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도대체 한 달이나 시간을 끌 일입니까? 1년도 안 남았어요. 결론을 내야 할 거 아닙니까?”
잉글랜드 축구협회 회의실은 오늘도 똑같은 주제로 연일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시간은 두 달 전 프리미어리그가 시작되기 전 영국의 유명 황색지인 더 썬에서 산체스의 감독의 불륜을 보도했다. 처음 더 썬이 또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보도했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조금 후 산체스 감독이 지목된 여성과 함께 잠적하며 기정사실화되어 버렸다. 처음 산체스 감독을 옹호하던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산체스 감독이 잠적했음에도 끝까지 연락을 취하려고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산체스를 감독을 욕하던 여론은 축구협회를 욕하는 쪽으로 변질됐다.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4강까지 올려놓은 산체스 감독. 월드컵이 끝난 이후 4년 계약을 다시 했기에 대표팀 감독의 걱정을 잊고 마음 편하게 지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산체스 감독이 잠적하자 그제야 서로 패를 나누어 싸우고 있었다.
“아니 산체스 감독과 4년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 아닙니까. A매치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으니 에이전트하고 계속 연락하며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에이전트도 산체스 감독과 연락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데 어떻게 더 기다립니까. 그냥 산체스 감독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걸고 다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이번 유로에서는 우리 잉글랜드가 왜 축구의 종주국임을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시간이 남은 것이 아니에요. 법무팀에 당장 계약서 확인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산체스 감독이 잠적했을 때에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과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반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다만 산체스 감독과 계약을 했던 이사들이 끝까지 반대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니 계약서를 왜 검토를 합니까? 우리가 합리적으로 계약을 체결했을 뿐이에요. 월드컵 성적을 바탕으로 그보다 나은 대안이 있었습니까?”
“아니 그래도 계약서를 검토해야 손해배상 청구를 할 거 아닙니까? 혹시 그 부분에 대한 뒷계약이 따로 있었던 겁니까?”
새로운 감독을 요구하는 쪽에서 손해배상을 물고 늘어지자 계약을 체결했던 이사진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산체스 감독의 요구로 계약도중 해지시 손해배상금액을 최소로 잡은 계약이 따로 존재했다. 그걸 감추기 위해서라도 산체스 감독을 계속 요구하고 있었는데 당장 한 달밖에 남지 않은 A매치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산체스 감독이 여론을 등에 업고 있었고 협회에서도 빨리 계약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산체스 감독에게 손해배상청구하는 절차를 미루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합시다. 어떤 감독이 좋겠소?”
산체스 감독을 기다리자고 했던 이사들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자 마음이 급한 다른 이사들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로 넘어갔다.
“당장 현실 가능성이 높은 감독 명단을 준비해봤습니다. 다들 보시죠.”
이미 새로운 감독선임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접촉 가능한 감독 명단을 준비한 상태였는지라 바로 이사들에게 명단을 넘겨주었다.
10여 명의 감독 프로필과 경력이 적힌 서류를 넘겨보던 이사들은 소리 나게 서류를 탁자 위로 던졌다.
“이게 최선의 명단입니까? 아무리 시즌이 시작됐고 각국 감독들이 선임된 이후라고 하지만 우리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입니다. 적어도 어느 정도 명성은 있어야죠.”
“말씀하신 대로 이미 A급 감독들은 자리를 잡은 상황입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감독들과 연락을 해보았지만 모두 거절했고요.”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탐은 났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였다. 산체스 감독이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상태였고 유로 대회에서는 우승을 노리고 있는 팀이었다. 그 자리에 들어가서 우승은커녕 일찍 탈락하게 된다면 자신의 명성을 깎아 먹는 일밖에 되지 않았기에 모두 거절당했다.
“차라리 쉬고 있는 램파드 감독을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벌써 4년째 런던에서 칩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전부터 은퇴를 입에 달고 살았던 램파드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잉글랜드 유소년대표팀 감독을 사임했다. 그 후 자신의 고향 집으로 들어간 후 축구계는 물론이고 언론과의 인터뷰도 일절 응하지 않은 채 이따금 파파라치 사진으로만 모습이 잡혔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사임하면서 더는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히 접촉을 했다가 우리 협회가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아니 이제 60살밖에 되지 않은 램파드가 4년 전부터 쉬고 있다는 것이 말이 돼? 또래의 제라드도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보다 더 위인 감독들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데 말이야.”
“아니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우리 협회보고 꼰대협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 좀 가려서 하시죠.”
“아니 나이도 어린놈이 이사 달았다고 가르치려 하네.”
“나이가 여기서 왜 나옵니까. 협회를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아닙니까. 그러니까 외부에서 우리 협회를 보고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네가 권력을 잡고 싶어서 세대교체를 이야기해? 당장 협회에서 떠날 것은 너희 놈들이잖아.”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회의는 이번에도 별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서로 싸운 채 마무리됐다.
외부에서는 협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각자들의 입장만 외부에 전한 채 새로운 감독 선임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런던에 칩거하고 있던 램파드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
“여론은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으로 오셔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미 전 이전 세대의 감독입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젊은 감독이 선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앞에 선 램파드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편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이미 더 이상 감독직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에 언론들도 램파드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젊은 감독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겁니까?”
“우리 잉글랜드에는 많은 젊은 감독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슈퍼스타 출신도 있고 축구 경력이 없는 감독도 있지만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협회에서도 본명 눈여겨본 감독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렘파드의 인터뷰는 간단하게 끝났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여론은 램파드의 말을 토대로 감독을 물색했다.
결국 두 명의 후보로 압축됐고 언론들은 그 두 명에 대해 집중조명하기 시작했다.
한 명은 잉글랜드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부상으로 인해 은퇴한 레쉬포드가 한 명으로 지목됐다.
소튼에서 부상을 당한 후 링컨 시티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즌을 보낸 후 다음 시즌에 링컨 시티를 리그1에서 우승을 시키며 팀을 60년 만에 챔피언쉽에 진출시켰다. 그에 그치지 않고 16-17 FA컵에 이어 팀 두 번째로 8강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시즌이 끝난 후 챔피언쉽 팀은 물론이고 프리미어리그팀에서도 감독 오퍼가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링컨시티를 챔피언쉽에서 감독을 하며 팀을 선두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 레쉬포드가 슈퍼스타 출신의 젊은 감독으로 지목을 받았다면 다른 이는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 감독인 마이클 브리드핏이었다.
램파드 사임 이후 U-15의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지금은 U-23까지 총괄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대학에서 축구와 관련한 논문으로 시작하여 전술에 있어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더 경험이 쌓인다면 국가대표 감독직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레쉬포드와 브리드핏이 후보로 물망이 되며 협회에서도 더 이상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램파드가 이야기한 감독이 두 중에 있는 것은 확실해?”
“램파드 감독과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했던 것을 토대로 보면 두 명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럼 뭐 하고 있어? 빨리 접촉해봐. 이제 A매치에 선발할 선수들도 확정되지 않았잖아. 바로 선임해서 선수선발부터 시작해야지.”
“알겠습니다.”
마땅한 대체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램파드가 이야기한 감독은 협회에서도 면피가 될 수 있는 카드였다. 유로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협회에서 선정한 감독이 아니라 램파드가 추천한 감독을 선임해서 그렇다는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3일 만에 새로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레쉬포드가 선임되었다.
링컨 시티와의 계약이 남아있긴 했지만 링컨 시티에서도 대의를 위해 레쉬포드를 보내주었다.
감독직에 오른 레쉬포드는 국가대표 코치진을 자신의 사람들로 구성하며 자신과 같이 후보로 오른 브리드핏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며 램파드가 말한 두 명의 감독이 모두 대표팀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코치진을 모두 구성한 레쉬포드는 협회의 지원을 받아 바로 국가대표 선수단 구성을 시작했다.
“우선 주전 골키퍼를 선임해야 합니다. 케인의 노쇠화로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고 2번째 골키퍼였던 프레스턴이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골키퍼가 급합니다.”
“골키퍼도 급하겠지만 수비진도 급합니다. 핸더슨과 포든이 자기 폼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포든은 벌써 34살입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체 자원이 시급합니다. 좌우 윙백이야 우리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콜과 잉스가 있으니 문제가 없지만 중앙수비수가 급합니다.”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나섰던 선수 중 수비라인은 노쇠화로 하나둘 은퇴를 한 이후였다. 그 후 여러 카드를 사용해 보았지만 대표팀 경기를 보는 이들이 만족할만한 카드는 아니었다.
인수를 대표하여 막강한 공격진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실점을 하더라도 그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며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팀이었기에 도드라지지 않았을 뿐 수비라인의 구성은 시급한 문제였다.
“골키퍼 자원에 대한 자료는 가지고 있겠지? 누가 후보 명단에 올라 있지?”
레쉬포드가 감독을 맡긴 했지만 모든 선수를 파악하고 있기에는 무리였기에 코치들이 선수들을 살피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레쉬포드는 골키퍼코치가 건네준 자료를 빠르게 넘기다 두 번째 장에서 손이 멈췄다.
자신과 함께 뛴 적도 있는 프레스턴 볼에 대한 평가가 가장 좋았다. 3시즌째 소튼의 골문을 책임지며 약한 수비력에도 불구하고 소튼이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빅클럽에서 오퍼가 있었지만 소튼에 계속 남으며 슈퍼세이브를 선보이고 있었다.
“프레스턴 볼이 주전골키퍼 자원이라고?”
“어떻게 구성하든 전혀 새로운 조합의 수비진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럼 골키퍼가 든든해야 하는데 수비조율면에서도 선방면에서도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따른 후보는?”
“맨체스터시티의 두 번째 골키퍼인 애플턴과 버밍햄의 네이츠, 리즈 유나이티드의 홉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약점이 분명한 만큼 옵션이 될 수 있을 뿐 주전골키퍼로는 무리입니다.”
“골키퍼는 좀 더 고민해보기로 하고. 수비명단도 넘겨줘.”
레쉬포드와 프리드핏을 비롯한 코치진은 3일 밤을 새워가며 다음 달에 있을 평가전 출전 선수들의 명단을 완성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