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11화 (111/200)

111화

삼일간의 휴가를 받은 인수는 마드리드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영국에 다녀올까? 그냥 있을까?”

손으로는 인터넷 바둑판에 돌을 놓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영국에서 벌어질 경기에 관심이 가 있었다.

“아 잘못 놨네. 제발. 눈치채지 말아라.”

인수가 다른 생각을 하다 H,6에 놔야 할 돌을 H,7에 놓고 말았다.

한 칸 잘 못 놓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 한 칸이 상대에게 침투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다.

축구로 예를 들면 자신의 진영 뒷공간을 파고들 틈을 만들어 줬다.

축구에서는 그 위기를 100% 골로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바둑은 그 공간 때문에 100% 진다.

인수가 초조하게 상대의 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한 시간이 모두 지나가도 상대가 돌을 놓지 않았다.

이미 주어진 시간은 다 썼고 초읽기 5회 중에 3회밖에 남지 않는 귀중한 시간을 이번 수에 쓴 상대.

인수는 이미 상대가 그 틈을 이용하여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차라리 들어올 거면 깊숙이 들어와. 싸워보기라도 하게.”

인수가 간절히 바라며 상대의 수를 기다렸지만 얄밉게도 인수가 두지 않았으면 하는 곳에 돌이 놓였다.

이미 포석 단계(그림의 스케치에 해당하는 단계)는 끝이 났고 급한 곳도 이미 끝났기에 이번 싸움이 끝나면 끝내기(집을 완성하는 단계, 다른 게임에는 없는 바둑만의 독특한 과정)로 돌입하는 상태였다.

이곳에서 10집 이상 손해 봤기에 끝내기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 손해를 만회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집중력을 가지고 끝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2.5집 차이로 지고 말았다.

“아 거기서 잘 뒀으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인수는 신경질적으로 바둑 프로그램을 껐다.

띠링.

“어 이 형이 웬일이지.”

인수는 갑자기 울린 알람 소리에 수신자를 확인하자 조우진 9단이었다.

「뭔 생각으로 그 수를 둔 거야. 내가 그렇게 알려줬어?」

인수는 시계를 보고 한국시간을 계산해보니 새벽 4시였다.

「이 시간이 이런 미천한 바둑을 보고 계셨습니까? 요즘 한가하신가 봐요.」

「그냥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네가 바둑을 두고 있어서 잠깐 보고 있었는데 이상한데 두길래 지켜봤지.」

「잠깐 딴생각했었어요. 원래 두려던 곳이 아니었다고요.」

「바둑 두면서 딴생각하는 놈이 잘못한 거지. 그런데 후반 힘은 무지 좋아졌던데.」

「10집 가까이 손해 봐서 그냥 돌 던질까 하다가 끝내기까지 두긴 했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인수는 조우진 9단의 흔치 않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후반에 힘이 좋아지긴 했어. 독학으로 7단까지 올랐다는 말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데. 역시 배우면 잘한다니까.」

조우진 9단이 가끔 코치를 해주긴 했지만, 인수를 가르쳐준 것은 이번에 프로에 합격한 천가람 초단이었다.

천가람 초단의 집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조우진 9단이 인수를 소개해줬다.

인수의 바둑이 급격히 늘었던 이유도 천가람 초단의 성실한 지도 덕분이었다.

「천 초단은 잘 지내요? 저번에 입단 준비한다고 한 뒤로 연락을 못 했는데.」

「나도 모르겠네. 지금 한국이 아니거든.」

「어딘데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초청이 와서 지금 영국 캠브리지에 있어.」

「언제까지 있는데요?」

「모레까지.」

「알았어요. 나중에 연락해요.」

인수는 조우진 9단이 캠브리지에 있다는 말에 메신저창을 닫고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히드로 공항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수속하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다 해도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기에 랭커리지에게 내일 아침 영국으로 간다고 연락했다.

모레 아스날 우먼 풋볼의 홈인 메도우 파크에서 레이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마음 같았으면 바로 날아갔을 터지만 모레 경기가 끝나고 난 후 레이를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야 소집에 응할 수 있었다.

그 사정을 알았던 레이는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이 해산되면 마드리드로 오겠다고 했었다.

어찌 됐든 인수는 비밀리에 영국에 입국하기로 했다.

***

“이 상황이 비밀리에 입국한 상황이야?”

인수는 옆에서 귓속말을 하는 에디를 노려봤다.

아직 면허를 따지 않았던-절대 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땄던 것이다.- 인수는 에디에게 마중을 부탁했다.

랭커리지에게 부탁을 해도 되겠지만 개인적인 일정이었던 지라 부탁하기 편한 에디를 선택했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보다 체격이 큰 인수가 눈에 띄는 것이 당연했고 히드로 공항에서 내렸을 때 인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재빨리 움직여 에디가 주차하고 있는 차로 움직였지만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덕에 히드로 공항 주차장에서 원치 않은 사인회를 하고 있는 인수와 에디였다.

“조용히 해라. 잔말 말고 사인이나 해. 빨리 가야지.”

인수 역시 에디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30분이 넘게 이어진 사인이 끝나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캠브리지 대학이었다.

“레이한테 온다고 말했어?”

“아니. 깜짝 이벤트를 해주려고 했지.”

에디는 운전대를 꽉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 영국 올 때마다 언론에 들키지 않은 적 있어?”

“없지.”

“그럼 레이가 너 들어온 거 알까? 모를까?”

인수는 황급히 전화기를 들어 레이에게 전화해 자신이 들어온 사실을 알렸다.

“축구 지식의 반 아니 바둑 지식의 반만큼이나 생각을 하고 살아.”

한참을 구구절절 설명하다 전화를 끊은 인수를 보고 에디가 혀를 찼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1시간 30분이면 간다는 거리를 2시간 가까이 가고 있어?”

“네가 자꾸 말을 시켜서 그런 거잖아. 조용히 좀 하고 가자.”

에디의 운전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딴 운전면허였는데 그 정도의 연습만으로 이렇게 부드러운 운전이 가능하나 할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인수는 느린 것만을 문제 삼았다.

“다시는 내가 차를 태워주나 봐라. 너도 면허를 따. 집에 차 모셔만 놓지 말고 타고 다니라고.”

영국 올림픽 대표팀이 금메달 따서 돌아오자 수많은 축하와 협찬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가장 통 크게 협찬한 곳이 롤스로이드였다.

선수들과 감독인 램파드에게 롤스로이드 컬리넌 3세대를 한 대씩 선물했다.

물론 2세대 이후 처음 출시되는 3세대를 광고하는 목적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승에 목말라 있는 영국의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했다.

에디가 몰고 있는 차도 그때 받은 차였다.

“그런데 차에 탈 때부터 느꼈는데 향 좋은 거 쓰나 보네. 부드러워.”

“하하. 차는 원래 깨끗이 타고 다니는 거야. 방향제도 뿌려주고 말이야.”

“네 방도 그렇게 치우고 살아봐. 여자친구 태우고 다녀?”

“여자친구는 무슨. 그나저나 네가 직접 캠브리지까지 가서 만나야 할 사람이야?”

에디는 인수의 말에 당황해하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대단한 사람이지. 축구로 따지면 안수 파티 정도 될까?”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모두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2억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안수 파티였다.

“그 정도야?”

“네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대단한 사람이야.”

인수는 캠브리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우진 9단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에디는 인수가 더 이상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

“슈퍼스타 오셨네.”

“무슨 슈퍼스타예요. 형이 더 대단하죠. 그런데 대국은 잘했어요?”

유럽에 바둑 보급을 위해 한·중 기원에서 합의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이벤트 대국을 펼쳤다.

이미 2000년대부터 바둑이 보급되고 있긴 했지만 큰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는 유럽이었다.

이에 양국기원에서는 유럽을 일본에서는 그 전부터 노력하던 미국에서 노력하기로 합의했고 이번 이벤트 대국을 계기로 3년에 한 번은 유럽 각 지역에서 대국을 펼치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영국이 결정됐고 조우진 9단을 비롯한 한국 기사 5명이 영국으로 넘어왔다.

“이벤트 대국인데 뭘. 이기긴 했지만.”

“여기는 에드워드 브라운.”

“알지. 반가워요. 한국에도 자주 왔다고 기사에서 봤어요. 조우진이라고 합니다.”

“안뇽하세요. 에디입니다.”

인사말만 알았던 에디를 위해 인수가 통역을 해주자 에디 역시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조우진 9단을 비롯한 기사들은 하루 더 캠브리지에 머물러야 했고, 인수와 에디는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짧은 만남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

“표는 구했어? 마지막 경기인 데다 좌석 수도 얼마 되지 않아 구하기 힘들 텐데.”

여자축구 최고의 자리에 있는 아스널WFC였지만 한계가 명확했기에 5부 리그팀의 주경기장인 메도우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자 축구 최고 명문팀이 고작 4500석의 구장에서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긴 하지만 현실은 그러했다.

“우리에겐 랭커리지가 있잖아. 이미 구했데. 표는 받아놨으니 우리는 가기만 하면 되면 돼.”

런던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은 아스널 WFC의 홈구장인 메도우 파크로 향했다.

“벌써 1점 내줬나 본데.”

레딩 위민의 홈구장을 찾았을 때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집중하던 관중들을 보았기에 두 사람은 전반전이 시작한 후 15분이 지나서 조용히 입장했다.

경기장에서 들어서고 난 후 전광판에는 1:0의 스코어가 기록되어 있었다.

“아스널이 잘하긴 하잖아. 남자팀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에디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시즌 소튼은 아스널을 모두 3번 만났다.

리그 경기에서 두 번, 리그컵에서 만나 에디가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이긴 경험이 있었다.

앞으로 FA컵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일찌감치 떨어진 소튼이었기에 더 이상 아스널과의 만남은 없었고 이번 시즌 기록은 아스널의 상대로 전승으로 끝나게 됐다.

“어쭈구리. 네가 그 경기들에서 다 골을 넣었다 이거야? 다 얼렁뚱땅 넣어 놓고는.”

“그래도 넣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이적할 것이라 발표한 코룸을 제외하면 소튼에서 골을 제일 많이 기록하고 있는 에디였기에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더욱이 주장인 파바르가 부상으로 은퇴를 결정하며 차기 주장 물망에 올라있기도 했다.

소튼은 물론이고 프리미어 역사상 최초로 10대 주장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이미 소튼 유스 출신에다 묵묵히 헌신하는 빌리 맥킬리를 차기 주장으로 선임하긴 했지만 그런 보도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에디의 활약을 가늠하게 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 레딩에게 기회가 왔고 레이가 자신의 등 뒤로 오는 패스를 돌려차기로 골을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모두가 어리둥절했고 골을 넣은 레이만이 깡충깡충 뛰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역시 레이야. 저걸 저렇게 넣냐.”

“진짜 아크로바틱해야 하는 거 아냐? 진로를 잘못잡은 거 같다니까.”

서커스에서나 볼법한 몸놀림에 에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수아의 크로스가 등 뒤로 갔는데도 그걸 뛰어서 돌려차기로 넣을 생각을 하다니.

이미 포스트시즌에는 멀어진 레딩이었지만 레이의 골만은 항상 주목을 받았다.

대신 정상적으로는 골을 넣을 수 없냐는 말과 함께 대표팀에는 한 번밖에 승선하지 못했지만 레이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스널 WFC는 자신들이 여자축구의 최고인 것을 증명하듯 2골을 더 집어넣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를 3:1로 지게 되긴 했지만 여전히 중위권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레딩이었다.

경기가 끝나기 전 경기장을 황급히 떠나온 두 사람은 레이를 만나보지도 못하고 바로 히드로 공항으로 향했다.

“시즌 끝나고 보자.”

“그래. 시즌 끝나고 보자고. 다치지 말고.”

“너나 다치지 마.”

두 사람은 뜨겁게 부둥켜안고 난 후 쿨하게 돌아섰다.

인수는 시즌 끝나고 레이와 함께 한국으로 5일간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 계획을 들은 에디가 함께 가겠다고 나섰고 시즌 일정이 먼저 끝날 예정이었던 에디가 마드리드로 넘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이후를 약속한 두 사람은 마드리드와 소튼으로 각각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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