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대표팀에 차출되지 않고 마드리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수들을 불러모은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좁지 않은 감독실이 선수들로 가득 차자 세로로프 감독은 의자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수 한 명, 한 명 불러 대화를 나눈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모은 적은 처음이었다.
“오늘 이렇게 너희들을 부른 것은 내일 선수소집 전에 너희들에게 카스티야와 후베닐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다. 너희들이 1군에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1군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에게 들린다고 생각하면 돼.”
시즌 중 A매치기간이었지만 세도로프 감독이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휴식을 준 이유는 10라운드까지 쉬지 않고 달린 선수들의 멘탈을 관리하려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의 소식이 세도로프 감독의 귀에 들리고 있었다. 마드리드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가벼운 시비가 붙는다든지, 집안에 틀어박혀 전혀 나오지 않은 선수가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었다. 물론 잘하고 있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선수들을 모아 경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프로인 만큼 자신이 행한 일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했다. 세도로프 감독 자신이 바로 그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였기에 클럽의 전통과 명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네. 알겠습니다.”
세도로프 감독이 말한 사람이 누군지 스스로 더 잘 알았기에 선수들은 바짝 긴장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즌 시작 후 쉬지 않고 훈련을 해왔었던 레알 마드리드였다. A매치를 맞아 휴가를 받았기에 풀어진 면이 없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가벼운 시비가 있긴 했지만 그게 세도로프 감독의 귀까지 들어갈 줄은 몰랐던 점도 있었다.
집에서 쉬었던 선수들도 훈련을 뒤로 한 채 파티를 즐긴 선수들도 있었기에 더욱 긴장했다.
“내일 선수들이 복귀할 텐데 다음 마요르카전 선발 라인업을 먼저 알려주려고 불렀다. 너희들이 쉬는 동안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봐.”
세도로프 감독은 감독실에 있는 큰 전술판에 선수들의 명단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골키퍼에 알리송 주니오르 – 레알 마드리드 유스출신으로 산체스에 이은 골키퍼였다. 중앙수비수로 샤비 마르체나와 코이타, 양쪽 윙백 자원들은 모두 국가대표에 차출되었기에 비워두었다. 미드필드에는 니실랴와 누네스에 이은 세 번째 옵션인 크리스티나 페도르, 양쪽 윙은 사라비아와 마린의 이름이 붙었다. 중앙에는 인수가 최전방에는 안토니 소메도와 니콜라스 코레아가 섰다.
“저기 감독님 양쪽 윙백은 누가 서게 됩니까?”
감독실 구석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로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오늘 경기에 뛰었던 윙백들 자원 어때?”
로카의 질문을 받은 세도로프는 로카 옆에 있던 수석코치와 수비코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마요르카 상대로 데뷔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다만 가야 같은 경우는 아직 18세가 되지 않아 출장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야 대신 카스티야에서 뛰고 있는 메리노가 괜찮을 듯싶습니다.”
“메리노? 아 겨울 이적시장에서…….”
세도로프 감독은 주변의 선수들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메리노의 경우 1군에서 뛰어보게 하고 싶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가야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었다. 후베닐의 코치들과 1군의 코치들까지 세도로프 감독에게 가야의 선발을 부탁했기에 이번 코파 델 레이 32강전에 출전시켰기도 했다.
“자. 이제 선발 라인업은 다 봤겠지. 이제 가서 다음 경기 준비해. 내일 집합 시간에 늦으면 벌금이니 다들 정신 차려.”
세도로프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감독실에 벗어나며 자신도 모르게 흘렀던 땀을 닦았다. 사실상 세도로프 감독이 한 말은 별거 없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받은 압박감은 달랐다. 비록 주전은 아니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큰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세도로프의 말속에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는 이적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 숨겨있음을 알았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선수들이 밖으로 나가자 세도로프 감독은 코치들을 가까이 불렀다.
“선발명단은 이렇게 한다고 하고 대기 명단을 짜야지. 마요르카가 만만한 팀은 아니잖아.”
“아무래도 공격진이 약하지 않습니까. 코프는 대기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소메도나 코레아가 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마요르카의 단단한 수비를 뚫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하인스와 마린이 중거리슛을 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중앙에서 버티고 있는 선수가 있어야 하니 코프는 대기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린이 뛰는 오른쪽 라인도 파라데스가 대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파라데스가 대표팀에 뽑히긴 했지만 전반전밖에 뛰지 않았으니 체력도 충분할 것입니다.”
“수비도 가르시아와 후베이루, 아랑게스를 모두 명단에 올려놓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아랑게스보다 웨아가 좋을 듯합니다.”
마요르카의 수비는 라리가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반면 득점력이 떨어졌기에 순위권으로 치고 오르지 못하고 있을 뿐 얕잡아 볼 상대는 아니었다.
“좋아. 정리해서 나한테 보고하고 결과는 경기력으로 판단하기로 하지. 미리 보드진에게도 설명해놓고. 이번 경기력을 보고 준비가 되지 않은 선수는 방출하는 게 나아.”
“알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됐다는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세도로프 감독이었다. 자기 생각대로 카스티야와 후베닐에서 선수들을 올리기 위해서는 1군에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
“옆으로 돌려. 왜 옆이나 뒤에 있는 선수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아.”
인수는 최전방에 있는 소메도에게 소리쳤다. 최상의 타이밍에 찔러 준 공을 제대로 키핑하지 못하고 버벅대다 수비가 붙었음에도 무리하게 슛을 가져가다 상대에게 역습의 기회를 내주고 말았다. 다행히 페도르가 중간에서 파울로 끊어서 다행이었지 페도르까지 뚫렸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제대로 키핑하지 못했으면 바로 옆에 코레아가 있었으니 코레아를 이용하던지 뒤에 백업을 들어와 준 마린에게 넘겼으면 역습기회를 주지 않아도 됐을 상황이었다.
“미안, 미안. 너무 오랜만에 선발로 나서다 보니 아직 몸이 덜 풀렸나 보네.”
소메도는 자신보다 어린 인수에게 한 소리를 듣더니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것보다 더욱 급한 것은 자신의 진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옆에 코레아와 뒤에서 콜을 한 마린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욕심을 내다 벌어진 일이었다.
“시야를 넓게 가져요. 어차피 기회는 계속 만들어줄 테니.”
인수 역시 소메도의 마음을 알았기에 서둘러 수비 위치로 돌아간 후 상대의 공격을 기다렸다.
“감독님 이대로 지켜봐도 되겠습니까?”
경기는 마린이 중앙으로 파고들며 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공격의 흐림이 좋지 못했다. 포르투갈 리그 벤피카에서 최다골을 넣으며 신성으로 불렸던 소메도였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된 이후 코프에게 밀리고 그전에 있던 데마스에게 밀려 선발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에이전트가 이적을 권유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좀 더 버텨보겠다고 한 것이 벌써 2년째였다. 세도로프 감독하에 눈에 들도록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기회는 줘야지. 자신이 어떤 선수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으련만.”
세도로프는 옆에 다가온 수석코치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 코프가 전성기이긴 했지만 코프를 이적시키고 소메도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소메도가 생각만큼 따라오지 못했고 점점 훈련에도 불성실한 것이 눈에 보였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시키는 걸로 의견을 써서 보내. 좀 더 선발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성장하는 것이 소메도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이제 웨아를 놔주기로 하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웨아도 이적을 준비하도록 도와줘. 아직 전성기이니 웨아 입장에서도 좀 더 뛸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빠르게 코치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카스티야 자원들이나 후베닐의 자원들도 경험만 쌓인다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였다. 물론 그 선수가 자기 생각처럼 클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영입이나 하부리그에서 끌어올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도로프 감독이 코치진들과 활발하게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을 때도 경기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오랜만에 찾아온 역습의 기회를 발로 차버린 후 다시 이어진 공격에서 주니오르는 스로잉으로 메리노에게 넘겼다. 공을 받은 메리노는 그대로 치고 달렸다. 마요르카의 공격진이 압박을 들어왔지만 스텝오버로 상대를 벗겨내고 계속 달렸다.
“여기 앞으로.”
메리노가 드리블로 상대를 벗겨내는 것을 보고 인수가 손을 들었지만, 메리노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전진하는 메리노에 맞추어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라인을 올렸다. 자신의 앞에 수비가 붙어 전진을 막는 것을 보고서야 메리노는 중앙으로 깊숙이 패스했다.
“나이스.”
메리노가 오버래핑하는 속도에 맞추어 중앙으로 파고들던 마린이 공을 받자마자 인수에게 다시 밀어주었다. 수비가 좋다고 이름난 마요르카였지만 오른쪽 사이드에서 이어진 빠른 패스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좌측 수비가 무너진 상황이었기에 중앙수비도 흔들렸고 인수의 전면이 뚫렸다.
골대까지 훤하게 트였기에 인수는 발목에 힘을 주고 슛했다. 낮게 깔리며 날아가는 공. 골키퍼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가랑이를 막아봤지만, 허벅지 안쪽을 맞고 골이 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전반이 끝날 무렵 터진 인수의 골로 전반은 2:0으로 마무리되고 선수단이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
“너희 생각은 하고서 경기하고 있어?”
선수단이 락커에 모이자 세도로프 감독은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2:0으로 앞서가고는 있었지만 실망스러운 경기력. 중간에서 인수와 마린, 사라비아가 전방으로 수없이 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소메도와 코레아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지금 들어간 2골만 하더라도 인수와 마린이 중거리슛으로 터트린 골이었다.
“뒤에서 오버래핑으로 올라왔잖아. 그럼 공격진은 더욱 올라가서 공간을 만들어야 할 거 아냐. 너희들은 수비를 끼고 스크린을 하고 있어? 스크린을 하더라도 중앙에서 치고 들어갈 때 수비가 붙지 못하게 벽을 치는 거지 너희는 너희가 골을 기록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야 할 거 아냐.”
세도로프의 고함은 라커룸을 넘어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오늘 너희가 경기 마무리할 거야. 어떻게든 너희의 폼을 찾아. 너희가 왜 레알 마드리드에 있는지 증명해 보이란 말이야. 알았어?”
“넵. 알겠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 부임한 이후 처음 보는 세도로프 감독의 헤어드라이어 외침에 선수들은 바짝 긴장했다.
“선수들 다독여줘. 어차피 이번 경기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백업해줘야 할 선수들이니까.”
세도로프 감독이 라커룸을 벗어나 밖에 있던 코치진에게 당부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세도로프 감독의 외침 이후 정신을 차렸는지 움직임이 달라졌다. 코레아의 어시스트로 소메도가 골을 터트렸다. 마르요카가 후반 역습으로 1골을 만회하긴 했지만 3:1로 패배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