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레알 마드리드를 매섭게 추격하던 발렌시아의 스미스와 로조비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자, 더 이상 레알 마드리드를 추격할 만한 팀이 보이지 않았다.
전반기에 레알 마드리드를 추격하던 세비야와 AT마드리드는 발렌시아와의 후반기 경기에서 지면서 승점차가 더욱 벌어져 있었고 이제는 발렌시아, 세비야, AT마드리드의 2위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리그에서 2위 그룹과의 승점 차이도 이제 10점 이상으로 벌어져 별다른 일만 없으면 우승이 확정되는 레알 마드리드에 부상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
마지막 유로 예선전을 앞두고 가장 마음이 급한 곳은 스페인이었다.
한때 무적함대라 불리며 유럽과 세계축구를 주름잡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고, 피파 순위도 10위권까지 떨어지며 유로 예선 시드를 정할 땐 겨우겨우 1 포트에 배정받는 수치를 겪고 있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에 조 1위 자리를 내준 스페인은 절대 만만치 않은 3포트의 폴란드와 최종예선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조 2위로 본선에 직행할 수 있지만 진다면 폴란드가 조 2위가 되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조 3위를 기록한 팀 중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은 바로 본선 진출이 가능했지만 이미 그 자리는 A조의 핀란드가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성적순으로 나누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겨룬 후 이긴다면 본선에 진출하는 방식이긴 했지만, 스페인으로서 거기까지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성적 때문에 콜린트 감독이 경질되었고 수석코치였던 로르카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기에 팀 분위기도 말이 아닌 상황. 혈투 끝에 이기긴 했지만 주전 윙어인 모라타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과 회복 기간 그리고 재활까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레프트 윙은 시즌 아웃은 물론이고 다음 시즌까지 복귀가 어려울 수 있었다.
물론 사라비아라는 대체가 있긴 했지만, 그는 전방 압박과 성실한 플레이를 하는 로테이션 맴버였다.
모라타가 자랑하는 돌파와 결정력이 없었기에 새로운 선수가 필요했고, 이적시장이 마감된 상황에서 카스티야나 후베닐에서 올릴 선수가 필요했다.
***
“여기가 후베닐 A입니다. 감독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같이 방문할 것이라 생각 못했는데요.”
세도로프는 기자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었기에 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샨투 감독을 보았다.
레알 마드리드 1군이 사용하는 훈련장과 같은 시우다드에 있긴 했지만 세도로프가 선수로 뛰고 있던 시기에는 갈 일이 없었기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후베닐뿐만 아니라 카스티야의 경기장도 이곳 시우다드에 있었고 연령별 유스 훈련장과 경기장이 모두 이곳 시우다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스티야에서는 이미 확인했지만 아직 1군에서 뛸 정도의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당장 1군에 올려 시험해 보고 싶은 선수가 없지는 않았지만, 현재 로테이션 맴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천천히 경기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더 나이 보였다.
그렇기에 그보다 더 아래인 후베닐까지 내려오게 됐다.
17-19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유망주들이 이곳 후베닐에 소속되어 실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저 선수는 누구입니까?”
샨투 감독은 세도로프가 가리킨 선수를 보고 당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독님도 저 녀석이 눈에 들어오나 봅니다. 17살로 호르헤 마린이란 선수입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고 18살이 되면 바로 카스티야로 올릴 선수죠. 좌우 윙은 물론이고 중앙에서도 자기 몫은 다 해주는 선수입니다.”
세도로프는 샨투 감독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17살에 불과한 나이였지만 균형이 잘 잡혀있었고 몸의 중심을 바꾸며 전진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물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완이 되겠지만 그건 개인의 노력 문제였다.
물론 17살에 후베닐A까지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프로축구 무대에는 재능이 있는 선수는 수도 없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노력한 선수만이 성공할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감독이 해야 하는 임무가 바로 그 재능을 다 살리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세도로프는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앞에서 막고 있는 선수는요?”
“그 앞 선수라뇨?”
샨투 감독은 그제야 마린 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린을 막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 있어?”
샨투 감독도 모르는 선수였는지 주변의 코치들을 둘러보았다.
샨투 감독의 질문을 받은 코치들은 다들 모르겠는지 긴급히 보드진에까지 연락을 취했다.
카스티야는 물론이고 후베닐, 그 아래 유스들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는 코치들이었지만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수의 정보를 받은 코치가 샨투 감독 곁으로 다가왔다.
“마크 로카, 24세이고 안달루시아 그라나다에서 유스 생활을 했었답니다. 자신이 재능이 없는 것을 알고 공부를 했고, 지금은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의 학생이라고 합니다. 마린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가르쳐줬고, 지금도 마린의 개인 코치로 출입증을 발급받았다고 합니다.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축구 이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레알 마드리드의 현재와 미래가 모여 훈련하는 시우다드 레알 마드리드에 있는 발데베바스는 출입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자들도 출입증을 발급받은 사람 이외에는 출입할 수 없었기에 일반인이 출입하려면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선수의 개인 코치라면 융통성 있게 출입증을 발급해주고 있었기에, 로카도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그런데 갑자기 저 사람에 대해서는 왜?”
샨투 감독은 어린 시절 축구를 하다 공부로 방향을 틀었고 지금은 대학생으로 개인 코치를 하고 있다는 말에 관심을 끊었지만, 세도로프는 계속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린의 몸의 이동이 독특하기에 궁금했는데 저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군요.”
마린이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중심 이동이 다른 선수와는 달랐다.
그래서인지 드리블도 더 안정적이었고 발밑 기술이 약한 약점도 보완되어 보였다.
“혹시 저 사람과 만나고 싶은데 주선이 가능할까요?”
“가능할 겁니다. 연락해 보겠습니다.”
샨투 감독과 세도로프는 후베닐에 있던 선수들까지 모두 확인하고 베르나베우로 돌아왔다.
***
베르나베우로 돌아온 두 감독은 마땅한 대체자원을 찾지 못한 채 후베닐에서 본 마린의 프로필만 만지작거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린뿐이네요.”
“생일이 2월 말이랬죠? 이번 달 말부터는 정식으로 1군에서 뛰어도 되는 나이이긴 한데. 어차피 1군에서 통하는지 시험도 해봐야 하고요.”
“우선 마린을 올려서 같이 훈련을 진행해보죠. 한 달 정도는 호흡을 맞춰서 2월 초에 있을 컵대회 8강부터 시험해 보죠.”
세도로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조언역이라고 해도 다음 시즌부터 감독으로 지명을 받은 만큼 클럽에 대한 발언권은 세도로프가 더 가지고 있지만, 현재 팀을 맡고 있는 감독은 샨투였다.
더욱이 코치진도 다 꾸리지 못해 선수들을 훈련하는 것과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까지 모두 샨투 감독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만큼 샨투 감독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하시죠. 카스티야에 올려서 천천히 적응시키려고 했으니까요. 한 단계 더 높은 1군 리그를 경험해 보는 것도 마린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죠.”
샨투 감독과 코치진은 마린이 2월 말 정식으로 계약하면 후베닐에서 카스티야로 옮기고, 다음 프리시즌에 1군과 함께 훈련하며 천천히 적응을 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모라타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울 선수가 필요했고 자신의 후임이 되는 세도로프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스타일상 모라타의 역할을 하기에는 좀.”
샨투 감독은 세도로프의 요청을 수락하면서도 자신의 탭에서 마린의 플레이 영상을 찾아 틀어주었다.
중심 이동이 좋은 만큼 탈압박과 드리블도 좋았고 압박플레이를 통한 수비 능력도 좋았지만, 골 결정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후베닐A에 올라와서 1년 9개월 동안 뛰며 통산 골이 11골에 불과했고 유스에서조차 득점에서 활약한 데이터가 없었다.
물론 좌우 윙과 중앙을 번갈아 가며 뛰느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적어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면 꼭 넣어줄 곳에서는 넣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큰 약점이 될 수 있었다.
“하인스를 윙으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스피드도 준수하고 드리블 돌파도 좋으니 윙으로 뛰어도 될 텐데 프로 데뷔 이후에는 윙으로 뛴 적이 없지 않나요? 그리고 하인스가 중앙에서 빠지면 공격력이 떨어질 텐데요.”
인수가 중앙에 서며 팀이 갖는 이득이 엄청났다.
기본적으로 볼을 소유할 줄 아는 선수였기에 수비수를 끌어당기며 다른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넓은 시야로 찔러주는 패스들으로 상대팀의 약점을 공략할 줄 아는 선수였다.
더욱이 공간을 내주면 중거리슛은 물론이고, 페널티지역 외곽에서 때리는 프리킥은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순간 스피드가 좋았기에 압박을 해도 탈압박 능력도 뛰어났고, 창조적인 움직임으로 패스까지 이어갔으니 상대하는 팀으로서는 골치 아픈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중앙에서 사이드로 돌린다면 장점 몇 개를 살리기 위해 다른 많은 장점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사라비아에게 모든 경기를 맡길 수는 없지 않나요. 사라비아도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모든 경기에 출전할 만큼 체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죠.”
“사라비아를 보조해줘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당장 쓸 수 있는 선수 중에 시험해 보죠.”
두 사람이 심각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A매치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치열한 리그가 시작됐다.
막상 부상으로 모라타가 빠지자 펄펄 나기 시작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특급 골잡이 코프였다.
자신이 넣을 골을 모라타가 넣어서 골을 넣지 못했다는 듯, 사라비아가 투입된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수비진을 보강하며 승리한 경기와 패배한 경기를 더한 것보다 더 많은 무승부를 거두고 있던 라요 바예카노를 상대로 한 해트트릭이라 그 의미가 더 컸다.
전반기 모라타의 극장골로 1:0으로 겨우 이긴 라요 바예카노였기에 코프의 활약은 더 큰 인상을 남겼다.
더욱이 이어진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도 코프가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모라타가 코프의 득점을 막고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 코프만큼 주목을 받았던 선수가 사라비아였다.
모라타가 화려한 돌파 이후 감각적인 슛으로 사랑받았던 선수였다면 사라비아는 팀을 위한 헌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 두 경기에서 패스 차단 횟수가 17번에 달했고 뛴 거리도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25km에 달했다.
물론 그렇게 뛴 덕에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긴 했지만 자신이 왜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에서 벤치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시켜준 경기였다.
물론 그런 사라비아와 코프가 활약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준 사람은 인수였다.
그런 레알 마드리드에 코파 델 레이 1차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