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클럽 브뤼허를 5:0으로 가볍게 제압한 레알 마드리드는 바로 마드리드로 이동해 세비야와의 리그 10라운드를 치렀다. 세비야와의 홈경기. 레알 마드리드는 인수의 선취골을 시작으로 마린과 코프가 추가골을 기록했다. 세도로프 감독은 발렌시아전부터 연속으로 뛰고 있는 인수와 마린, 모라타를 교체했다.
모라타의 연속경기 골이 중단 된 것은 아깝긴 하지만 A매치기간 중 스페인 대표팀으로 복귀가 예정된 모라타를 위해 교체를 선택했다.
후반 40분이 지나고 세비야의 역습으로 한 골을 내주긴 했지만 3:1로 승리하며 레알 마드리드는 무패의 기록을 계속 써내려갔다.
인수는 A매치 기간을 맞아 휴식을 취하며 인터넷 바둑을 두었다.
“와. 진짜 너무하네. 좀 매너 있게 하던가. 바둑은 매너게임이라고 했는데. 이걸 끝까지 두고 있던 나도 미치긴 했지만.”
상대가 다 진 게임에서 돌을 거두지 않고 60초 초읽기 하나 남겨두고 58초에서 계속 하나씩 두었다. 바둑을 끝까지 다 둔 상태에서 이제 자기 집을 메우기 시작하더니 접속을 끊어버렸다. 이번에 진다면 8단으로 떨어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기에 돌을 던져버리려다가도 참았던 인수였다.
“그냥 치킨이랑 환타 가지고 경기 볼 준비나 할 걸 그랬네.”
레쉬포드 감독이 취임한 이후 첫 경기가 펼쳐지는 날이었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던 인수는 마드리드에서 쉬면서 평가전 두 경기를 모두 볼 생각이었다. 평소 튀긴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던 인수였지만 한국에서 친척들과 축구를 볼 때 먹었던 치킨이 너무 좋아서 그 후부터 축구를 볼 때는 치킨을 준비했다.
긴 중계진의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선발 라인업이 발표됐다. 골키퍼는 예상대로 볼이 섰고 최전방 공격수에는 타켓형 스트라이커인 존이 섰다.
“라이트가 아니라 존이 최전방이네. 확실히 존의 위치는 그게 맞긴 하지.”
존이 세리에에 있을 때는 거의 경기를 챙겨보지 못했었다. 세리에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에는 하이라이트라도 반드시 챙겨보고 있었다. 얇실했던 소튼 시절과는 달리 피지컬을 키우면서 몸싸움도 잘했고 위치선정이나 마무리까지 성장한 모습이었다.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 아직 득점이 6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12개의 도움으로 라리가에서 도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이번 명단에 오르지 못한 로이 힐과 경쟁을 해야겠지만 인수가 보기에는 충분히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유스 때부터 빛을 본 케이스가 아니었기에 연령별 대표팀에 뽑힌 적도 없었던 존이었기에 대표팀에 얼마나 적응을 잘하느냐의 문제가 있었지만.
에스토니아와의 평가전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평소 인수가 서던 중앙공격수에 아르헨티나 대표팀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인수 탓에 선발로 뛰어본 경험이 없었던 아스널의 밥 레비가 맡았다. 아스널에서 중앙미드필드와 윙을 오고 가며 활약하고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 인수와 에디가 있었기에 대표팀에서는 소외를 받고 있었다.
그런 레비가 중앙을 맡으며 좌우에 있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천천히 경기를 풀어나갔다.
한때 유럽 랭킹 20권 안에 있었던 적도 있지만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30위권에서 벗어난 에스토니아였기에 잉글랜드는 일방적인 공세로 흘러갔다. 아직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에스토니아가 워낙 수비적인 태도로 경기에 나섰기에 큰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전반 24분경 레비의 패스를 존이 뒤로 흘려주면서 라이트가 바로 슛으로 이어갔다. 워낙 빠른 슛이었기에 골키퍼가 반응을 할 수 없었지만 하늘의 도우심인지 라이트의 슛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앞으로 크게 튕겨져 나갔다. 리바운드된 공을 잡은 에스토니아의 수비는 그대로 전방으로 걷어냈고 그 공이 운이 좋게도 에스토니아의 공격수 발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치고 나가는 에스토니아의 역습. 호흡을 맞춘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중앙수비수들의 콜이 엇갈렸다. 서로 엇갈린 콜에 재정비를 하는 순간 에스토니아의 역습에 뚫렸고 페널티 지역 바로 앞에서 노마크로 슛했다.
발이 놓인 지점을 본 후 몸을 날린 볼이 끝까지 손가락을 뻗어봤지만 막을 수 없이 선취골을 내주고 말았다. 그대로 무릎을 꿇고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친 볼은 거칠게 일어나 골대 안에 있는 공을 중앙으로 던졌다.
“야. 너희.”
볼은 서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수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어리긴 했지만 수비들도 이제 23, 22의 어린 중앙수비수였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었다면 콜이 엇갈렸어도 상황을 판단하여 잘 대처했겠지만 그거까지 바라기에는 힘들었다.
지난 시즌 소튼이 파바르의 은퇴를 1년 미룬 것도 중앙수비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랄라나 감독의 판단이었다. 이번 시즌 전까지 파바르에게 교육을 받은 린네스와 힐슨이 이번 시즌 중앙수비를 맡고 있었지만 확실히 파바르가 있었을 때와는 경험 부족을 몸소 느꼈던 볼이었다.
“와. 암 걸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네. 진짜 답답해 미치겠군.”
인수는 거칠게 닭다리를 뜯으며 환타를 마셨다. 닭다리의 기름이 환타의 톡 쏘는 느낌과 함께 넘어가며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역시 치킨에는 환타지. 그런데 레쉬포드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인수는 답답한 모습에 다시 환타를 들이키다 방울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힘껏 움켜줬다. 환타 캔이 찌그러지는 느낌에 다시 환타를 하나 더 내왔다.
“아 하루에 하나 이상은 안 먹기로 했는데 참을 수가 없네. 당 떨어진다는 것이 이런 건가?”
다시 잉글랜드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되자 TV로 시선을 돌렸다.
후반 10분 코너킥을 해더로 찍어 내린 존이 동점골을 만든 이후 계속해서 추가점을 노렸지만 득점에 실패했고 에스토니아의 역습도 볼의 선방에 막히면서 동점으로 막을 내렸다.
***
에스토니아와의 평가전 이후 영국의 언론은 평가전 내용으로 뒤덮였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면서도 1점밖에 뽑아내지 못한 공격진과 패스를 원활하게 뿌려주지 못한 레비의 단점, 사이드로 공이 갈 때마다 번번이 수비에 막히는 모습까지 공격진에 대한 총체적 난국을 지적했다. 수비 역시 볼의 선방을 칭찬하는 기사들도 있었지만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번번이 공격수를 놓치는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들이 더 많았다.
모든 언론이 대표팀을 비판하고 있었기에 그 책임을 맡던 레쉬포드의 심정도 말이 아니었지만 다음 날 바로 선수들을 모았다.
“이제 겨우 이틀 호흡을 맞추고 모든 것이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지금 언론들이 하는 이야기 틀린 말은 없어. 결과로 보여준 것이 어제 경기니까. 그러나 다음 체코전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너희들이 얼마나 연습을 하고 호흡을 맞추느냐에 따라 경기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지.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레쉬포드는 이번 소집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소집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충분했다면 평소대로 SAS훈련소를 보내 서로 친해질 시간을 주고 호흡을 맞추어 어제 같은 경기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거칠고 경쟁이 심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은 선수들 중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로 구성했기에 다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번 엔트리에 뽑히지 않은 인수나 에디, 핸더슨, 케이힐 등 주전들이 모두 빠져 있는 명단이었다. 지금 시험하고 있는 선수들과 기존의 선수들이 합류해서 호흡을 맞춘다면 다가올 유로 2040에서 좋은 결과를 낼 자신도 있었다.
“지금 너희가 뽑힌 명단이 최종명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저번 하인스가 인터뷰를 했듯이 너희가 뽑힌 이유는 세대교체를 위해서야. 자기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옆에 있는 동료와 함께 하는 것을 인지하는 거야. 너희가 지금까지 배워 온 것도 11명이 하는 것이니까. ‘나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버려. 알겠나?”
“네.”
선수들은 레쉬포드의 다그침에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높아만 보였던 삼사자 유니폼이었다. 세대교체를 위해 뽑힌 만큼 자리를 잡는다면 자신들의 폼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계속해서 뽑힐 확률이 높았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 않은 맘은 선수들도 모두 똑같았다.
***
A매치 두 번째 평가전의 상대는 체코였다. 한때 잉글랜드보다 피파 랭킹이 높았던 적이 있던 체코였지만 이제는 유로에서도 B포트에 들 정도로 전력이 약화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잉글랜드가 무시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그런 체코를 만나 잉글랜드의 선수들은 지난 에스토니아전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2:1로 승리했지만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지난 에스토니아전과 비교해도 나아지지 않은 수비진이 문제였다. 레쉬포드 감독과 수석코치와 수비코치는 당연히 수비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수들은 어때?”
핸더슨이 있긴 했지만 핸더슨과 호흡을 맞출 최종수비수가 필요했다. 핸더슨이 피지컬이 좋은 반면 순발력과 스피드가 떨어졌기에 그 점을 보완해 줄 자원만 찾다 보니 이번 선발은 실패라고 레쉬포드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수비만큼은 호흡이 정말 중요합니다. 콜 플레이도 중요하고요. 핸더슨을 올려 핸더슨과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핸더슨의 체력이 떨어졌을 때 교체할 선수도 필요하고요.”
핸더슨이 폼이 한창 좋을 28살이긴 했지만 소속된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한 시즌에 60경기 이상을 선발로 출전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드필더진에 비해 체력소모가 적은 중앙수비수라고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60경기 이상을 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핸더슨을 위해서 A매치 휴식기를 챙겨주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우선 다음 A매치에는 핸더슨을 부르기로 하죠. 그럼 나머지 중앙수비수를 번갈아 가면서 시험해 보고 잉스와 콜까지 모두 불러 수비진을 구축합시다.”
“잉스와 콜까지 모두 부른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불만을 표하겠는데요.”
아스톤빌라의 오른쪽 윙백이었던 잉스는 지난 이적 기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주전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기에 주전 수비수를 모두 대표팀에 보낸다면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런 팀이 맨유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시티나 리버풀에서도 차출이 많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선 수비진은 기존 대표팀 주전들과 함께 선발하죠.”
“알겠습니다.”
대표팀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2주간 휴식을 취하던 인수는 오랜만에 베르나베우 VIP실로 들어섰다. 레알 마드리드는 1부 리그의 시드 자격으로 코파 델 레이를 32강부터 시작하게 됐다. 상대는 4부 리그인 UD멜리냐로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 붙어있는 자치령 멜리냐에 있는 팀이었다. 32강까지 힘들게 올라오긴 했지만 워낙 체급 차이가 큰 두 팀이었기에 누구나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1군 선수들 대부분이 A매치 관계로 팀을 떠나 있었지만 세도로프 감독은 전원 카스티야와 후베닐에 있는 선수들을 선발해 팀을 꾸려 경기에 나섰다. 인수 역시 그 경기를 보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수들과 VIP실에서 만났다.
“좀 쉬었다고 얼굴이 반질반질한데. 쉬는 동안 뭐 했어?”
“그러는 하인스는요. 다른 선수들은 아직 안 왔어요?”
“아직 안 왔네. 경기나 보고 있자.”
“꼬맹이 둘이서 뭐 하고 있나. 경기는 재미있어?”
이미 경기가 시작되어 전반 20분이 지나가고 있을 때야 선수들이 하나둘 VIP실로 들어왔다.
“왜 이제 왔어요. 경기 정말 재미있는데요.”
어떻게든 뚫으려는 레알 마드리드와 어떻게든 막으려는 UD멜리냐. 경기는 이미 2:0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앞서며 추가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UD멜리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레알 마드리드를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경기 끝나고 감독님께 인사나 제대로 하면 되지. 오늘 소집한 이유도 있을 거고.”
“여기서 좀 더 있다가 내려가요.”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었을 때 5:0 레알 마드리드의 완승으로 끝나고 선수들은 세도로프 감독이 있는 감독실로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