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프리시즌을 일주 앞두고 선수들을 소집한 랄라나는 모든 선수가 스태플우드에 모인 것에 안도했다.
이미 이적을 원하는 선수들을 모두 이적시킨 상태였지만 팀 구성에 불만 있는 선수들은 소집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했기에 간간이 모든 선수가 모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 클럽 차원에서 벌금을 물리기는 했지만 많은 연봉을 받는 프리미어리거였기에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불만이 해결될 때까지 벌금을 내고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팬들의 비난을 받긴 하겠지만 비난보다는 자신이 뛰기 편해지거나 불만이 해결되길 원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특히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이적을 원하는 선수들이 많이 택하는 방법이었기 소집에 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적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됐다.
“다들 만나서 반갑다. 세인트의 새로운 감독인 아담 랄라나다.”
이번 시즌 새로 합류한 선수들과 임대에서 복귀한 선수들, 그리고 2군에서 뛰던 선수와 유스에서 1군에 뛸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까지 모이다 보니 60명이 넘는 선수단이 모였다.
모든 선수단을 소집하면서 그동안 소튼이 프리시즌에 지출하던 비용에 비해 대폭으로 늘었지만, 랄라나는 모인 선수 모두를 데리고 프리시즌을 치르고자 했다.
물론 선수들이 많은 만큼 경기에 뛰지 못할 선수들도 많겠지만 모든 선수들과 이동을 하며 언제든지 서브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호흡을 맞춰나갈 생각이었다.
아직 이적자금이 남아있었고 구단주가 새롭게 추진한 프리시즌 일정에서 받는 돈도 상당했다.
특히 동아시아 3국에서 초청된 프리시즌 일정은 랄라나가 자금을 사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세 국가의 협회 모두 하인스와 에디가 45분 이상 뛰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어.”
“하인스야 동양계이니 그런다고 하지만 에디까지?”
동아시아 3국에서 프리시즌이 결정되면서 각국의 협회에서는 소튼 운영진과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했다.
특히 지난 2019년 유벤투스의 호날두에게 크게 데였던 한국축구협회에서는 두 번, 세 번 계약서 내용의 이행을 요구할 정도였다.
“세 경기가 5일 간격으로 펼쳐지는데 하인스와 에디의 체력에는 문제없을까?”
“휴식기에 훈련한다고 해서 알았다고는 했는데 두 사람 모두 몸을 만들어왔던데. 브링이 직접 참여했다고 하니 체력적으로는 문제없을 거 같아. 직접 뛰는 것을 보고 확인해야겠지만 나처럼 유리몸은 아니니까.”
랄라나는 소튼의 운영팀장과 저녁을 먹으며 프리시즌의 일정을 확인했다.
“한국에서 마지막 경기가 끝난 이후 독일에서 헤르타 베를린하고 연습경기 후 영국으로 돌아와 레딩과의 경기를 치르고 프리시즌을 끝내면 돼.”
“고생했어요. 운영팀에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어서.”
랄라나는 프리시즌을 준비하며 운영팀에 헤르타 베를린과의 연습경기를 반드시 잡아달라고 부탁했었다.
분데스리가의 전형적인 중위권팀인 헤르타 베를린에는 랄라나가 원했던 팀의 마지막 퍼즐인 스테반 플라텐하르트가 있었다.
수비형 미드필드와 센터백을 모두 볼 수 있는 멀티자원으로 독일 대표팀에 승선한 적은 없었지만 헌신적이고 수비 쪽에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장기로 했다.
더욱이 아직 2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다 이적료도 높지 않아 눈독을 들이는 팀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독일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본인의 의지로 7시즌째 헤르타 베를린에서 뛰고 있었기에 프리시즌 연습경기를 핑계 삼아 직접 영입하고 싶어 했다.
“아마 안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 우리에게도 워드프라우스라는 또라이가 있었잖아.”
자신도 그렇고 베일도 그렇고 브리지, 월콧, 루크 쇼, 체임버스 같은 유스 출신은 물론이고 사디오 마네, 버질 판데이크도 결국 우승을 위해서거나 더 큰 몸값을 받고 팀을 떠났다.
그러나 제임스 워드프라우스는 유스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원클럽맨으로 남으며 소튼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워드프라우스같은 또라이라면 감독이 직접 만나 설득한다고 해도 안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우리 주전 풀백들이 나이가 너무 많아. 린네스와 힐슨이 있다고 하지만 너무 경험이 부족하고. 플라텐하르트가 딱인데.”
랄라나는 저녁을 먹으면서도 플라텐하르트가 왜 소튼에 필요한지 운영팀장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
“하인스, 일본 가봤어? 일본 여자들이 그렇게 순종적이라면서. 일본말 할 줄 알아?”
프리시즌을 동아시아로 떠나면서 비행기에 올라탄 선수들은 안전벨트를 풀어도 좋다는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인수에게 몰려들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일본 출신도 아닌데. 나도 한 번도 안 가봤어.”
“왜 몰라. 바로 옆 나라인 한국은 자주 갔잖아. 한국에 가면서 가봤을 거 아냐.”
“바로 옆 나라라고 해도 바다가 막고 있다고. 나도 안 가봤어.”
“그럼 그다음 나라인 중국은? 중국은 좀 알겠지?”
“중국도 내가 어떻게 아냐고. 다들 구글링해. 구글링하면 다 나온다잖아. 나도 모른다고.”
“구글링하라고. 귀찮잖아. 한국은? 한국은 어때? 너 한국말도 잘하잖아.”
“아, 몰라. 모른다고. 잠 좀 자게 다들 자리로 돌아가라고.”
인수는 결국 짜증을 내며 자리에 몰려든 선수들을 쫓아냈다.
지난밤 300수가 넘게 두었으면서도 아쉽게 패한 후 복기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인수였다.
보통은 지더라도 다음날 훈련을 위해 바로 자는 편이었지만 지난 밤 대국은 컨디션도 좋았던 데다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상대방 채팅으로 흔들려 지고 말았기에 더욱 분했다.
다행인지 시즌 중이 아니었기에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충분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12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자야겠다는 생각이 주변에 몰려든 선수들로 인해 깨졌다.
“어제 못 잤어?”
그런 인수의 상태를 가장 빨리 파악한 것은 에디였다.
“응. 어제 바둑두다가 짜증 나서 공부 좀 더하다 못 잤거든.”
“그러게 바둑 좀 그만두라니까. 짜증 내면서 왜 계속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에디는 자신이 보기에 재미도 없는 바둑을 인수가 계속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넌 왜 게임 계속하는데? 그래봐야 브론즈 딱지 떼지도 못하면서.”
“내가 브론즈인 거지 그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바둑 그만하고 게임이나 하자니까.”
“됐어. 그런 부모님 안부나 묻는 게임은 너나 해. 그리고 너도 게임 하다 그만 부모님 안부 묻고. 그러다가 너란 거 들키면 큰일 난다.”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
“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난 자련다.”
인수는 마지막까지 귀찮게 하던 에디까지 쫓아내고 안대로 눈을 가렸다.
“야. 야. 일어나.”
인수는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허우적거리며 안대를 벗었다.
“기내식 나올 때가 됐어?”
“기내식 같은 소리 한다. 일본 도착했어. 임마.”
“일본? 기내식 줄 때는 깨웠어야 할 거 아냐. 어쩐지 배고프더라.”
에디는 인수의 말에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깨웠지. 네가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어도 아마 더 깨웠을 거야.”
에디는 ‘이곳이 네가 때린 곳이야.’라고 말하듯 어깨를 살살 문질렀다.
“그랬어? 미안.”
“준비하고 내려가자. 공항에 사람들이 꽤 있데.”
일본에게 소튼은 자국의 스타 수비수였던 요시다 마야가 뛴 클럽으로 잘 알려있었다.
무려 7시즌이나 뛰면서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긴 했지만 기량이 떨어지면서 이적료도 없이 방출되어 세리에 A에서 은퇴한 선수였다.
요시다가 국가대표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일본 내에서 소튼은 잘 알려진 편에 속했다.
“한국처럼 정신없는 상황은 아니겠지.”
“그런 정도는 아니겠지. 오늘 기자회견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지?”
“뭐 하던 대로 해야지.”
***
처음 요시다 마야가 소튼을 떠난 후 새로이 일본 선수를 영입할 계획을 묻는 것으로 시작된 기자회견은 일본 축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하인스 선수는 저번 올림픽 때 일본대표팀과 맞상대하셨는데 어땠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전혀 모르는 팀이었기에 전략 분석지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테크니션적으로 뛰어난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인수는 미리 홍보팀에서 준비해준 답안을 생각하며 대답했다.
“테크니션보다는 피지컬적으로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야죠. 요시다 선수가 소튼에서 7시즌을 뛸 수 있었던 이유도 피지컬적인 부분이 받쳐줬으니까요.”
요시다가 소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때가 있었다.
스피드는 빨랐지만 순간 가속도가 느려서 토트넘의 슈퍼소니에게 빵빵 뚫렸던 모습을 기억하는 인수였지만, 그래도 일본 기자들을 배려한 대답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 날 치러진 가와사키 플론탈레와의 프리시즌전에는 교체카드 제한을 없애면서 랄라나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랄라나가 프리시즌을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점이 공을 받고 세 번 이상 드리블하지 않는 패스게임을 하라는 것이었다.
훈련 때도 패스 위주의 훈련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했고 후방은 단단하게 지키는 것을 주문했기에 가와사키와의 평가전은 프리시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축구가 전개됐다.
그 중심에는 인수와 에디를 중심으로 라이트 윙으로 출전한 후퍼가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었고 최전방에는 코룸이 호시탐탐 골을 노렸다.
더구나 인수의 뒤에 에인트호번에서 새로 영입된 한스 바우만이 위치하며 중앙에서 공격과 수비를 조율했다.
아직 호흡을 맞춘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위험한 순간도 많았고 실점도 내주었지만 적어도 공격적인 측면만으로는 전반 45분 동안 4골을 만들어내며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인수와 에디, 후퍼, 코룸이 교체되고 난 이후에도 공격을 늦추지 않았고 그만큼 실점도 늘어났다.
일본에서의 중계를 보는 소튼의 팬들은 골을 넣을 때와 골을 먹을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중이었다.
처음 팬들의 지지를 받는 랄라나가 감독직에 오를 때만 해도 모두가 환영을 했지만 시즌을 미리 볼 수 있는 프리시즌 첫 경기부터 심장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그런 소튼의 모습은 두 번째 프리시즌 경기인 중국 광저우 FC와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저우에 있는 텐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는 첫 경기 인수와 바우만의 위치를 바꿔 시험했다.
중앙이 얇아지기는 했지만 바우만을 건너뛰어 양 사이드로 향하는 패스와 바우만에게 찔러주는 패스까지 살아나면서 공격 쪽에서는 더 좋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중앙이 너무 얇아지면서 수비에 큰 부담을 주었기에 자주 활용하지는 못할 전략이었다.
그렇게 두 경기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투어 경기가 열리는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의 경기는 서울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FC서울과의 친선경기로 치러졌다,
처음 순수 국내파로 이루어진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겸하려던 축구협회에서는 리그가 한창 진행되던 K리그의 각 구단 사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아시아 최종 예선이 펼쳐지기 전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잉글랜드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잡으며 국내 팬들의 원성을 무마했다.