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사우스햄튼이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갖는 것이 처음이죠?”
“소튼이 아시아투어를 하는 것 자체가 처음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요시다 마야 선수가 뛰기도 했고 이전 구단주도 중국인이었지만 항상 유럽을 고집했던 사우스햄튼이거든요. 지난 JK에서 구단을 인수하고 미국프로축구팀과의 친선경기를 갖기도 하는 등 이제 유럽 외부에도 눈을 돌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FC서울과 친선경기의 중계를 맡은 한국 중계진은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권 팀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프리미어리그의 팀을 만나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십만전자에서 첼시에 네이밍을 한 후 수원과 친선경기를 갖고, 맨유가 FC서울과 친선경기를 갖긴 했지만 소외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국가가 한국이었다.
그러나 소튼이 다시 한국을 찾고 다른 팀들도 한국에서 경기를 하면 한국의 축구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단절됐던 프리미어리그와의 교류가 이렇게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그런데 사우스햄튼은 어떤 팀입니까. 프리미어리그에 오래 잔류하고 있는 만큼 해외축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만 유명한 팀은 아니죠.”
“프리미어리그의 팬들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일반 축구팬들은 사우스햄튼에 자세히 모르실 거 같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는 유스를 잘 키우기로 유명한 클럽들이 몇 개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사우스햄튼은 최상위 유스를 배출해냈죠. 가장 유명한 선수라면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잉글랜드 축구계의 전설 엘런 시어러를 비롯하여 토트넘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가레스 베일, 첼시에서 뛰었던 웨인 브리지, 아스널에서 정점을 찍었던 시오 월콧, 채임버스, 체임벌린, 현재 사우스햄튼의 감독이기도 하고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아담 랄라나 등 듣기만 해도 엄청난 선수들을 배출해 낸 클럽입니다. 특히 2019-20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로 명칭이 바뀐 후 첫 우승을 했던 멤버 대부분이 사우스햄튼 출신이란 건 유명하죠. 프리미어리그에 우스갯소리 중 사우스햄튼에 돈줄이 있어 선수들을 지켰다면 챔피언스리그도 우승했을 거란 소리가 있을 만큼 선수들을 잘 키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해설자는 긴 이야기를 하며 목이 마른 듯 물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물론 사우스햄튼이 자금이 넉넉한 구단이 아니기에 선수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유스 시스템만은 그 어느 클럽에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나라에 유스 선수들이 진출하고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에는 연결된 고리가 없었거든요. 이번 경기를 통해 하나의 고리를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 방송을 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도 항상 유스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해설가답게 유스 진출을 강조했다.
“말씀하신 대로 현재 사우스햄튼에서 뛰고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클럽 유스 출신이죠. 대표적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하인수 선수와 에드워드 브라운 선수도 유스 출신이고 오늘 선발로 나오는 크레이그 후퍼와 톰 아자르, 딕시 다이어 등 주전 11명 선수 중 7명이 클럽 유스 출신입니다.”
“사우스햄튼이 잘 증명하고 있죠. 클럽에서 유스를 키워 팀에서 데뷔를 시킨다. 그리고 더 큰물을 원하면 비싸게 팔아 그 돈을 다시 유스에 투자한다. 모든 전문가들이 다가오는 시즌이 시작되고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면 하인수 선수의 이적을 확실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들리는 이적금만으로도 유스 첫 이적금 중 최고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긴 자금을 다시 유스에 투자하여 또 다른 선수를 키워내죠.”
“네. 그렇습니다. 우선 사우스햄튼의 선발 라인업부터 보시겠습니다.”
캐스터는 해설자의 유스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말을 끊었다.
축구를 보는 눈도 좋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기로 유명한 해설자라 계속 계약하고 있긴 했지만 그놈의 유스 타령은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골키퍼에는 프레스턴 볼입니다. 불과 23살이란 나이로 프리미어리그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골키퍼가 필요했던 사우스햄튼이 4부 리그에서 뛰던 골키퍼를 영입했는데 지난 시즌 대박이었죠.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어린 주전 골키퍼로 성장했습니다. 센터백에는 위고 파바르와 빅토르 반 비크가 나오게 됩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반 비크입니다만 사우스햄튼이 가장 믿고 있는 센터백 듀오입니다. 양 윙백은 딕시 다이어와 톰 아자르입니다. 두 선수 모두 클럽 유스 출신으로 임대를 갔었던 공통점이 있군요. 수비형 미드필드에는 제리 톰슨이 서게 됩니다. 5부리그에서 뛰던 제리 톰슨을 발굴해 사우스햄튼의 중요한 고리인 수비형 미드필드에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프리시즌 두 경기에서 실수도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드필드 다이아몬드를 형성하는 하인수와 에드워드 브라운, 크레이그 후퍼, 한스 바우만이 서게 됩니다. 사우스햄튼이 자랑하는 공격라인을 구성하는 네 선수입니다. 한스 바우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튼 유스 출신으로 지난 시즌 그 파괴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최전방에는 지난 시즌 말 부상을 입고 회복한 이후 돌아온 데이비드 코룸이 섭니다.”
어느덧 35살과 36살이 된 파바르와 비크는 모두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직 좀 더 뛰어 달라는 랄라나의 부탁으로 파바르는 한 시즌을 더 뛰고 은퇴하는 것으로 번복했다.
유스 시절부터 존경했던 선배이기도 했고 소튼을 사랑하던 파바르의 어려운 결정이기도 했다.
“그럼 이에 맞서는 홈팀 FC서울입니다. FC서울이 현재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FC서울이 홈구장으로 쓰는 이곳에도 6만여 좌석이 모두 매진이 된 만큼 말이죠. 라인업을 보시죠. ······.”
***
소튼과 FC서울의 경기가 열리는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시작 전부터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탓에 더운 날씨였던 것도 있지만, K리그 명문팀인 FC서울이 오랜만에 프리미어리그팀과 경기를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한국계였기에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린 인수와 에디의 덕도 있었다.
“와, 에디. 한국에서 인기 좋구나.”
후퍼와 린네스는 관중석에서 영어로 쓴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에디, 넌 내 거야’라니. 부러운 자식. 이 먼 한국에도 팬이 있어.”
“세인트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네. 우리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
“저기 세인트 깃발도 있네. 와.”
후퍼가 가리킨 곳을 본 인수와 에디는 숨을 들이마셨다.
동아시아투어를 할 때도 이야기가 없었던 인수의 부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관중석 제일 앞에 있었다.
인수의 어머니인 제니퍼는 소튼의 깃발까지 챙겨왔는지 소튼의 유니폼은 물론이고 이 더운 날씨에 머플러까지 하고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하인스 엄마야.”
“뭐?”
“저기 깃발 흔들고 있는 여성분이 하인스 엄마라고.”
인수가 부끄러운 듯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자 에디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쩐지. 아. 인수 아빠가 한국분이지. 혹시 세인트셔?”
“응. 골수 세인트 중에 한 분이지. 커뮤니티에도 유명해. 하인스가 유스 경기에 나서고부터는 조용히 계시는 거 같긴 하지만.”
후퍼와 린네스는 에디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외에도 인수에 대한 애정 표현 문구도 있었고 특이하게 레이에 대한 사랑 표현과 함께 인수에게 물러나라는 문구가 다행인지 아닌지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수의 FC서울 서포터즈들은 소리 높여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으니 그 열기가 모두 필드로 전달되어 왔다.
양 팀의 친선전은 FC서울의 선축으로 시작됐다.
후방에서 빌드업을 시작한 FC서울의 공격은 소튼의 전방이 압박해 들어오자 침착하게 미드필드를 거쳐 전방으로 공이 향했다.
미드필드에서 전방으로 찔러주는 공이 어설펐는지 톰슨의 슬라이딩에 의해 공이 끊겼고 바로 일어서 공을 수습한 톰슨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앞의 바우만에게 공을 넘겼다.
톰슨의 패스를 받은 바우만도 바로 인수에게 공을 넘기자 소튼의 공격진들은 FC서울의 오프사이드라인을 살피며 침투해 들어갔고, 인수는 침착하게 에디에게 공을 돌렸다.
인수의 패스를 받았을 때 이미 사이드 깊숙이 침투했던 에디가 지체 없이 올린 크로스는 후퍼의 헤더로 골포스트를 넘어갔다.
FC서울의 공을 끊고 단 다섯 선수만을 거치고 슛까지 이어지는 공격 라인은 골대를 비껴가긴 했지만 서울의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후퍼의 헤더가 아니었으면 그 뒤에는 인수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 사이드에는 언제 오버래핑을 했는지 아자르까지 대기하고 있었기에 실점이 될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다들 자신이 맡은 선수만 신경 써. 놓쳤어도 끝까지 따라붙으란 말이야.”
FC서울의 주장이자 골키퍼는 수비라인을 다그쳤다.
소튼의 공격이 생각보다 빠르고 정확하긴 했지만 에디의 빠른 발에 휘둘린 수비 탓도 컸다.
거기에 사이드에서 중앙으로 침투한 후퍼를 놓친 수비까지, 단 1분 만에 FC서울의 수비 허점을 내보였다.
“다들 애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자기 플레이를 하란 말이야.”
FC서울의 감독도 초반부터 코치석까지 뛰어나와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FC서울의 말처럼 소튼 주전 선수들의 나이는 평균 25세로 젊었다. 더욱이 공격 라인만 봤을 때는 22살로 FC서울의 막내하고 나이가 같았다.
그런 젊은 팀에게 기세를 뺏기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초반부터 눌리는 느낌이었다.
“좋아. 그대로만 해.”
반대로 소튼 벤치에 앉아있던 랄라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에서의 경기 전에 드리블을 최소화하라고 했음에도 기회가 보인다고 드리블을 하던 선수들이 하나씩 정확한 패스의 길을 보고 있었다.
아니 최종 패스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수에게 정확한 패스를 보내고 있었다.
5부리그에서 독불장군이었던 톰슨도 호흡이 맞아가고 있었고, 에인트호번에서 영입한 바우만도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승점을 위한 경기는 하지 않는다. 어느 팀이든 세인트와 맞붙으면 힘들다는 느낌을 주는 경기를 하겠다.’
자신이 저번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의 각오를 물어보는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였다.
지난 시즌 안정적인 승점 획득으로 유로파를 노렸고, 안정적으로 잔류하긴 했지만 빅6라고 불리는 팀들에게는 승점자판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시즌 소튼은 그 어느 팀이 와도 소튼과 경기하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하위 팀들에게 발목을 잡힐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팬들에게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주겠다는 자신의 철학이 담긴 전술이었다.
그 전술을 시험하는 경기가 아시아투어를 비롯한 베를린과의 경기 그리고 레딩과의 경기였고, 시즌에 돌입하기 전 완성할 예정이었다.
그 중심에 있는 인수가 뛰기 시작하자 랄라나의 가슴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