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안필드에는 벌써부터 목이 쉰 팬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응원의 열기가 높습니다.”
“리버풀이 이번 경기를 이긴다면 다른 경기장을 신경 쓰지 않아도 우승을 확정 짓게 됩니다. 지난 2019-20시즌 이후로 항상 우승 후보라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다시 한번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방금도 보셨다시피 소튼의 감독인 아담 랄라나가 필드에 들어오자 얀필드의 팬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19-20시즌에 전천후 서브자원으로 뛰며 클롭 감독이 팀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선수죠. 그에 대한 예우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리버풀뿐만 아니라 소튼에게도 이번 경기에 걸린 기록이 참 많이 있죠?”
“그렇습니다. 전반기 61골을 몰아넣으며 프리미어리그 전반기 최다 골을 기록한 소튼이지만 후반기에는 그 정도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115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 시즌 최다 골은 아니어도 소튼 역대 최다 골인데, 바로 시티가 114골을 기록하고 있죠. 양팀의 득점 대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한 시즌 최다 골을 기록하고 있는 하인스 선수가 37라운드에서 32호 골을 기록하며 20개 팀으로 개편 후 최다 골에 타이기록을 세웠는데 과연 22개 팀이었던 시기의 기록인 34골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그 외의 기록이라면 하인스 선수와 브라운 선수가 시즌 15개의 골을 합작해서 단일 시즌 최다 합작 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을 더 늘릴 수 있을지도 관건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을 수는 없죠. 반대로 시즌 82골을 내주며 20개 구단 재편 후 압도적으로 실점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 기록이 얼마나 늘어날지도 궁금하죠.”
“실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이처럼 롤러코스터 같은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튼입니다. 지난 5라운드였죠. 카디프와의 홈경기에서 7:0으로 승리하던가 싶더니 6라운드 리즈와의 경기에서 8:3으로 졌죠. 그만큼 많이 득점을 하고 실점을 한 소튼이기에 시즌 마지막 경기인 리버풀과의 결과가 궁금합니다. 전반기에 있었던 양 팀의 경기는 리버풀이 6:3으로 이긴 바 있습니다. 리버풀 이번 시즌 최다 득점 경기가 바로 소튼과의 경기였죠.”
“아무튼 많은 것이 걸린 이번 경기입니다. 소튼의 라인업을 보면 1라운드에 나왔던 선수들이 그대로 선발로 나왔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한 시즌을 치르며 이 정도로 선수 관리를 잘한 팀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요.”
“그렇죠. 많은 경기를 뛰는 프리미어리그이다 보니 부상 선수는 항상 생기는 법이죠. 공격적이고 체력 소모가 많은 축구를 하면서도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잘했다고 봐야죠. 랄라나 감독이 감독 데뷔 시즌임에도 왜 자신이 유능한 감독인지를 보여줬지 않았나 싶습니다.”
“먼저 소튼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골키퍼는 볼. 이번 시즌 정말 고생이 많았죠. 실점도 많았지만 팀 전술 때문에 개인기록이 손해 본 볼 골키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즌 최다 선방을 해내며 자신이 왜 프리미어리그의 최연소 골키퍼인지를 증명했습니다. 상대하는 리버풀의 골키퍼이자 잉글랜드 주전 골키퍼인 제임스 케인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을 정도죠. 소튼의 주장과 부주장을 맡고 있는 파바르와 비크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비크의 은퇴 경기죠. 윙백에는 딕시 다이어와 톰 아자르가 선발로 나옵니다. 다이어 선수의 수비에 물음표가 생기긴 하지만 공격력만은 확실한 다이어거든요. 반면 아자르는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하며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드에 제리 톰슨, 한스 바우만, 하인스, 브라운, 후퍼가 선발로 출전합니다. 말이 필요 없는, 이번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미드필더진이죠. 그리고 최전방에는 시즌 14호 골을 기록하고 있는 코룸입니다.”
“이번 시즌 소튼의 공격진은 정말 무섭습니다. 물론 하인스 선수가 중심에서 잘해주고 있긴 하지만 하인스 선수가 체력문제로 로테이션을 돌고 있을 때도 부활한 아사모아가 그 역할을 했거든요. 전성기 때 아사모아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소튼으로 이적한 후 아사모아는 자신이 해결하기보다는 어시스트를 하고 있죠. 시즌 골이 5골인 데 비해 어시스트가 12개라는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러버풀의 골키퍼는 잉글랜드 넘버 원인 제임스 케인이 섭니다. 전반기 소튼이 리버풀에게 패배했는데 혹자는 소튼이 케인에게 패했다는 말을 했을 만큼, 그 경기에서 3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9개의 선방을 보여주며 팀을 구해냈습니다. 그 앞에는······.”
***
“좀 천천히 하자고.”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같이 금메달을 목에 건 케인이 인수에게 다가왔다.
그 후에도 잉글랜드 대표팀과 경기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지난 경기에서 그렇게 막아놓고요? 그것들 중에 2개만 들어갔어도 한 시즌 최다 골은 이미 기록했을 건데.”
“너무 욕심내지 마. 아직 18살이잖아.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기록을 달성하면 허탈해지는 법이라고.”
“그래도 해보고는 싶어요. 이번 경기에서 전반기에 당했던 패배를 갚아주고요.”
“와.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길 건데. 안 그래?”
케인이 주변 리버풀 선수들의 동의를 구하자 리버풀 선수들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벌써부터 우승 분위기 내면 어쩌려구요. 오늘 지면 우승하기 힘들 텐데.”
“해봐야 알겠지. 오늘도 힘내서 져달라고.”
주심과 부심들이 필드로 나가려고 준비하자 케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프리미어리그 10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리는 시즌 마지막 경기는 소튼의 선축이 결정됐고 리버풀의 선수들은 시작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소튼은 경기 시작 후 전반 5분 이내에 골을 터트린 시합만 12경기일 정도로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기록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제라드도 리버풀의 선수들에게 초반부터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밀어. 공이 없더라도 밀어붙여.”
바우만에게 공을 넘겨받은 인수는 발뒤꿈치를 이용해 수비수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경기가 계속되며 인수의 플레이스타일이 이미 파악됐기에 리버풀도 바로 다음 수비수가 인수에게 붙었고, 패스할 공간을 찾았지만 에디와 후퍼, 코룸 모두 대인마크가 붙어 있었다.
뒷공간이 넓었다면 에디에게 경쟁이라도 시켜보겠지만 그 정도의 공간이 없었기에 인수는 뒤로 패스했다.
전반기보다 늘어난 백패스였지만 무리하게 전방패스만을 고집하다 패스가 끊긴 경험이 많았기에 안전하게 뒤로 돌리는 패스가 많아진 소튼이었다.
그렇다고 소튼의 백패스가 모든 것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인수의 패스를 받은 바우만이 다시 톰슨에게 넘긴 공을 리버풀의 최전방 공격수인 샬리가 가로챘다.
“막아.”
순식간에 공수가 뒤바뀐 상황.
이미 오버래핑하여 리버풀 진영 깊숙이 들어갔던 아자르와 다이어가 빠르게 복귀해보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2:1 패스로 수비를 돌파한 샬리가 빠르게 슈팅을 가져갔다.
이른 초반부터 실점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소튼에게는 마지막 보루인 볼이 있었다.
코너 구석으로 낮게 날아가는 공을 기어코 건드렸고 골라인 아웃을 만들어냈다.
“아자!”
리버풀의 슛을 막아낸 볼은 주먹을 높이 들며 소리를 질렀다.
“잘했어, 임마.”
마지막 은퇴 경기를 지고 싶지 않았던 비크는 골을 먹었다는 느낌에 눈을 감고 있다 볼이 소리를 지르자 곧바로 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어지는 코너킥에서도 펀칭으로 클리어해냈고 서로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시티의 선제골이 터졌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안필드의 응원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지난 18-19시즌 시티에게 단 1점 차의 승점으로 준우승에 머물렀던 기억이 역력한 팬들이었다.
곧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카디프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렸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제는 이기지 못하면 3등으로 밀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안필드를 감쌌다.
치열한 공방전의 첫 번째 마침표는 리버풀의 에이스인 샬리의 발에서 나왔다.
플립플랩으로 다이어를 제치고 만들어낸 슛찬스를 놓치지 않고 골로 만들어냈다.
“뭐해? 다시 가면 돼!”
인수는 골대까지 들어가 공을 가지고 나오며 주변을 독려했다.
아직 전반도 끝나지 않는 시간 만회할 시간은 충분했다.
리버풀도 소튼을 상대로 1점을 넣고 지키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수비를 강화하지 못했고 전반 추가시간 소튼에게도 기회가 왔다.
톰슨의 패스를 받은 인수가 자신을 둘러싼 세 명의 수비수를 뚫어내자 골대가 보였지만 수비의 반칙으로 프리킥을 얻어냈다.
심판에 따라 슛찬스에서 범한 반칙이었기에 엘로우카드가 나올 수 있었지만 주심은 반칙만을 선언했고, 소튼 선수들의 항의에 잠시 경기가 멈추는 소동이 있었다.
골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친 23미터 거리.
프리킥으로만 시즌 8골을 뽑아낸 인수가 프리킥을 찼고 수비벽을 절묘하게 넘어간 공은 케인이 움직이지도 못할 각도로 골대를 통과했다.
1:0으로 스코어로 전반을 종료하고 싶었던 리버풀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동점골이었고 경기를 시청하는 축구팬들에게는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소튼의 동점골이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양 팀은 약속이나 한 듯 수비형 미드필드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드로 교체했다.
후반 20분이 지날 무렵 톰슨 대신 들어온 아사모아의 결정적인 패스미스가 나왔고 리버풀은 다시 한번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했다.
수비 2명 대 공격 3명의 상황에서 전반 초반 같은 볼의 슈퍼플레이가 나오기만을 빌었지만 소튼의 기대를 저버리고 샬리는 자신의 시즌 20번째 골을 뽑아냈다.
안필드는 샬리의 골이 터지자 이겼다는 듯 더욱 소리 높여 응원가를 불렀다.
다른 구장에서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앞서가고 있었지만 이번 경기를 이기면 다른 구장의 경기와는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소튼은 끝까지 쉽게 우승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 끝까지 리버풀을 몰아붙였다.
후반 전광판의 시계가 44분을 넘어가고 있을 무렵 인수가 에디의 앞 빈 공간으로 절묘한 스루패스를 보냈다.
에디가 쫓아가 공을 잡아냈고 바로 크로스를 올린 공을 코룸이 헤더를 통해 골로 만들어내자 얀필드에 큰 탄성과 함께 온갖 욕이 쏟아져 나왔다가 잠시 후 환호로 바뀌었다.
인수가 패스했을 때 에디가 수비수보다 신발 하나가 앞서있었고, VAR을 확인한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추가시간이 3분이나 주어졌지만 리버풀은 끝까지 쫓아 붙는 소튼 선수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
얀필드에 꽃가루와 함께 폭죽이 터졌고 그 광경을 보는 인수는 이를 악물었다.
33골이나 넣으면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되긴 했지만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자축하는 선수들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과 같이 금메달이 땄을 때도 울지 않았던 케인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자.”
멍하니 서서 우승을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는 인수를 에디가 잡아끌었지만 인수는 버티고 섰다.
“우승하면 어떤 느낌일까?”
“응?”
“팬들도 모두 울고 선수들도 울고 있잖아. 기쁨의 눈물이겠지만 진짜 우승하면 저렇게까지 울 수 있을까?”
여느 때와는 달리 인수의 진지한 모습에 에디 역시 멍하니 서서 리버풀의 선수들과 팬들을 보다 자신들을 이끄는 랄라나 감독의 손에 라커룸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