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처럼 레알 마드리드와 AT마드리드의 경기는 4:0으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전후반 내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레알 마드리드의 골은 인수의 드리블 돌파에 이은 전방으로 보낸 스루패스를 모라타가 중간에서 차단해 골을 넣으며 시작되었다.
전반 25분 모라타의 골을 시작으로 40분경 인수의 중거리골이 터졌고, 후반 10분, 20분 코프의 골이 터졌다.
언뜻 레알 마드리드의 일방적 승리처럼 보였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 살펴야 할 것이 많은 경기가 되었다.
제일 먼저 12개의 코너킥을 얻었는데도 코너킥을 통한 득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더 확대하면 직접 슈팅을 노리지 못하는 프리킥까지 18개의 세트피스 찬스에서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는 샨투 감독 부임 이전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올 시즌 95개에 달하는 코너킥 기회 중 하나도 넣지 못한 것은 큰 약점이었다.
그다음은 아직까지 맞지 않는 모라타와 소아레스의 호흡이었다. 서로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이다 보니 욕심을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골에서처럼 자신에게 오는 공이 아니었음에도 중간에 끊고 들어오는 행동이 두 선수 모두에게 보였다.
첫 번째 골은 들어갔지만 그 후 들어가지 않은 골까지 치면 더 많은 점수가 날 수도 있는 경기였다.
특히 홈 앤 어웨이로 펼쳐지는 수페르코파이다보니 큰 점수 차이였다면 홈에서 더 편한 경기를 할 수 있었기에 아쉬운 플레이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수비진과 공격진의 고리가 되어 줄 플레이어의 부재였다.
본래 샨투 감독은 인수에게 그 역할까지 맡길 생각이었지만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시즌의 절반이 넘어갔다.
의도적으로 외면한 시간이 긴 만큼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기에 아직까지 완벽히 호흡이 맞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특히 후방에서 인수에게 넘어오는 패스가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사이드로 돌아가는 공이 많았고 그만큼 속공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이런 문제들은 레알 마드리드가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경기를 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을 문제였지만 팽팽한 경기를 할 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였다.
특히 세트피스의 경우 반복적인 포지션 훈련을 해야 했고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훈련 자체가 문제였다.
인수가 직접 골을 넣을 수 있는 프리킥은 맡고 있었지만 세트피스가 필요한 경우 아직은 인수가 차기에는 무리였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지만 당장 바르셀로나와 셀타 비고와의 리그 경기가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중위권으로 처져 있는 바르셀로나였지만 지난 레알의 홈에서도 엘클라시코다운 경기를 했었고 셀타 비고는 특유의 공격적인 축구로 어느 팀이든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만큼 다득점이 나는 경기가 많았기에 전형적인 스페인 라리가의 특징을 보여주는 팀이었다.
그 중간에 AT마드리드와의 2차전이 남아 있었지만, AT마드리드는 1차전을 크게 진 상황에서 이벤트 대회인 수페르코파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었다.
더비 매치라는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AT마드리드의 남은 일정도 살인적이었으니 변수가 없다면 다른 경기를 생각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
“와, 여기가 바르셀로나구나.”
인수는 바르셀로나의 호텔로 이동하며 지난 휴식기에 놀러 왔던 레이가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바르셀로나 시내를 두리번거렸다.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독립 의지가 강한 카탈루냐 지방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매치였다.
그 외에도 유명한 건축물과 역사가 살아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호텔 도착하면 절대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마.”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안수 파티가 이적한 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 불만이 많았다.
지난 시즌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리그 2경기 모두 무승부를 거둬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우승을 못 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전반기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4:0이라는 스코어로 박살 났기에 회장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열리는 엘클라시코였기에 혹시나 모를 사고를 방지해야 했다.
“완성된 사그라다 파멜리아 대성당을 보고 싶었는데.”
150여 년 만에 완공된 사그라다 파멜리아 대성당은 캄 노우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되었다.
베르나베우와 함께 스페인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캄 노우, 그리고 바르셀로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대성당은 절대 빠질 수 없는 여행지 중 하나였다.
“나중에 은퇴하면 와.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거 아니면.”
“생각 없어요.”
라이벌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이 받는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인 루이스 피구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테러 위협까지 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고 호나우두도 라리가와 세리에A에서 두 번이나 라이벌팀으로 이적하고 비난의 대상이 됐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앨런 스미스나 테베즈, 애슐리 콜, 반 페르시 등이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고 난 뒤 받은 비난을 생각하면 라이벌 팀으로의 이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수의 평소 소신이었다.
***
“붙어. 압박해.”
오랜만에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다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축구의 특징인 전방압박을 통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패스플레이로 상대를 휘저은 다음 공간을 만들고 빈 공간을 찌르는 패스, 그리고 슈팅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축구를 구사했다.
20세기 최고의 팀이라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도 이런 바르셀로나의 완성된 축구에 한동안 최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는 팀이었지만 주축선수들의 은퇴와 노쇠화, 그리고 이적은 그런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엘클라시코를 철저히 준비했는지 철저한 전방압박을 걸어왔다.
물론 아직 완성이 됐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바르셀로나였기에 점유율을 통한 공간 창출은 못 하고 있었지만 압박만은 진심이었는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편하게 공을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기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하는 바르셀로나의 의도는 홈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였지만, 그 의도는 10분 만에 무너졌다.
“하인스.”
바르셀로나가 강하게 전방압박을 하자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수들도 편하게 전방으로 패스를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되고도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가르시아는 전방에 있는 하인스에게 한 번에 연결하는 패스를 시도했다.
인수라면 어떻게든 잡아줄 것이라면 믿음도 있었고 그런 패스가 나오다 보면 전방압박을 고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가르시아의 의도는 방향은 정확했지만 높이가 문제였다.
차라리 높았다면 헤더로 경합했을 것이고 낮았다면 발이나 허벅지로 트래핑을 하면 됐을 터인데 허리 높이로 떨어지는 공이었다.
바운드를 시키고 안전하게 잡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인수의 등에 어깨를 붙이고 자세를 낮추고 있던 수비수 탓에 그 선택을 할 수도 없었다.
인수는 수비수의 힘에 밀리는 듯 천천히 조금씩 몸을 틀었다.
그렇게 몸을 반쯤 돌리고 날아오는 공의 타이밍에 맞춰 어깨를 앞으로 내밀었다가 공이 닿는 느낌을 받으며 공의 속도를 줄이며 바운드를 시키고 몸을 완전히 돌렸다.
낮은 자세를 잡고 인수를 밀고 있던 수비수는 인수의 턴을 막지 못했고, 자신의 머리 위로 공이 넘어갈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기에 잠시 멍해졌다.
수비수를 떨치고 바운드 된 공을 잡은 인수는 그대로 바르셀로나 진영으로 드리블해나갔다.
전방압박을 하느라 바르셀로나 진영은 빈 공간이 많았고 그 공간은 인수를 위한 놀이터였다.
그 공간을 막기 위해 뛰어나오는 수비수를 팬텀 드리블로 가볍게 제쳤다.
바르셀로나의 전설이기도 한 리오넬 메시의 전매특허인 라 크로케타가 다시 한번 캄 노우에서 재현됐다.
한 명의 수비수가 젖혀지자 코프를 마크하던 최종수비수의 선택이 중요했다.
골대와 골키퍼 앞에는 자신과 코프만 있을 뿐 이미 인수는 패널티 라인까지 접근해 있었다.
패스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 최종수비수는 코프에 대한 마크 대신 인수를 택했다.
패널티 지역에 들어오기 전 빠르게 막을 생각으로 접근한 수비수를 인수는 다시 플립 플랩으로 돌파했다.
팬텀 드리블에 이은 플립 플랩은 인수의 앞에 골키퍼와 골대만을 남겨두었다.
바르셀로나의 골키퍼. 안토니오 크리시토 역시 자신이 왜 이탈리아의 주전 골키퍼인지 보여주는지 재빨리 앞으로 나와 슛코스와 패스코스의 각을 한 번에 좁혔다.
조금만 늦으면 골키퍼에 의해 막힐 수도 있는 상황, 인수는 가볍게 공을 띄워 골키퍼의 키를 넘겼다.
자세를 낮추고 발을 벌려 슛코스와 패스코스를 한 번에 막던 골키퍼는 점프를 뛸 수 없었고 손을 들어 넘어가는 공을 쳐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인수는 골키퍼를 지나쳐 굴러가는 공에 힘을 가해 바르셀로나의 골대를 열었다.
38미터를 단독 드리블로 돌파해 3명의 수비수와 한 명의 골키퍼를 차례대로 꺾고 골을 성공시키자 캄 노우의 10만여 관중은 일제히 숨을 멈췄다.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였지만 그만큼 그 임팩트가 강했다.
캄 노우의 신이라 불렸던 호나우지뉴와 메시의 주특기가 플립 플랩과 팬텀 드리블이었다.
그 기술로 바르셀로나를 뚫은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의 인수였다.
조용했던 캄 노우는 주심의 골 인정 휘슬과 함께 큰 함성과 온갖 욕설이 튀어나왔다.
“병신들. 니들이 그러고도 바르셀로나 선수야?”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은 놈이 팬텀과 플립 플랩을 쓰는 꼴을 봐야 돼?”
“그러기에 반드시 데려온다고 했잖아. 3년 전부터 데려온다고 꼭 뽑아 달라며 병신아.”
“데려온 놈들이 하나 같이 병신이고. 당장 사퇴해.”
캄 노우에 모인 관중들의 욕설의 방향은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인수를 반드시 영입하겠다고 나선 바르셀로나의 현 회장이었다.
안수 파티가 이적하고 난 이후 바르셀로나 회장이 차세대 신을 영입하겠다고 말하며 가장 높은 영입순위로 놓은 선수가 인수였다.
인수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지만 영입을 성공한 선수들 중 현재 캄 노우에서 뛰고 있는 선수가 없었다.
모두 바르셀로나 B에서 뛰고 있었고 이번 시즌에 올라올 만한 선수도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 재능이 있는 선수들을 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서 인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미래의 선수들을 모은 회장이 멍청해 보였다.
특히 영입을 경쟁했던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였다는 것은 바르셀로나 팬들을 더욱 자극했다.
이런 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르셀로나는 압박 전술을 계속 전개했다.
이미 인수에게 한 번 뚫리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효과를 보고 있었고 가장 자신 있는 전술이었다.
그런 바르셀로나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위험한 상황도 많이 연출됐지만 결정적인 골을 넣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인수가 움직였고 이번에는 단독 돌파에 이은 킬패스로 모라타의 골을 도왔다.
후반 인수의 패스를 받은 코프가 한 골을 더 집어넣으며 추격의 의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추가시간 바르셀로나가 한 골을 기록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골은 나오지 않았고 엘클라시코 2차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3:1 승리고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