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그래서 넌 어디와 협상 중이야?”
시즌 일정이 모두 끝나고 아직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지 않았지만 이적이 확실시되는 선수들에 대한 물밑협상은 에이전시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 랭커리지에게 못 들었어? 스페인 쪽하고 협상 중이라던데. 프랑스도 있고, 이탈리아도 있고.”
인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구체적인 제안도 들어오고 있는 거지?”
“응. 너도 그렇지 않아?”
인수의 물음에 에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에서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꽤 구체적인 이적금하고 주급까지 알려주던데.”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
에디는 인수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부모님은 뭐라시는데?”
인수의 엄마인 제니퍼도 그렇지만 에디의 부모님도 소튼의 열정적인 서포터였다.
제니퍼와 마찬가지로 에디가 소튼에 들어가고 좀 조용히 지내시긴 했지만 포츠머스 팬들에게는 식당 출입도 금지시킬 정도였다.
“아무 말도. 그냥 나보고 알아서 하래. 랭커리지도 나한테 알아서 하라고 하고. 웨인도 그래.”
모두가 다 이적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에디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넌 확실히 마음 정한 거지?”
“응. 이미 랭커리지하고 이야기는 다 끝났어. 월드컵이 끝나고 시즌 시작하기 전에 이적할 팀을 확정하기로 했어. 월드컵 전까지 모든 협상은 랭커리지가 맡기로 했고.”
인수는 랭커리지에게 협상을 맡기며 세 가지만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첫째. 프리미어리그의 팀이 아닐 것.
둘째. 자신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
셋째. 우승할 수 있는 팀.
세 가지의 전제조건과 함께 소튼에 이적료를 최대한 남겨주는 것까지 고려했다.
랭커리지는 인수의 이적에 소튼에서 한 시즌 더 뛰는 것까지 고려하면서 유럽 각 구단과 협상을 진행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인수와 다르게 에디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주변에도 조언을 구했지만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뛰고자 하는 팀에서 적응하는 것이라며 어정쩡한 마음으로 이적하지 말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소튼에서의 자신의 위치나 주급은 불만이 없었다.
랄라나 감독 부임 이후 확실하게 한쪽 윙의 주전을 맡고 있었고 4만 파운드 가까운 주급을 받고 있었다.
팀 내 연봉순위로도 10위안에 드는 수준이었고 유스 때부터 친했던 이들과 같이 뛰는 것도 마음이 편했다.
분데스리가의 라이프치히에서 제시한 조건을 수락한다면 2배에 가까운 주급 인상과 함께 부수적인 조건들도 많았지만 딱히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모니터 뚫고 들어가겠다. 뭔데 그리 가까이에서 하고 있어.”
에디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인수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자 침대에서 일어나 인수의 어깨를 쳤다.
“잠시 있어 봐. 지금 이 녀석한테 5연패 중이란 말이야. 분명 프로기사는 아닌데 엄청나게 잘 둔단 말이야.”
시즌 중에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프로기사와 바둑을 두었기에 그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두는 상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도저히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생인가?”
“연구생? 그게 뭔데?”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학생. 10살도 안 되는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130명 정도가 있다고 들었거든. 아마 2조 내 아이인 거 같은데. 3조 아이까지는 이긴 적이 있으니까.”
상대의 실수로 이기긴 했지만 에디에게 연구생을 이겼다는 것을 자랑거리 삼아 이야기했다.
연구생 중에는 학업도 포기하고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하루 종일 바둑만 연구하는 아이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연구생에게 상대의 실수라지만 한 판을 이겼다는 것은 평생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한 인수였다.
“와, 그런 애들이 130명이나 된다고? 그쪽도 치열하구나.”
“엄청나지. 처음엔 연구생이면 프로도 아니니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래. 그런 애들은 포기하고 이제 짐이나 싸. 내일은 세인트 조지파크로 이동해야 한다고. 또 지옥 같은 SAS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아, 그 말 들으니 가기 싫어졌어. 또 거길 가야 하다니.”
“너야 이제 두 번째지만 난 세 번째라고.”
“세 번째니까 적응이 됐을 거 아냐.”
“네가 봤을 때 적응이 됐을 거 같아? 거기 있던 군인이 그러더라.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러니까 짐이나 싸.”
***
월드컵 대표팀이 발표되고 영국언론에서는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그동안 오래 정체되었던 선수층의 노령화를 걱정하던 언론에서는 ‘젊은 팀으로 거듭난 삼사자의 부활을 기대한다’라고 기사를 냈다.
반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언론에서는 월드컵 지역예선 1차전에 뛰었던 26명의 선수 중 40퍼센트만 살아남은 명단에 선수 간의 호흡과 증명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정도로 203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승선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명단은 파격적이었다.
더욱이 2036년 유로에서 예선탈락을 하며 피파랭킹 하락으로 본선 탑시드를 배정받지 못해 포르투갈과 사우디아라비아, 세네갈과 함께 F조에 배정받았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같은 전통적인 강호는 아니지만 대표팀에서 만날 때마다 잉글랜드를 괴롭혔던 포르투갈과 함께 조별리그를 펼친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더욱이 예측할 수 없는 전력을 가진 아프리카팀과 중동의 팀이 배치됨에 따라 잉글랜드의 조별리그 탈락 가능성을 예측하는 언론도 있었다.
물론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2012년 카펠로 감독 이후 26년 만에 비 잉글랜드 출신인 디오고 산체스 감독을 선임했다.
비선수 출신으로 클럽팀 감독 경험 없이 러시아와 헝가리, 포르투갈, 프랑스 등 국가대표팀 감독만을 맡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이니만큼 보수적인 잉글랜드 사회에서 크게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맡았던 대표팀마다 이룬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
“월드컵이 이제 3주 남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3주 동안 하나의 팀이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잉글랜드는 개개인이 모두 슈퍼스타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이런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산체스 감독은 대표팀 선발 이후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 간의 화합을 7번이나 강조해서 말할 만큼 팀을 하나로 묶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월드컵 같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대회에서는 작은 실수가 탈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 선수 간의 호흡이라 생각했다.
“선수들 간의 유대와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선발된 선수들의 경우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뽑혔습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셨는지요?”
“새로운 얼굴이라고 하지만 모두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들입니다. 과거의 명성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폼이 가장 좋은 선수들을 선발했습니다.”
“월드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감독으로 선임되셨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유럽 지역예선 1차전에서 약체와 무승부를 거둔 후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급하게 새로운 감독인 산체스를 선임했다.
이번 월드컵뿐만 아니라 다음 2040 유로 대회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긴다는 계획이었다.
“당장 이번 월드컵에서 큰 성과를 낸다고 장담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유로 대회에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이번 월드컵 지역예선에도 좋은 성적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드 벨링엄을 직접 설득해서 대표팀에 합류시킨 이야기는 이미 유명합니다. 벨링엄을 선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살에 대표팀에 승선해 80경기 넘게 활약을 해준 선수입니다. 부상으로 이번 시즌 활약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팀의 화합을 위해 이번 월드컵에 합류하기로 결정해준 벨링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다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주드 벨링엄은 레쉬포드 등과 함께 다시 한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을 올려놓았다.
리즈 유나이티드가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후 우승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히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고 있는 이유가 주드 벨링엄이라고 할 만큼 클럽의 정신적 지주로, 필드뿐만 아니라 라커룸에서도 팀에 대한 지배력이 높았다.
스타 선수들이 많은 잉글랜드 대표팀이기에 팀을 지배할 수 있는 선수로 벨링엄을 뽑은 산체스 감독이었다.
“소튼의 18살 콤비가 대표팀에 선발되었습니다. 특히 벨링엄 선수와 포지션이 겹치는 하인스 선수인데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입니까?”
“이번 시즌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하인스 선수와 브라운 선수입니다. 특히 하인스 선수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한 만큼 공격에 대한 재능은 누구도 의심하지 못하는 선수입니다. 하인스 선수에게 가려있긴 하지만 브라운 선수 역시 이번 시즌 어시스트 2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윙어입니다. 차세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이 아니라,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중요한 키로 생각하고 선발했습니다.”
“그럼 하인스 선수와 브라운 선수를 주전으로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구체적인 주전 명단은 자체 연습경기와 평가전을 거치고 난 후에 발표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산체스 감독은 기자회견의 시간이 길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선수들이 입소를 하게 되면 바로 SAS의 훈련장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3주밖에 남지 않은 월드컵이었기에 4박 5일의 극기훈련을 마치고 난 뒤 바로 아르헨티나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 후 한국과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가진 후 조별리그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가 있었다.
3주 만에 팀을 정비해야 했기에 부담은 컸지만 자신이 꾸린 코치진은 그런 면에서는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특히 이번 극기훈련을 맡은 SAS에 선수들을 다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으로 굴려달라고 부탁했으니 그 결과가 기대됐다.
사람이란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자신의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었고 그 과정에서 팀의 리더가 나온다고 믿었기에 이미 몇 번의 대표팀 감독을 하며 팀의 리더를 뽑은 방식이기도 했다.
물론 잉글랜드의 경우 자신이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SAS을 통하여 극기훈련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직접 제안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4박 5일의 SAS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세인트 조지파크로 모였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포지션에 맞게 선수들은 자체적으로 리더를 정했고, 그 리더들은 주장인 케인 아래 하나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연습경기를 통해 팀을 완성해 나가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