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잉글랜드 대표팀이 영국을 떠나 아르헨티나로 향할 때 전 세계의 시선 역시 아르헨티나로 몰렸다.
1978년 이후 60년 만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두 번째 월드컵이었고, 범위를 넓혀보아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남미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우승국은 모두 유럽 국가였기에 남미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만큼은 남미팀이 유럽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지가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이슈였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우승 0순위로 꼽히는 브라질과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우루과이, 그리고 개최국이자 1986년 이후 우승이 없는 아르헨티나까지 기대하는 시선이 많았다.
특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기록적인 대패를 당한 브라질은 그 후 월드컵에서 4강에도 들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번 월드컵 멤버는 역대급이라고 할 정도라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결승전에 진출해 보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가 이번에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가 되었다.
지난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가 동시에 4강에 진출해 준결승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많았다.
그런 관심 속이었지만 잉글랜드 대표팀은 잉글랜드 언론을 제외한 주류언론에서는 소외를 받고 있었다.
지난 2036유로에서 예선 탈락했고 이번 월드컵에서 탑시드를 배정받지 못하면서,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월드컵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평가와 함께 외면받는 팀이 되었다.
축구의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잉글랜드에게 그런 대우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선을 바꾸려면 결과를 내는 방법이 최선이었고, 그렇기에 아르헨티나에서 가진 두 번의 평가전이 중요했다.
언론에 의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이용해 팀을 하나로 만든 산체스 감독은 평가전 첫 상대인 한국에게 그 분노를 다 풀어낼 것을 주문했다.
아시아의 강국으로 1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영광을 얻은 한국대표팀이지만 악에 찬 잉글랜드의 폭격을 막는 것은 무리였다.
4:1의 승리로 평가전 첫 번째 경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축구 변방인 아시아 국가를 이긴 것으로 평가 절하를 당했다.
다음 평가전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도 3:1로 승리를 거두었지만 주전 수비수인 루튼과 카울의 노쇠화와 함께 새로 합류한 선수 간의 호흡이 문제라는 평가가 많았다.
더욱이 강팀이라면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평가전에 들어서부터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린 만큼 조별리그를 통과하더라도 토너먼트에서 힘을 쓰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산체스 감독은 일방적으로 언론에게 마사지를 당하는 선수들을 다독이는 한편, 조별리그부터 잉글랜드의 힘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산체스 감독의 생각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부터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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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첫 번째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이곳 에스타디오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는 아르헨티나의 우승 주역인 마리오 켐페스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어진 경기장이죠. 아르헨티나의 더티플레이로 최악의 월드컵이라 기억되는 월드컵이긴 하지만 발렌시아에서 보낸 선수 시절과 월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은 왜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온도는 11도 정도로 약간 쌀쌀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경기하기는 좋은 환경입니다.”
“확실히 아르헨티나가 건기로 접어든 만큼 쌀쌀하긴 하지만 선수들이 뛰기에는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죠. 이미 두 번의 평가전을 가진 만큼 선수들이 경기장 환경에 적응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 대표팀에 보여준 태도는 앞으로도 문제가 되겠죠.”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악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두 팀은 치열하게 맞붙었고 아르헨티나의 주장이 어이없이 퇴장을 당하며 잉글랜드의 1:0 승리로 끝이 났다.
그 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1982년 포클랜드 전쟁으로 더욱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1986년 그 유명한 신의 손 사건으로 인해 더욱 험악해졌다.
그 후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전쟁처럼 축구 시합을 가졌고, 경기뿐만 아니라 훈련을 위한 경기장 배정에도 장난을 쳤다.
경기장 정비를 위해서라며 훈련 시간을 임의로 조정해 1시간 전에 통보한다든지 숙소 인근에 경비를 배치하지 않아 밤새 떠드는 소리 때문에 컨디션에 지장을 주는 일들이 발생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피파에 그런 아르헨티나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 고발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선수들은 집중을 해야겠죠. 오늘 잉글랜드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골키퍼는 제임스 케인, 수비 라인에 리스 콜, 심 루튼, 켈레치 카울, 루크 맥과이어, 미드필드 라인에 조던 힐, 메이슨 바질, 대니얼 매슈, 에드워드 브라운, 하인스, 최전방에 해리어 슈가 서겠습니다. 지난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과 선발라인업은 같습니다.”
“그렇죠. 전반전에 3골을 성공시킨 그 라인업입니다.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하인스 선수에게 프리롤을 주었거든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다운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이었는데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던 하인스 선수입니다. 다만 교체명단으로 잭 핸더스, 게리 잉스, 벤 포드 등 수비진 라인을 모두 준비시키고 있거든요. 지난 나이지리아전에서 수비 체력이 떨어지면서 실점을 했었는데 그 보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 때처럼 좋은 모습을 보이길 기대합니다. 잉글랜드의 선축으로 전반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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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밀어붙여.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아시아 출전국 중에서도 제일 못하는 팀이야. 방심만 하지 마.’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랜만에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했지만 약하다는 이미지는 벗기 힘들었다.
조별리그 전 가졌던 평가전에서도 독일에게 7:0으로 졌고, 크로아티아에게도 5:0으로 졌기에 방심만 하지 않으면 잉글랜드의 승리가 예측됐다.
‘사우디 선수들은 체격이 좋고 팔꿈치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절대 붙어서 플레이하려고 하지 마. 한 박자 빠른 패스로 수비를 뚫어.’
국가대표팀을 전문으로 지도했던 산체스 감독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부상 선수가 나오는 것을 가장 주의했고, 선수들에게도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런 산체스 감독의 작전은 양쪽 윙은 물론이고 중앙 미드필더까지 패스가 좋고 빠른 선수들로 선발라인업을 꾸려 사우디의 수비를 돌파해내는 것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해리어에게 패스를 받은 인수는 빠른 속도로 사우디 진영을 누비고 다녔다.
사우디의 수비들도 인수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알았기에 태클을 자주 시도했지만 사우디 선수의 태클보다 먼저 패스를 했다.
좌에서 우로, 다시 우에서 좌로 사우디의 수비진을 흔드는 동시에 점차 문전으로 압박해 나가자 자연스럽게 문전에 선수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인수와 에디가 좁은 공간에서 패스를 주고받자 수비가 한쪽으로 쏠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인수는 반대편으로 가볍게 밀어주었다.
뒤에서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매슈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은 곳으로 밀어 넣으며 잉글랜드 첫 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경기 시작 불과 3분 만에 터진 골은 다시 5분 후 인수의 중거리 슛까지 이어졌다.
초반 이른 시간에 실점을 한 사우디 선수들이 악에 받쳐 잉글랜드 선수들을 압박했지만 산체스 감독의 주문대로 한발 빠른 패스는 위험한 플레이를 방지했고, 그럼에도 무리한 수비는 주심의 휘슬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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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15분이 막 지나고 있는데 벌써 8번째 반칙을 범하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반칙 개수만 보면 거칠게 나오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만.”
“산체스 감독이 경기 시작 전에 가졌던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거친 플레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공을 오래 끌지 않고 바로바로 패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목을 끊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니 거칠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을 가지지 않은 선수에게 거친 반칙을 한다면 엘로우카드로 이어질 수 있기에 거칠어 보이면서도 그리 위협적인 반칙은 범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위치는 바로 슈팅으로 이어갈 수 있는 위치로 보이는데요.”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프리키커가 상당히 많죠. 소튼에서 프리킥을 전담하며 많은 골을 넣었던 하인스 선수도 있고, 아스널에서도 프리킥골을 상당히 많이 넣었던 해리스 슈도 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드이긴 하지만 소속팀인 에버튼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킨 적 있는 메이슨 바질 선수와 웨스트햄의 대니얼 매슈도 프리킥을 찰 능력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그래도 가장 믿음직한 선수라면 하인스 선수와 해리스 선수일 텐데요.”
“해리스 선수가 문전으로 다가가네요. 아무래도 코너킥을 찼던 하인스 선수가 프리킥을 찰 생각인 거 같습니다.”
“소속팀에서도 저 위치에서 3골이나 터트린 적이 있는 하인스 선수입니다. 주심이 수비벽이 준비된 것을 보고 휘슬을 입에 물었습니다. 주심의 휘슬을 들은 하인스 선수 잔걸음으로 다가가 크게 발을 휘두릅니다. 수비벽을 통과한 공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그대로 골대로 들어갑니다! 공이 순식간에 수비벽을 통과했습니다.”
“아, 수비벽 사이에 브라운 선수가 있었군요. 브라운 선수가 점프를 해 공이 통과할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골키퍼가 반응을 했지만 워낙 빠르고 강한 공이었기에 손에 맞히긴 했지만 튕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렸습니다.”
“소튼에서도 콤비로 활약했던 하인스 선수와 브라운 선수인데요. 이번에도 한 골을 만들어내는군요.”
“다시 보시면 브라운 선수가 점프를 뛰는 타이밍이 예술이었습니다. 브라운 선수가 뛰니 옆에 있던 사우디 선수들도 덩달아 점프를 했거든요. 정확히 어디를 통과했는지 알 수 없지만 브라운 선수도 이 골에 대해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거 같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골을 확인한 브라운 선수. 제일 먼저 하인스 선수에게 뛰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네요. 자신의 덕분이라는 거죠. 전반 15분 만에 3골을 터트리는 잉글랜드 대표팀입니다.”
전반 15분 만에 3골을 만들어 낸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후반 종료 휘슬이 불리기 전까지 5골을 더 만들어내며 8:0으로 승리했다.
특히 첫 월드컵 출전에 해트트릭을 만들어 낸 인수의 활약과 1골 2어시를 한 에디의 활약은 너무 어린 나이에 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언론들의 말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번 월드컵이 끝나고 이적이 예상된 두 선수이기에 그들의 몸값을 높이는 기회이기도 했다.
잉글랜드 외의 언론에서는 아시아의 약팀을 상대로 만들어 낸 결과라고 폄하했다.
그러면서 잉글랜드 전 경기였던 포르투갈과 세네갈의 경기가 2:2 무승부였던 점을 강조하면서 잉글랜드 다음 상대인 세네갈에게 패배할 경우 조별리그 탈락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잉글랜드가 첫 경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남은 일정에서 여유가 생긴 것만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