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90화 (90/200)

90화

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 리그 16강 탈락이란 제목만 들으면 충격적이었지만, 정작 선수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1차전에서 5:1로 진 탓이었기도 했지만 다들 절망적인 상황이라 생각한 2차전에서 4:1로 승리한 탓도 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결과만 놓고 보는 일부 팬들은 클럽과 감독을 강하게 질책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은 이런 팬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10만 명이 약간 넘는 유료 팬인 소시오들의 투표를 통해 클럽의 회장이 되는 레알 마드리드이다 보니 다음 선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라리가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아틀렌틱 발바오에만 남아있는 제도이긴 했지만 역대 어느 회장도 이 제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민심을 읽는 것이 회장의 중요한 안목이 되었고 현 회장인 안토니오 데 케사다는 샨투 감독과 이번 시즌을 끝으로 더 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민심을 다독였다.

그와 반대로 인수에 대한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특히 경기 중 샨투 감독이 말한 트리거란 중얼거림이 어떻게 언론을 통해 흘러나갔는지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인수의 별명을 트리거라고 부르며 새로운 응원가까지 만들었다.

“요, 트리거. 상대의 심장을 향해 쏘는 트리거.”

응원가가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들은 지 2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그새 들었는지 모라타가 흥얼거리며 다가왔다.

“맘에 들어?”

응원가를 불러도 아무 대꾸도 없는 인수를 보며 모라타는 이상한 눈으로 물었다.

자신의 응원가가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처음 들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필라여 적의 발목을 물어뜯어라. 심장을 뜯어내라.’

레알 마드리드에서 유스부터 성장했고 가장 유망주로 평가 받았던 자신을 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성격이나 경력,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까지.

그렇다고 사람을 무서운 사냥개인 필라 브라질레이로와 비교하다니.

사실 유스 시절 실수로, 정말 실수로 상대편 선수의 발목에 태클을 한 적이 있었다.

분명 실수였고 바로 사과도 했고 상대의 부상도 3주 진단을 받을 만큼 심하지도 않았다.

그 경력 가지고 발목을 부수고 심장을 뜯어내라는 응원가를 만든 팬들이었다.

그래서 인수의 응원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들어보았고 유치하지만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적의 심장을 향해 쏴라’라는 유치한 노랫말에 인수를 놀리기 위해 훈련장에 왔던 모라타였다.

항상 인수가 훈련장을 가장 먼저 도착한다는 정보쯤이야 알고 있었으니.

“맘에 들고 안 들고가 뭐 있겠어요? 그냥 응원가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소튼 시절부터 많은 별명을 얻었던 인수였기에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붙여 준 새로운 별명에도 시큰둥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별명의 시작이 샨투 감독의 말이었다는 것에는 놀랐지만.

“너 19살 맞아? 애늙은이도 아니고 먹는 거나 하는 것 보면 딱 애인데.”

모라타는 자신이 19살 때를 생각하면 인수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 1군에 올라갈까 생각하며 2군인 카스티야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던 나이였다.

물론 또래나 자신보다 2-3년 먼저 입단한 선수보다 뛰어났기에 월반을 거듭하긴 했지만 쉽게 1군에 자리가 나지 않았다.

21살이 되고 이적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비로소 1군으로 콜업됐고 당시 감독의 성향과 잘 맞는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 연차가 쌓이고 자신보다 먼저 1군에 자리 잡은 선수들이 클럽을 떠나 주장을 맡았고 선수단을 이끌고 있었다.

“여권 보여줘요? 아 그런데 응원가는 언제 들은 거예요? 나도 아직 못 들었는데.”

“우리 팀 선수 중에 레알 마드리드의 소식통이 있거든. 무려 레알 마드리드의 소시오시라고.”

일 년에 일정 금액 이상을 가입비로 내야 가입이 가능한 소시오였다.

이 금액은 레알 마드리드 관련 상품을 구입하거나 입장권을 구매하는 금액과는 별도로 더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클럽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내기 힘든 돈이었다.

이런 소시오들이 매년 10만 명 이상을 유지하는 팀이 레알 마드리드였다.

“선수 중에 소시오가 있다고요?”

인수가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하고 나서 지금까지 선수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축구 실력으로만 소통을 해왔다.

지난 세비야와의 경기 후 급격히 친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선수들과 소통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었고 모라타와 코프, 실레, 소아레즈 등은 공격진 라인이었기에 먼저 인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항상 무서운 표정을 짓고 날카로운 모습만 보여줬던 모라타가 이렇게 수다쟁이 기질이 있다는 것도 먼저 다가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었다.

“사라비아가 소시오야. 원래 마드리드 팬이기도 했고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자 소시오였대.”

“그런데 레알 입단은 모리타보다 늦었잖아요.”

레알 마드리드는 오래된 역사만큼 하나의 전통이 있었다.

팀의 주장은 나이에 상관없이 팀에 가장 먼저 합류한 선수가 선수단의 주장이 됐다.

그렇기에 현재 있는 선수들 중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 뛴 선수는 모라타였다.

“유스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축구 재능이 있었기에 다른 팀 유스에 들어가서 훈련을 하고 1군에도 들었는데 매년 이적시장에서 자신은 레알 마드리드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데려가라고 노래를 부른 선수로 유명했지. 결국 4년 전에 영입됐고 그 후로 자신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지.”

인수는 모라타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라비아의 입에서는 항상 ‘우리 레알.’, ‘내 레알.’이란 소리가 입에 붙어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사라비아와 이야기 할 때는 클럽에 대한 욕은 하지 마. 확인되지 않는 정보로는 레알 마드리드 극성 팬사이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까.”

축구가 있고 팬이 있으면 어디에나 있는 것이 극성팬이었다.

소튼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나머지는 그저 그런 폭력배, 포츠머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마피아라고 세뇌 교육을 받은 인수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포츠머스 팬이 아니라면 용납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으니.

모라타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선수들이 훈련장에 들어오며 인사했다.

***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한 레알 마드리드의 일정은 리그와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가 남아있었다.

스페인의 FA컵인 코파 델 레이는 홈 앤 어웨이 형식의 승부였고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는 이벤트 컵이긴 하지만 리그 1, 2위팀과 지난 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에 진출한 두 팀 간 토너먼트 경기였기에 클럽 간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컵대회 자체는 잉글랜드보다 적었지만 대회 형식이 형식이다 보니 선수들이 뛰어야 하는 경기 수는 적지 않은 곳이 스페인 리그였다.

당장 눈앞에 다가온 경기는 리그 22라운드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와의 원정경기였다.

지난 원정을 갔던 남쪽의 세비야와는 정반대인 북쪽 바스크 지방에 있는 팀이었다.

바스크 지방의 대표적인 팀인 아틀레틱 발비오와 라이벌을 이루고 있긴 했지만 항상 그렇듯 이번 시즌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팀이었다.

그렇기에 알라베스와의 경기보다는 바로 다음 주 주중에 있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붙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물론 지난 21라운드에서 2위인 세비야를 제압하긴 했지만, 아직 승점차가 크지 않아 안심할 수 있는 승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드리드 더비 혹은 데르비 마드릴레뇨라 불리는 더비 경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드리드주에는 헤타페도 있었지만 헤타페시로 따로 구분되어 있는 만큼 마드리드시의 주인은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간의 경기로 증명되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클럽에서도 지난 세비야와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를 풀로 소화한 선수들은 원정을 가지 않고 마드리드에 남기기로 했다.

그 덕에 인수를 비롯한 모라타, 코프, 산체스, 니실랴까지 마드리드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리그 22라운드 알라베스와의 경기는 체급 차를 증명하듯 주전 선수들이 모두 라인업에서 빠졌음에도 2:0으로 이기고 마드리드로 돌아왔고 수페르코파 데 이스파냐를 준비했다.

***

“수페르코파 데 이스파냐 4강 토너먼트 경기가 열리게 되는 메트로폴리타노입니다. 이번 수페르코파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발렌시아, 세비야 4팀이 토너먼트를 벌여 우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각 클럽들은 그렇지 않아도 경기 수가 많아 수페르코파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2017년까지는 라리가 우승팀과 코파 데 레이의 우승팀이 홈 앤 어웨이로 맞붙어 우승자를 가렸지만 클럽에서 부담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2018년 단판으로 열렸죠. 다시 한 해 만에 라리가 1, 2위팀과 코파 데 레이의 결승전 진출팀 두 팀까지 총 4팀 간의 홈 앤 어웨이로 토너머트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클럽들의 원성은 여전한데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에서는 이 체제를 유지한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클럽들에게는 부담이 가는 일정일지 모르겠지만 경기를 보는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벤트 컵이긴 하지만 수페르코파는 최고의 클럽들이 맞붙는 경기이니까요.”

“오늘 경기를 펼치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시 이번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이긴 하지만 다음 주 수페르코파 4강 2차전은 물론, 리그 31라운드에서 다시 만나야 하고, 코파 델 레이에서도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정말 일정을 생각하면 클럽에서는 우는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8강에 진출해있는 상태이지 않습니까? 챔피언스 리그까지 생각하면 엄청나긴 하지만 우리는 오늘 이 경기를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22라운드에 발렌시아와 맞붙은 AT마드리드입니다. 3:2로 이겨 다시 3위로 올라서긴 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을 주중에 뛰고 주말에 22라운드까지 소화한 AT마드리드는 어쩔 수 없이 주전 선수들을 라인업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죠.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22라운드에서 주전 선수들을 원정에 참여시키지도 않고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우위가 자연스레 점쳐집니다만 AT마드리드의 로테이션 선수들이 그냥 무너질 선수들은 아니거든요. 라이벌전 다운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발 라인업을 보면 지난 리그 21라운드 세비야전과 챔피언스 16강 2차전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한 하인스 선수의 이름이 선발로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출전하지 않아 말이 많았던 하인스인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프리미어리그에서 라리가로 넘어온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중에서도 라리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선수도 있었고 명성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 선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영입 당시에도 뛰는 것을 직접 봐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 선수가 왜 그런 이적료를 받았는지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세비야와 파리 생제르맹이 만만한 팀이 아님에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만큼 오늘 경기에서도 기대가 됩니다.”

“그렇군요. 양 팀 선수들 경기를 시작할 채비를 다 마쳤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선공으로 전반전 시작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