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레알 마드리드와 전북의 경기는 오후 7시에 열렸다.
마드리드의 여름 날씨도 덥긴 했지만 습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 그늘을 찾으면 시원했지만 한국의 여름 날씨는 습도가 높아 숨쉬기에도 불편할 정도였다.
해가 거의 넘어간 이후로 예정된 경기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4만이 넘는 좌석을 꽉 메우고 있었다.
“여기 마드리드 아니지?”
사라비아는 연습을 하며 잔디에 적응을 하고 있을 때 하나둘 입장하는 관중을 보고 주변에 있는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혹시 전북이란 팀 유니폼도 하얀색 아니야?”
“야. 아무리 하얀색이라고 해도 저렇게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있겠어? 그리고 그 사이사이 들어오는 사람들은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고 있잖아.”
경기 시작 전 2시간 전이었는데도 입장하는 관중의 수가 꽤 많았다.
“한국에 이렇게 우리 팬들이 많았어?”
“그러게 다들 우리 유니폼을 입고 있잖아.”
선수들은 경기장을 정비할 시간을 갖기 위해 퇴장하는 순간까지 입장하는 관중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하인스. 하인스 어디 있어?”
“마린. 마린 나와.”
“코프. 코프 이쪽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홍보업무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한 직원들은 선수들을 끌고 사인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
“경기 시작 30분 전인데도 고양 종합운동장이 관중들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한국에서 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더 많아 보이죠?”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의 첫 한국방문이니만큼 그만큼 관심을 더 가지는 것이겠죠. 더구나 하인수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팬층이 더 많아졌다는 소리도 많죠.”
“아무래도 첫 한국계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으니 말이죠. EPL에서는 맨유나 토트넘 등 최상위급 팀에 한국 선수가 뛰었던 적이 있지만 라리가에서는 처음이니까요.”
“그렇죠. 라리가 1부 리그에 도전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크게 성공했다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라리가에서 성공한 한국계 선수.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친 하인수 선수를 보러 오는 관중들이 많이 보이죠.”
“2년 전 소튼에서 FC서울과 친선경기를 가진 하인수 선수이지 않습니까?”
“국내 EPL에 대한 인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그래서 소튼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꽤 되긴 하지만 인지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할 수가 없는 정도죠. 소튼에게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말이죠.”
실제 레알 마드리드에서 인수를 영입할 때 국내 팬들은 엄청난 기대를 했다.
한국계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후베닐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 모두 1군 진입에 실패한 채 다른 팀으로 이적을 했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에 한국계 최초로 영입당한 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나이에 맞지 않은 엄청난 이적료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주급을 받으며.
더구나 그 선수가 한국계인데다 2년 전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펼쳤고 매년 여름 휴식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선수라고 알려지며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이름값이 올라갔다.
그 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그럼 그렇지.’라며 무시했던 사람들이 늘어났다.
후반기 들어 인수가 경기에 나서고 레알 마드리드 리그 우승과 스페인 3관왕에 가장 큰 역할을 하자 한국에서 인수에 관한 관심이 늘어났다.
리그 휴식기 동안 선수들이 노출되지 않아 관심이 식을 수도 있었지만 인수의 한국방문과 더불어 CF를 촬영한데다 레알 마드리드가 전북과 친선경기를 하며 연속으로 언론에 노출됐다.
그 덕분인지 그 인기가 한국에서 식지 않고 있었다.
“리그가 끝나자마자 하인수 선수가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엄청났죠. 약혼녀인 레이첼 선수를 비롯해 에서방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선수와 그 약혼녀인 정수아 선수, 마린 선수까지 함께 주목을 받았죠.”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다 보니 오늘 경기까지 그 관심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각자 진행된 사전인터뷰에서 전북 감독은 이번에도 닥공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제비우스, 정현빈, 앙투 삼각편대를 공격적으로 전개한다고 했죠. 후방에 있는 선수들까지 앞으로 나서며 한국축구에 익숙하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를 몰아붙이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세계 최고의 클럽을 상대로 전북의 축구가 얼마나 통할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북으로선 큰 결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 레알 마드리드는 어떻게 나올까요?”
“프리시즌 첫 경기이니만큼 주전선수들보다는 로테이션 맴버들과 카스티야 선수들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짜겠다고 발표했죠. 계약서가 언론에 유출된 대로 하인수 선수를 비롯해 코프, 마린, 산체스 등 각국의 국가대표가 모두 선발이나 교체로 출전한다고 밝혔습니다.”
“유출된 계약서가 양 팀의 사인이 없는 만큼 신뢰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은 각 선수별로 출전해야 하는 시간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었죠. 하인수 선수의 경우 30분 이상, 마린 선수는 20분 이상 이런 식으로요. 아마 이 부분이 서로 의견 차이를 만들어 사인 없이 유출된 것 같습니다.”
“프리시즌 첫 경기이다 보니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도 세도로프 감독이 주전 선수들 대부분 출장한다고 밝혔지 않습니까?”
“경기 시작 전 주전 선수들까지 모두 몸을 푸는 모습이 관중들에게 공개됐죠. 심지어 훈련을 하고 퇴장하면서 자신의 훈련복 상의에 사인을 해주는 모습까지 포착되면서 SNS에 화제가 됐죠.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인 만큼 팬 서비스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경기가 시작되겠군요. 오늘 VIP석이 잠깐 잡히기도 했는데 250여 석이나 되는 VIP석이 거의 다 찼습니다.”
VIP석은 대중에게 판매되지 않고 양 팀에서 초대장을 발송했기에 모든 자리가 차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오늘 경기는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인수가 초대한 조우진 9단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오셔서 경기를 지켜보게 됐다.
***
“와 거칠게 밀고 나오네. 원래 이 동네 축구가 이래?”
남미 출신인 소아레스와 파라데스는 전북의 축구를 보며 어릴 적 맨발로 축구공을 차던 시절을 떠올렸다.
공하나 던져주면 우르르 몰려가 공을 차면서 해 넘어가는 줄 몰랐던 그 시절.
“아랑게스 저 녀석 웃고 있는 거 봐. 저 녀석도 그때 생각이 나는 거겠지.”
남미축구라고 하면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리듬감 있는 축구를 떠올리지만 실상은 경기의 흐름대로 몸을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조직력보다는 개인기가 주를 이루었고 그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이 유럽으로 이적했다.
전북이 펼치는 공격이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흐름을 중요시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하인스 저 녀석 처음 보는 축구에 정신 못 차리는 거 봐.”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공격 또 공격 스타일을 가진 전북이었기에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반 15분 인수의 중거리슛으로 한 점을 먼저 실점하긴 했지만 그래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두드렸다.
“하인스 저 녀석 엘리트 출신이잖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스 출신에다 프리미어리그와 라리가에서 축구를 해왔으니까. 저렇게 뒤가 없는 축구를 처음 보는 거 아니겠어?”
“프리미어리그가 거친 리그이긴 하지만 저렇게 뒤가 없는 축구를 하는 팀은 없으니까. 심지어 최종수비수가 수비할 마음이 없어 보이잖아.”
선수들이 평가를 하는 도중에도 최종수비수가 센터라인까지 나와 공을 공격진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심지어 골키퍼 역시 골대를 비우고 페널티라인 끝까지 나와 뒤로 넘어오는 공을 걷어낼 준비를 했다.
“소아레스, 파라데스, 후베이루 다들 들어갈 준비해.”
세도로프 감독은 처음 한국에 와서 프리시즌을 치를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 있다고 하는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모습과 선수들이 즐겁게 게임하는 것을 보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축구에 흥미를 보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남미 출신 주전선수들을 모두 호출했다.
친선경기인 만큼 교체에 제한이 없었기에 바로 투입했다.
레알 마드리드 주전선수들이 출전하며 경기장의 분위기는 축제처럼 변했다.
전북의 닥공은 전반 끝나기 전 앙투가 골을 터트리며 1:1로 전반이 마무리되자 경기장에 모인 관중은 더욱 축제처럼 경기를 즐겼다.
“생각보다 즐거운 분위기인데요.”
경기가 후반에 들어서고 40분이 지났을 때 레알 마드리드는 교체 선수만 20명에 다할 정도로 많은 선수를 한국에 선보였다.
당연히 세도로프 감독의 전술은 살펴볼 수도 없었고 말 그대로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전북 입장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축구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리시즌 첫 경기에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와 있지 않음을 감안해도 전북의 경기력은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청백전을 보는 거 같네요.”
루카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노트북을 접고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사기를 올리기에 그만인 경기야.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으면 좋겠어.”
세도로프 감독은 전광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5:5.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는 현재 필드에 뛰고 있는 수비수가 전무했다.
“주니오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요? 벌써 4골째 내주고 있는데.”
산체스는 전반 45분을 뛰고 주니오르로 교체되어 벤치에 앉아 박수를 치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잖아. 봐.”
골키퍼 2옵션인 발베르테가 이적하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주니오르였기에 루카가 걱정스런 말을 했지만 세도로프 말대로 주니오르도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전북 후방에서 레알 마드리드 진영까지 한 번에 넘어온 공을 주니오르가 앞으로 나가 다시 전북의 골대로 슛처럼 차고 나서 급하게 골대로 뛰어가며 덤블링을 선보였다.
정식경기였으면 생각도 못 할 장면이었겠지만 이미 축제처럼 변한 경기장은 그런 모습을 보며 손뼉을 치며 환호해주고 있었다.
“다음 주에 중국에서 경기해야 하는데…….”
세도로프 감독은 자신이 오래 데리고 있던 코치 중 하나를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에 임명해 이번 시즌부터 함께 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의 경기는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너무 조이지는 마. 다만 다치지 않게 준비운동을 철저히 시키고.”
유럽의 리그는 1년 가까이 치러야 하기에 긴 호흡으로 내다봐야 했다.
시즌 전 부상이 생기지 않는 범위에서 이렇게 즐거운 경기를 하는 것은 허용범위 내였고 후반 45분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그런 분위기는 계속됐다.
***
- 레알 마드리드와 전북 축제가 된 한 판.
- 5:5 전북 세계 최고의 팀 레알 마드리드와 동점으로 경기를 마쳐.
- 한국에 있는 팬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펼친 레알 마드리드
- 주전 선수들은 물론 로테이션, 카스티야 선수들까지 모두 출전시킨 레알 마드리드
한국에 있는 주요 언론들은 레알 마드리드와 전북과의 경기 결과를 두고 대부분 좋은 평가를 이루었다.
비판을 하는 언론들도 레알 마드리드의 진정한 경기력을 보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의 토로였을 뿐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선수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세도로프 감독도 한국을 떠나며 갖은 인터뷰에서 ‘즐거운 경기를 해서 기분이 좋았고 다음에도 또 이런 경기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음을 드러냈다.
전북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시작된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시즌 경기는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며 유럽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