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클럽 브뤼허의 홈구장인 얀 블레이덜 스타디온에 도착한 인수에게 홍보팀 직원이 찾아왔다.
“저기 하인스. 오늘 영국에서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 있는데 인터뷰 괜찮겠어?”
“영국에서요? 아, 어제 일 때문인가?”
어제 영국의 모든 언론의 포커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명단에 맞춰졌다. 레쉬포드 감독이 선임될 때도 이렇게까지 집중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국가대표 명단은 그 이슈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언론의 포커스는 대표팀 명단에 인수가 없다는 것에 맞춰졌고 때마침 스페인리그에서 뛰던 인수가 챔피언스리그 일정 때문에 벨기에로 이동했다. 스페인까지도 3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벨기에는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기에 영국의 모든 언론들이 벨기에로 기자들을 몰려들었다. 벨기에에 모인 영국의 언론들은 레알 마드리드 홍보팀에 인터뷰를 요청했고 홍보팀 직원이 인수를 찾아온 배경이었다.
“당장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 인터뷰 일정을 경기 끝난 이후로 잡고 싶지만 일정상 바로 마드리드로 출발해야 해서 시간이 안 될 거 같은데.”
“제가 꼭 인터뷰를 해야 하나요?”
“인터뷰를 꼭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네 판단에 맡길 뿐이지.”
인수는 홍보팀의 대답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소튼에 레쉬포드가 이적하며 경기 내적인 부분도 많이 가르쳐줬지만 그것보다 더 세심하게 가르쳐준 것이 언론을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레쉬포드도 어릴 적부터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던 만큼 언론의 집중을 많이 받았고 부상으로 재활을 하고 있을 때, 복귀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튼에서 뛰었을 때까지 여러 유형의 언론을 상대해봤었다. 그런 경험을 모두 인수와 에디에게 가르쳐준 것이 레쉬포드였다.
언론을 가까이할 필요도 없지만 멀리할 필요도 없다는 말. 자신이 잘할 때는 칭찬을 하지만 안 좋은 모습을 보일 때나 부상을 당하면 자신의 멘탈을 흔드는 언론이 생기니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었다.
“할게요. 지금 경기 시작 전 5시간 전이니 딱 30분만 한다고 전해주세요.”
“알았어. 너 경기 준비에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만 한다고 전해줄게. 대신 처음부터 질문이 독할 수 있으니 미리 답변 생각해.”
홍보팀 직원은 인수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시키고 영국 언론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
“하인스 오랜만이죠.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 간단히 하기로 할게요. 이번 잉글랜드 국가대표 명단을 발표했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가장 먼저 질문한 기자는 BBC의 기자로 인수가 유스 때부터 친분이 있던 베테랑 기자였다. 소튼에서 데뷔할 때부터 가장 좋은 기사를 써준 기자였던 만큼 질문의 말투도 부드러웠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레쉬포드 감독님이 먼저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마 다른 선수들에게 확인해보셨겠지만 다른 선수들도 레쉬포드 감독님이 먼저 전화를 해 알려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선수명단은 발표전에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제외된 선수들의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인수의 대답을 들은 기자들은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그중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기자들을 찾아 발언권을 주었다.
“레쉬포드 감독은 명단을 발표하면서 세대교체를 이야기했는데 하인스는 세대교체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선수입니다.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을 맞출 시간도 필요할 텐데 1년도 남지 않은 유로 대회까지 호흡이 맞춰질 것이라 생각합니까?”
“어제 발표된 명단을 저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이미 다 상대해본 선수들이었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에디나 다른 선수들은 이미 연령별 대표에서 호흡을 맞춰봤다고 하더군요. 레쉬포드 감독님이 잘 생각해서 선수를 선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수의 말이 끝나자 기자들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몇몇 언론에서는 대표팀에 나서지 못할 부상을 당했다고 전한 곳도 있는데요.”
인수가 명단에서 빠지자 황색언론들은 앞다투어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를 뿌려댔다. 그중 가장 악질적인 것은 인수와 레이의 불화설이었고 이는 랭커리지가 빠르게 대처하며 사라졌다. 다른 것은 인수의 부상설이었다. 지난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고 풀타임을 뛴 후 살짝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그걸 가지고 부상을 당했다고 전한 언론들도 있었다.
“부상이 있었으면 이번 브뤼허전에 뛰지 못했겠죠. 세도로프 감독님께서 브뤼허전에 선발로 내세우신 것은 제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에이전시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한 언론들을 상대로 대처를 하고 있으니 금방 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국에서 넘어온 기자들은 모두 부상을 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유스 시절 발목에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고 지난 시즌 중반 이후부터 출전하면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는 것도 걸리는 점이었다.
물론 브링이 영국에서 인터뷰를 가지며 인수가 60경기 이상 치를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부상이란 것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선발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이번 명단에는 소튼에서 뛸 때 같이 호흡을 맞췄던 볼과 존이 있는데요.”
“레쉬포드 감독님이 저에게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이 확정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A매치에 선발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A매치에도 선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볼은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자질을 가진 골키퍼입니다. 분명 대표팀에서도 잘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존은 어떻게 대표팀에 선발됐는지 몰라도 대표팀에서보다 리그에서 먼저 만나겠죠. 각오하라고 전해주시죠.”
기자들은 인수가 친한 존을 가지고 농담을 던지자 웃음이 터졌다. 부드러운 분위기로 변한 기자단은 이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생활을 묻기 시작했다.
“하인스.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가 총 11게임을 치러왔습니다. 아직까지 무패로 순항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 성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감독은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욕심은 있습니다. 이번 시즌 시작 전 어느 한 블로거가 세계 최고의 팀인 레알 마드리드가 정작 트레블은 하지 못했다는 말을 했더군요. 이번 시즌은 모르겠지만 제가 레알 마드리드에 있을 때 꼭 트레블을 해보고 싶은 욕망은 있습니다.”
기자들은 인수가 트레블을 이야기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20세기 최고의 팀이라 불렸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팀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트레블 경험은 없었다. 그런 트레블을 꿈꾸며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한 감독이나 선수들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기에 기자들도 모두 인수의 말을 인정했다.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이 끝나고 17라운드에 존이 뛰고 있는 바르셀로나를 만나게 됩니다. 엘 클라시코에서 존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그 첫 경기에서 코룸을 만났었죠. 그때 제가 코룸에게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라리가 팀에 간 것을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를 보여드렸죠. 존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라리가팀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인수의 당당한 말에 기자들은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기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자회견실을 빠져나온 인수는 기자회견에 도움을 준 클럽 브뤼허의 관계자들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라커룸으로 돌아왔다.
“와 역시 잉글랜드의 에이스군. 기자회견실이 앉을 자리가 없이 서 있는 기자가 더 많았다며.”
클럽 브뤼허가 벨기에의 인기구단이긴 했지만 재정적인 한계 탓에 규모가 큰 경기장은 아니었다. 기자실 역시 작았기에 영국에서 온 기자들을 모두 수용하기 부족해 서 있는 기자들도 빽빽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야기가 레알 마드리드의 라커룸까지 퍼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에이스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와 이제 지입으로 에이스라고 말하고 다니네. 모라타. 하인스 한번 밟아줘야 하는 거 아냐?”
“아무리 에이스라고 하지만 이제 건방지잖아. 주장이 한마디 해야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인수의 장난스러운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꼬투리를 잡아 인수를 놀렸다.
“자자. 그만하고 오늘 경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고. 클럽 브뤼허가 약팀이라고 하지만 변수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지.”
클럽 브뤼허가 약팀이라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도 코로나가 막 시작됐던 2019-20시즌에 브뤼허와 같은 조가 되며 조별리그에서 고춧가루를 제대로 맞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2위로 올라가긴 했지만 정말 힘들게 올라갔던 경험이 있었기에 세도로프 감독은 정신교육을 철저하게 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경기의 스토리를 머릿속에 그려봐.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너희가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 이름에 어울릴 수 있는지 말이야.”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이 눈을 감고 경기를 그려나가자 라커룸을 벗어났다. 자신이 할 일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역량이라 믿었다.
***
레알 마드리드와 클럽 브뤼허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 레알 마드리드는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꺼내 들었고 클럽 브뤼허 역시 마찬가지로 레알 마드리드에 맞추어 라인업을 꺼내 들었다.
코프를 선두로 모라타와 소아레스, 인수, 마린이 공격진을 형성하고 있었고 수비진과 공격진을 연결하는 고리로 누네스가 선발로 출전했다. 브뤼허의 공격의 시작점인 뫼니에가 드리블과 몸싸움에 능한 선수였기에 대인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누네스를 내보냈다. 수비진에는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를 내보내고 후베이루와 웨아를 선발로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쳐나갈 것을 예고했다.
클럽 브뤼허는 19-20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동점을 기록했던 대로 수비적으로 선수를 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 인수는 마린을 앞으로 내보내고 뒤에서 경기를 조율해나갔다. 초반 강한 압박수비를 즐겨 하는 브뤼허였기에 키핑이 능한 인수가 공격을 조율하는 것이 세도로프 감독의 생각이었다. 더욱이 압박이 들어오면 돌파도 가능했기에 패널티 지역으로 바로 찔러줄 수 있는 인수가 조율을 담당했다.
“그만 내주지.”
“뺏어가 보시든지. 그냥 내달라고 하면 누가 내주겠어.”
인수는 상대 수비수와 어깨를 부딪치며 발바닥으로 공을 굴렸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수비가 언제든 달려들어 공을 뺏을 움직임을 보였기에 주변의 선수들도 신경 써야 했다.
“하인스.”
뒤에서 오버래핑해서 들어온 웨아가 인수를 부르자 발바닥으로 굴리던 공을 그대로 앞으로 옮기며 패스하고 상대가 밀치는 힘을 이용해 돌아 전방으로 나섰다. 인수가 보낸 공을 받은 웨아는 인수가 상대 선수를 제친 것을 보고 바로 공을 리턴한 후 소아레스를 앞질러 깊숙이 파고들었다.
“사람을 봐. 뭐해.”
브뤼허의 골키퍼는 웨아가 파고드는 것을 보고 수비들에게 소리 질렀지만 인수의 선택은 사이드가 아닌 중앙이었다. 마린과 2:1 패스를 통해 자신을 마크하던 선수를 따돌린 인수는 바로 중앙으로 공을 밀었다.
인수가 파고들자 코프를 상대하던 수비수가 인수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고 인수의 패스에 멈칫한 순간 코프가 바로 슛으로 이어갔다.
골키퍼가 손을 댈 수 없는 위치로 향한 공은 전반 1분 만에 레알 마드리드에 선취점을 안겨주었고 이번에는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듯 더욱 클럽 브뤼허를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