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경기 속도를 조절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전반이었는데도 공수가 빠르게 변하니 선수들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특히나 중앙에 위치하며 공격을 조율하던 마린이 수비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전반이었지만 벌써 8km 넘게 뛰었다.
지난 AS로마전에서 후반에 교체해서 체력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경기 시간을 가져가는 것은 선수의 성장에도 좋지 않았다.
“하프타임에 누네스 준비시켜. 모라타는 완전히 회복된 거지?”
세도로프 감독은 모라타 출전 타이밍을 잡을 때 무난하게 이기고 있을 때를 예상했었다.
“베테랑이지 않습니까. 유스 때를 포함하면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20년 넘게 뛰고 있는 선수입니다. 우리가 확인할 필요도 없더군요.”
“좋아. 그러면 후반 15분에 사라비아와 교체할 거니 사라비아에게 공격적으로 나가라고 해. 체력을 아끼지 말라고 하고.”
세도로프 감독은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수석코치에게 지시했다.
수석코치는 세도로프 감독의 말을 듣고 바로 벤치로 돌아가 누네스와 모라타에게 감독의 말을 전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벤치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에도 레알 마드리드와 AT마드리드의 공방전은 계속됐다.
“야. 막아. 놓치지 말란 말이야. 헤수스는 브왕가한테 맡기고 너희는 다른 선수를 봐.”
산체스는 브왕가의 플레이에 만족하며 다른 선수들에게 독려했다.
헤수스가 경험이 많았으면 계속해서 브왕가와 상대하기보다 오른쪽 사이드나 중앙으로 돌아오겠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점이 눈에 보였다.
훈련과 경험이 동반되어야 하는 플레이였기에 중앙수비수에서 포워드로 변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헤수스 영입 이후 공격의 고리가 된 만큼 헤수스가 막히기 시작하자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중앙으로 공을 돌려. 사이드보다 중앙을 공략해. 뭐해 다들 올라가.”
AT마드리드의 벤치에서 계속해서 공격 방향을 지시해주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에는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있었다.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를 뚫는 것도 힘들었기에 뒤에서 받쳐줄 선수가 필요했지만, 파괴적인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을 두고 전진하는 선택도 하기 힘들었기에 수비적으로 배치했었다.
그러나 선취점을 뺏긴 이상 지금은 만회점이 필요할 때였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AT마드리드의 미드필더진이 레알 마드리드의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오며 중원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니실랴와 마린이 막아보려 했지만, 숫자에서 밀리며 완전히 장악당하자 사라비아와 소아레스까지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을 보였다.
“물러서지 마. 수비를 믿어.”
인수는 뒤로 물러서는 양 윙을 막아섰다.
AT마드리드가 라인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AT마드리드의 진영도 공간이 넓어졌고 그만큼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넓었다.
“뒤에 맡겨. 앞에서는 편하게 패스할 수 없게 길목만 막아.”
AT마드리드가 공세적으로 나오니 당연히 가르시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가르시아의 안정된 지시 속에 자리가 잡혀가자 AT마드리드도 쉽사리 패스를 연결하지 못했다.
“마린.”
니실랴는 AT마드리드가 후방으로 돌리는 공에 몸을 날렸다.
발에 살짝 공이 걸리는 느낌. 자신은 이미 몸을 날린 이후인지라 공을 수습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가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린을 불렀고 이미 마린은 AT마드리드의 미드필더와 공을 경쟁하고 있었다.
“앞으로 차.”
마린이 공을 키핑하려고 하면 AT마드리드의 선수와 경쟁을 해야 했기에 인수는 크게 소리치며 마린이 보낼 공을 받기 위해 달렸다.
이미 인수가 소리치기 전부터 상대 선수의 숨소리로 위치를 확인한 마린은 전방으로 길게 공을 찼다.
빠르게 넘어온 공이었는지라 인수가 여유롭게 공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이미 텅빈 AT마드리드의 중원. 인수는 빠르게 치고 들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수비 4, 공격 4의 상황. 자신을 막기 위해 수비를 보며 동시에 코프의 위치를 확인했다.
수비를 제치고 나가려는 발끝을 보고 인수는 코프의 발끝 방향으로 공을 밀었다.
인수가 찔러준 패스는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 정확히 코프의 발끝에 닿았다.
코프는 발에 공에 닿자마자 바로 슛으로 가져갔다.
차는 순간 골을 직감한 코프가 코너 깃대로 달렸을 때 주심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인수는 바로 주심에게 다가갔다.
“VAR을 체크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분명 동 타이밍이었는데요.”
주심은 인수의 위아래를 잠시 쳐다보고 리시버에 손을 가져다 대고 본부석과 대화를 나누었다.
옆에서 본 부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했지만 주심도 오프사이드에 대한 판정이 애매했다. 한참을 본부석과 대화를 나누던 주심은 원래 판정인 오프사이드를 선언했고 AT마드리드로 공격권이 넘어갔다.
***
“이번 상황은 위험했죠? AT마드리드 입장에서는 다행히 오프사이드가 선언됐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수비진을 믿고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죠. 서로 맞불로 공격라인을 올린다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확실하게 득점을 할 수 있지만 실점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이유죠.”
“확실한 건 이번 공격도 AT마드리드가 라인을 끌어올리면서 공간이 만들어졌죠.”
“그렇습니다. 선취점을 내준 이후에 빠른 시간 안에 만회골을 만들기 위해 너무 공간을 내줬어요. 더욱이 수비가 엷어지면서 하인스를 너무 풀어둔 것도 실수라고 보여집니다.”
“AT마드리드 선수들이 다시 라인을 내리고 있습니다. 미드필더진이 모두 센터라인 아래까지 내려왔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라인을 내리면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진에게 쉴 시간을 주는 거거든요. 공수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마린 선수가 벌써 8.5km를 뛰고 있습니다. 이미 표정으로도 지져있는 상태거든요. 아직 어린 선수이니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계속해서 찔러줘야 하는데요.”
“AT마드리드의 신성이라는 헤수스도 그렇게 당하지 않았습니까?”
“헤수스의 전담 마커인 브왕가가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첫 출전이지만 대인 수비능력만큼은 인정받은 선수거든요. AT마드리드에서도 마린을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에 데뷔를 하긴 했지만 아직은 18살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하인스도 19살에 불과한데도 노련하지 않습니까?”
“벌써 프로 4년 차 선수죠. 프리미어리그에서 세 번의 시즌을 뛰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벌써 두 번째 시즌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엄청난 이적금을 주고 데려온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시즌 반년밖에 뛰지 않았지만, 발롱도르 후보에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렇죠. 이번 시즌도 벌써 6경기 10골째를 성공시켰죠. 정말 대단한 득점력을 가진 선수입니다.”
“지난 시즌 중앙 미드필더로 뛰면서도 많은 득점을 올렸는데 이번 시즌 마린이 주전으로 들어오면서 세도우 스트라이커로 득점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공격형 미드필더가 하인스에 맞는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스트라이커로서의 모습이 더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레알 마드리드에 새로운 코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죠. 그런 만큼 재계약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은데요. 아직 재계약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다. 아 오랜만에 공을 받은 헤수스. 브왕가를 앞에 두고 슛을 쏴봤지만 브왕가의 허벅지를 맞고 공의 속도가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보통 수비선수의 몸을 맞으면 공이 이상하게 꺾여 골키퍼가 힘들어하는데 산체스 아주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냅니다.”
“아무래도 슛폼을 읽혔던 것이 컸죠. 아마 이번 경기를 통해 헤수스의 해법이 각 팀에 노출됐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포지션 변경을 성공적으로 하긴 했지만 아직 약점이 많거든요.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 산체스 선수가 공을 찬 순간 주심이 전반 종료의 휘슬을 붑니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전반이었는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AT마드리드를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가 잘 준비했던 전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헤수스의 약점을 정확하게 분석했고 그에 맞춤 전략으로 브왕가를 투입하며 경기에서 완전히 삭제해 버렸죠. AT마드리드는 헤수스를 후반에도 기용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비에서는 실수한 게 없었거든요. 잔디에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실점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하인스도 잘했지만요. 하프타임은 AT마드리드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그렇군요. AT마드리드가 어떤 선택을 할지 후반에 돌아오겠습니다.”
캐스터는 마지막 맨트를 남기고 헤드셋을 벗었다.
“와 슛이 몇 개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박진감 있게 경기가 흘러갈 수 있나?”
“공수전환이 빨라서 그래. 서로 중앙이 텅 비어 있으니 미드필더 싸움을 할 필요가 없잖아. 터치라인, 골라인 아웃도 거의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야.”
“레알 마드리드는 거의 공격 올인 전술로 나오던데 파훼 당하지 않을까?”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마 어렵지 않을까? 전방 라인이 다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야. 코프와 하인스는 물론이고 이제 모라타가 돌아올 건데 모라타도 시즌 20골 정도는 넣어줄 수 있고 마린의 킥력이 올라가면서 마린도 신경 써야 하고, 소아레스도 마찬가지고. 세도로프 감독이 부임하면서 선수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레알 마드리드에 변수가 있다면 부상 정도? 아니면 세도로프 감독이 흔들리거나. 그런데 그런 상황이 쉽게 올 거 같지도 않아.”
“하인스를 막으면 레알 마드리드를 막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헤수스를 막았던 거처럼.”
“푸하하. 하인스를 막아? 농담이지? 공을 못 잡게 만들면 몰라도 그렇지 않는 이상 쉽게 막힐 선수가 아냐. 이대로 4년만 지나도 우리는 하인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해설자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풀고 오겠다며 중계석에서 벗어났다.
***
후반전을 맞은 AT마드리드는 결국 헤수스를 경기에서 제외시켰다. 후반에도 출전시켰다가 계속해서 브왕가에게 막히면 선수의 자신감이 떨어질 소지가 다분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헤수스가 AT마드리드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팀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전에 차단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포지션 변경을 급하게 하고도 지금처럼 적응을 잘해주었기에 다음 경기 전에 더욱 보완을 시킨다면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다시 나한테 줘. 천천히 해.”
전반 체력을 모두 소진한 마린을 대신해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온 인수는 사이드에 있는 윙어들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 속도를 조절했다.
전반 빠른 공격패턴으로 일관했던지라 하프타임에 휴식을 취했지만 경기 속도를 조절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AT마드리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붙어. 대인 마크로 확실하게 제압해. 빈틈을 만들란 말이야.”
“다들 자신이 마크하는 사람을 보고 외쳐. 다른 선수들이 눈으로 보지 않고도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소리를 지르란 말이야.”
AT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소리를 높이며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막아봤지만 상대는 인수였다.
키핑 능력만은 이미 검증받은 인수였기에 여유롭게 수비를 상대하며 공을 지켰다.
철저하게 시간을 끌던 인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다시 공격을 이어갔다.
서로의 공세를 주고받으며 25분이 지날 무렵 레알 마드리드의 벤치에서 움직였다.
부상으로 빠졌던 모라타가 20분을 남기고 경기에 투입됐다.
후반 20분 정도를 뛴 모라타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경기 감각을 익혔다는 것에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