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잘나가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부상이라는 악재가 생겼습니다. 스페인 대표팀에 차출됐던 모라타를 시작으로 팀 실레의 수술, 그리고 주전까지는 아니지만 중앙수비수 공백을 잘 채워주던 토마스 넬손까지 줄줄이 부상자 명단에 오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상 선수 없이 한 시즌을 치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거죠. 그러나 시즌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나온 부상이란 점이 레알 마드리드에게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을 겁니다. 모라타 부상 이후 로테이션 멤버들과 백업 멤버들의 활약으로 연승을 이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오늘 벌어지는 리그 27라운드의 상대는 AT마드리드입니다. 더욱이 28라운드는 셀타 비고와 29라운드는 소시에다노와 원정경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번 27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아틀레틱 발바오와 4강 1차전이, 28라운드가 끝나면 2차전이 벌어지는 등 만만치 않은 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큰 숙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샨투 감독은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혀왔거든요.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의 체력적인 문제겠죠. 이를 의식했는지 주전선수들을 계속 휴식을 주고 있는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니실랴가 빠졌죠. 리그 초반부터 계속 주전으로 뛰면서 전체적으로 활동지표가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긴 했습니다. 대신 선발로 출전한 선수가 마린입니다. 유스 대표팀부터 시작해서 스페인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긴 했지만 지난 두 경기에서 교체출전하며 라리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죠.”
“말씀하신 대로 라리가에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자 마드리드 더비에 선발로 출전하거든요. 마린이 선발 출전하며 포지션들이 조금씩 변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마린이 중앙에서 서고 하인스가 1.5선으로 올라갔죠. 서로가 익숙한 포지션을 찾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튼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하인스가 1.5선에서 뛰면서 얼마나 큰 파괴력을 보였는지는 모두 아실 테니까요.”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는 왜 하인스를 이제야 1.5선에 기용했을까요?”
“1.5선은 말 그대로 패스를 공급하는 것보다 해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에는 이미 그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코프와 모라타죠. 모라타가 윙어라고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득점은 모라타가 1위였죠. 다시 말하면 윙어를 가장한 스트라이커가 모라타였습니다. 물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선수였고요. 모라타 부상 이후 득점이 코프에게 몰리자 코프가 집중견제를 당하고 있었죠. 그런 견제를 뚫고 하인스가 패스를 공급해주었는데 마린이란 선수를 시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죠.”
“시험이라. 보통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을 증명해야 하는 팀이라고 하잖아요.”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세리에A의 유벤투스, 리그1의 파리 생제르맹 등의 팀을 보통 증명하는 팀이라 부르긴 하죠. 그래서인지 역대 감독은 물론이고 보드진도 자팀의 유스 시스템이 훌륭함에도 외부에서 증명된 선수들을 영입하며 성적을 내왔었죠. 거기에 대해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믿고 쓰는 어느 팀 유스 출신이란 꼬리표를 달고 사는 팀들이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팀 출신 유스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팀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믿고 쓰는 레알산, 뮌헨산, 유벤투스산 등 세계적인 유스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성적을 내기 위해 유스들을 팀에 기용하지 못하고 리그 내 다른 팀이나 다른 리그로 이적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선수들 중 대부분이 기본 이상의 성적을 내줬기에 나온 말이었다.
그 선수들이 그만한 성적을 내주기 위해 경험한 시간이 있긴 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포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었고 그 포텐이 발현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다는 말이 됐다.
“그래서인지 선발 라인업에 모습을 보인 마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는 모라타 이후 오랜만에 선발 라인업에 등장했습니다. 교체 출장해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선발로 출전하여 어떤 모습을 보이지 궁금합니다.”
***
삐익.
찔러준 타이밍이 한 박자 늦은 탓에 침투했던 인수의 플레이는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두 명의 수비수 사이를 완벽하게 빠져나갔던 인수였기에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지 않았다면 골키퍼와 1:1 찬스를 맞을 수 있었지만 마린의 패스가 늦고 말았다.
“괜찮아. 수십 번 시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한 골을 넣는 거야.”
인수는 울상을 짓고 있는 마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박수를 쳤다.
“눈에는 보이는데 발이 자꾸 늦어요.”
“눈에 보인다는 것이 대단한 거야. 경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니까 경험이 더 쌓이거나 호흡이 더 맞춰진다면 문제 없어.”
“하인스도 그랬어요?”
“설마. 난 처음부터 완성된 선수였어.”
시합 도중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어 경기가 잠시 멈춰있었기에 긴 시간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기에 인수는 빠르게 대답하고 멍해 있는 마린을 뒤로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쉽게 풀리지 않자 AT마드리드의 공격이 매서워졌다.
“막아. 오른쪽에서 뚫리지 말란 말이야.”
“한 번에 넘어오는 것은 막아. 들어오는 선수를 보란 말이야.”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인 산체스는 오랜만에 입을 바쁘게 놀리며 수비선수들의 자리를 잡아주고 있었다.
AT마드리드의 공격진은 양 사이드를 넓게 쓰며 레알 마드리드를 괴롭히고 있었다.
특히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아랑게스 쪽이 계속해 뚫리면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데요.”
“흠.”
샨투 감독은 아랑게스의 움직임을 보며 계속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격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주전이었던 아랑게스 대신 웨아가 선발로 출전한 경기가 많았던 요즘이었다.
프리시즌부터 계속 선발로 뛰다 한동안 푹 쉬었으니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을 터지만 경기 감각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아직 초반이라지만 너무 헤매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좋아지겠지만’이란 말을 할 때 아랑게스 쪽에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제친 선수를 따라가다 뒤에서 공을 보고 태클을 한 아랑게스였다.
평상시 컨디션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플레이였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무리한 플레이를 한 것이다.
누가 봐도 위험한 태클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태클을 당한 지점이었다.
삐익.
휘슬을 분 주심은 달려와 바로 페널티 마크를 손가락으로 찍고 아랑게스에게 옐로카드를 꺼냈다.
산체스는 즉시 주심에게 달려가 페널티 지역 외곽이라고 항의했다.
후방에서 들어간 태클이었던 만큼 레드카드가 아닌 것이 감사할 일이었지만 프리킥과 페널티킥의 차이는 엄청났기에 주심이 VAR체크를 표시할 때까지 계속됐다.
“괜찮아. 너무 무리하려 하지 마.”
“경기 정말 안 풀리네. 미안해.”
주심이 VAR체크를 하고 있는 도중 산체스는 아랑게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페널티 지역 안이야.”
산체스가 밝게 웃으며 대답하고 있을 때 VAR를 체크를 마친 주심이 다가와 다시 한번 페널티 마크를 찍었다.
VAR까지 체크했기에 산체스는 심호흡을 하며 골대로 돌아가 양손과 발을 번갈아들며 긴장을 풀었다.
상대는 당연히 AT마드리드의 에이스인 세사르 멘도사였다.
‘통산 페널티킥 성공률이 87퍼센트 정도였던가.’
21세기 이후 페널티킥 성공률이 90퍼센트가 넘는 선수가 한 손에 꼽혔다.
자신의 페널티킥 방어율이 42퍼센트 정도였으니 절반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삐익.
주심의 신호로 잔걸음을 뛴 멘도사는 중앙을 보고 강한 슛을 찼고 이미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 산체스는 들어가는 공을 지켜봤다.
페널티킥으로 1:0이 된 상황.
한번 주도권을 잡은 AT마드리드는 경기의 주도권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압박해. 쉽게 공을 가지고 있지 못하게 만들란 말이야.”
샨투 감독은 코치박스 끝까지 나와 선수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붙어. 붙으라고.”
후반 40분이 넘어서까지 제대로 된 공격을 못 하던 마린이 답답했는지 수비들이 있던 자리까지 내려갔다.
“넌 왜 내려가?”
인수가 급하게 마린을 말렸지만 이미 마린은 공을 가진 선수를 향해 몸을 날린 이후였다.
공을 갖고 있던 AT마드리드의 선수는 마린을 보지 못했고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소리를 치고 난 이후에야 공이 자신의 발을 떠난 것을 알았다.
마린이 걷어낸 공은 선수들이 없는 텅 빈 공간으로 흘렀고 인수는 그 즉시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에서 8미터까지는 에디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대쉬에 자신 있는 인수였던 만큼 흐르는 공은 그의 차지였다.
레알 마드리드 진영에서 공을 소유한 인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인수의 드리블에는 이미 가속이 붙었고, AT마드리드의 수비들이 계속 달려들었지만 인수의 눈은 골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을 제친 인수의 앞에는 슈팅각을 좁히기 위해 뛰쳐나온 골키퍼가 보였다.
인수는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 골키퍼를 속였고 텅 빈 골대를 향해 가볍게 툭 찼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이 있었고 그 공을 끝까지 쫓아가는 AT마드리드의 수비수가 있었다.
끝까지 몸을 날려 공을 걷어낸 수비는 즉시 일어나 주심을 보았다.
공을 걷어내긴 했지만 골라인을 넘어가는지 넘어가지 않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삐익.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손목을 확인한 주심은 바로 골을 선언했다.
수비가 걷어내긴 했지만 공은 이미 골라인을 넘어갔다.
페널티킥 이후 전반 내내 밀어붙였던 AT마드리드는 전반 종료 직전 60미터 드리블 돌파에 이은 골까지 내준 시점에서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인수의 골이 후 소강상태를 맞았던 양 팀은 그대로 하프타임을 맞았다.
***
“잘했어.”
인수는 라커룸으로 돌아오며 마린의 목을 조이며 소리쳤다.
“가지 말라면서요.”
마린은 인수의 손을 뿌리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들렸어?”
“네. 아주 잘.”
“하인스, 네 목소리밖에 안 들리던데.”
마린의 도움으로 수비를 성공시킨 누네스도 기특하다는 듯 마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마린의 편을 들었다.
“하인스 네 골의 절반 이상은 마린이 만든 거지. 마린 반 떼어줘야 해.”
지나가던 산체스도 마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뭘 했다고 애를 괴롭혀. 하인스 너도 수비 연습 좀 해. 마린처럼 수비도 좀 하고.”
“아 골은 내가 넣었는데 왜 다 마린 이야기만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지나가던 코프까지 마린의 편을 들자 인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큰소리를 내긴 했지만 전혀 화가 나 있지 않은 목소리였고 라커룸의 분위기도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