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단 한 번의 찬스로 동점을 만든 레알 마드리드와 AT마드리드의 전반 경기가 끝이 났습니다. 전반전 어떻게 보셨습니까?”
질문을 받은 해설자는 마지막 생각을 정리하듯 물을 마시며 잠시 고민했다.
방송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입을 뗐다.
“전반전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면 양 팀 이름값만큼의 수준 높은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월드클래스급 오른쪽 윙백인 아랑게스의 움직임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었고 페널티킥을 내주며 AT마드리드의 선취점의 빌미가 됐죠. 그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변변한 찬스도 잡지 못한 채 AT마드리드에게 완전히 끌려다니는 전반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17:3의 슈팅 숫자, 10:2의 유효슈팅 숫자에서 보이듯 AT마드리드의 일방적인 공세였습니다. 물론 득점은 1:1이지만 경기 내용은 AT마드리드의 완승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전반전에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선수를 꼽으라면 선취점을 넣은 멘도사도, 동점골을 넣은 하인스도, 그 동점골의 기회를 만들었던 마린도 아닌 바로 산체스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유효슈팅이 무려 10개였고 이중 8개는 산체스 선수의 놀라운 선방으로 막아냈죠. 결과론이긴 하지만 산체스 선수의 선방쇼가 아니었다면 동점인 채로 전반이 마무리되지는 않았겠죠.”
“산체스 선수가 대단한 선방을 많이 보여준 덕분인지 아랑게스 선수도 점차 본모습을 찾는 모습이었죠?”
“전반 중반이 지나자 우리가 알던 아랑게스의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옐로카드를 한 장 받은 탓인지 소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벌써 시즌 9번째 옐로카드거든요. 비교적 넉넉하다고 볼 수 있는 승점 차이이긴 하지만 주전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첫 골을 넣은 멘도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반전에만 유효슈팅을 6개를 했음에도 단 한 골의 필드골도 기록하지 못했죠.”
“솔직히 멘도사 선수의 문제가 아니라 산체스 선수가 소위 미쳤다고 해야겠죠. 특히 멘도사 선수가 수비를 모두 속이고 뒤꿈치로 슛한 공을 몸의 중심이 무너졌음에도 끝까지 쫓아가 걷어낸 플레이는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진영부터 AT마드리드의 골대까지 단독드리블을 한 하인스의 플레이도 숨막혔는데요.”
“하인스야 익히 잘 알려져 있죠. 스피드 좋고, 드리블 좋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어라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플레이였습니다. 다만 골키퍼까지 제친 후 다소 안이한 슛을 했죠. 만약 니플린 선수가 좀 더 빨라서 골라인을 넘기 전에 공을 걷어냈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오늘 경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후반의 경기는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레알 마드리드는 동점골을 넣었고 수비도 안정적인 모습을 찾은 만큼 전반처럼 일방적으로 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AT마드리드로서는 2위 싸움을 하다 1위가 눈에 보일 정도까지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왔거든요. 분명 어떻게든 이 경기를 이겨 1위 싸움을 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강 대 강으로 맞붙을 후반전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전반에 오프사이드를 두 번이나 기록한 마린의 플레이가 이 경기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 보입니다.”
“그럼 저희는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돌아오겠습니다.”
***
후반전에 들어서도 마린이 찔러주는 패스가 늦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타이밍이 맞아가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패스는 늦는 거보다 빠른 것이 좋아.”
인수는 후반 10분 만에 벌써 3번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한 후 마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앞선 두 번의 오프사이드는 코프가 자리를 잘못 잡고 있었기에 오로지 마린의 잘못이라 할 수 없었다.
이번에 나온 세 번째 오프사이드도 거의 동시였기에 AT마드리드 수비수들도 함부로 라인을 올리기 힘들었다.
조심스러운 공격이 계속되는 와중 먼저 찬스를 맞은 것은 AT마드리드였다.
전반 초반보다 움직임이 나아졌지만, 옐로카드를 한 장 받은 아랑게스의 움직임은 과감한 플레이를 제한했다.
더욱이 전반에 범한 반칙은 레드카드를 받았어도 할 말이 없는 반칙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경기에서 다시 옐로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한다면 추가 징계가 있을 수 있었기에 움직임이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바꿔줘야 하는데.”
샨투 감독은 아랑게스의 움직임을 보고 교체를 해주기 위해 벤치를 보았다.
오른쪽 윙백 자원으로 웨아가 있긴 했지만 웨아는 수비보다 오버래핑이 특화된 자원.
웨아로 바꾼다고 해서 아랑게스만큼 막아줄 것이라 기대할 수 없었다.
샨투 감독의 이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AT마드리드 왼쪽 윙어인 아쿠나가 아랑게스를 돌파한 후 중앙으로 가볍게 공을 밀었다.
중앙에는 이미 가르시아와 마르체나가 AT마드리드 중앙공격수인 멘도사를 마크하고 있었다.
멘도사가 아쿠나가 찔러준 공을 페널티 아크에 멈춰둔 채 우측 페널티코너로 이동하자 가리시아와 마르체나도 멘도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멘도사의 움직임에 중앙수비수 두 명이 모두 속았고 뒤에서 커팅한 보르도가 그대로 슈팅으로 이어갔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다행히 골대를 살짝 비껴가긴 했지만, 후반 들어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3분 후 결단을 내린 샨투 감독이 웨아에게 몸을 풀라고 지시한 후 다시 한번 아랑게스가 뚫렸다.
골라인 근처까지 파고든 아쿠나는 페널티지역으로 공을 밀었다.
가르시아가 공을 끊기 위해 다리를 쭉 내밀어 보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지나갔고 멘도사의 뒤꿈치에 걸렸다.
뒤꿈치에 걸려 꺾인 공은 산체스가 예측할 수 없는 위치로 공이 흘렀고, 그 공은 골포스트를 맞았고 마르체나가 곧장 터치라인 밖으로 차 냈다.
샨투 감독은 공이 밖으로 나가자 바로 웨아를 투입했다.
“고생했어. 쉬어.”
샨투 감독은 아랑게스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경기의 주도권이 다시 넘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샨투 감독이 원한 주도권은 다시 3분이 지난 후 아쿠나의 슛이 골대를 벗어난 후 돌아왔다.
바로 이어진 공격의 시작은 누네스의 발에서부터 시작됐다.
왼쪽 사이드로 길게 찔러준 누네스의 패스는 사라비아에게 바로 연결됐고, 그는 코너까지 공을 몰고 간 후 오버래핑으로 올라온 웨아에게 공을 돌렸다.
사라비아에게 공을 받은 웨아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수비를 피해 다시 중앙으로 공을 돌렸다.
중앙에서 공을 잡은 마린은 바로 파고드는 인수에게 공을 연결했다.
이미 코너까지 수비를 끌어당긴 후라 오프사이드 트랩은 무너졌고 인수의 발에 공이 연결됐다.
인수는 슛 각을 좁히고 다가서는 골키퍼를 피해 우측 방으로 공을 밀었고, 인수의 패스를 받은 코프가 빈 골대에 강하게 슛했다.
후반 들어서도 수없이 많은 기회를 놓쳤던 AT마드리드에 비해 단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한 레알 마드리드.
그 차이는 1:2의 역전을 만들었다.
***
“단 한 번의 찬스를 골로 연결한 레알 마드리드였습니다. 코프의 골로 1:2로 역전에 성공합니다.”
“전반 내내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나갔던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이번엔 레프트 윙을 이용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드인 누네스가 한꺼번에 연결해준 공이 좋았습니다. 중앙에만 신경을 쓰던 AT마드리드 수비진이 사라비아를 순간 놓쳤고 골라인까지 수비를 끌어들이며 오프사이드 트랩을 부숴버렸죠.”
“아주 영리하게 플레이한 사라비아였습니다. 수비수를 골라인까지 끌어당긴 후에 바로 웨아에게 연결했거든요.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랑게스를 웨아로 바꿔준 샨투 감독의 선수교체 성공이라고 봐야겠죠?”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죠. 그 결과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 압박으로 이번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하지 못했지만 능력이 검증된 젊은 감독이 샨투 감독입니다. 교체하자마자 골로 이어지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 만큼 샨투 감독이 칭찬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죠.”
“센터서클에서 AT마드리드의 공격으로 경기가 재개됩니다. 후반 20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AT마드리드가 어떻게 경기가 풀어갈지 궁금합니다.”
***
“아직 시간 많아. 천천히 정확하게 하나만 하자.”
전광판의 시계로도 아직 25분이나 남아있었다.
후반 수많은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골이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1분 미만이었다.
더욱이 시즌 초반 좋지 않았던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2등까지 올라온 이상 리그 우승까지 노리는 멘도사였다.
이제 AT마드리드와의 계약도 2년이 채 남지 않았기에 이번 시즌 후 재계약을 하거나 아니면 이적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말은 천천히 정확하게 하자고 했지만 정작 급한 것은 멘도사였다.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가르시아가 있었음에도 급하게 한 슛은 허공을 갈랐다.
경기의 주도권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넘어가 있었기에 점유율을 높이며 다시 주도권을 가져와야 했지만, 멘도사의 성급한 슛은 공의 소유권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넘겨줘 버렸다.
“천천히 해. 뒤로 돌려.”
후방에서 넘어온 공을 잡은 마린이 소아레스에게 공을 넘기려고 하자 인수가 급하게 소리쳤다.
인수의 소리를 들었는지 마린은 공을 접어 다시 소유한 다음 안전하게 누네스에게 공을 넘겼다.
누네스 역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AT마드리드의 선수들을 피해 가르시아에게까지 공을 돌렸다.
“천천히 나가.”
가르시아는 탱크처럼 달려드는 멘도사를 피해 산체스에게 공을 돌리고 산체스는 다시 후베이루에게 공을 연결했다.
AT마드리드 공격진이 압박을 위해 깊숙이 들어와 있던 탓에 중앙이 텅 비었고 후베이루는 바로 소아레스를 향해 길게 연결했다.
체공시간이 긴 패스이니만큼 수비수와 경합하게 된 소아레스는 공을 따내지 못했고 수비는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쳐냈다.
“천천히 해.”
공이 밖으로 나가자 산체스가 손뼉을 치며 수비진들에게 급하게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후방에서 공을 돌리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은 AT마드리드의 미드필드진까지 모두 센터서클을 넘어오자 누네스에게 공을 돌렸고 누네스는 바로 마린에게 공을 넘겼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에 AT마드리드의 선수들이 수비를 갖추자 마린은 다시 후방으로 공을 돌렸다.
몇 번의 스프린터를 체력을 소진한 AT마드리드의 선수들은 후반 30분이 넘어가자 눈에 띄게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세 명의 선수를 교체해주긴 했지만 전방에서 결정지어 주어야 할 멘도사가 뛰던 것을 멈추어 버렸다.
멘도사가 멈춘 후 경기는 그대로 1:2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로 끝났고 이날 MOM은 놀라운 선방을 보여준 산체스가 선정됐다.
***
“내일 저녁 먹으러 집으로 올래?”
인수는 샤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마린에게 말을 걸었다.
원정경기였지만 마드리드에서 치러진 경기이니만큼 경기 후에 각자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이었다.
“내일요? 좋죠. 그런데 뭐 해주는 거예요? 삼겹살? 잡채? 갈비?”
마린은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동안 인수의 집을 방문한 선수들은 여럿 있었다.
특히 입이 가벼웠던 모라타는 재일과 제니퍼가 해준 메뉴를 일일이 다 설명했다.
모라타의 부상 이후 합류한 마린이었지만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메뉴 이야기를 들었기에 인수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어떻게 다 해. 아마 삼겹살이지 않을까? 다음 주에 부모님이 영국으로 돌아가시거든.”
스페인으로 이적한 후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하자 재일과 제니퍼는 여행을 그만두고 마드리드에 둥지를 틀었다.
반년이 넘게 마드리드에 머물던 두 사람은 인수가 자리를 잡은 만큼 영국으로 돌아가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인수는 아직 초대를 하지 않았던 마린과 로카를 초대했다.
다음 날 밤 마린은 휴식기에 영국에 가면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로카 역시 합류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