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21화 (121/200)

121화

“와 여기가 한국이야?”

“그럼 여기가 한국이란 곳이야. 난 벌써 몇 번이나 와봤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를 뛰지 않은 인수는 많은 행사들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한국의 기업들이 협찬을 해와 광고도 찍어야 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인사도 드려야 했다.

처음 계획대로면 레이와 둘이 한국으로 올 예정이었지만 자신보다 먼저 시즌을 마감한 에디가 스페인까지 찾아와 합류했다.

그 후 영국 캠프에 참여하기로 한 마린과 로카도 한국행에 참여했다.

둘만 오기로 한 여행이 다섯이 되었지만, 열흘이라는 기간은 변함이 없었다.

“어서 오세요. 일 년 만이네요.”

출국장을 빠져나오자 인수 일행을 김인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수아의 에이전트로 랭커리지와 계약해 인수의 한국에서의 모든 일을 처리하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어 계약했지만, 인수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고 한국에서 인수에 대한 문의가 늘어났다.

지금은 직원까지 두며 인수의 일을 처리할 정도로 일거리가 늘어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저번에 스페인에 오셨다고 했을 때 보고 싶었는데.”

“하하. 그때 베티스에 볼일이 있어서 바로 오스트리아로 떠나기도 했고요.”

김인철이 대답하는 도중 인수 일행을 알아본 사람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이쿠. 빨리 이동하죠. 이러다 둘러싸이면 꼼짝도 못 할 테니까요.”

랭커리지는 이전 경험을 살려 인수 일행을 모두 1등석을 예약했다. 그것도 비싸고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소문난 이베리아 항공으로 예약하며 인수의 한국행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렇기에 인천까지 소문이 나지 않고 오긴 했지만 한국에 도착하니 인수를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김인철의 도움으로 인천공항을 빠져나온 일행은 서울의 호텔로 바로 이동했다.

김인철이 방이 3개인 스위트룸으로 예약하긴 했지만 에디는 기어코 방을 하나 더 예약해 따로 짐을 풀었다.

“다들 알겠지만 여기는 여러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신경쓰 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다가서면 모두가 달려들 수 있으니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에디가 짐을 풀고 인수의 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작년에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라 소튼 소속이었죠. 한국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도 많아요.”

“와 내가 서러워서 이적이라도 해야지.”

에디의 말이 끝나자 김인철의 눈빛이 반짝였다.

프리미어리그의 스타인 에디였다. 인수만큼은 아니지만 에디가 이적한다는 소식은 한국에서도 큰 뉴스가 됐다. 그 뉴스를 먼저 아는 것만으로 에이전트로서는 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당장은 아니에요. 혹시 수아는 어디 있어요?”

에디는 김인철을 눈길을 피하며 물었다.

“아 오늘 다니던 대학에 서류를 떼러 갔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김인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렸고 문을 열자 수아가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편하게 지낸다고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는 수아였지만 오늘은 웬일이지 단단히 무장하고 들어왔다.

“언니.”

수아가 들어오자 가장 먼저 뛰어나간 건 레아였다.

팀 동료에다 서로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쳐주다 보니 더욱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수아는 레아를 안아준 다음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숙였다.

마린과 로카는 처음 본 사이지만 이미 같이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정말 미인이시네요. 혹시 밤에 술 한잔하실래요?”

전형적인 스페인 남부지역 남자였던 로카는 수아를 보자마자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오늘은 수아가 좀 바빠요.”

수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사이를 끼어든 에디는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어? 넌 웬 정장을 입고 있어?”

방을 따로 잡은 모습도 그렇고 짐을 정리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에디는 클럽에서 받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상의 윗주머니에 소튼 엠블렘이 박혀있는 정장. 계약할 때나 구단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정장을 입었다.

“어? 그게.”

에디는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수아를 바라봤다.

“오늘 우리 집에 가기로 해서.”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에디를 대신해 수아가 대답했다.

“어?”

“우리 반년 전부터 사귀고 있거든.”

에디의 말에 모든 일행은 에디와 수아를 번갈아 보았다.

수아와 가장 가까이 지낸 레이부터 에디와 거의 매일 통화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인수, 그리고 수아의 에이전트인 김인철도 두 사람의 말에 깜짝 놀랐다.

더욱이 반년 전이면 수아가 레딩의 재계약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레딩과 재계약을 해 이상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설마 에디와 사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주변에 감추고 있었다는 말에 인수는 에디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아아. 하인스 아파.”

인수는 그제야 얼마 전 수아를 레알 마드리드 팀원에게 소개시켜 준다고 했을 때 에디가 보였던 반응을 이해했다.

하지만 괘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 에디를 잡고 흔들던 인수는 에디의 눈이 풀리기 시작하자 놔주었다.

“수아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는 거야?”

“응.”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에디는 인수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래서 이렇게 차려입었구나.”

“잠시만. 수아야 그런 건 에이전트인 나하고 먼저 상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영어로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 다급히 한국어가 들렸다.

“왜요?”

김인철은 태연하게 반문하는 수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아와 에디가 방을 떠나고 김인철까지 밖으로 나가자 스위트룸에는 네 사람만이 남았다.

“와 에디가 수아랑 사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러게 수아 언니가 그런 소리 안 했거든.”

“축구를 잘하면 예쁜 사람을 만나나 봐요.”

“나도 축구를 해야 하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장거리 비행으로 인한 피로에 각자의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

한국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인수는 그동안 계약했던 광고도 촬영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인사도 드리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레이와 정식으로 사귀고 있다고 인사를 드리니 ‘이제 성인이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인수의 아버지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영국인 며느리를 얻은 분들 답긴 했지만 정작 시끄러운 사람들은 사촌들이었다.

미리 가져갔던 레알 마드리드의 사인 유니폼으로 입을 다물게 만들긴 했지만 손가락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인수와 레이가 약혼한다는 이야기는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영국인인 인수는 법적으로 18세가 넘었으니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결혼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한국계지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사람들은 별다른 탈 없이 넘어갔다.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에디와 수아도 이번에 약혼을 한다는 점이었다.

4살 차이 나 났지만 이미 에디의 부모님이 허락한 후였고 수아가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간단하게 허락을 받았다.

나중에 수아에게 듣기론 에디의 주급과 이적 시 받게 될 이적금 액수를 듣고 허락했다고 하지만 어찌 됐든 인수와 레이, 에디와 수아가 같이 약혼을 하게 됐다.

그런 만큼 수아도 한국에서 더 있으려는 계획을 접고 인수 일행과 영국행을 택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일행은 바로 소튼으로 향했다.

이미 인수와 레이가 약혼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만큼 재일과 재니퍼도 소튼 집에 머무는 중이었다.

하루 만에 치러진 네 사람의 약혼식이 끝나고 모두 소튼 외곽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너희 약혼식을 올렸다고 같이 방을 주는 일은 없을 테니까 훈련이나 해.”

약혼식까지 참석해 준 브링은 앞에 선 인원들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까지 인수와 에디, 레이뿐인 훈련장에 마린과 수아가 추가 합류했다.

수아는 예정에 없었지만, 휴식기 동안 체력을 비축하지 않으면 여자리그에서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아는 수아가 에디를 통해 부탁을 했다.

브링의 간단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문제없이 통과했다.

“그러니까 이걸로 선수들이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최댓값을 산출한다는 건가?”

“그렇죠. 의학적인 데이터가 입력되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클럽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고요.”

“저기 저 훈련을 하고 있는 훈련법을 자네가 만들어 낸 것이라 말이지?”

브링은 로카의 노트북에 있는 자료들과 마린이 훈련하는 것을 함께 살피며 물었다.

“혹시 식단 관리도 따로 했나요? 그 자료도 가지고 있나요?”

“아뇨. 식단 관리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유스팀에 소속되었으니 소속클럽에서 주는 대로 먹었겠죠.”

“아. 식단까지 알았으면 자료가 더 모였을 텐데. 아쉽네요.”

벨로이치도 마린이 훈련하는 것을 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영양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세계적인 선수들의 휴식기 관리를 해주고 있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체계적인 자료는 희귀했다.

로카가 마린의 어린 시절부터 같이 봐왔다고 했으니 그 자료가 보고 싶었지만 없다고 하니 아쉬워했다.

“그럼 웨이트는 아직 안 했겠지? 아직 18살이라고 했잖아. 벌써부터 웨이트로 몸에 무리를 주면 안 되는데.”

“그것도 클럽에서 알아서 해서. 다만 하인스를 만나고 나서는 인수가 하는 스트레칭을 따라 하더라구요. 아직까지 인수가 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군. 하긴 인수와 녀석들이 하는 스트레칭을 보고 나도 놀라긴 했지. 제대로 된 웨이트는 점차 늘려가면 되는 거고. 나도 이 자료들 좀 뽑아줄 수 있겠나?”

로카는 네 명의 코치들을 상대하며 그들이 묻는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코치님들은 어떻게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계시는 건가요?”

“우리도 각 클럽에서 선수의 세부 자료를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시키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거지. 우리랑 같이 있다 보면 우리가 어떤 식으로 훈련을 시키는지 보라고.”

로카 역시 끝까지 남고 싶었지만 일정상 자신은 일주일 먼저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대학 졸업논문심사를 비롯해 세도로프 감독이 짠 코치진들과도 회의가 잡혀 있었다.

3주간의 일정이었지만 로카가 스페인으로 떠날 때는 로카의 노트북에 수없이 많은 자료가 빠져나가고 또다시 입력되었다.

처음 인수와 마린에 대한 데이터만 있었지만 에디와 레이, 수아의 데이터가 축적되며 여자선수들에 대한 데이터가 쌓인 것은 큰 수확이었다.

더욱이 데이터로만 알 수 없는 부분들은 브링과 코치들의 도움으로 선수들을 보는 눈이 넓어졌고 영국축구경기 영상들을 보며 스페인과 다른 영국축구를 경험한 것도 로카에게 도움이 되었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로카는 히드로 공항까지 배웅나온 에디를 보며 웃었다.

“배웅한다는 핑계로 오전 훈련을 빼먹을 수 있잖아요. 아무리 축구가 좋다고 하지만 계속 훈련하면 지겹거든요.”

“하긴. 나중에 또 보자고. 스페인에 놀러 오면 연락하고.”

로카와 에디는 악수를 마지막으로 주차장에서 헤어졌다.

인수와 친구들의 훈련이 계속되는 때 유럽은 본격적인 이적 시장이 열렸다.

언론들에서는 이번에도 수없이 많은 선수를 거론하며 이적설을 퍼트렸다.

실제로 이적하는 선수, 그리고 이름만 오르내리는 선수들이 있었음에도 훈련에만 집중하던 인수와 선수들은 프리시즌이 다가오자 캠프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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