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06화 (106/200)

106화

AT마드리드라는 고비를 넘기니 다음에 기다리는 산은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이었다.

“답답하군.”

라인업을 짜기 위해 코치들을 모은 샨투 감독은 심정을 그대로 토로했다.

AT마드리드와의 경기가 끝난 후 병원에 간 아랑게스가 문제였다.

허벅지에 염증 증상이 있다는 진단이었다.

밖으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증상이었지만 염증의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의사가 1주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렸다.

“본인도 몰랐다고 합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만 생각했지 허벅지에 염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아랑게스를 데리고 병원까지 데려간 피지컬 코치가 아랑게스를 대신해 변명했다.

의사도 아랑게스가 알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염증이라 말했지만 염증은 염증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확실하게 관리해달라고 해.”

샨투 감독은 선수들의 명단을 보며 머리를 꾹꾹 눌렀다.

2주간에 치러야 할 경기가 4경기였다.

“포기할 경기는 포기해야지. 어떤 경기를 포기해야 할까?”

AT마드리드에게 승리하며 2위 그룹과의 승점은 12점 차이였다.

발렌시아가 다시 2위로 올라섰고 AT마드리드는 4위까지 떨어졌기에 리그 경기에서는 여유가 생겼다.

“산술적으로는 셀타 비고와 소시에다드 모두 카스티야 선수들이 뛰어도 문제없습니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이적을 원하는 선수들 위주로 명단을 짜달라고 해.”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20살 이하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카스티야 선수단이었다.

1군 선수단이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 만큼 1군에 올라올 자신이 없는 카스티야 최상급 선수들은 대체로 이적을 택해왔다.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었다면 라리가에서 충분히 뛸 수 있을 정도의 선수들이었기에 믿고 쓰는 레알 마드리드 산이라며 이적한 팀에서 중용을 받을 수 있었다.

“빌바오와 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모두 원정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통보하고 절대 몸조심하라고 해. 빌바오 녀석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아틀래틱 클루브 또는 아틀래틱 빌바오라 불리는 팀은 순수혈통주의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바스크 지방의 유스에서 활동한 선수들에까지 문을 열어두며 선수들을 폭넓게 받고 있긴 하지만 선수 수급에 난항을 겪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2부리그로 떨어진 적도 없는 명문 팀 중 하나였다.

특히 프랑코 정부에 반대하며 레알 마드리드와는 전통적인 라이벌이었고 레알 마드리드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는 까다로운 팀이었다.

그런 코치진들이 머리를 감싸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도 훈련장에는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있었다.

***

“잘 봐. 여기서 코프가 수비를 달고 나가서 공간을 만들어줬잖아. 그럼 그 자리에 바로 공이 가야지.”

인수는 단체훈련이 끝나고 난 후 마린을 비롯한 선수들을 모았다.

모라타와 실레의 부상 이후 선수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과의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인수의 말에 기꺼이 남아 훈련을 도와줬다.

코프가 수비를 데리고 나가면서 중앙에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을 소아레스가 치고 들어왔다.

인수가 중앙으로 패스한 공이 정확히 소아레스의 발밑으로 전해졌고 소아레스는 바로 슛으로 이어갔다.

산체스가 여유롭게 막긴 했지만 노마크 찬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마린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 공간에 선수가 들어올 것이지 어떻게 알아요?”

“보이잖아. 코프가 빠져나가는 순간 소아레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지 않아?”

코프가 움직이는 순간 소아레스의 몸의 중심이 중앙으로 기울어지며 치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소아레스의 이동 속도를 계산해서 패스의 속도를 조절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약속된 플레이 아니에요?”

“훈련 중에는 약속된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변수가 많은 경기를 컨트롤할 수 없잖아. 그때그때 보이는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지.”

마린은 멍한 눈으로 인수를 봤다.

“다시 잘 봐. 코프가 움직이면 당연히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그럼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움직일 것 아냐. 그 공간을 이용할 선수는 정해져 있고. 그 선수들의 움직임만 파악하면 되잖아.”

“그 선수들이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면요.”

“그럼 네가 사용하면 되지. 감사하잖아. 골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데.”

인수는 마린이 아무 대답이 없자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중앙에서 뛰면 내가 네 앞에 있을 테니까 그런 공간을 네가 이용할 기회는 주지 않을게. 누네스 잠깐 도와줄래요?”

인수는 마린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누네스를 불렀다.

중앙수비수 출신이니만큼 1:1 대인방어 능력은 탁월한 누네스였다.

“마린 앞을 막아줘요.”

인수는 누네스에게 부탁하고 선수들 사이로 들어갔다.

***

“오늘 고생했어.”

인수는 마린과 로카가 집으로 들어오자 환하게 웃었다.

“와 집이 진짜 크네요.”

“그러게 엄청 크네.”

두 사람은 인수의 집으로 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마린은 클럽에서 구해준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고 로카도 대학 기숙사에서 머물고 있었기에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주택지역은 처음이었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수백억에 이르는 대저택도 있었지만 초입에 있는 인수의 집은 마드리드 클럽에서 마련해준 곳으로 그래도 수십억을 호가하는 저택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인수를 영입하며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수의 집보다 안쪽에 모라타, 사라비아, 코프, 실레 등 주전 선수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었다.

물론 그 선수들의 집까지 구단에서 마련해 준 것은 아니지만.

“너도 살 수 있잖아. 이번에 재계약하면서 주급도 많이 올랐던데.”

레알 마드리드의 보드진은 마린을 1군으로 올리며 5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다른 선수들만큼 억 소리 나는 계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후베닐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주급이 책정됐다.

“부담 없이 들어와요. 선수들도 많이 다녀갔으니까.”

인수는 아직 두리번거리는 로카를 끌고 소파로 데려갔다.

거실에는 큰 텔레비전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게임기가 놓여있었다.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인수였기에 살 생각도 없었지만 박싱데이 전 휴가를 받은 에디가 놀러 와 사놓고 간 물건이었다.

그 후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이 놀러 오면서 사용했지만 정작 집주인인 인수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재일과 레이첼이 있었음에도 모라타는 선수들을 끌고 자주 놀러 와 게임을 즐겼다.

처음에는 인수를 인정한 후 선수단과 인수를 친해지게 만들려는 목적이었지만 그 후에는 재일과 레이첼이 해주는 음식에 더 눈독을 들였다.

재일과 레이첼이 영국으로 돌아간다고 했기에 더 이상 선수들이 방문할지 의문이었지만.

“이게 뭐라고 불러요?”

로카는 파스타처럼 생긴 음식을 먹으며 눈을 크게 뜨고 레이첼을 바라봤다.

“그거 잡채일걸. 아랑게스가 제일 맛있다고 말한 거야.”

“그럼 이건?”

“그건 갈비. 그리고 이건 불고기일 거야.”

마린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주변 선수들이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특히 그 음식들의 특징이나 생김새까지 모두 말하며 설명했기에 생김새들이 익숙했다.

“와 마린이라고 했나? 더 있으니까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해.”

레이첼은 처음 방문한 마린이 모든 음식의 이름을 말하자 놀라워했다.

이번 주 마드리드를 떠나기에 냉장고를 털어 만들어 놓은 음식도 많았기에 재일은 주방으로 가 음식을 더 내오기 시작했다.

“자자 더 많이 먹어. 내일 또 굴러야 하니까.”

인수는 재일이 가져온 음식을 마린에게 덜어주며 씩 웃었다.

“먹다가 체하겠다. 먹을 때는 잘 먹기만 하면 돼. 많이 먹어.”

레이첼은 인수의 등을 때리며 마린을 보고 밝게 웃었다.

고향인 안달루시아를 떠나 마드리드로 온 마린은 안달루시아에 있는 부모님이 생각났다.

***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랜틱 클루브와의 4강 첫 경기가 열리는 베르나베우입니다. 양 팀 모두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해야 할 명분은 충분해 보입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하기 위해 코파 델 레이를 포기했다고까지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떨어지며 코파 델 레이를 다시 가져오겠다고 발표했죠. 부상선수들이 속출하고 있는 와중에도 샨투 감독이 코파 델 레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죠.”

해설자는 목이 타는지 물로 입을 축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빌바오는 지난 시즌 충격의 강등을 맞을 뻔했습니다. 그동안 중위권의 성적을 계속 거두며 순수혈통주의를 포기하지 않고도 라리가에서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라리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강등당할 위기에 처했죠. 물론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하며 겨우 벗어나긴 했지만, 빌바오를 응원하는 팬들 처지에서는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이번 시즌도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하며 팬들을 다독일 필요가 있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부상이라는 악재를 가지고 있죠. 그런 탓인지 샨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당장은 코파 델 레이에 집중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요.”

“이번 주와 다음 주 주중에 1, 2차전이 연달아 열리게 되죠. 결승전은 5월로 예정된 만큼 리그 경기를 포기하더라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올라가야겠다는 말이죠. 이로 인해 강등권 팀들 입장에서 날벼락을 맞은 셈이죠.”

“아 그렇군요. 레알 마드리드 28라운드가 셀타 비고, 29라운드가 소시에다드입니다. 현재 13위인 셀타 비고는 모르겠지만 18위에 쳐져 있는 소시에다드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강등권을 벗어날 수도 있는 승점 차입니다.”

1위와 2위권의 승점 차가 12점까지 벌어지며 아직 우승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2위 싸움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반면 강등권은 치열 그 자체였다.

이미 강등이 확정되다시피 한 엘체를 제외하면 15위부터 19까지 승점 4점 차이였다.

승점이 같은 경우 상대 전적에 따라 순위를 정하는 라리가였다.

그렇기에 하위권 팀들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지 승점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2차전 원정 경기를 가져야 하기에 경기의 내용에 따라서는 30라운드까지 포기할 수 있는 승점 차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30라운드 상대가 카디스이니 말이죠.”

“정말 지옥 같은 원정 3연전이네요. 선수들의 회복에 따라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30라운드도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인데요. 카디스도 강등권에 있는 팀 아닙니까? 리그 선두를 달리는 레알 마드리드로 인해 강등권이 요동칠 수 있겠네요.”

“물론 카스티야 선수들 위주로 라인업을 짠다고 해서 무조건 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강등권 버프는 우승 버프보다 강력하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카스티야 선수들도 몸값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만큼 재미있는 경기가 되겠죠.”

“여기까지가 주변 배경 상황이고, 오늘 경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가 봐도 레알 마드리드가 우세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겠죠. 그러나 빌바오입니다. 엘 클라시코보다 치열했던 경기가 바로 엘 비에호 클라시코입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다만 부상선수가 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말씀하신 대로 부상선수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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