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를 지배하는 축구천재-72화 (72/200)

72화

“저 골키퍼 반사 속도가 장난 아니네요.”

전광판의 스코어는 3:1로 소튼이 앞서가고 있었지만 필드에서 가장 눈부시게 활약하는 선수는 FC서울의 골키퍼였다.

누구나 골이라고 생각했던 공을 막아 낸 것만 6개였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10개가 넘어가는 선방을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히 눈에 띄네. 올 시즌 이 팀이 최소실점을 하고 있다고 했지?”

“네. 공격력이 부족해서 선두는 아니지만 K리그에서는 최소실점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반사신경만 봐서는 키치아하고 동급이라고 평가해도 되겠어.”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반사신경 하나만은 20대라고 해도 믿겠군요.”

코치가 패드를 넘기며 자료를 찾아보는 모습을 보며 랄라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그 골키퍼에 대한 내용을 머리에서 지웠다.

골키퍼가 아닌 필드플레이였다면 간단한 축구 용어로 플레이를 진행할 수 있겠지만 수비라인을 지휘해야 하는 골키퍼라면 의사소통은 반드시 필요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골키퍼나 반사신경이 뛰어난 골키퍼는 세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부족하여 정상에 자리에 서지 못하는 골키퍼도 많았고 더군다나 나이가 많다고 하면 더 큰 리그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었다.

“그나저나 하인스 컨디션이 미쳤는걸.”

랄라나는 인수의 움직임을 보며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바우만이 찔러주는 공을 보지도 않고 발뒤꿈치로 돌려 에디에게 어시스트를 한 것을 비롯해 세 선수 사이에서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틈을 만들어 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금도 두 선수를 앞에 두고 오버래핑한 다이어에게 공을 넘기고 180도를 턴하면서 페널티 지역으로 진입했다.

다이어가 받은 공을 바로 크로스로 올렸지만 이번에도 골키퍼가 문전을 비우고 나오면서 펀칭으로 클리어해냈다.

“저 골키퍼 37살이라며. 저 몸놀림이 37살의 몸놀림이야?”

다이어는 어제 받았던 분석지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빠른 타이밍에 가져간 크로스를 누구보다 먼저 반응하며 펀칭을 해냈고, 자신의 크로스가 막힌 것만 해도 3번째였다.

“37살 맞대. 다이어 네가 더 빠르게 올려야지.”

“아니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빠르게 올려.”

다이어는 후퍼의 말에 버럭 대답했다.

도슨과 경쟁하느라 자리를 늦게 잡은 자신과는 달리 후배인 후퍼는 코룸의 부상 덕에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랄라나가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센터포워드뿐만 아니라 윙어로 출전하면서 붙박이 주전으로 낙점 받은 후퍼였다.

더욱이 자신과 힐턴의 주전 경쟁은 유스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오버래핑에 있어서는 자신이 앞서지만 수비적인 안정성면에서는 힐턴이 앞섰기에 피 말리는 주전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하여튼 다음번에는 더 잘 올려줘.”

“다음에는 땅으로 깔아줘. 다이어.”

인수는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다이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손까지 쓸 수 있는 데다 점프력도 좋으니까 하이볼은 잘 막는 거 같은데 로우볼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고.”

“알았어.”

다이어는 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100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최고속도로 오버래핑하며 쏟는 체력이 부담되는 포지션이긴 했지만 체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는 다이어였다.

그런 자신감은 전반 후반까지 계속된 오버래핑으로 보여줬고 하이볼보다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로우볼로 크로스를 올리며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반을 마칠 수 있었다.

***

“프리미어리그의 벽이 느껴지는 한판이었습니다.”

소튼 대 FC서울의 친선경기가 7:2라는 스코어로 마무리되자 케스터는 굳게 움켜쥐었던 손을 폈다.

처음 경기가 잡혔을 때만 해도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과 단판 경기는 이길 수도 있을 거라는 분석도 있었고, 그래도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가 될 것이라 분석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허탈한 심정이었다.

“사우스햄튼의 빠른 공격패턴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한 탓이 컸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랄라나 감독이 리버풀 시절 클롭 감독 밑에서 중용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유명한 전술 중 하나인 게겐 플레싱을 잘 활용하여 리버풀을 정상의 자리로 올렸던 감독이 클롭 감독이거든요. 그 클롭 감독의 영향을 받아 수비적으로는 게겐 플레싱과 공격적으로는 스페인식 패싱축구를 혼합하는 전술을 사용하면서 빠른 축구를 구사했습니다. 아직 팀을 장악한 지 오래되지 않아 빈틈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프리시즌을 통해 완성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게겐 플레싱도 그렇고 패싱축구도 그렇고 체력 소모가 엄청난 전술들입니다.”

“랄라나 감독이 유스감독 때부터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우스햄튼의 선수구성만 봐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가장 젊은 팀입니다. 더욱이 팀의 중심인 파바르와 비크를 비롯해 30대 선수 5명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선수가 20대 초중반의 선수입니다. 20대 초중반의 선수들 대부분이 소튼 유스를 거치면서 아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구요. 거기에서 나오는 힘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해설자의 유스 사랑이 나오려는 차에 캐스터가 말을 자르라는 신호를 보였기에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이것으로 FC서울 대 사우스햄튼의 친선경기 중계를 마치겠습니다.”

***

FC서울과의 친선경기를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3개국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 소튼은 독일로 넘어가 헤르타 베를린과의 프리시즌을 가졌다.

랄라나가 원했던 선수를 얻지는 못했지만 인수 없이 톰슨과 바우만으로도 원했던 전술을 펼칠 수 있다고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프리시즌 유스 선수까지 모두 기용했던 만큼 레딩전까지 총 5경기에서 기용된 선수의 숫자만 45명에 이르렀다. 기량을 충분히 확인했으니 1군 경기는 무리더라도 2군 경기에 투입시켜 경기의 감을 익히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프리시즌에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난 셈이었다.

그렇게 2037-38시즌의 개막전이 열렸고 소튼의 첫 상대는 지난 시즌 2위를 기록하며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였다.

“어때요?”

인수는 올드 트래포드를 바라보는 레쉬포드에게 물었다.

은퇴를 선언한 레쉬포드는 부상이 완전히 회복한 후 소튼으로 돌아와 랄라나 밑에서 기술코치직을 수락했다.

부상에서 완전히 낫지 않아 프리시즌에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리그 첫 경기에는 참여할 수 있었고 그 상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모르겠네. 선수 땐 필드에서 뛰고 싶어 맨유를 떠났지만 코치는 꼭 여기서 하고 싶었거든.”

부상에서 다 나은 레쉬포드는 랄라나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먼저 구직을 의뢰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레쉬포드의 구직을 거절했고 레쉬포드는 마음을 추스른 후에 랄라나의 제의를 수락했다.

마음을 추스르며 맨체스터에 대한 감정을 모두 정리했다고 믿었는데 막상 올드 트래포드를 바라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 같은 팀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맨유는 적이 됐고요. 적은 이겨야죠.”

레쉬포드는 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브리핑룸으로 향했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한 맨유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더욱이 자신들과의 두 경기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던 소튼이 우승을 한 첼시에게는 모두 패배를 헌납했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시즌 반드시 다 이기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었다.

더욱이 그 경기가 중요한 개막전이었기에 양 팀 모두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었다.

인수를 중심으로 한 게겐 플래싱에 이은 패싱축구를 선언한 소튼과 슈퍼스타로 등극한 페르도를 중심으로 한 점유율 축구를 선언한 맨유의 경기는 전술에서부터 불꽃 튀는 접전이 펼쳐졌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확한 패스와 키핑이 필요했고 공을 빼앗겼을 때는 반드시 바로 되찾아오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소튼의 게겐 플레싱 역시 상대방에게 공을 빼앗기 위한 움직임이 기본이었던 만큼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의 충돌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주심은 과열된 경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휘슬을 불었다.

그렇게 계속된 휘슬에도 경기 분위기는 더욱 불타올랐고 전반이 끝나기 전 홈팀인 맨유의 선취골이 터지자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 분위기는 후반에도 계속 이어졌고 후반 초반 소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

인수는 톰슨이 맨유의 공을 뺏자마자 손을 들며 빈 공간에 침투했다.

톰슨이 패스한 공이 살짝 높긴 했지만 인수는 점프해서 발밑에 떨어뜨리고 이어진 동작에서 사이드를 돌파하는 에디에게 패스했다.

톰슨에서 이어진 패스는 단 두 번의 터치 만에 맨유의 골라인까지 이어졌고 에디는 바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에디의 크로스가 살짝 높긴 했지만 코룸은 머리에 공을 맞혀 뒤로 돌리는 데까지 성공했고, 그곳에 이미 침투하고 있던 인수가 발리로 공을 때려냈다.

첫 경기 선취점은 실패했지만 기분 좋은 동점골을 성공시킨 인수와 소튼은 경기의 속도를 더욱 올렸다.

젊은 선수들이 많았던 만큼 기세를 탄 소튼의 공격은 투박했지만 빨랐고 맨유의 수비진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공격에서도 단 세 번의 패스 만에 맨유의 골대를 위협했고 코룸의 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더 뛰어.”

역전에 성공했지만 랄라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듯 코치박스까지 나와 선수들을 격려했고 선수들은 랄라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맨유를 더욱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미 소튼의 전략을 분석하긴 했지만 97퍼센트에 이르는 패스성공률을 보인 인수의 활약은 맨유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더욱이 사이드로 공간을 열어주는 패스도 많았지만 문전에 침투하는 코룸과 에디, 후퍼에게 연결되는 패스도 많았고, 그 패스 하나하나가 모두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다.

특히 소튼이 기록한 마지막 골은 경기 내내 패스를 했던 인수가 세 명의 선수 사이에서 공간을 만들어내며 만든 골이었다.

지난 시즌 뛰어난 플레이로 신인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한 경기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나이도 어렸고 체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수였다.

그러나 맨유와의 첫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면서도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 때까지 지친 모습이 없었기에 이번 시즌 인수의 체력이 가장 큰 약점이라 지적한 전문가들의 말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어진 2라운드 경기에서도 인수는 풀타임을 소화했고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이 체력을 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휴식기에 쌓아놓은 체력이 소진되어 점차 활약이 떨어질 것이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긴 했지만 지난 시즌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평가와 함께 처음으로 이달의 선수상까지 수상한 인수는 그 기세를 박싱데이 주간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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