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37화 (137/200)

137화

코치들과 함께 선수단을 구성한 레쉬포드는 탁자 한가운데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가 다시 되돌리기를 계속했다.

“감독님 그래도 빨리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중에 하인스와 친분이 있는 건 감독님뿐이지 않습니까? 에이전트를 통해도 되긴 하겠지만 직접 전해야 오해하지 않지 않겠습니까?”

선수단을 구성하며 레쉬포드는 기존에 대표팀에 소속된 선수들 대신 새로운 선수들을 찾고자 했다. 특히 지난 올림픽 이후 크게 성장한 어린 선수들을 대표팀에 탑승시키며 새로운 팀을 만들고자 했다. 그 와중에 빠진 기존의 대표팀 선수들에게 전부 전화를 해 안심시키고 인수만 남은 차례였다.

코치들의 채근에 레쉬포드는 핸드폰을 집어 인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착신음이 들린 후 인수가 전화를 받았다.

“레쉬포드. 오랜만이네요. 대표팀 감독이 됐다면서요, 축하해요. 이제 이 주 후면 감독님으로 불러야 하나요?”

인수는 오랜만에 걸려온 레쉬포드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지난 링컨시티가 리그1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전화를 한 이후 처음이었다. 에디에게 듣기로는 챔피언십에서도 잘 나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에 전화를 하려다 바쁠 것 같아 미뤘던 인수였다.

“나야 바쁘게 지내지. 어제 발렌시아전에서도 날아다니던데. 시즌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2번째 해트트릭이야.”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 클럽 브뤼허전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는 발렌시아 원정을 떠났다. 발렌시아와 맞붙은 레알 마드리드는 초반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코프의 단독드리블에 이어진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전반 5분도 되지 않아 서로 한 골씩 주고받은 양 팀은 난타전이 되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전반전은 1:1 동점으로 끝났다.

후반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으로 시작된 공격은 인수의 중거리슛으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후반 15분 동안 발렌시아를 몰아붙인 레알 마드리드는 인수가 3골을 몰아넣으며 4:1까지 앞서가며 발렌시아를 궁지로 몰았다.

발렌시아도 홈에서 허무하게 질 수 없었기에 바로 반격을 이어가며 2골을 뽑아내며 추격을 시작했다.

후반 30분 4:3 상황에서 인수의 단독 드리블로 공간을 만들어내며 좌측에서 중앙으로 침투한 모라타에게 패스를 해주었다. 수비를 한 명 앞에 둔 모라타는 짧은 드리블로 수비와 골키퍼를 동시에 속이며 골을 기록했고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의 양강 대결은 5:3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끝났다.

리그 첫 번째 경기인 헤타페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후 9라운드 발렌시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순위에서 압도적으로 치고 나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던데요. 코프와 팀 동료들이 많이 양보해준 것도 있고요.”

“우크라이나 욕심쟁이가 양보라고?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너라면 그럴 거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대표팀 명단 다 짜고 연락준 거죠?”

세비아와의 리그 10라운드가 끝나면 2주간의 A매치 휴식기가 주어졌다. 그 도중 코파델레이 32강 1차전이 있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는 4부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 소속된 UD 야네라였다. 세도로프 감독은 A매치에 출전할 선수들을 모두 제외하고 카스티야 선수들로 상대할 예정이었다.

인수는 오랜만에 대표팀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명단? 명단이야 다 만들었지.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승선할 거고. 발표는 내일 협회에서 발표할 거야.”

“오 새로운 얼굴들 많아지겠네요. 혹시 제가 알만한 사람 추가된 거 있어요?”

처음 레쉬포드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면 상당히 많은 엔트리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고해왔다. 지금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라 하더라도 경기에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새로운 선수로 교체하며 쇄신을 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의미로 이번 평가전 두 게임은 레쉬포드 감독이 추구할 축구가 될 것이라 보는 이들이 많았다.

“새로운 인물이 많긴 하지. 네가 알 만한 사람도 있고.”

인수는 대답하지 않고 레쉬포드의 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발표하기 전까지 비밀을 유지하려면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이고 미리 알려주려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됐다.

“네가 알만한 선수라면 프레스턴 볼이 합류할 거고. 존도 합류할 거야.”

오랫동안 고민했던 주전 골키퍼는 아직 어리긴 하지만 착실하게 골키퍼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소튼의 프레스턴 볼을 낙점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세리에에서 좋은 활약을 하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도 벌써 7골이나 터트린 타켓형 스트라이커인 존도 합류했다. 타켓형 스트라이커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하지만 이미 검증된 존이었기에 새로운 전술을 시험해볼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었다.

물론 타켓형 스트라이커의 머리에 정확히 공을 올려줄 선수가 필요했는데 이미 잉글랜드에는 중앙에는 인수가 사이드에는 에디와 벨콕이 있었다. 정확한 크로스가 있는 세 명이라면 타켓형 스트라이커의 머리에 정확히 공을 올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와. 볼하고 존이요? 또 누가 있는데요?”

“정확한 명단은 내일 발표될 브리핑을 보고 오늘은 네게 전해줄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

인수는 내심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을 맡길 것인가 하는 기대가 있었다. 원래 주장이었던 제임스 케인이 노쇠화되며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케인의 은퇴로 새로운 주장을 뽑아야 했는데 인수가 그 후보에 올라있었다.

“내일 발표될 명단에 네가 없을 거야.”

“네?”

인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내일 발표될 대표팀 명단에 네가 없을 거야. 당연히 선수 차출 공문도 가지 않을 거고. 너만 제외된 것이 아니라 에디와 핸더슨, 케이힐, 매슈도 포함되지 않았어.”

“아니. 지금 말한 선수들은 모두 대표팀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지 않습니까?”

인수는 레쉬포드가 말한 선수들의 이름을 듣고 의아해했다. 세대교체가 차근차근 진행되며 그 세대교체의 축으로 지목되던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을 모두 제외한다는 것은 레쉬포드에게 다른 생각이 있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세대교체가 시급한 대표팀이었잖아. 브리드핏 수석코치가 그 의견을 제시했고 내가 수용했어. 새로운 선수들을 시험해보고 후반기가 되면 정식으로 주전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보면서 내년 유로를 준비하려 해.”

레쉬포드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인수에게 전했다. 누가 뭐래도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의 기둥은 인수였다. 그런 인수를 이해시켜야 다른 선수들도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럼 전 후반기까지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는 건가요?”

“그렇지. 너뿐만 아니라 계획대로라면 에디와 케이힐까지는 후반기에 합류하게 만들 거야.”

잉글랜드의 유로2040의 우승을 위해 레쉬포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감독이 되자마자 주전들을 모두 제외하고 팀을 만든다면 새로 감독으로 선임된 자신이 모든 욕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 욕을 감당하면서 세대교체와 성적까지 모두 잡으려면 과감한 개혁이 필요했다.

레쉬포드의 말을 이해한 인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이번 시즌 네가 뛰어야 할 경기가 60경기가 넘어.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고 바로 이어질 유로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줘야 해. 그러니까 대표팀 명단에 대해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

“알겠어요. 그럼 A매치 기간 동안 휴식이나 취해야겠어요. 발렌시아와 클럽 브뤼허, 세비야전까지 3연전을 모두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너무 무리해서 부상 당하지 않게 조심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하겠지만.”

“알았어요. 고생해요. 스페인에 오면 꼭 마드리드도 들리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상 조심해.”

레쉬포드는 인수에게 부상을 조심하라는 말로 전화 통화를 끊었다.

“휴. 어렵네.”

레쉬포드는 전화를 끊고 몸을 의자에 기댔다. 그래도 이제 인수를 이해시켰으니 마지막 선수까지 이해시켰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명단 발표만 남았네요. 내일은 또 언론을 상대해야 할 텐데 좀 쉬시죠.”

“코치님들도 수고하셨어요. 쉬고 나서 내일 보죠. 내일은 브리드핏 수석코치와 저만 인터뷰하겠지만 나머지 코치들도 선발된 선수들의 컨디션을 계속해서 살펴주세요. 원래 주전이었던 선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레쉬포드는 그 말을 뒤로 회의실을 벗어나 호텔로 올라갔다.

***

다음날 잉글랜드 대표팀 명단이 발표가 나자 모든 언론이 충격에 휩싸였다. 당연히 선발되리라 생각했던 선수들이 모두 뽑히지 못했고 25명의 선수가 전혀 새로운 선수들뿐이었다. 특히 평균연령은 23.8세에 불과할 정도로 올림픽 대표팀이 아닌가 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레쉬포드 감독님. 선수 연령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는데 국제대회 경험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닌가요?”

“이번 선발된 선수들 대부분이 연령별 대표팀을 경험한 선수들입니다. 국제경기 경험이 없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레쉬포드는 이미 기자들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 연습한 대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골키퍼로 선정된 프레스턴 볼은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지도 않은 자원입니다. 리그에서는 잘해주고 있긴 하지만 국제경기에서도 잘해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볼은 이미 리그 최정상에 있는 골키퍼입니다. 대표팀에서 그 능력을 발현해 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전이었던 선수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차근차근 말씀드리죠. 우선은 이번에 선발된 선수들 위주로 경기를 치러나갈 생각입니다.”

레쉬포드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회자는 다음 질문자로 협회와 미리 짠 기자를 지목했다. 처음 레쉬포드와 코치진이 넘겨준 선수명단을 보고 엄청난 논란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제일 먼저 취한 조치가 기자를 섭외한 일이었다.

“이번 선수명단은 전적으로 감독님과 코치진의 의중으로 선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수선발의 기준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지난 월드컵 이후 계속해서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는 대표팀이었습니다. 황금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선수들을 시험해볼 무대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A매치가 시험대는 아니지만 일 년 동안 경험치를 많이 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A매치 상대가 에스토니아와 체코입니다. 두 팀 모두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승리하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레쉬포드는 지목도 하지 않았는데 연속으로 질문한 기자의 얼굴을 노려봤다. 선수 생활이 길었던 만큼 기자들을 거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질문한 기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대표팀 선발명단을 발표하는 자리이니만큼 각 언론을 대표하는 기자들이 참석했지만 유일하게 처음 보는 기자가 끼어있었다.

“무조건 이긴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대표팀이니만큼 부끄럽지 않은 경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레쉬포드의 답변이 끝나자 사회자는 서둘러 기자회견을 종료했고 레쉬포드와 드리드핏은 기자회견장을 벗어났다.

“마지막 기자 얼굴 본 적이 있나요?”

레쉬포드는 연령별 대표팀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드리드핏에게 물었다. 오랜 대표팀 생활을 했고 클럽 생활과 감독 생활을 하며 많은 기자를 만나봤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대표팀을 전담마크하는 기자라면 자신보다는 브리드핏이 더 잘 알리라 생각했다.

“협회를 드나드는 기자입니다. 이사진과 친분이 깊은 걸로 알고 있고요. 아마 질문지 자체를 협회 이사진이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전권을 맡긴다고 했으면서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오네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레쉬포드는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 램파드에게 연락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대놓고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을 추천한 사람이었기에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 통화에서 감독이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이기도 했지만, 협회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야 팀을 장악할 수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링컨시티에 있을 때는 보드진이 모든 권한을 주었고 전격적으로 밀어주었기에 낼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대표팀은 알력다툼이 많을 거라는 말에 각오하긴 했지만 노골적으로 기자들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초전부터 밀려버린 셈이네요. 그래도 버텨야죠.”

“우리까지 밀려나 버리면 방향타를 잃은 난파선이 될 뿐이니까요. 힘내죠.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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