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샨투 감독의 예상과는 달리 발목부상 자체는 2주 만에 회복될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밀검사를 하던 도중 발견된 뼛조각이었다.
원래 실레의 발목에 뼛조각이 있긴 했지만 제거 수술까지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부상으로 인해 뼛조각의 위치가 바꿨다는 것이 문제였다.
뼛조각은 흔히 아킬레스건이라 불리는 발뒤꿈치 인대 쪽으로 이동했는데, 심한 운동을 하거나 무리한 움직임을 가져가면 언제든지 인대를 건들 수 있는 위치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권했고 클럽과 에이전트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 상황이었고 남은 것은 선수 본인뿐이었다.
실레는 통증이 있긴 했지만 축구를 하는 내내 이 정도의 통증은 견디고 뛰어왔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더욱이 인수가 윙으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자신이 주전으로 막 자리 잡으려는 상황에서 수술한다면 복귀하고 나서 주전 자리가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회복까지 6주가 걸린다고 하지만 떨어진 경기감각을 되살리고 근육을 살리기 위한 운동까지 해야 한다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 시즌 안에 복귀는 장담하지 못했다.
물론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통증이 없어진다면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다는 소리가 끌리기는 했다.
3일을 고민하던 실레는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고 그 소식은 바로 클럽으로 연락이 갔다.
“모라타에 실레까지. 주전들이 줄부상이라니. 어휴.”
샨투 감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을 하며 선수들이 줄부상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공격진이 줄줄이 다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누네스가 수비형 미드필드로 자리를 옮기고 난 후 그 공백을 메꿔주던 넬손도 훈련 중 가벼운 염좌로 2주간 출전이 어렵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넬손이 주전은 아니지만 누네스의 포지션 변경으로 부담이 가중된 중앙수비수 라인을 잘 보조해주고 있었기에 넬손의 부상은 수비진에게도 부담이었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기는 법이라지만 이런 연속된 부상의 늪에 빠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3월 첫 번째 주이니만큼 시즌 초부터 뛰었던 선수들의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을 만한 시점이었다.
2위까지 치고 올라온 AT마드리드와 승점 11점 차이이긴 했지만 27라운드에서 진다면 8점까지 좁혀지게 된다는 부담도 있었다.
“감독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난 아직 감독이 아냐. 아직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은 샨투 감독이 아닌가요.”
베르나베우에 자주 드나드는 이방인에 대한 소문은 아무리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입단속을 시켰어도 기자들의 눈에 띄었다.
더욱이 그 사람이 3년 전 건강상의 이유로 아약스 감독을 그만둔 세도로프라는 것도 슬금슬금 퍼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시간문제였으니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조만간 후임 감독에 세도로프가 선임된 것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한 달이 넘게 기자들에게 들키지 않았던 것만 해도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수 운용이 너무 힘들더군요. 감독님도 선수층이 얇은 아약스에서 오래 감독을 하셨으니 아시겠지만요.”
“나름 에레디비시에서 강팀인데요.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생기면 로테이션 멤버들에게는 기회가 되잖아요. 더군다나 카스티야에서 뛰는 선수 중에는 1군 경험이 필요한 선수들이 많아요. 당장 쓸 선수만 찾으니까 안 보이는 거지.”
“물론 그렇긴 하죠. 그런데 당장 리그 우승과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해야 하는데 선수가 부족하다는 거죠.”
“하하. 샨투 감독님. 레알 마드리드에 선수가 부족하다고 하면 다른 팀에서 비웃습니다. 로테이션 맴버로 돌고 있는 선수들도 다른 팀에 가면 주전에 들고도 남을 선수예요. 좀 더 선수들을 믿으세요. 우승하지 못하면 어때요. 감독은 선수들이 마음 편히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전술도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전술을 짜야 하고요.”
세도로프는 자신보다 20살이나 어린 샨투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일찍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30대 초반부터 코치 생활을 하다 세리에A의 약팀을 우승시키면서 일약 스타가 된 샨투 감독이었다.
그런 스타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으로 왔고 첫해에 더블을 기록하고 두 번째 해에는 아무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욕만 먹었다.
특히 안수 파티가 이적하고 난 망가져 있는 바르셀로나에게 진 것이 결국 경질까지 이어졌고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마음도 잘 알았다.
그래도 아직 젊은 감독이기에 경험이 더 쌓이면 좋은 감독이 되겠지만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의 감독은 증명하는 자리이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닌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자신도 첫 감독이 AC밀란이 아니라 작은 팀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마당에.
“좀 더 고민해봐요. 그리고 언제든지 부담 없이 불러요. 이야기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릴 수 있으니까요.”
세도로프는 생각에 잠긴 샨투 감독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와, 생각보다 유연하네.”
마린이 정식으로 1군 훈련에 참여하고 난 후 인수는 마린과 함께 몸을 풀었다.
“하인스는 이걸 3살 때부터 했다는 거예요? 체조선수 같아요.”
로카가 부상 방지를 위해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는 말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 온 마린이었지만 인수가 하는 스트레칭은 그 궤를 달리했다.
인수의 격한 움직임과 활동량을 가지고도 큰 부상 없이 몇 시즌째 리그를 치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인수 역시 거친 몸싸움에 자잘한 부상을 당하기도 했고 체력적인 문제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요즘 페인팅 훈련을 하다 보니 느끼는 건데 무게중심을 더 낮추니 상체만으로도 페인팅이 가능하겠더라고. 너도 그런 식으로 페인팅을 쓰는 거지?”
“와, 그걸 벌써 알았어요? 이제 프로그램으로 훈련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난 거기에 익숙해지는 데 6개월이나 걸렸는데. 아아. 아파요.”
마린은 인수와 짝을 맞춰 스트레칭을 하다 허리가 과하게 꺾이자 비명을 지르며 인수에게 떨어졌다.
“좀 더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어. 부드럽지만 조밀한 근육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천천히 스트레칭 범위를 늘려봐. 우리도 차근차근 늘려나갔으니까.”
“우리라면 소튼의 브라운 선수요?”
“에디도 있고, 레이도 있지.”
“아 여자축구선수죠. 예쁘시던데. 저번에 미국하고 경기하는데 2골이나 넣었잖아요.”
“어, 레이 알아? 예쁘지. 축구도 잘하고. 미국하고 경기 봤어? 그 큰 덩치들 사이로 끼어 들어가서 발에 공을 맞히니까 그냥 들어가잖아. 두 번째 골도 그래. 그 낮은 공을 슬라이딩해서 머리에 맞춰서 들어가잖아. 그게 국가대표 데뷔였는데 두 골이나 넣었다니까.”
인수는 레이가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직접 시범까지 보이며 설명했다.
“그냥 하인스 여자친구라길래…….”
인수가 마드리드에 온다는 소식은 유스에서도 큰 화제였다.
16살에 데뷔해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했을 뿐만 아니라 20살이 되기도 전에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큰 활약을 한 선수였다.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성공을 거둔 인수에게 질투의 감정과 동경의 감정을 모두 가지게 만들었고 언론에 난 기사를 모두 찾아봤다.
그중 레이에 대한 기사도 있었기에 이야기한 것 뿐이었는데 인수의 반응은 마린이 생각한 것보다 뜨거웠다.
“다음 주에 레이 생일인데 이번 생일에는 뭘 사줘야 하나 고민이야. 19살 생일이라고 기대하는 거 같던데.”
마린은 고민하고 있는 인수를 한참 바라봤다.
자신과 한 살 차이였지만 팀에서 리그에서의 위치는 천지 차이였다.
“아, 모르겠다. 나중에 레이한테 직접 물어봐야지. 그런데 여름 휴식기에 뭐해?”
“여름 휴식기에요? 보통 쉬다가 로카가 방학하면 훈련을 시작했었죠.”
한참 인수와 자신에 대해 생각하던 마린은 인수의 물음에 뒤늦게 반응했다.
“아, 그래? 우리는 영국에서 캠프를 차리고 소집 전까지 훈련하는데 같이 할래? 나중에 생각해봐.”
마린이 나이도 비슷하고 스페인어가 섞이긴 했지만 영어도 곧잘 했기에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 생각을 했었다.
거기에 마린이 오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사람이 로카였다.
로카가 자신을 분석한 것이나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느낀 인수였기에 에디와 레이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 그래요? 생각해보고 이야기 할께요.”
“응. 생각해보고 이야기해. 우리 체력코치가 브링이니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야.”
***
“AT마드리드전에서 선발로 나설 거야. 준비해.”
지난 베티스전에 급히 나가 허둥대긴 했지만 후반부터는 제 모습을 찾은 마린에게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은 샨투 감독이었다.
마린을 선발로 내세우면서 라인업에도 상당한 변화를 줄 예정이었다.
시즌 초부터 계속 선발로 출전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던 니실랴에게 휴식을 주고 중앙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드로 성공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누네스를 선발로 예고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진이 사라비아와 마린, 소아레스로 짜여지면서 인수를 그 앞에 두어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부여했다.
소튼이나 영국 대표팀에서의 인수의 위치가 세컨드 스트라이커인 만큼, 포지션 변화에 큰 혼란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수비적인 면에서도 인수보다 마린이 좋았기에 전방 압박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도 했다.
“제가 선발로요? 그것도 AT마드리드와요?”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가 가장 유명한 더비였지만 AT마드리드와 벌이는 마드리드 더비 역시 중요한 더비 중 하나였다.
주전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며 2위 그룹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다고 언론들이 떠들고 있을 때 벌어지는 마드리드 더비에 자신이 선발로 나서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한 마린이었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어느 팀이나 모두 똑같은 적이야. AT마드리드라고 해서 다를 것 없어.”
샨투 감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히 이야기했지만, 머리 한구석에는 정말 마린을 선발로 내야 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세도로프의 말처럼 감독은 선수를 믿어야 했기에 그 고민을 접기로 했다.
“그럼 개인적인 준비는 알아서 잘하고 선수들을 모아줘.”
“아. 네, 알겠습니다.”
샨투 감독은 밖으로 나가는 마린을 뒤로 하고 전술판을 지그시 노려봤다.
가르시아와 마르체나의 중앙 수비는 라리가는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수비벽이었다.
거기에 후베이루 역시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해 윙에서 윙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포텐이 터져 최상급 레프트 윙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랑게스가 오버래핑이 떨어지는 라이트 윙백이라고 하지만 수비력만은 최고의 윙백이었고 누네스도 수비형 미드필드로 포지션 변경 후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런 탄탄한 수비진을 가지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연속된 부상으로 모라타와 실레가 시즌 아웃 했다고 하지만 공격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두 경기 연속 교체출장한 마린이 두 경기에서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우승을 하지 못하면 이상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그래. 우승하지 못하면 이상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