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름 이적시장.
그 시작은 소튼에서 터졌다. 작년에 새로이 4년 계약을 했던 주전 스트라이커인 데이비드 코룸이 라리가인 헤타페CF로 이적했다.
마드리드의 위성도시인 헤타페를 연고지로 하며 꾸준한 성적을 올려주는 헤타페였지만 구단 재정난 때문에 선수 수급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아랍 부호가 구단을 인수한 후 대규모 개편을 선언했다. 그 시작으로 코룸을 소튼으로부터 2400만 파운드에 영입했다.
코룸을 시작으로 각 구단들이 공격적으로 선수들을 영입했다.
가장 주목을 받은 팀은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명성에 맞지 않은 성적을 거둔 바르셀로나였다.
영입했던 젊은 선수들이 착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바르셀로나 팬들이 원하는 것은 리빌딩이 아닌 당장의 성적이었다.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가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까지 3관왕을 차지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팬들이 터져버렸다.
특히 코파 델 레이의 결승전 이후 팬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회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클럽은 최정상급 선수를 수배했다.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 에이스급 선수들의 재계약도 이루어졌는데 막상 바르셀로나의 오피셜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를 영입했다.
하인스가 영입된 후 주전 경쟁에서 밀린 후 모라타의 부상으로 다시 주전이 되었지만, 부상으로 마린까지 1군에 올라오자 설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한 팀 실레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국가대표이자 공격형 미드필드였고 27살의 전성기라고 생각했을 때 실레의 영입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실레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분노했다.
한편 실레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다른 이적들은 묻혔기에 보드진은 조용하고 빠르게 선수단 정리를 시작했다.
26살에 랑스에서 두각을 보이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던 아드리엔 파바르가 다시 리그1인 모나코로 이적했고, 후베이루 때문에 거의 출장을 하지 못했던 크리스티안 로셀로가 라리가2로 떨어진 알라베스로 이적했다.
곧이어 카스티야에서 활약하며 라리가에도 출전했던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를 빠져나가자 팬들 사이에서 선수들의 이탈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 나가는 선수들만 있고 합류하는 선수들은 없는데 괜찮을까?”
“이번에 감독이 새로 바뀌면서 챔피언스 우승을 노린다고 했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로테이션 멤버를 채워야 할 텐데 괜찮을까?”
“그래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괜히 챔스 우승 감독이 아니잖아. 경험이 없는 감독도 아니고 믿어야지.”
“그래도 불안하잖아.”
삼삼오오 모인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소중한 시에스타 시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을 했다.
그러다 주전 골키퍼인 산체스 후임으로 내정됐던 발베르테가 첼시로 이적하자 팬들이 폭발했다.
나이를 먹어 반응속도가 떨어지던 산체스의 후임으로 내정됐던 발베르테였다.
우르과이 국가대표 1번 골키퍼에다 차세대 거미손이 될 것이라 예상되던 발베르테까지 이적하자 팬들이 클럽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골키퍼 3옵션인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 주니오르가 있긴 했지만 발베르테 비하여 아직 의문점이 많았다.
마드리드 언론들이 팬들의 반응을 보도하고 있을 때 레알 마드리드의 첫 번째 영입이 이루어졌다.
누네스가 수비형 미드필드로 포지션을 변경한 후 중앙수비수의 공백에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코이타가 영입되었다.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던 중앙 수비수인 코이타는 말리 국가대표 출신으로 이제 23살의 나이였다.
덩치가 큰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있고 파워풀한 몸싸움을 즐기는 선수였다.
코이타를 시작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중앙미드필드인 다니엘 보일과 왼쪽 윙백 자원인 토마스 브왕가가 영입됐다.
레알 마드리드 외에도 이적들이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프리시즌이 시작되었다.
***
“다들 몸은 잘 만들어왔겠지?”
세도로프는 5월 휴식기부터 7월 초까지 개인적인 일정을 보낸 선수들이 모두 마드리드에 모였다.
이 중에는 지난 시즌 임대를 떠났던 선수들과 카스티야 선수들까지 모두 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에 모였다.
“넵.”
선수들이 힘차게 대답했지만 몇몇 선수는 감독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시즌이 끝난 후 선수단을 해산시키며 선수들에게 몇 가지를 요구했다.
휴식 기간 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한 문제가 없을 것과 소집하기 전 몸 관리에 관한 사항들이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탈세나 음주운전은 콕 집어서 요구했고 휴식기 방탕한 생활로 인해 프리시즌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몸이 될 시 벌금을 매겼다.
“그럼 오늘과 내일은 메디컬 체크를 하고 정식 훈련은 모레부터 시작하지.”
세도로프 감독은 선수들의 표정만 보고도 상황을 짐작했기에 선수들을 트레이닝 시설에 있는 메디컬 센터로 보냈다.
“잠시만. 잠시만 다시 한번 해보자니까. 내가 며칠 동안 화장실을 못 가서 그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서 다시 측정할게.”
메디컬센터에서 가장 목소리가 높은 사람이 가르시아였다.
시즌이 끝난 후 발리로 가족여행을 떠난 가르시아는 발리의 매력에 체류 기간을 넘겨 가며 머물렀다.
소집 전 부랴부랴 스페인으로 돌아온 가르시아는 자신의 몸무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평상시 몸무게가 89kg이었던 것에 비해 스페인으로 돌아오니 95kg이 되어 있었다.
몸무게보다 더 문제인 것은 체지방률이 15%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시즌 중 체지방률이 11%였던 것을 감안하면 눈에 띄게 올라간 체지방률. 세도로프 감독이 가장 강조한 것이니만큼 벌금도 만 유로에 달했다.
급하게 몸을 만들긴 했지만 92kg에 체지방률 14%가 한계였다.
가르시아 외에도 몇몇이 몸무게가 늘긴 했지만 적정수준 내였고 가르시아가 문제가 됐기에 세도로프 감독은 벌금과 함께 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팀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그런 가르시아보다 문제인 선수가 아랑게스였다.
휴식기를 맞은 아랑게스는 뜻이 맞는 칠레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고산지대에 훈련캠프를 마련해 자율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2040 코파 아메리카가 볼리비아에서 열리는 만큼 고산지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기에 마련한 훈련장이었지만 문제는 소집 전까지 훈련에 매진하다 여권을 확인하지 못했다.
여권 기한 만료로 인해 스페인행이 불가능한 상황.
가장 빠른 루트로 여권을 다시 만들었지만 이미 소집기한은 넘어갈 상황이었다.
에이전트가 급하게 클럽과 이야기했지만, 예외는 있을 수 없어 자신의 주급의 2배인 20만 유로를 벌금으로 책정됐다.
이런저런 소동이 있긴 했지만 메디컬 체크가 끝나고 벌금을 받은 선수들과 그렇지 않은 선수들로 나뉘었다.
당연히 벌금을 받은 선수들은 가르시아를 중심으로 실내 헬스장에서 몸무게와 체지방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땀을 쏟았다.
그래봐야 대여섯 명, 그 외 50여 명이 세도로프 감독 앞에 섰다.
세도로프 감독 뒤에는 새로운 코치진들이 자기소개한 후 늘어섰다.
“내일부터 보름 동안 간단한 훈련과 자체 연습경기를 가진다. 그 후 아시아에서 프리시즌 첫 경기를 치른 후 유럽과 스페인까지 총 7차례 게임을 진행한다.”
세도로프의 말을 들으며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수년 전부터 아시아 시장에서 프리시즌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본이 될 때도 있었고 중국이 될 때도 있었지만 이번 시즌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시작했다.
원래 한국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 많았지만, 인수의 영입 이후 팬층이 확대되어 한국에서의 매출이 높아졌다.
그에 맞추어 이번 시즌은 처음으로 한국에서 프리시즌을 갖기로 하고 한국에 있는 클럽들과 지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결과 전북과 경기를 치르기로 합의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전주까지 이동하기 힘들어 수도권 위주의 팀들과 협의를 하다 전북에서 고양 종합운동장을 대여하면서 전격적으로 전북으로 결정됐다.
연고지와 멀긴 했지만, 세계 최고의 팀인 레알 마드리드 첫 한국방문이었기에 한국 최고의 클럽인 전북이 이를 포기하기는 힘들었다.
A매치 경기가 아니면 거의 비어있던 고양 종합운동장이었기에 대관도 쉬웠기에 전북은 큰 배팅으로 친선경기를 성사시켰다.
전북의 모기업 또한 세계적 기업 중 하나였기에 레알 마드리드를 통한 광고 목적도 적지 않았다.
이를 위해 전북은 인수와 마린, 코프 등 주전 5명에 대한 출전 시간 40분 이상을 요구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빨리 한국에 갈 줄은 몰랐는데요.”
마린은 안전벨트 표시가 사라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 인수에게 다가왔다.
불과 두달도 되기 전에 한국에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나도 또 한국에서 경기할 줄은 몰랐지.”
불과 2년 전 소튼 시절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가졌던 인수였기에 그 기억이 생생했다.
“전북은 어떤 팀이에요?”
“몰라. 들어본 적도 없어.”
한국프로팀 중 가장 우승을 많이 했던 팀이지만 유럽에서 볼 때는 변방의 리그에 불과했다.
차라리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의 클럽들은 선수 수급을 위해 스카우터도 많이 파견되어 있었지만, 아시아에는 변변한 스카우터도 파견하지 않은 실정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기도 했지만 변방이란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마린은 전력분석팀에서 넘겨준 자료들의 양을 기억하며 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리가 팀들과 경기할 때 전력분석팀에서 넘겨주는 자료의 양은 팀당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지만 전북이란 팀은 딸랑 두 장에 불과했다.
그 두 장도 전북에서 뛰고 있는 유럽과 남미의 선수 4명에 대한 자료였다.
“가서 직접 부딪혀봐. 어차피 전반밖에 뛰지 않잖아.”
인수는 2년 전 FC서울과 했던 친선전을 생각하며 마린에게 조언했다.
“알겠어요.”
레알 마드리드의 전용기는 14시간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고급 시설로만 꾸며져 있는 전용기였지만 14시간에 달하는 비행거리는 선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선수들을 생각하지 않는지 출국장엔 수많은 기자와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웃고 손만 흔들어요. 입은 열지 말고요.”
인천공항 관계자들이 출국장을 정리하고 있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나타나면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예상하기 힘들었다.
투어를 도와주기 위해 함께한 직원들은 선수들 개개인에게 주의를 주고 난 후 출국장을 나섰다.
번쩍. 번쩍.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나오자마자 터지는 플래시에 눈살을 찌푸리는 건 잠시. 선수들은 프로답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높아지는 비명.
재빨리 카트를 밀며 공항을 벗어나 예약되어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와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한국에 올 때 이랬어?”
“아니.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도 와봤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대부분 국가대표로 이루어진 레알 마드리드였기에 한국에서 친선전을 뛰어 본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런 인파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많다는 거죠.”
어딜 가나 존재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잖아. 한국은 원래 이런 거야? 휴식하는 동안 함부로 밖에 나가기도 힘들거 같은데.”
그렇기에 팀이 이동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했지만 인천공항에서의 경험은 그 궤를 달리했다.
“저번에 하인스와 한국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별일은 없었어요. 알아보는 사람도 있긴 했는데 사인도 조심스럽게 받아 가던데요.”
마린은 얼마 전 한국에서 제일 붐빈다는 거리를 보디가드도 없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인수를 알아보고 사인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인과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그래? 그럼 돌아다녀 볼까?”
“가긴 어디가. 다들 짐 풀고 휴식을 취하고 내일 아침에 모이도록.”
세도로프의 말에 선수들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각자의 짐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