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위험했어.”
샨투 감독은 경기를 복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반 20분 인수의 어시스트로 소아레스의 골이 터져 3:1로 앞서 나갈 때까지만 해도 쉽게 이길 듯 보였던 경기였다.
그러나 3분 후 알테레테가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마린과 교체되어 나간 누네스의 공백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 후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줄기차게 밀어붙였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다시 한번 알테레테의 돌파에 이의 스루패스를 받아내며 골을 만들어냈다.
이 골이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면서 노골이 되었다.
이후 인수가 시원한 중거리슛을 날렸지만 발렌시아 골키퍼의 선방으로 막히고 이어진 코너킥에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다시 공격권을 가져간 발렌시아였지만 모든 기회가 무산되고 3:2로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하였다.
점유율은 8:2로 상대가 발렌시아였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스코어나 경기 내용은 3:2의 신승이었다.
그래도 발렌시아와의 경기에서 이기며 2위 그룹과의 승점 차를 더 벌린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8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2위 그룹과의 승점 차이가 12점이었다.
4승만 한다고 해도 자력 우승이 가능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샨투였다.
어차피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었고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즌이었다.
세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리그 우승 2회, 아직 결승전을 남겨두긴 했지만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을 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떠나는 것이다.
우승 경력을 정리하다 보니 이렇게 쫓기듯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의 두 번의 패배가 발목을 잡았다.
지지난 시즌 네 번 만나 두 번을 졌고, 지난 시즌에는 두 번 만나 두 번 모두 패한 것이 팬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남았다.
차라리 우승하지 않았더라도 바르셀로나에 모두 이겼다면 감독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샨투 감독은 머리를 휘저으며 잡생각을 떨쳐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음 경기였다.
***
“레알 마드리드가 자력 우승을 위해 이제 한 경기만 남겨두고 있죠.”
“그렇습니다. 저번 주 있었던 사라고사와의 리그 34라운드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일주일이 미뤄졌죠.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다행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35라운드는 홈 경기이거든요. 항상 만원이었던 베르나베우가 오늘도 관중이 꽉 찼습니다.”
“제가 할 말을 해버리시네요. 지난 경기를 잠시 복기를 해주신다면요.”
“아무래도 강등권인 사라고사와의 경기였고 원정이었던 탓에 레알 마드리드는 하인스, 마린, 사라비아, 가르시아, 마르체나까지 모두 마드리드에 남겨두고 떠났죠. 샨투 감독은 그 대신 지난 경기들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카스티야의 선수들을 데리고 갔죠. 사라고사의 강등권 탈출 버프도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의 실수도 많이 보였죠.”
“말씀하신 대로 강등권 버프가 우승권 버프보다 효율이 높다는 것이 증명된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나는 팀도 공교롭게도 강등권에 걸쳐있는 팀이죠?”
“UD 라스팔마스죠. 이번 시즌 16위로 18위와 4점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갈 길이 바쁜 팀입니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다음 주에는 다시 홈이기에 카나리아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다시 원정이 잡혀있습니다. 보통은 라리가 팀에게 지옥의 원정길이라 불리는 라스팔마스인데 강등권에 걸쳐있는 라스팔마스이다 보니 라스팔마스에게 지옥이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지옥의 원정길이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지금 라리가 2에서 CD테레리페가 1위를 달리고 있죠.”
“라리가 팀들은 제발 CD테레리페가 승강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지난 01-02시즌에 딱 한 번 라스팔마스와 테레리페가 1부리그에 같이 있었던 적이 있죠. 그때 라리가의 팀들 모두가 힘든 한해였습니다. 마요르카까지 1부리그에 올라온다면 아마 라리가 팀들은 유럽 리그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스팔마스와 테레리페는 카나리아제도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세비야도 1200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만큼 원정길이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 두 팀이나 존재한다면 주중에 편성되는 다른 일정이 매우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마요르카는 카나리아 제도와는 정반대 쪽인 지중해 쪽인 팔마섬에 있었다.
세 팀이 1부리그에 있다면 그해 라리가는 유럽리그를 포기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지만 최근 세 팀이 1부리그에 함께 있던 적은 없었다.
“01-02시즌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데포르티보까지 8강에 올랐고 레알 마드리드는 우승까지 했으니 유럽리그에서도 잘하겠죠. 이제 오늘 경기를 예상해보시죠.”
“강등권 버프가 오늘도 통할지 봐야 할 듯합니다. 지난 라운드에서 라요와 무승부를 거두면서 라스팔마스도 급하거든요.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선의 라인업을 들고 나왔으니 분명 홈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강등권 버프와 우승 버프가 다시 맞붙는 라운드이니만큼 흥미진진한 한판이 될 듯합니다.”
“그럼 레알 마드리드와 라스팔마스와의 리그 35라운드를 지켜보시죠.”
***
“9번 봐. 9번 마크해.”
최상의 라인업이라고 짠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강등권 버프는 무서웠다.
전반 선공권을 가져간 라스팔마스는 초반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는 듯 거세게 밀어붙였다.
“달려들지 마. 들어오는 사람만 봐.”
산체스는 거칠게 밀어붙이는 라스팔마스의 공격진을 보며 수비수들의 자리를 지시했다.
산체스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수비수들을 움직였지만 라스팔마스의 9번 마이켈 메사가 파고들며 헤더를 성공시켰다.
“파고들 틈을 내주지 말라니까.”
산체스는 메사의 헤더를 다이빙으로 골라인 아웃을 시키고 벌떡 일어나 선수들을 다그쳤다.
분명 경기에 들어서기 전 초반 라스팔마스가 파상공세를 펼칠 것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불과 50여 초만에 메사에게 첫 헤더슛을 내주니 돌파당한 마르체나를 다그쳤다.
“미안해. 몸싸움에서 밀릴 줄은 몰랐어.”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긴장하자.”
“알았어.”
산체스는 마르체나의 어깨를 쳐주고 코너킥을 준비했다.
선수들을 피지컬로 뽑는다고 말하던 라스팔마스였기에 세트피스 성공률이 상당히 높았다.
“선수들을 봐. 서로 마크해야 할 선수들을 지목해.”
산체스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194cm의 높이는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높이 떠오른 메사는 골대를 향해 공을 내리찍었다.
“잘했어.”
골대 우측 폴대를 잡고 있던 인수는 메사의 헤더를 발에 맞췄고 그 공을 니실랴가 라스팔마스진영으로 차 보냈다.
“다들 나가. 페널티 지역을 비워,”
니실랴가 처리하긴 했지만 터치라인 아웃 직전 라스팔마스의 최종 수비가 공을 잡으며 공세가 계속됐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다시 공이 위험지역으로 넘어오기 전 빠르게 페널티 지역을 비웠다.
그러나 슛을 두 번이나 한 메사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페널티 지역을 벗어났다.
“아 저 피지컬만 믿고 축구하는 녀석이.”
산체스는 천천히 빠져나가는 메사를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194cm의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자랑하며 무식한 힘을 바탕으로 축구를 하는 메사였다.
물론 스피드가 느리고 지구력이 약하긴 했지만 파괴력만은 그 어느 팀도 무시할 수 없는 선수였다.
산체스가 조용히 속삭였지만 그 소리를 들었는지 메사는 고개를 돌려 산체스를 보며 씩 하고 웃었다.
삐익.
“왜 이게 반칙이에요.”
메사는 다시 페널티 지역으로 파고들며 손을 휘둘러 마르체나를 넘어뜨렸다.
느린 스피드 때문에 몸싸움을 이겨내며 파고드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르체나도 메사에게 붙지 않고 있었기에 메사 역시 돌파하기 위해서는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반칙이야.”
메사는 단호한 주심의 선언에 불만 가득한 얼굴로 물러섰다.
“천천히 공을 돌려. 적들의 기세를 꺾어야 해.”
가르시아는 니실랴에게 공을 밀어주며 소리를 높였다.
라스팔마스는 전방위적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돌려. 빈 사람을 확인해 놔.”
니실랴는 자신을 압박하는 선수를 피해 안전하게 후베이루에게 공을 돌렸다.
니실랴를 마크하던 선수가 후베이루에게 다가오자 공은 다시 니실랴에게 향했다.
“오래 끌지 마. 정확하게 돌려.”
니실랴는 공을 받은 후 다시 오른쪽 윙백인 아랑게스에게 공을 돌렸다.
압박하는 라스팔마스의 선수들의 체력을 빼놓겠다는 전략.
정확한 패스를 기반으로 해야만 하는 전략이지만 몇 번의 공이 돌아 다시 아랑게스에게 공이 갔을 때 문제가 생겼다.
4분여를 안전하게 패스를 하자 라스팔마스 선수들도 슬슬 포기해야 하나 하는 움직임이 보이는 순간 아랑게스가 산체스를 향한 패스가 짧았다.
“짧아. 마크해.”
아랑게스의 패스가 페널티 지역에 가지도 못하고 멈추자 그 공을 메사가 가로챘다.
메사가 골대로 향하자 아랑게스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메사의 뒤를 쫓았다.
“안 돼. 가르시아에게 맡겨.”
산체스는 후회가 가득한 아랑게스의 얼굴을 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산체스가 소리쳐봤지만 아랑게스는 메사의 뒤에서 몸을 날렸다.
삐익.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본 주심은 휘슬을 불며 뛰어가 아랑게스에게 바로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레드카드는 너무 하잖아요. 발도 낮았고요.”
산체스는 주심이 휘슬을 불자 바로 골대를 비우고 메사가 넘어진 지역으로 뛰어가 주심에게 항의했다.
“이게 왜 프리킥이에요. 페널티 지역 안이었어요.”
넘어져 있던 메사도 주심이 산체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프리킥을 선언하자 바로 항의했다.
주변에 있던 양팀의 선수들이 모두 모이며 주심에게 항의하는 상황이었기에 주심은 선수들을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짓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랑게스 퇴장이야. 경기장에서 나가.”
“발이 높지 않았잖아요. 퇴장은 너무 하잖아요.”
산체스는 주심의 태도가 변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더욱이 주심이 프리킥을 선언한 상황.
자신이 보기에도 아랑게스의 태클에 걸린 메사가 넘어진 곳이 페널티 지역 안이었기에 VAR를 판정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었다.
“분명히 페널티 지역 안이었다니까요. VAR를 해주세요.”
메사의 항의가 계속됐지만 주심은 귀에 끼고 있는 인이어로 대화를 나누다 VAR 판정 심판석으로 달렸다.
VAR를 보고 난 후 다시 돌아온 주심은 프리킥을 취소하고 페널티킥을 지시했다.
아랑게스의 퇴장은 이미 확정되었고 페널티킥까지 내준 상황.
산체스는 이를 악물고 골대 좌우로 몸을 날리며 몸을 풀었다.
상대 키커는 패널티킥을 유도해 낸 메사가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선수들의 페널티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오른쪽을 버리고 왼쪽으로 몸을 날릴 준비를 했다.
삑.
주심의 휘슬이 불리고 메사가 공을 향해 달렸다.
쾅.
메사가 힘껏 찬 공은 산체스의 예상대로 왼쪽으로 향했고 산체스 역시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산체스가 생각하는 방향은 맞았지만 워낙 빨랐기에 쳐내지 못했고 손을 스치며 골문 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