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후반전이 시작되자 헤타페는 레알 마드리드의 약한 고리인 공격진과 수비진의 간격을 끊임없이 노렸다.
“오늘 리그 첫 경기야. 우리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라고.”
“앞으로. 앞으로 가.”
양쪽 윙어가 내려와 수비를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벤치에 앉아있던 세도로프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공격적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후베이루 – 가르시아 – 마르체나 – 아랑게스의 수비라인.
사라비아 - 니실랴 – 누네스 - 소아레스의 미드필드라인
인수 – 코프의 스트라이커라인으로 안정적인 축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세도로프 감독은 모든 팀에게 레알 마드리드라는 공포를 안겨주고 싶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팀이 한 골을 넣을 때 세 골을 넣을 수 있는 축구. 그것이 세도로프 감독이 추구하는 레알 마드리드 축구였다.
아약스에서 트레블을 이루었던 축구는 안정적인 수비진으로 한 점도 주지 않은 채 송곳으로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축구였다.
매 경기 살 떨리는 승부의 연속이었지만 아약스가 에레디비시 리그 우승 4회와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그런 축구를 할 이유가 없었다.
팬들이 열광하는 경기.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축구를 원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자신의 감독 생활을 정리하고자 하는 노장의 마지막 열정이었다.
“나에게 넘겨.”
페코는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자신도 브라질의 국가대표였다.
전방에서 뒤로 돌린 패스를 받은 페코는 니실랴와 마주 보고 섰다.
리그 경기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상대해 본 적 있는 상대였다.
“순순히 넘겨. 어차피 골 못 넣잖아.”
니실랴는 페코를 보며 실실 웃었다.
페코는 니실랴의 말에 대꾸 없이 니실랴 뒤를 보았다.
상대의 진영에서 자유롭게 공을 주고받고 있긴 했지만 그건 상대가 만들어준 공간이었다.
니실랴의 후방에는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있었고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양 사이드를 막고 있는 만만치 않은 수비진이었다.
단 한 번에 골문 앞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니실랴를 제칠 필요가 있었다.
좌우로 몸을 흔들다 플리플랩을 시전하는 코프. 니실랴는 페코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안전지대였기에 태클로 공격을 끊어내고자 했다.
니실랴의 태클이 페코의 발을 걸었지만 넘어지지 않고 공을 소유하는 데 성공했다.
주심은 반칙을 선언하려다 페코가 공을 소유한 것을 보고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인플레이를 선언했다.
페코는 니실랴가 넘어져 있는 틈을 타 재빨리 전방으로 깊숙이 찔러주었다.
이번 시즌 이적한 코룸. 아프리카 출신이긴 했지만,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였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동료였다. 코룸 역시 이번 시즌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많이 해 줄 선수가 페코인 것을 알고 친하게 지냈다.
“코룸.”
페코는 코룸의 이름을 부르며 강하게 앞으로 찔러주었다.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코룸을 막고 있긴 했지만 페코는 충분히 뚫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거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최전방에 섰던 나야.”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양쪽에서 코룸을 압박했지만 코룸은 그 사이를 빠져나와 페코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슛했다.
산체스가 몸을 날려봤지만, 구석을 파고든 공은 골망을 출렁거렸고 코룸은 라리가 첫 골을 기록했다.
후반 이른 시간에 터진 만회 골이었기에 헤타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보내. 우리가 더 넣으면 돼.”
인수는 코룸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외면하며 수비수들에게 소리쳤다.
세도로프 감독이 경기 시작 전 말했다시피 한 골도 주지 않겠다는 전술이 아니었다.
공이 빠르게 센터서클까지 전해지고 헤타페의 세리머니가 끝나자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코프에게 공을 넘겨받은 인수는 헤타페의 진영으로 빠르게 치고 달렸다.
제일 앞서있던 코룸을 제치고 나아가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인수의 뒤를 따라 헤타페의 진영으로 파고들었다.
인수는 세 명의 선수가 자신을 막아서자 재빨리 후방으로 공을 돌리고 다시 앞으로 달렸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마린은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겼다.
소아레스는 헤타페의 수비가 자신을 막아서자 공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리 잡아. 선수를 봐.”
인수가 치고 들어오자 모두가 인수에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골키퍼는 수비들을 다그치며 위치를 잡아주었다.
“천천히 해. 공 돌려.”
이미 기습적인 상황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기에 인수는 자신에게 온 공을 잡고 후방으로 물러섰다.
인수가 후방으로 물러서자 헤타페 수비도 긴장이 풀리며 어깨가 살짝 들렸다.
그 모습을 날카롭게 보고 있던 인수는 재빨리 공을 찍어 찼다.
페널티 지역으로 둥실 날아간 공은 그 자리에 파고든 코프에게 연결됐고 코프는 오버헤드킥으로 공을 찍어 찼다.
코프가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된 결정적 이유인 골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는 슛.
코프의 발을 맞은 공은 골키퍼 앞에서 잔디에 맞고 튀어 오르며 골망 위쪽을 때렸다.
헤타페가 만회 골을 터트린 지 4분 만에 터진 레알 마드리드의 추가점.
헤타페가 더 따라붙기 전에 도망가는 득점을 터트렸다.
코프의 골이 터지고 15분 후 오늘 경기에서 첫 번째 슈팅을 기록했던 마린은 다시 한번 중거리슛을 쐈고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라리가 첫 득점을 올린 마린은 베르나베우에 모인 관중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고 다시 5분 후 인수의 드리블 돌파에 이은 슛으로 자신의 라리가 첫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인수의 골이 터진 이후 코룸이 두 번째 골을 터트리긴 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
오늘 경기의 MOM으로 인수가 선정되긴 했지만, 기자들은 인수보다 마린에게 모여들었다.
스페인 출신에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 마린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던 기자들이었지만 마린의 중거리슛은 그만큼 파괴력이 있었다.
패스게임을 중요시하는 스페인의 토털축구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기자들이었다.
정교한 패스를 보낼 수 있는데다 중거리슛까지 장착된 마린이라면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반응이었다.
물론 잉글랜드대표팀이 인수와 에디를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걸 부럽게만 바라보던 스페인인지라 더욱 마린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관심은 다음 날 마린의 첫 골 장면이 스포츠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다.
***
“오늘로 라리가 1라운드가 모두 끝났습니다. 39-40시즌의 시작이었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경기는 지난 시즌 우승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헤타페의 경기였죠. 지난 시즌 우승을 하긴 했지만, 시즌 말미 감독까지 교체되어 어떤 팀을 만들지도 관심이었기에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아약스에서 트래블을 기록한 세도로프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왔죠. 건강상의 이유로 몇 년간 현장을 떠나있던 세도로프 감독이었는데 첫 경기는 승리했습니다. 헤타페를 상대로 5:2로 대승을 거두었는데 경기를 자세히 분석해주시겠습니까?”
“이번 경기만을 보고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시즌 시작 전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력은 최상이지만 수비력에는 의문점이 든다는 소리가 컸습니다. 전문가들의 공통점으로 지적한 것이죠. 이번 경기 역시 수비에는 약점을 드러내긴 했습니다.”
“잠시만요.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아랑게스. 후베이루, 가르시아, 마르체나 등인데 수비가 약하다고요?”
“선수 개개인이 약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수비진영과 공격진영의 거리가 멀기에 중앙에 공간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선수기용이 수비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거죠.”
“아 그럼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말이군요. 계속해서 분석해주시죠.”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무서운 공격력과 결정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득점도 득점이지만 슈팅 숫자의 차이가 엄청났죠. 특히 전후반 경기를 통틀어 공격라인에서 공격을 진행하며 패스 미스로 흐름이 끊긴 횟수가 단 한 번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슈팅까지 이어갔습니다. 공격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마무리까지 이어갔다는 말이죠.”
“그게 대단한 겁니까?”
“단 한 번 레알 마드리드의 패스 미스로 공격 흐름이 끊겼을 때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죠. 후방에 공간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전술이다 보니 카운터를 맞을 수 있는 위험이 크죠. 그러나 공격을 슈팅까지 마무리 짓는다면 카운터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군요.”
“5골이나 넣었지만 2골을 내준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역시나 수비진영의 문제일까요?”
“그렇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내준 두 골 모두 공격진과 니실랴 사이. 니실랴와 최종수비라인의 공간이 문제가 되었거든요. 윙어들이 내려오려고 반응을 보였지만 그때마다 세도로프 감독이 막아섰습니다. 내줄 점수는 내주고 그만큼 더 넣으면 된다는 극단적인 공격 전술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아. 최종수비라인이 한 골을 내준다고 해도 두 골을 넣는다면 경기에서는 이긴다는 소리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 개개인도 월드클래스급 수비수들입니다. 헤타페가 두 골을 넣긴 했지만, 그 수비수들을 이겨 내고 넣었다는 거죠.”
“헤타페가 지난 시즌 골 결정력 부족을 지적받은 만큼 소튼에 엄청난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코룸을 데려온 것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경기에서 지긴 했지만 코룸이 두 골이나 넣으며 라리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죠. 아마 헤타페는 경기에 지긴 했지만 코룸이 증명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할 것입니다.”
“이번 경기에서 하인스가 헤트트릭을 하며 라리가 첫 번째 헤트트릭을 기록했음에도 언론들이 주목한 것은 다른 선수죠?”
“그렇습니다. 바로 18살의 신예 마린입니다.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 출신으로 지난 시즌 실레의 부상으로 1군으로 진입한 루키인데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패스와 돌파는 1군에서도 통할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슈팅 능력에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베닐 경기에서도 슈팅이 거의 없었고 통산 골 수도 한 자리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슈팅으로 강력한 중거리슛을 보여줬거든요. 그리고 라리가 첫 골도 중거리슛으로 넣었는데 슈팅 능력을 보완한 것일까요?”
“마린의 인터뷰 내용으로는 그렇습니다. 지난 시즌 후 영국에서 훈련캠프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인스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캠프인데요. 거기서 브링팀과 훈련했다고 합니다.”
“브링팀이요?”
“세계적인 휴식기 체력훈련팀이죠. 축구는 물론이고 골프와 야구선수, 테니스선수 가리지 않고 체계적인 훈련을 하는 것으로 스포츠계에서는 유명합니다. 브링팀에 피지컬코치로 있는 캐플런이란 코치가 있습니다. 원래 축구선수 출신으로 프로는 되지 못했지만 여러 축구선수에게 슈팅훈련을 도와줄 정도로 능력이 있는 코치로 알려져 있죠. 그 코치에게 지도를 받고 난 후 자신감을 가지고 슈팅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 스페인에 새로운 신성이 나타났군요. 앞으로의 레알 마드리드의 전망 어떻게 보십니까?”
“우선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팀은 골치 아플 겁니다. 후방이 약하기에 후방을 노리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데 그 후방을 막고 있는 선수들도 무섭지만, 자신들의 수비라인을 뚫어버리거든요. 그렇다고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레알 마드리드일 것이기에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는 팀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