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레알 마드리드의 슛이 나온 이후 헤타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으로 밀렸다.
“정신 차려. 압박해서 끊어.”
헤타페의 감독은 코치석 끝까지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전패했던 헤타페였기에 이번 시즌에는 과감하게 영입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번 시즌 목표를 4강에 둔 만큼 첫 경기가 중요했기에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마린의 패스가 소아레스에게 향했을 때 헤타페의 수비가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끊어냈다.
“앞으로 나가.”
넘어지는 관성 그대로 몸을 일으킨 수비는 성급하게 공을 처리하기보다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수비가 비어있는 동료를 향해 패스했다.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 대부분이 헤타페 진영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기에 니실랴는 패스를 받은 선수를 압박했다.
주변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없이 공을 편하게 잡고 주변을 둘러보던 페코는 갑자기 달려든 니실랴를 피해 전방으로 공을 처리했다.
코룸이 전방으로 넘어온 공을 잡기 위해 뛰었지만 가르시아의 방해로 정확히 트래핑을 하지 못했다.
어깨에 치우쳐져 공이 맞자 코룸의 생각보다 공이 멀리 튀었고 산체스는 공을 처리하기 위해 골문을 비우고 앞으로 나왔다.
코룸과 산체스의 경쟁상황. 두 선수 사이에서 통통튀는 공을 처리하기 위해 두 선수 모두 몸을 던졌고 공은 레알 마드리드 골문을 향해 천천히 굴렀다.
가르시아가 그 공을 막기 위해 뛰어보았지만, 공의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베르나베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은 천천히 굴러 골포스트를 맞췄고 골라인 바깥으로 흘렀다.
“휴.”
베르나베우에 모인 관중들의 한숨소리가 들릴 때 코룸은 자신에게 패스를 한 페코에게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코룸은 선수들을 사기를 끌어올렸다.
헤타페로 이적하며 받는 주급은 헤타페에서도 2, 3위를 다투는 주급자로서 선수들을 이끄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저거밖에 못 해. 다시 천천히 밀어 올려.”
인수는 살짝 경직된 수비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상대의 사기가 살짝 올라갔다고 하지만 아직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를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정확히 보내. 내가 뒤로 살짝 빠질 테니까 네가 앞으로 나가.”
인수는 마린과 스쳐 지나면서 속삭였다.
“알았어요.”
후방에서 다시 시작되는 빌드업.
산체스는 안전하게 가르시아에게 손으로 공을 굴려주었고 가르시아는 달려는 코룸을 피해 마르체나에게 마르체나는 후베이루와 아랑게스에게 공을 넘기며 헤타페의 공격진을 유인했다.
아랑게스에게서 다시 가르시아에게 넘어온 공은 바로 니실랴에게 향했고 니실랴도 바로 마린에게 공을 보냈다.
전방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던 인수가 살짝 빠지면서 수비가 엷어지자 마린은 인수에게 공을 넘기고 나서 인수가 있던 자리까지 올라갔다.
순식간에 체인징이 되며 인수가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인수는 왼쪽 페널티 지역으로 깊숙이 공을 밀었다.
인수가 공을 받을 때부터 양쪽 윙이 모두 페널티 지역으로 파고드는 상황이었기에 사라비아는 자신에게 온 공을 그대로 중앙으로 밀었고 그 패스를 받은 코프는 인사이드로 공을 멈춰 세우고 밖으로 빠졌다.
코프가 멈춰 세운 공을 향해 마린이 달려들었고 침착하게 인사이드로 골대를 향해 찼다.
골키퍼 손에 맞고 리바운드 된 공.
수비수들이 클리어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어느새 침투한 인수가 발등에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 성공했다.
쏜살같이 쏘아진 공은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망을 흔들었다.
삐익.
주심이 골을 선언하자 인수는 관중석으로 뛰어가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며 세리머니를 펼쳤다.
***
“정말 무서운 공격력입니다.”
“공격력도 공격력인데 패스가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패스가 한 번 끊기며 카운터를 맞긴 했지만, 드리블과 패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룸이 공을 멈추고 마린이 슛을 했는데 이미 약속된 플레이였던거 같죠?”
“지난 시즌까지 샨투 감독하에 레알 마드리드는 세트피스에서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지난 시즌 프리킥골을 제외하고 골이 된 세트피스는 단 한 개였거든요. 코너킥과 프리킥 상황에서 세트피스가 필수적인데 그런 부분에서 너무 약한 모습을 보여왔죠. 세도로프 감독이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약속된 플레이를 한 것으로 보아 이런 부분을 강화하는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전에 놀라웠던 점은 마린의 중거리슛을 들 수 있겠는데요.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에서 바로 1군에 합류했을 때 모든 이들이 마린의 재능은 인정했죠. 그러나 슛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고 특히 킥력에 의문점을 갖는 전문가가 많았습니다. 전반 1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마린의 모습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직 경기가 더 진행되어야 알겠지만 시즌이 끝난 후 하인스 선수와 체력훈련을 했다는 것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트레이너인 브링팀과 훈련을 했는데 그 코치 중에 케플런이 있지 않습니까? 캐플런이 체계적인 몸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킥력을 좋은 선수들을 키워낸 코치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 훈련 중에 다듬어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정확한 건 마린 선수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겠죠.”
“센터서클에 공이 다시 놓였습니다. 헤타페가 선취점을 내준 채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
헤타페는 선취점을 내주긴 했지만 아직 무너질 팀은 아니었다.
코룸은 발끝에서 후방으로 넘어간 공은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을 헤타페 진영 깊숙이 끌어당겼다.
“압박해.”
“빠르게 넘겨. 많이 뛰게 만들어.”
압박하려는 레알 마드리드와 그런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많이 뛰게 만드는 헤타페의 패스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헤타페의 수비진영에서의 패스가 30초가 넘어가자 인수의 신호로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이 느슨해졌다.
그 틈을 타 미드필더진으로 넘어간 공.
이번에는 니실랴와 후베이루, 아랑게스가 압박을 시작했다.
세 선수의 압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헤타페는 반응하지 못하고 다시 공을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수비진영으로 넘어온 공을 빌드업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다.
“한 번에 넘겨. 앞으로 넘기란 말이야. 후방이 완전히 비었잖아. 양쪽 사이드를 노려.”
헤타페의 감독은 코치석 끝에서 서서 중앙미드필드에서 공을 배급하는 역할을 맡은 페코에게 소리를 질렀다.
양사이드 윙백인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미드필드진까지 나와 있던 상황.
감독의 말대로 양 사이드 후방이 완전히 비어있었기에 뒤늦었지만, 윙어들은 사이드 깊숙이 침투했다.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윙어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후방으로 물러서자 마린과 니실랴 사이 그리고 니실랴와 수비진 사이의 공간이 넓게 드러났다.
헤타페 선수들이 그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며 공격을 이어가다 중앙으로 찔러준 공은 코룸이 받지 못할 곳으로 흘렀고 그대로 골라인아웃이 되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공격권을 넘겨주었다.
“정확히. 차분하게. 천천히 가.”
산체스는 볼보이가 넘겨준 공을 받아 마르체나에게 넘겨주며 소리쳤다.
‘우리 수비가 약하다고 한다. 정말 약한가? 스페인 최고의 골키퍼이자 야신상까지 받은 적 있는 산체스 네가 있는데?’
‘절대 약하지 않죠.’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지키는 중앙수비는?’
‘두 선수 모두 스페인 대표까지 지낸 적이 있는 선수들인데 약할 리가요. 윙백들은 물론이고 니실랴도 모두 훌륭한 선수이기에 약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런데 왜 우리를 두고 수비를 약하다고 할까?’
‘백업들이 약하다는 말 아닐까요? 한 시즌 60경기를 모두 뛸 수는 없으니까요. 더구나 공격진과 수비수들의 간격이 멀어지는 모습도 보이고.’
‘실수하지 말고 수비해. 너희가 골을 내주더라도 공격진에서 더 넣어줄 테니.’
세도로프 감독은 수비진이 희생을 해달라고 하는 주문이었다.
개개인의 스텟을 관리를 해야 하는 선수들 관점에서 실망스러운 주문일 수도 있지만, 팀을 먼저 생각해달라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산체스를 비롯한 수비진이었다.
“너희들이 해결해줘.”
마르체나도 산체스의 마음을 알았기에 니실랴에게 공을 연결하며 소리쳤다.
니실랴도 공을 받고 바로 오른쪽으로 침투하는 소아레스에게 공을 연결했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 알지. 공격하면서 끊기지 않으면 수비할 일이 없어. 너희가 골이 되든 안 되든 끝까지 결정해주어야 해.’
소아레스는 샨투 감독이 영입한 1번 선수였다.
지난 세리에A에서 뛸 때부터 샨투 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 만족스러웠기에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영입 제안을 단번에 수락했던 이유였다.
지난 시즌 말미 세도로프 감독이 선임되고 나서 이적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었지만 감독 성향은 샨투보다 세도로프 감독이 자신과 더 맞는 부분이 있었다.
“하인스.”
소아레스는 왼쪽 깊숙이 공을 몰고가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자 뒤로 크게 공을 넘겼다.
소아레스와 인수 사이에 수비수들이 많았지만 소아레스가 패스한 공은 수비수 사이를 통과해 인수의 발밑으로 이동했다.
왼쪽에서 넘어온 힘 그대로 오른쪽으로 중심을 이동한 인수는 뒤꿈치를 사용해 공을 뒤쪽으로 보냈다.
인수가 패스한 곳에는 뒤에서 달려온 마린이 있었고 마린은 그 힘 그대로 중거리에서 슛을 했다.
공이 공중으로 뜨긴 했지만, 이번에도 마린이 마무리하자 헤타페에서도 마린에 대한 견제를 강화했다.
헤타페가 수비를 강화하자 자연스럽게 공격이 무뎌졌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도 리듬감 있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제 전반을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공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는 사라비아에게 왼쪽 돌파를 맡겼다.
모라타에 비해 골 결정력은 약하지만 안정감은 뛰어났고 주전으로 뛰기 시작하며 돌파력까지 좋아진 사라비아였다.
모라타가 돌아오면 다시 로테이션 맴버가 될 것이 뻔했기에 사라비아에게 영입을 제의한 팀들도 많았을 정도로 재발견을 한 사라비아였다.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기에 이적하지 않았던 사라비아는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 선수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코프.”
왼쪽 코너까지 공을 치고 나간 사라비아는 중앙을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사라비아가 올린 공은 코프에게까지 연결되지 못했고 중간에서 끊겨 골라인아웃되며 코너킥이 되었다.
“이거 끝나면 휘슬 불 거 같은데.”
사라비아는 볼보이에게서 공을 받고 인수를 기다리다 공을 넘겨주며 속삭였다.
전반 마지막 공격 처음으로 얻은 코너킥이었다.
인수는 코너포인트에 공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인수 가까이 왼쪽 페널티코너에는 마린이 서 있었고 키가 큰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까지 모두 골문 앞에 섰다.
주심이 휘슬을 불자 인수는 빠르게 마린에게 공을 밀어주었다.
마린에게 공이 가자 수비들이 마린에게 달려들었고 마린은 바로 인수에게 다시 공을 보냈다.
마린의 패스를 받은 인수는 논스톱으로 왼발을 휘둘렀다.
골대 앞에 있는 선수들을 막기 위한 수비와 마린에게 달려든 수비가 갈린 틈으로 공이 쏘아졌고 그 공은 그대로 휘어져 골대로 향했다.
오른쪽 골포스트까지 휘어진 공은 그대로 골망을 출렁거렸고 주심은 골을 인정함과 동시에 전반 종료의 휘슬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