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101화 (101/200)

101화

“신경 쓰지 마. 네가 못해서 평점이 나쁜 것이 아니야. 2골이나 넣었잖아.”

“우리 팀이 잘나가니까 질투 나서 그런 거야. 딱히 위험한 상황도 없었잖아.”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인수의 훈련은 계속됐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 입장이 없자 언론들은 인수의 포지션 변경을 두고 잘근잘근 씹어댔다.

항상 밝았던 인수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하자 팀 동료들이 다가와 한마디씩 했다.

직접 경기를 뛰어보니 윙에서의 역할이 쉽지 않아 생각할 것들이 많아 자연스레 나오는 표정이었다.

정식으로 합류한 지 2달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레알 마드리드의 분위기 메이커가 된 인수였다.

훈련장에도 제일 먼저 나왔고 제일 늦게까지 훈련을 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선수들에게 말을 걸었던 인수였지만 요 며칠간은 훈련하면서 밝게 웃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이제 겨우 시작인데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하잖아. 네 앞에 놓인 과제가 많은 걸 알지만 한 번쯤은 주위를 둘러봐.”

성적과는 관계없이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만은 막으려는 샨투 감독까지 나섰다.

팀 게임인 축구란 종목은 팀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종목이었다. 분위기 좋을 때는 연승을 이어가더라도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연패에 빠지기도 했다.

20살의 어린 선수에게 레알 마드리드라는 큰 팀의 무게를 얹는 것이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에이스의 숙명이었다.

자신은 물론 잘해야 했고 팀을 이끌어야 했다.

물론 팀 내에서 인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도 있었고 더 높은 이적료를 기록하는 선수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는 인수였다.

인수는 샨투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소튼에 있을 때부터 팀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파바르와 비크라는 노장들이 있긴 했지만 훈련을 이끄는 것도, 경기를 이끄는 것도 자신이었다.

마드리드에 와서 그렇지 못하자 이를 악물고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인정을 받은 순간부터 팀을 분위기를 자신 쪽으로 끌어왔고 이제는 모든 선수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인수는 샨투 감독이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고심하다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미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자리를 비운 샨투 감독이었기에 자기 생각이 맞는지 확인받을 길이 없었지만 자기 생각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브리지가 평소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던 ‘결정하면 행동한다.’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다가서야 할 곳은 주장인 모라타를 잃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미드필더진이었다.

지난 경기부터 주전으로 다시 출전하고 있는 실레나 사라비아, 코프 같은 주전급 선수들은 괜찮지만, 로테이션 맴버와 카스티야와 1군을 오고 가는 선수들이 문제였다.

모라타가 인수를 인정하고 있으니 모라타가 있을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모라타가 없는 이상 그들 눈에 인수는 굴러온 돌이었다.

물론 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20살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에다 굴러온 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파라데스, 이야기 좀 해.”

인수는 제일 먼저 그들 중심에 있는 파라데스를 찾아갔다.

인수가 합류하며 샨투 감독이 영입한 소아레스가 주전으로 올라서자 이제까지 주전으로 뛰었던 파라데스는 로테이션 맴버가 되어 버렸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에이전트를 통해 이적하려고도 해보았지만 당장 수준급 백업 윙어가 필요한 레알 마드리드는 재계약으로 주급과 바이아웃 금액을 올리며 주저앉혔다.

물론 파라데스가 이적할 확률이 높은 팀이 같은 스페인에 있는 팀이었기에 상대의 전력을 보강시켜 주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더욱이 바이아웃 금액을 올리며 다음 이적시에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적인 면도 깔려있었다.

그런 파라데스가 비주전 선수들의 중심이 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인수가 다시 웃으며 훈련을 이끌자 침체됐던 분위기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선수들끼리 장난도 많이 치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 팀을 끌어나가는데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

물론 인수는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뿐만 아니라 실력으로도 선수들을 이끄는 역할을 겸하고 있긴 했지만.

팀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수도 생각을 고치니 연습이 더 잘되기도 했다.

처음 포지션 변경 훈련을 받으며 8단으로 떨어졌던 바둑도 다시 9단까지 오르기도 했고, 가끔 연락하는 조우진 9단이 바둑이 좋아졌다며 칭찬까지 해주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조 프로님, 세계대회 우승 축하드려요.]

[뭘 축하까지. 그나저나 요즘 바둑 스타일이 많이 변했던데.]

[그냥 컨디션이 좋은가 봐요. 그런데 조 프로님이 미천한 제 바둑까지 봐주는 거예요?]

[심심할 때, 웃고 싶을 때 보는 편이지. 그런데 기세도 좋고 바둑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조우진 9단이었지만 이미 세계타이틀을 모두 휩쓸고 일인자 자리에 있는 프로에게 칭찬을 받자 바둑을 좋아하는 인수에게 큰 기쁨이었다.

바둑보다 더 기분 좋았던 점은 포지션 변경에서 어려웠던 라인을 이용하는 플레이가 익숙해졌다는 점이었다.

중앙에서 뛸 때는 좌우 가리지 않고 편한 쪽으로 드리블을 했지만 사이드로 가자 오른쪽, 왼쪽 중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폭이 좁다 보니 무조건 넓은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에디의 플레이를 보고 물어본 결과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최상급 윙으로 평가받는 에디는 윙 포지션을 훈련하는 인수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주었다.

에디가 알려준 노하우와 로카가 만든 프로그램을 합치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고 그 결과에 따라 훈련하고 있었다.

“로카, 이제 곧 리벨 1이 나온다고 했죠?”

스페인 축구 지도자 자격은 리벨 1, 2, 3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유에파 지도자 자격이 5단계인 것에 비하면 간단한 구조였지만 리벨1을 따기 위해서는 이론교육 200시간 이상, 실습 80시간이 필요했다.

대학 재학 중 받았던 교육으로 이론 교육을 대체한 로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임시코치로 있으면서 80시간을 채워 곧 있으면 리벨 1의 자격증이 나왔다.

자격증이 없다면 정식으로 코치로 활동할 수 없기에 꼭 필요한 자격증이었다.

“응. 리벨 3까지 따야 하니 머리 아파. 지금 만든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고 있긴 한데 꼰대 같은 협회 임원들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고.”

“하하. 꼰대 같긴 하죠. 근데 논문도 필요해요?”

“응. 자신만의 전술을 가지고 그 타당성을 인정받아야 리벨 3 자격증이 나오거든. 다른 사람의 것을 분석해서도 안 되고 창작을 해야 해.”

“와, 나중에 지도자 자격증을 받을 생각이면 절대 스페인은 선택하면 안 되겠네요.”

“절대. 넌 영국인이니까 영국에서 해. 영국은 유로파 자격증 코스하고 비슷해서 좋더구만. 스페인만 유독 깐깐하다니까.”

그 말을 서두로 한참 스페인왕립축구협회를 까던 로카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인수를 바라봤다.

“아직 훈련 시간 아냐?”

“가끔 땡땡이도 쳐줘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데. 오늘은 훈련 다 끝났어요. 내일 경기가 있잖아요.”

“아 맞다 내일이 26라운드 경기지. 엘체였던가?”

로카가 임시코치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일하고는 있었지만, 인수와 마린의 훈련을 전담하고 있었기에 팀의 회의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인수와 마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 세도로프가 따로 전달하는 식으로 소식을 듣고 있으니 내부사정에 대해 어두울 수밖에 없는 로카였다.

“네. 덕분에 난 다음 경기는 휴식이죠.”

총 38라운드까지 진행되는 라리가에서 25라운드까지 치러진 현재 엘체는 최하위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매년 강등과 승강을 반복하는 팀으로, 2부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서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강팀으로 주름잡고 있지만, 라리가에 올라오면 한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강등하는 팀으로 유명했다.

그에 따라 샨투 감독은 이번 기회에 카스티야 선수들과 로테이션 맴버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카스티야가 3부리그에서 뛰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번 시즌 코파 델 레이 8강까지 진출했고, 1차전에서도 승리하여 1980년처럼 다시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카스티야의 형제팀 대결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을 만큼 탄탄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카스티야의 선수 중 1부리그에서 뛸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물론 카시티야의 선수뿐만 아니라 주전으로 뛰지 못해 안달하여 있는 선수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런 경기에서는 기회를 주어야 했다.

“세도로프가 따로 말하겠지만 아마 마린도 벤치에 들어갈 거예요.”

“마린이? 다음 2차전에 벤치에 앉기로 한 거 아니었어?”

“상대가 엘체이니만큼 베티스와 경기하기 전에 적응하라고 투입한다고 하던데요.”

모라타가 다음 시즌까지 복귀가 불투명해진 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차기 주장을 정해야 하지만 이번 시즌까지는 부주장인 산체스가 임시 주장이 되어 있었다.

산체스 성격상 남들을 잘 챙기지 못했기에 주장의 완장은 자신이 차고 선수들과의 대화는 인수에게 미루었기에 코치진들과 대화는 거의 인수가 맡고 있었다.

거기서 나온 정보이기에 거의 100퍼센트 확실했다.

“오, 언제까지나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데뷔하다니.”

“난 그 나이에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했는데요.”

인수는 감격해하는 로카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개인 훈련을 하기 위해 떠났다.

***

모두의 예상대로 26라운드 엘체와의 레알 마드리드의 6:2 승리로 막을 내렸다.

카스티야에서 올라온 선수들이나 로테이션 맴버들이 자신들의 몫을 다해 준 데다 후반 20분까지 8개의 슈퍼세이브를 기록하고 교체된 산체스의 역할도 있었다.

골키퍼 3번째 옵션이자 카스티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알리송 주니오르가 2골을 내주긴 했지만 주니오르가 못했다기보다는 산체스가 잘했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수비는 처참하긴 했다.

그러나 사라비아와 파라데스가 뛴 윙이나 중앙을 맡은 마르시알까지 득점에 성공하며 공격력만은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특히 후반 40분에 교체 출전한 마린이 1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이 왜 스페인 최고의 유망주에 꼽히고 있는지를 증명했다.

특유의 낮은 중심이동으로 연속 두 명을 제치고 중앙으로 밀어준 패스는 골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언론에서 몇 번이나 다시 리플레이할 정도로 명장면이었다.

첫 출장에 얼지 않고 자신의 몫의 플레이를 한 것으로 대단한 일이었지만 후반 로스타임 도움을 기록하며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모라타가 빠진 자리에 인수를 세울 수밖에 없는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마린이 해준다면 인수를 다시 중앙으로 돌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많은 변수들이 있었지만 세도로프는 인수에게 윙 훈련을 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세도로프가 인수에게 윙훈련을 시키며 ‘포지션을 경험함으로써 중앙에서만 뛸 때보다 선택할 수 있는 공격로가 넓어진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인수 역시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세도로프를 믿고 중앙 미드필드는 물론이고 윙 훈련까지 하며 한층 성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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