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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74화 (74/200)

74화

박싱데이가 끝나고 가진 인수의 인터뷰는 즉시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까지 실시간 속보로 전해졌다.

박싱데이 다음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랭커리지의 에이전시는 모든 직원이 출근해야 할 정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이번 시즌은 소튼에 집중하고 싶다는 선수의 뜻입니다. 네. 네. 그렇습니다. 지금 오셔도 랭커리지 씨는 만나기 힘드세요. 네. 그럼 나중에 다시 약속을 잡아주세요.”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은 없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은 그때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폴, 폴같이 노련한 기자들도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죠. 워딩은 워딩 그대로 봐줘요.”

“랭커리지 씨는 자리에 안 계시다니까요.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오랜만에 가족 모임 가셨어요. 네. 그럼요. 제가 왜 릴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다른 소식 있으면 또 릴에게 가장 먼저 연락할게요. 그럼요. 그럼 일요일에는 좀 쉬어요. 릴.”

“우리 고객님께서 도르트문트의 생활에 불만이 많더라고요. 분명 계약서에 출전 보장 시간이 명시되어 있는데 무시한 건 도르트문트잖아요. 당연히 고객님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미 메디컬 체크도 다시 해서 부상이 다 나았다는 판정도 받았잖아요. 그럼요. 고객님께서 아직 도르트문트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감독님께 잘 말씀드려주세요. 네. 네. 하인스요? 물론 우리 에이전시 소속이긴 하지만 대표님께서 직접 맡고 있어서요. 뭐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랭커리지는 대표실의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를 다 열어두고 바쁘게 통화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았다.

어제 현장에 있던 직원의 전화를 받고 보너스를 주기로 하고 직원들을 출근시킨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자신의 3개의 핸드폰은 번갈아 가며 각 구단과 기자들에게 연락이 오고 있었지만 무음으로 돌려놓은 채 자신이 직접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선수들 전화 외에는 모두 거절하는 중이었다.

“대표님, 너무 한가하신 거 아닌가요.”

“내가 가장 믿고 있는 직원들이 휴일에도 모두 나와 애써주고 있는데 나도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지.”

“머리만 굴리지 말고 직접 기자들과 통화하면 직원들이 좀 쉴 수 있을 텐데요.”

띠리리리. 띠리리리.

랭커리지가 비서와 대화하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입 놀고 있는 사람 전화 좀 돌려서 받아. 시끄러워서 통화를 못 하겠잖아.”

에이전시의 수석 에이전트가 중요한 통화였는지 수화기부분을 막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 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그럼 전화기라도 좀 조용히 시키라고.”

랭커리지의 비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나서서 정리해주면 좀 조용할 듯싶은데요.”

대형 선수들의 이적 때마다 벌어지는 광경이었지만 랭커러지는 결코 빠르게 정리하지 않았다.

빠르게는 일주일, 심한 경우 이적 기간 마지막 날까지 입을 닫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네라도 가서 전화를 받으면 좀 조용해질 텐데 말이야.”

“제가요? 대표님은 제 입을 믿으시나 봐요. 다들 절대 전화 못 받게 하던데.”

랭커리지는 그 말에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손을 흔들어 비서의 발길을 멈췄다.

비서로서 정말 유능했다.

스케쥴 조정은 물론이고 자신이 지시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서 해내는 능력, 직원들의 경조사는 물론이고 선수들의 경조사까지 모두 머리에 담고 있을 만큼 똑똑한 머리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입이 문제였다.

“자네의 입이 머리를 거쳐서 나왔다면 적어도 연봉이 만 파운드는 올라갔을 텐데 말이야.”

“저도 그게 항상 아쉽죠. 하여튼 빨리 결론 내줘야 해요.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할 선수들만 해도 5명이 넘어요. 거기에 각 클럽과의 협의를 다 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잘 알죠?”

랭커리지는 비서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5명의 선수에 대한 이적 협의를 하는 데만도 엄청난 인원이 소모되었다. 거기에 이적할 클럽을 선정하는 일, 서류처리와 비자 문제, 선수들이 이적해서 지낼 곳, 그리고 그 선수들이 클럽에 적응하는 데 도와주는 일까지 에이전시의 일은 그만큼 복잡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다음 주에 이적시장이 열리면 바로 스페인으로 갈 테니 준비해줘.”

“알겠어요.”

***

“휴. 박싱데이가 토요일이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랄라나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한 탭을 넘기며 중얼거렸다.

전반기 동안 로테이션으로 휴식을 주었다고 하지만 주전 선수들의 피로를 다 막지는 못했다.

경기 중에는 아드레날린의 분비로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꽤 됐다.

작은 부상의 경우 모르고 뛰었다가 경기가 끝난 후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랄라나는 체력코치 이외에도 선수의 몸 상태만 따로 체크하는 코치와 정신상담사를 두고 있었다.

“코룸은 적어도 2주간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즌 당했던 허벅지부상이 다시 신호를 주고 있어요.”

“다른 선수는?”

“큰 이상이 있는 선수는 없어요. 다만 힐턴이 레딩에서 두고 온 여자친구 걱정을 많이 하더군요.”

소튼 같은 젊은 팀에서는 여자 문제가 클럽의 화제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인수와 레이의 경우도 그렇고. 지난 시즌 레딩에서 뛰다 복귀한 힐턴도 레딩에 있는 여자친구와 싸웠다는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 휴가를 줬잖아.”

“누가 청혼하라고 해서 청혼했는데 학업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하더군요.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집중은 하지 못하고 있어요.”

랄라나는 이야기를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 자신의 경우를 생각하고 조언했는데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난 승낙 받았단 말이야. 빨리 결혼해서 안정을 찾으라는 말이었는데.”

“그래도 헤어진 것은 아니니 큰 타격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문제는 저한테 맡기고 감독 일에만 충실했으면 하네요.”

랄라나는 뼈있는 조언에 고개를 숙였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임대 갈 선수들 명단은?”

2군 선수들이 1군에 자주 올라와 경기를 뛰다 보니 2군 선수들에 대한 임대 문의가 줄을 이었다.

특히 공격 전반에 참여하며 중앙미드필드, 양 윙까지 소화하는 프럼의 대한 문의가 가장 많았다.

인수와 에디의 이적이 거의 확실한 만큼 랄라나가 생각하는 대체자로서 생각하는 카드였다.

겨울 이적기간에 임대를 가서 경험이 더 쌓이면 다음 시즌 윙어와 중앙미드필드로 사용하려는 생각이었다.

“프럼은 세비야와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세비야에 윙어가 갑자기 이적을 선언했거든요. 대체 선수도 부상으로 이번 시즌아웃이 되어 있구요.”

“레딩에서도 중앙수비수 자원인 크롬웰을 원하고 있습니다. 임대 후 완전이적의 옵션까지 원하고 있습니다.”

레딩까지의 거리가 가깝지도 멀지 않기도 했고 챔피언쉽에서 쉽게 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에 소튼과 레딩과의 사이는 좋은 편에 속했다.

지금 1군에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도 레딩으로 임대가 뛰었던 선수들도 몇 명 있었다.

“완전이적 옵션은 빼고 보내주세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비크가 은퇴하는데 중앙수비수 자원인 크롬웰을 이적시킬 수는 없죠. 보드진에서도 크롬웰과 재계약할 수 있도록 해주시구요.”

소튼에서 주장을 했던 경험도 있었고 코치부터 시작해서 감독까지 소튼에서만 보냈던 랄라나는 보드진과도 자주 회의를 하며 선수를 관리하고 있었다.

클럽 보드진을 어려워했던 케러거와 비교하면 현장과 소통이 잘 되고 있었기에 보드진에서도 크게 만족했다.

“그럼 전반기처럼 후반기도 힘내죠.”

***

토트넘과의 홈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소튼의 후반기는 전반기와 같이 도깨비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하위였던 번리에게 다시 한번 4:3으로 패했고 19위인 카디프에게도 3:1로 패했다.

그러나 소튼과의 경기 전에 1위였던 시티를 4:2로 제압했고, 아스널도 5:1로 잡아내며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순위표를 뒤집어 놓는 팀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중위권을 유지하며 팬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만은 충실히 이행했다.

인수도 잉글랜드 대표팀의 친선전에 다녀오고 하는 중 5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프리미어리그도 최종전만 남겨놓고 있었다.

소튼의 최종전 상대는 랄라나 감독이 전성기를 보냈던 리버풀이었다.

후반기 순위표를 뒤집어 놓은 소튼 덕에 리버풀도 최종전을 승리하면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만약 비긴다면 다른 팀의 결과를 지켜봐야 했고 진다면 3위까지 내려갈 수도 있는 경기였다.

아직 4월의 이달의 선수가 발표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인수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기에 마지막 리버풀전을 잘 치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중간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리버풀과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의 에이스들이 인수의 발목을 잡았고 3번째 이달의 선수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이번처럼 시즌 마지막까지 4월의 선수가 선정되지 않았을 때는 마지막 경기에서 큰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은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티까지 최종전의 결과에 따라 어느 팀이 가져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강등팀도 번리만이 강등을 확정 지었을 뿐, 카디프, 허더스필드타운, 울버햄튼, 리즈까지 최종전의 결과에 따라 두 팀이 결정될 예정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이 될 것이라 예상했고 각 방송사들도 적게는 두 개, 많게는 5개의 경기장 화면을 번갈아 중계할 예정이었다.

그런 리그 양상 덕분인지 영국에서 가장 큰 도박사이트인 BET365의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고 벳페어, 피나클스포츠 등 각종 도박사이트가 한 경기 최대 배팅금액을 실시간으로 경신하는 중이었다.

그런 분위기였기에 최종전이 열리는 안필드는 경기 시작 전부터 모든 관중이 들어와 있었고 리버풀의 공식 응원가인 ‘유 윌 네버 워크 얼론’과 ‘알레 알레 알레’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 난간을 뒤덮은 플래카드에는 ‘다시 한번 우승을 선물해줘 고마워.’, ‘사랑해. 소튼. 그러니까 하인스를 줘.’, ‘리버풀에게 가장 사랑스런 소튼’ 같은 문구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소튼에서 가장 많이 이적한 프리미어리그 팀이 리버풀인 것과 17-18시즌을 비롯하여 리버풀이 우승했던 19-20시즌까지 소튼 출신 플레이어가 많았다.

지금 소튼의 감독인 랄라나를 비롯하여 체임벌린, 판데이크, 나다니엘 클레인, 사디오 마네, 데얀 로블렌까지 소튼이 리버풀에 퍼준 선수들로만 하나의 팀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리버풀의 팬덤인 콥들은 소튼을 리버풀의 유스풀로 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안필드의 분위기에 익숙했던 랄라나는 선수들을 모았다.

“자.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야. 끝까지 팬들을 실망시키지 말자. 재미있는 우리의 축구를 보여주자고.”

“옙.”

“당연하죠.”

“알겠습니다.”

랄라나의 말에 모두 대답은 달랐지만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자. 가자.”

랄라나는 선발로 뛰는 선수들이 대기 복도에 정렬하는 것을 보고 코치석으로 가기 위해 필드로 나왔다.

안필드에서 30년 만에 리버풀의 1부리그 우승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클럽월드컵에서까지 우승을 했었다.

그것을 잊지 않았는지 안필드에 모인 콥들은 적이었지만 랄라나에게 경의를 담아 박수를 보내주었고, 랄라나도 손을 들어 감사의 표시를 한 후 원정 코치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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