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80화 (80/200)

80화

16강 첫 번째 날에는 A조 1위인 아르헨티나와 B조 2위 포르투갈의 경기, 그리고 C조 1위 독일과 D조 2위인 대한민국의 경기가 성사됐다.

아르헨티나와 포르투갈은 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었을 때 외에는 친선전 경기도 없었다. 그 친선전 결과조차 1승 1패를 나눠 가지며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치열한 한판이라 예상해야 했는데 월드컵이 열리는 장소가 아르헨티나였다.

홈 어드벤티지를 눈에 띄게 받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강력’ 그 두 글자로 설명됐고 세 실바가 분투했지만 3:1로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다음 열린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 역시 상대 전적 2승 2패가 말해주듯 독일의 승리를 예상하긴 했지만 장담은 할 수 없었다.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대한민국대표팀이 슈퍼소니의 쐐기 골로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탈락시킨 적도 있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도 3:2로,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1:0으로 패배하는 등 독일에게만 유리한 대진은 아니었다.

A팀이 아니라 범위를 더 넓혀도 두 팀의 상대 전적은 거의 동률을 이룰 만큼 전력에서는 약세였어도 막상 전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대로 두 팀의 경기는 매우 치열하긴 했지만 골이 나지 않았고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연장전에서까지 승부를 내지 못한 두 팀은 승부차기로 돌입했고 7번째 키커까지 나오고서야 독일이 승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잘 싸웠지만 졌다’라는 평가를 받으면 4년 후를 기약해야 했다.

다음날 열린 16강전 두 번째 날 경기는 E조 1위인 스페인과 F조 2위인 크로아티아의 경기였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는 빨간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국장으로 인해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팀이었다.

다보르 슈케치, 루카 모드리치, 이반 라키티치, 마리오 만주키치 등 독립한 이후 세계 축구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수들이 많았다.

아직까지 국제대회에서 우승은 없었지만 월드컵 준우승과 유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언제든지 우승을 노릴 수 있었지만 이번 상대가 좋지 못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후 국제대회의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지난 2036 유로를 우승하면서 다시금 달리기 시작한 스페인이었다.

2036 유로에서 크로아티아와 8강에서 만나 5:1로 제압한 적이 있던 스페인은 월드컵에서도 4:2로 제압하며 다시금 크로아티아에게 제대로 먹물을 뿌렸다.

그 후 열린 G조 1위 프랑스는 여유로운 경기 운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압하며 16강 2일차 경기가 마무리됐다.

건기에 접어든 아르헨티나인 만큼 월드컵 경기 내내 단 하루도 비가 오지 않은 청명한 날씨가 지속됐다.

혹자가 말하는 축구의 묘미라는 수중전이 발생하지 않아 재미없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선수들로서는 부상의 걱정도 적었고 경기를 펼치는 환경도 좋았다.

그런 아르헨티나에 16강 세 번째 날이 밝았다.

***

세 번째 날 첫 번째 경기는 B조 1위인 잉글랜드와 A조 2위인 아일랜드의 경기였다.

아일랜드로서는 800년간 자신들을 지배했고 역사책에서도 크게 다루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일으킨 당사국이었던 잉글랜드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경기장에는 아일랜드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아일랜드 축구장의 단골곡이기도 했던 더 필드 오브 아덴라이가 울려 퍼졌다.

셀틱FC의 응원곡이기도 했고 셀틱과 가까운 리버풀의 응원가로도 쓰이기도 했지만, 편곡된 분위와는 달리 원곡을 그대로 부른 탓에 잉글랜드 선수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우리 팀 응원곡이야. 우릴 응원하는 거라고.”

잉글랜드의 주장이면서 리버풀의 주장인 케인이 선수들을 다독였지만 그것이 아님을 잉글랜드 대표팀은 너무나 잘 알았다.

“우리는 삼사자 군단이야.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들이라고.”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의 분위기가 너무 떨어지자 인수가 앞으로 나섰다.

“긍지를 가지라고.”

인수는 선수들 가슴에 수놓아있는 삼사자 엠블럼을 하나씩 두드렸다.

삼사자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선수들도 뛰어야 한다는 뜻으로.

“그래. 가자. 우리는 자랑스런 잉글랜드 대표팀이야. 삼사자 군단의 일원이라고.”

팀의 최고참인 루튼의 선창으로 선수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가자!”

“가자!”

“가자!”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응원가를 들으며 떨어져 있던 분위기가 약간이나마 살아났다.

나머지는 경기에서 땀을 흘리며 정상 컨디션으로 되찾는 일뿐이었지만 아일랜드와의 경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일랜드 대표팀이었다.

그중에는 같은 팀에서 뛰는 선수도 있었고 친분이 있는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소튼에서도 함께 뛰었던 윌리 어빈이었다.

“에디, 나랑 놀자니까. 왜 자꾸 피해.”

“그만 좀 붙어요. 라이트 윙백이 왜 라이트까지 와서 붙어요.”

같은 팀에서 뛰며 작은 버릇까지 알고 있던 어빈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라이트 윙으로 출전했던 에디였다.

좌우 윙을 모두 자신 있게 소화할 수 있었던 에디에게는 최선의 선택지였고 어빈은 그걸 알았는지 에디를 따라 레프트 윙백으로 출전했다.

어빈이 레프트 윙백으로 출전하자 레프트 윙으로 출전한 크리스 샤네와 스위칭을 계속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따라붙는 통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야 너랑 놀려고 그러지. 최종전이 끝나고 오랜만이잖아.”

어빈은 자신의 임무가 에디를 묶는 것이었는지 줄기차게 에디에게 따라붙었다.

에디가 꽁꽁 묶여 있으면 뒤에 있던 게리 잉스가 오버래핑이라도 활발하게 해주어야 했는데 아일랜드의 주공격라인이 잉스가 맡는 쪽이 되어버려 함부로 오버래핑을 하기도 힘들었다.

에디가 맡은 오른쪽이 완벽히 막혀있어 잉글랜드의 공격로는 중앙과 왼쪽 사이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을 넓게 쓰며 수비를 흔드는 것이 장기인 인수로서도 막혀있는 오른쪽이 답답했다.

“어빈이 까다롭지?”

아일랜드의 공격이 사이드아웃되면서 물을 마시러 온 인수가 에디에게 속삭였다.

“응. 오버래핑은 못하면서 수비는 정말 잘하잖아. 스피드도 느리면서 끝까지 쫓아오더라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이중국적자인 윌리 어빈은 비교적 선수층이 얇았던 아일랜드 대표팀에서 먼저 콜이 왔기에 아일랜드 대표팀을 선택한 경우였다.

그 후 소튼에서 계속 뛰며 기량이 늘었고 이제는 수비력만으로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한 손안에 꼽힐 정도의 선수로 성장했다.

같은 팀이었을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는데 막상 적으로 만나니 까다로웠다.

에디가 스피드가 느리다고 했지만 에디보다 느린 것일 뿐, 수준급 스피드도 갖추고 있었기에 함부로 공간을 여는 패스도 할 수 없었다.

어빈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대표팀의 모든 선수가 맨투맨 수비를 하고 있었기에 공격을 전개하기 힘들었다.

맨투맨 수비로 공격을 막고 역습으로 한 골을 넣은 후 두 줄 수비로 잉글랜드를 무너뜨린다.

아일랜드가 이제까지 잉글랜드를 상대한 전술이었고 정확히 맞아떨어진 그 전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력이었지만 전적만은 앞서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그 전술의 효과가 발휘했는지 리버풀의 차세대 에이스라 평가받던 샤네가 범한 드리블 실수가 역습으로 이어졌고, 끝까지 공에 집중했던 케인이 손을 뻗었지만 케인의 간절한 바람에도 손가락을 지나쳐 골문 안으로 사라졌다.

‘계획대로 됐다’는 듯 아일랜드 선수들은 자신의 집에 간다는 것처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잉글랜드 진영에서 아일랜드 진영으로 넘어갔다.

보통 두 줄 버스를 세우더라도 최전방 공격수만은 역습의 기회를 노리며 센터아크 근처에 있을 법도 하지만 아일랜드는 자신의 진영에 자로 잰 듯 반듯이 모를 심었다.

녹색 필드 위에 녹색 유니폼을 입은 아일랜드 선수들의 모습은 보호색을 입은 카멜레온 같았다.

두 줄 버스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야 하는 잉글랜드엔 인수가 있었고 그전에 잉글랜드의 에이스였던 벨링엄도 있었다.

박스 투 박스에 제일 잘 어울리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답게 수비도 뛰어났지만 개인기가 떨어지지도 않은 선수였다.

전진 능력과 발재간을 통해 좁은 공간에서 창의적인 패스를 할 줄 아는 선수로 두 줄 버스 사이에서 인수와의 완벽한 패스호흡을 보여주었다.

좁은 공간에서 2:1 패스를 통해 수비들을 제쳤지만 그러자마자 바로 다른 수비수가 튀어나오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벨링엄과 인수라고 해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고 그대로 전반이 종료됐다.

***

하프타임이 끝난 후 후반이 시작돼서도 아일랜드는 두 줄 수비를 고수했다.

“앞으로 나올 것도 같은데, 지겹지도 않은가.”

평소 과묵한 선수로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하더라도 단답형 답을 하기로 유명했던 헤리어 슈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수비였다.

일방적으로 공격은 하고 있지만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도 시간이 흘러 후반 20여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쪽도, 수비만 하는 쪽도 체력이 떨어져 집중력이 흐트러질 시간대였다.

양 팀의 감독들이 선수들의 뛴 기록들을 살피며 교체카드를 살피고 있을 때 인수가 움직였다.

좁은 공간에서 벨링엄의 패스를 받은 인수는 순식간에 세 명의 수비에게 둘러싸였다.

소튼의 감독이었던 랄라나가 전성기 시절 자주 보여줬던, 세 수비수 중앙 좁은 공간에서 단 한 번의 터치로 세 선수를 모두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플레이가 재현됐고, 아일랜드의 두 줄 수비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인수는 그 작은 균열 사이로 공을 밀었고 오늘만 해도 수차례 스프린터를 했던 에디가 아직 체력이 남았는지 그 공에 다가왔다.

앞에는 이미 오늘 하루 종일 따라붙었던 어빈이 있었기에 에디는 발뒤꿈치로 공을 멈춰 세웠다.

에디가 멈춰 세운 공은 인수가 어느새 달려와 그대로 슛으로 이어갔고, 자신의 월드컵 여섯 번째 골을 만들었다.

50여 분 가까이 잉글랜드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내던 아일랜드는 체력이 다 해 쓰러지는 코끼리처럼 무너졌고 4분 후 에디에게 추가골을, 종료 직전엔 슈에게 쐐기골까지 허용했다.

2020년 친선전에서 3:0으로 패한 후 잉글랜드에게 패배하지 않았던 아일랜드가 월드컵 16강전에서 다시 한번 3:1로 패하는 순간이었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경기가 끝난 후 세계 언론들은 잉글랜드의 승리 소식을 전하며 인수와 에디가 만들었던 동점골 장면을 리플레이해 틀어주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스를 잘 키우기로 소문난 소튼의 명성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았던 브리지의 이름도 다시금 세계 언론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특히 브리지의 경우 첼시 시절 불미스런 일로 세계의 시선을 받았을 뿐, 그 외에는 프리미어리그 선수 취급을 받았지만 인수와 에디의 덕에 좋은 이미지로 언론의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됐다.

잉글랜드의 승리 이후 펼쳐진 F조 1위인 멕시코와 E조 2위 우루과이의 경기는 서로 상대를 잘 아는 사이였던 만큼 치열한 혈투가 연장전까지 펼쳐지며 멕시코의 승리로 끝이 났다.

나머지 경기에서도 브라질이 가나의 검은 돌풍을 잠재웠고 나이지리아는 스웨덴을 침몰시키며 16강의 최대 이변을 만들어냈다.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 잉글랜드와 멕시코,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의 8강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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