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2주간의 A매치 데이를 마치고 다시 리그로 복귀한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나오는 선수 들 중 하인스의 얼굴이 유난히 밝아 보입니다.”
“A매치 기간 중에 유로 예선이 치러졌거든요.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출전해 2경기 동안 7골 2어시스트를 하며 괴물 같은 실력을 뽐냈습니다. 특히 첫 번째 경기는 2번 포트인 덴마크를 상대로 했는데 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대표팀 복귀를 알렸죠. 잉글랜드가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6:1로 이길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지난주 있었던 6번 포트의 룩셈부르크를 상대로는 오버해트트릭을 성공시키며 월드컵 골든슈를 그냥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죠.”
“확실히 자신의 몫을 하고 온 하인스입니다만 스페인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스페인은 2번 포트인 우크라이나와 4번 포트인 웨일즈를 상대했다.
우크라이나와는 체력소모전을 한 후 2:2로 비겼지만 웨일즈에게 통한의 일격을 맞으며 조 1위 자리를 우크라이나에게 내줬다.
특히 웨일즈전 선발로 나섰던 골키퍼 산체스와, 모라타, 가르시아 등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선수들이 모두 평점 최하점을 받을 정도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기에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치느냐가 관심사였다.
“반면 다른 1포트 팀들 분위기는 좋습니다. 이제 절반을 막 넘어가는 예선인데 벌써 진출팀들이 결정되는 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독일과 프랑스가 확정 지었고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포르투갈도 거의 확정적입니다. 스페인, 러시아, 스웨덴이 조 2위로 떨어져 있고 보스니아가 조 3위까지 처져 있습니다.”
“이번 유로 예선도 이변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죠. 특히 5포트인 아이슬란드가 E조 1위를 달리고 있는 건 엄청난 이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2016년 유로 조 예선 1위를 하며 유럽의 복병으로 불리다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후 다시 5포트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요한 베르그라는 23살의 신성을 필두로 유스들이 성장하며 지난 월드컵 예선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번 유로에서는 조1위로 치고 올라왔다.
그런 아이슬란드의 에이스 요한 베르그가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인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에서 뛰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그와 하인스의 대결도 상당히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혹자는 이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황금 유스의 시대라고. 이제 막 성인무대에 올라온 신인급 선수들이 팀을 이끄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24라운드 베티스 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는 베르그와 하인스의 맞대결을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습니다.”
“양 선수 모두 공격적인 선수이긴 하지만 스타일은 전혀 다르죠?”
“두 선수 모두 공격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죠. 결정력이 좋고 그만큼 골을 잘 넣는 선수들입니다. 그러나 하인스는 최전방보다는 후선에서 치고 들어오는 스타일이라면, 베르그는 우월한 피지컬로 몸싸움을 이겨내며 타켓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는 스타일이죠. 지난 시즌 베르그는 리그에서만 23골을 성공시키며 라리가 득점 공동 2위에 올랐을 만큼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바르셀로나, AS로마, 인터 밀란, AC밀란 등에서 영입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베티스와 3년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재계약을 하며 바이아웃금액이 올라가긴 했지만 다음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베티스를 떠날 확률이 높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베르그의 비공식적인 입장도 있었죠.”
“말씀하신 대로 지난 시즌 23개의 골을 성공시켰고 이번 시즌도 벌써 15골이나 넣으며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는 베르그입니다. 그런데 베르그가 유독 레알 마드리드에게는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처음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 레알 마드리드를 8번을 만났는데도 단 한 골도 뽑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비수들이 베르그를 효과적으로 막은 탓도 있지만 베티스의 윙어들이 제대로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구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전체적인 문제라고 봐야 하는데 오늘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봐야 할 듯싶습니다.”
“오늘 레알 마드리드의 선발 라인업을 보면 변화가 살짝 보입니다. 기존 센터백으로 출전하던 누네스가 오늘은 수비형 미드필드로 출전하게 됩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차기 주전 센터백 자원으로 키워지던 누네스였거든요. 그런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되고 실레가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을 옮겨가서 출전합니다. 오른쪽 윙백이었던 웨아가 미드필드 오른쪽을 맡으며 미드필더진이 대폭 바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네스가 그동안 센터백 자원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스피드도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가지고 있거든요. 윙백으로 출전하는 후베이루와 아랑게스가 모두 오버래핑이 능한 만큼 그 빈자리까지 채워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겠죠. 그러면 4백이었던 수비가 3백으로 바뀌며 좀 더 안정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으니까요. 샨투 감독이 점점 실험적인 전술을 선보인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샨투 감독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런 실험적인 전술을 선보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 클럽에서 요구한 전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샨투 감독이 사전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보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거든요. 기자가 어떤 모습이라 물었을 때 선수들의 개개인의 능력으로 찍어 누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모습이 아닌 조직력이 갖춰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번 선수들의 포지션 변경이 그 시험이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순간 선수들이 입장을 끝내고 베티스의 선공으로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
레알 마드리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빠른 패스를 통한 조직력을 선보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밀고 들어오는 베티스의 공을 끊어 낸 가르시아가 바로 전방에 대기하고 있는 누네스에게 패스하고, 누네스도 받은 공을 그대로 소아레스에게 넘겼고, 소라레스도 바로 인수에게 넘기고, 인수도 바로 모라타에게 넘겼고, 모라타도 다시 인수에게 공을 넘겼다.
인수가 패스를 받을 때는 이미 베티스의 선수들을 패널티 지역까지 몰아넣은 후였고, 인수는 앞을 가로막는 수비를 몸을 흔드는 것만으로 수비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자신의 앞을 막던 수비가 사라지니 시원하게 앞이 트였고 슛 찬스가 나왔지만 인수는 더욱 정확히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찾았다.
“코프.”
슛라인이 드러나는 순간 베티스의 선수들이 슛코스를 막기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을 보고 수비가 놓친 코프에게 가볍게 밀어주었다.
프리찬스를 맞은 코프가 가볍게 공을 밀어 넣었다.
단 1분도 되지 않는 순간 후방에서 전방으로 좌측 방향에서 다시 우측까지 경기장을 폭넓게 쓰면서 패스를 이어갔다.
거기에 다시 중앙에서 공을 잡은 인수가 페인트로 만들어준 찬스를 코프가 완벽히 받아넘겼다.
후방부터 전방까지 이어지는 고리가 완벽해지며 레알 마드리드의 조직력이 만들어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첫 골이 전반 2분 만에 터진 이후 쉽게 경기가 풀려나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베티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공을 이어주는 누네스를 압박하며 공을 끊어낸 베티스는 전방으로 침투하는 베르그에게 킬패스를 했고, 그동안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무득점이었던 베르그가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전반 10분 만에 한 골씩을 주고받은 양 팀은 거기서 끝내지 않는다는 듯 서로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과 5분이 채 지나지 않은 순간 후방에서 넘어 온 공이 인수를 향했다.
자신의 등을 미는 선수를 확인하고 인수는 등을 돌린 채로 공을 잡지 않고 왼쪽 사이드로 공을 돌렸다.
선수를 보지 않고 돌린 공은 정확히 오버래핑하는 후베이루에게 연결이 됐고 후베이루 역시 수비의 압박을 벗어난 인수에게 다시 공을 리턴했다.
자신에게 오는 공을 그대로 오른쪽 사이드로 들어가는 소아레스에게 패스했고 소아레스 역시 그대로 중앙으로 크로스했다.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탓에 정확하지 못해 수비수의 헤더에 막혔지만 리바운드된 공을 향해 달린 인수가 있었다.
달려드는 인수의 발등에 정확히 얹힌 공은 총알만큼 빠른 속도로 베티스의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인수의 슛이 골이 되는 순간 베르나베우에 모인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트리거를 외치며 인수의 응원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팬들 마음속 그동안 비어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왕좌에 인수가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인수가 달아나는 골을 만들었지만 베티스도 만만하지는 않은 팀이었다.
전반이 끝날 무렵 수없이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아랑게스가 잔디에 미끄러졌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쪽 사이드가 완전히 열린 찬스.
베티스의 윙어가 중앙으로 치고 들어왔고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마르체나가 빠르게 달려 나왔지만 한 발 먼저 중앙으로 강하게 공을 깔아 찼다.
공을 막기 위해 누네스가 슬라이딩까지 해보았지만 누네스를 지나쳤고 가르시아까지 몸을 던졌지만 베르그의 방해로 막지 못하고 흘러나간 공이 왼쪽 사이드에서 치고 나온 선수에게까지 연결됐다.
이미 골키퍼인 산체스도 크로스된 공을 걷어내기 위해 몸을 날린 상황.
비어있는 골문에 가볍게 밀어 넣은 베티스는 전반 종료 휘슬과 함께 동점을 만들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동점을 내준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에 들어서는 더욱 무서운 기세로 베티스를 밀어붙였다.
그동안 패스를 통해 찬스를 만들었던 레알 마드리드는 사이드라인을 타고 드리블하는 모라타를 시작으로 개인기를 통해 베티스 선수들을 괴롭혔다.
전반전에는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갔기에 베티스의 선수들은 패스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1:1로 돌파를 시도하자 조직력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드리블 돌파로 빈 공간을 만든 모라타는 골라인까지 몰고 가서야 후방으로 공을 돌렸고 오버래핑을 통해 전방으로 달렸던 후베이루가 코프의 머리를 보고 크로스를 올렸다.
수비수에게 막혀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드리블 돌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킨 것만으로 베티스 선수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페스를 통해 빈틈을 만들고 패스가 여의치 않으면 드리블 돌파로 빈틈을 만드니 베티스의 수비라인이 정렬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공격까지 원활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 들어서 일방적으로 베티스 진영에서 반코트 경기를 펼친 레알 마드리드는 후반에만 4골을 더 추가했다.
프리킥골을 포함하여 스페인 진출 후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인수가 MOM으로 뽑혔고 스페인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좋지 않은 컨디션을 보였던 모라타도 2골을 기록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중간중간 패스를 끊기는 등 더욱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았고 고민할 거리도 많은 경기이긴 했지만 처음 선보이는 전술이 무난히 안착하는 모습이었다.
인수가 프리킥골을 성공시키며 레알 마드리드에게 위험지역에서 내주는 프리킥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른 팀들에게 각인시킨 경기이기도 했다.
세비야전부터 리그 4연승을 달린 레알 마드리드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원래라면 크리스마스 휴식기에 치러져야 할 경기였지만 스페인 왕립축구협회의 사정으로 미루어졌기에 선수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