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02화 (102/200)

102화

코파 델 레이 8강 2차전, 인수는 다시 레프트 윙으로 선발출전했다.

1차전 5:0의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2차전은 레알 베티스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에서 열렸다.

홈 앤 어웨이의 방식으로 치러지는 코파 델 레이인 만큼 1차전 대승을 이후 2차전 대패로 탈락을 경험한 팀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오늘 레알 마드리드의 목표는 승리보다 원정골을 넣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인수와 실레, 소아레스, 코프를 모두 선발로 출전시켰고 니실랴와 누네스, 후베이루, 웨아를 배치하며 수비보다는 공격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경기 초반부터 잘 드러났다.

압박에 압박.

최후방 수비수인 가르시아와 마르체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센터라인을 넘어 베티스의 진영에서부터 압박을 시작했다.

1차전에 승리한 만큼 공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지만, 후방에서 수비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다 기회가 오면 역습에 나설 것이라 판단한 베티스였다.

그러나 모든 힘을 경기 초반 다 쏟아붓겠다는 듯 강한 압박은 베티스의 예상 밖이었고 허둥지둥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코파 델 레이 8강에 올라온 팀인 만큼 금세 제 모습을 찾았다.

강한 압박을 5분여간 진행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베티스의 전열이 정비되자 압박은 페이크였다는 듯 금세 압박을 풀고 후방으로 물러났다.

5분간의 압박이 끝난 후 다시 공격권을 가져온 베티스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2차전에서 5골 이상을 내야 하는 베티스로서는 초반 보여준 레알 마드리드의 압박 때문에 시간을 헛되이 쓰는 셈이 되고 있었지만 아직 시간은 85분이나 남아 있었다.

“차라리 아웃을 시키면 시켰지 뺏기지 마.”

***

“레알 마드리드의 초반 압박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베티스가 공을 지키기에 급급할 정도로 강한 압박을 했던 레알 마드리드였습니다. 강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후방으로 공을 돌리다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베티스는 잘 버텨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럼 레알 마드리드의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베티스는 잘 버텨냈다고 말했지만 레알 마드리드도 압박을 잘 가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1차전 베르나베우에서 5:0으로 이긴 레알 마드리드 아니겠습니까? 초반 압박을 통해 방심하면 골을 넣으러 간다고 경각심을 심어준 것입니다. 압박이 풀렸음에도 베티스가 함부로 공격을 나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티스는 어려운 숙제를 또 하나 안고 가게 되는군요. 2004-05 코파 델 레이 우승 이후 라리가와 세군다 디비시온을 왔다 갔다 하며 어려운 시절 보내다 다시 반등의 기회를 맞고 있는 베티스가 어떻게 이 숙제를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

인수는 언제든지 상대의 진영으로 뛸 수 있다고 베티스를 협박하고 있었다.

이는 인수뿐만 아니라 우측에 있는 소아레스도 마찬가지였고, 인수와 소아레스가 잠잠하면 윙백이었던 후베이루와 웨아가 호시탐탐 오버래핑을 할 수 있다는 액션을 펼쳤다.

베티스가 골을 넣는 것도 중요했지만 홈에서 골을 먹히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골을 기록하게 된다면 베티스가 4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7골이 필요했고, 2골을 기록한다면 8골이 필요했다.

베티스의 전력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7골, 8골을 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5골을 넣어 승부차기로 넘어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확실히 초반 전방압박이 효과가 있어.”

“우리가 초반부터 전방압박을 펼칠 사례가 없었으니까요. 상대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샨투 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석코치와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의견을 내줘야 해.”

샨투 감독은 자신의 후임으로 선임된 세도로프에게 위축된 마음이 있었다.

자신도 레알 마드리드에 취임해 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긴 했지만 정작 가능성을 인정받은 세리에A에서는 유럽 무대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반면 세도로프는 4대 리그도 아니고 에레디비시에서 수없이 많이 우승을 일구어냈고,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는 등 감독 커리어적인 면에서 자신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코치로 선임한 것이 코치 자격증도 없는 대학생 애송이였다는 점이 우스워 일부로 로카를 무시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기를 준비하며 지나가다 만난 로카에게 무심코 이번 경기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로카가 초반 전방압박을 통해 베티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베티스가 전열을 정비하면 체력을 보존시키며 기회를 엿보는 전술을 제시했다.

특히 항상 끼고 다니는 노트북으로 설명하며 시뮬레이션을 실행시켰을 때, 샨투 감독은 로카의 전술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레알 마드리드도 강한 압박을 통한 이득을 많이 보는 팀이었지만 자신이 부임한 이후 초반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특히 초반의 압박으로 공포감을 심어주고 체력을 보존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8강 2차전이 끝나고 4일 후에 AT마드리드와 리그 27라운드를 치러야 하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2위 그룹을 승점 11점이라는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긴 했지만, 아직 12경기나 더 남았고 더비 특성상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몰랐다.

그런 차에 선수들의 체력을 아끼면서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전술을 말한 로카였다.

물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전술이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은 전술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젊은 코치도 필요하겠어.”

자신을 맡고 있는 에이전시에서 이번 시즌 이후 이적할 팀을 물색하고 있긴 했다.

그에 맞추어 자신도 자신이 계속 데려가야 할 코치와 계약 해지할 코치들을 살폈고, 새로이 합류시킬 코치들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로카는 세도로프의 스텝이 되었기에 제의할 수는 없었지만 젊은 피 중에서 코치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샨투였다.

***

“하인스.”

베티스의 지공을 한참이나 받아낸 레알 마드리드는 후베이루가 패스를 차단하며 전반 25분 만에 기회를 맞았다.

초반 5분을 제외하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밋밋한 경기를 하고 있던 양 팀이었지만 시간을 끌 수 없는 베티스가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후베이루가 슬라이딩 태클로 차단했다.

슬라이딩 태클에 그치지 않고 바로 중심을 잡고 일어선 후베이루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인수에게 패스를 연결하며 역습으로 이어가자고 했지만, 인수의 앞에는 이미 전반부터 붙어있던 마크맨이 있었기에 바로 중앙에 있는 실레에게 연결하고 침투했다.

하인스의 패스를 안정적으로 받아 자신의 앞으로 보낸 실레는 곧바로 중앙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공격 3명, 수비 4명이었지만 베티스 수비수들은 아직 라인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인수와 소아레스가 파고들 때 패스를 하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며 뛰던 실레가 크게 넘어졌다.

주변에 베티스의 선수도 없이 혼자 넘어진 실레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자신의 발목을 잡고 뒹굴었다.

공이 혼자 굴러가고 있었기에 중앙으로 급히 달려간 인수가 공을 터치라인 밖으로 쳐내자 주심은 급히 의료진을 불렀다.

선수들의 부상과 피로 방지를 위해 조성한 하이브리드 잔디였지만 그렇다고 부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스터드가 잔디에 걸려 넘어지는 부상은 간간이 나왔고, 이런 부상은 나올 때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급히 들어온 의료진도 크게 엑스자를 그려 보이며 급히 들것을 요청했다.

모라타의 장기부상에 이은 실레의 부상은 그렇지 않아도 팀 구성에 어려움을 겪던 레알 마드리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의료진이 엑스자를 그리기 전부터 벤치를 둘러보던 샨투 감독은 대기 선수들을 둘러봤다.

초반 압박과 후반 압박을 통해 적들의 사기를 꺾고 공격적인 선수들을 빼고 수비적으로 나서기 위해 짜인 라인업이었다.

공격진의 부상을 고려하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라면 실책이겠지만 후반에 부상이 나왔더라면 오늘 출전시키기로 한 마린이 있었기에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전반 중반부터 마린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오자 머리가 아팠지만, 당장은 마린 밖에 없었다.

“마린.”

“네.”

“몸 풀어. 몸 풀리는 대로 투입할 거야.”

샨투 감독은 마린에게 지시한 후 자신을 옆을 지나가는 들것을 든 경기 도우미들을 보았다.

“저기.”

“네?”

들것을 든 도우미들은 샨투 감독이 부르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그. 저기. 최대한 꽁꽁 묶어서 안전하게 이동해줘요. 이동 중에 부상이 더 심해지지 않게.”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해보려 했지만, 베티스의 홈인만큼 이 도우미들도 베티스를 응원할 것이 분명했기에 안전하게 이동해달라는 부탁밖에 하지 못했다.

“최대한 안전하게 이동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빠르게 대답을 한 도우미들은 실레가 쓰러져 있는 자리로 뛰었다.

실레가 의료진과 함께 들것에 실려 나간 후 곧바로 경기는 재개됐다.

아직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이었지만 이런 경우 거의 한 달 이상의 장기부상이 될 것이 확실했다.

잠시 10-11의 열세에 놓였지만 꾸역꾸역 막은 레알 마드리드는 마린이 투입되자 숫자의 불리함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10-11의 상황에서 벌인 공세에서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베티스의 공격은 매서웠다.

특히 급하게 투입된 마린 쪽에서 계속해서 뚫리며 후베이루에게 부담이 가중됐다.

“마린.”

마린이 투입되면 중앙으로 자리를 옮긴 인수가 아직 경기장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마린을 불렀다.

“천천히 해. 어차피 한두 골 먹힌다고 우리가 지는 거 아냐.”

후베이루가 경기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베티스 진영 쪽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보낸 이후였다.

“첫 경기보다 더 긴장되는데요.”

“몸을 다 풀고 나오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어. 원정 경기이기도 하고.”

미리 준비되어 출전한 것이 아닌 실레의 부상으로 인해 급하게 준비했던 마린이었기에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있었고, 원정 경기가 더 어려운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다.

“휴.”

인수가 다독이고는 있었지만 쉽게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마린이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 말 참 듣기 좋더라.”

인수가 다독여 주었지만 마린의 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런 틈을 베티스가 놓칠 리 없었고 최대한 괴롭혔다.

베티스의 우측 공격은 번번이 크로스까지 성공했고 전반이 끝나기 전 계속 공략한 베티스는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는 것까지 성공했다.

1:0으로 베티스가 앞선 채 맞이한 하프타임에 샨투 감독은 마린의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것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샨투 감독은 후반이 시작하자마자 전반과 같은 강한 압박을 선택했다.

어차피 마린은 시간이 필요했고 상대방 진영에서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샨투 감독의 생각은 마린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만들었고 그 의도대로 강한 압박을 통해 마린이 상대의 공을 끊어냈다.

“잘했어. 마린.”

마린이 끊어냄과 동시에 리바운드된 공을 잡은 인수는 왼쪽에서 빠르게 중앙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미 마린의 태클에 오른쪽 윙백은 넘어져 있었기에 인수의 앞을 막는 건 중앙수비수밖에 없었고 플립플랩으로 수비수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중거리슛을 쐈다.

두 번째 최종수비수의 허벅지에 맞고 살짝 휜 공은 골키퍼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고 레알 마드리드가 기다리던 동점골이 터졌다.

1차전 합계 6:1이 되어 버린 상황 베티스는 6골이 더 필요했기에 추격의 의지를 잃었고 샨투 감독은 후반 20분이 넘어 인수와 소아레스를 수비로 바꾸어주었다.

인수가 밖으로 나가고 중앙으로 자리를 옮긴 마린은 자신이 왜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유망주인지를 증명했다.

공수 모두에서 활약을 펼치던 마린은 후반 30분쯤 코프에게 스루패스로 어시스트를 하나 더 기록했다.

코파 델 레이 8강 레알 마드리드는 실레라는 중앙미드필드를 잃긴 했지만 마린이란 유망주가 유망주로 끝나지 않고 활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은 경기가 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