을 불며 골을 선언했다.
“이미 끝났군. 우리는 나가서 기다리자고.”
레쉬포드는 함께 온 코치들과 경기장을 벗어났다. 이미 브뤼허는 제압을 당했다. 변수가 없다면 경기를 뒤집긴 어려운 흐름이었다.
“우선 랭커리지에게 연락을 할까요? 아무래도 에이전트를 통하는 것이 만나기 쉬울 텐데요.”
“그냥 내가 따로 하인스에게 연락을 하지. 마드리드까지 왔는데 만나는 줄 거야. 하인스 집에서 밥이나 먹자고. 내가 장담하는데 맛있을 거야. 호불호가 없는 맛이거든.”
레쉬포드는 오랜만에 인수의 집밥을 먹을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